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76화 (76/140)

〈 76화 〉 강산: 마지막 촬영 갈게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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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SBC 드라마 <여인 정난정>을 보고 있었다.

이 드라마에는 강주연(정난정), 전인하(문정왕후), 도지연(경빈 박씨) 등이 출연하고 있었다.

조선의 3대 악녀(요부)로 장녹수(~1506), 정난정(~1565), 장희빈(1659~1701)이 유명하다. 김개시(김상궁)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 중에 장희빈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많이 다루어졌다.

여배우에게 장희빈은 우리나라 여배우들 사이에서 꼭 한 번은 맡아야 할 배역으로, 그래서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해왔다.

상대적으로 장녹수나 정난정, 김개시는 드라마화가 덜되었다.

<여인 정난정>에서는 도지연이 말끝마다 “뭬야?”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면서, 도지연 배우의 재발견으로 유명했다.

강산이 일부러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에 이규리가 <여인 정난정>에 출연한 것을 보았다.

그 후로 <여인 정난정>을 방송하는 시간마다 식당을 찾거나 만화방에 가서 보았다.

이규리의 극중 배역은 중종의 후궁 화빈 최씨로 문정왕후, 경빈 박씨와 중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다가 정난정의 함정에 빠져 극중 초반에 사약을 받는 역할이었다.

강산은 이규리가 나오는 장면마다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아름다운 후궁으로 우아한 여성의 연기를 하다가 앵앵거리는 목소리가 나와서 분위기를 깰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두 자매>에서 익힌 호흡법으로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누르고 있었다.

가끔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데 중종에게 애교를 떨거나 상궁들에게 푸념하는 씬에서 나와 오히려 반전매력을 주었다.

강산은 아버지 같은 마음이라 코믹한 장면에서도 웃지 못했다.

어느 장면에서는 마음에 들었다가도 어느 장면에서는 감독이 이규리의 눈빛을 더 살렸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규리는 하얀 소복을 중종이 내린 사약을 두고 앉아 있었다.

이 씬은 이규리에게는 마지막 씬이자 드라마 <여인 정난정>에서는 초반 몰입도를 높이는 장면이다.

“내 죽은 후에도 정난정! 네 년이 어떻게 될지 지켜볼게야. 호호호호옷!”

이규리가 표독한 눈빛을 지은 후 미친 여자처럼 한바탕 웃는 모습은,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강산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규리는 사약을 받아 마신 후 피를 토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죽음을 맞이했다.

이규리가 죽자 강산은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규리가 어떻게 캐스팅 되었는지 모르지만 TV에서 이규리를 보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자 감동이었다.

나중에 이규리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여인 정난정>의 정두영 PD가 우연히 강산이 만든 <두 자매 이야기>를 보고 직접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내가 바로 이규리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감독이다.’

*   *   *

이곳은 신림 사거리에 있는 국일관 나이트클럽이다.

건물 지하에 위치한 국일관은 극장식 나이트클럽으로, 지금은 외장공사를 하면서 보름 동안을 휴장하고 있었다.

그중 하루를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빌렸다.

오후 10시전에 나인수 선생과 나인수 선생이 섭외한 박은아와 최수현, 총 세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쳐야 한다.

평소라면 촬영하는 가수들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컨셉을 서로 이야기하고 가수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촬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현장 공연 컨셉으로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듯이 촬영해야 한다.

오늘의 뮤직비디오는 강산이 거절했던 일이지만 맡기로 했다.

뮤직비디오 만드는 일을 정리하는 마지막 숙제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김철수의 말 중에 나인수 선생이 아프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찌 보면 무명가수 나인수 선생의 마지막 기록이 될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강산 자신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밴드촬영이 마음에 걸렸지만 음악감독을 따로 섭외했다고 하니 결과는 나인수 선생의 몫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CD 음원으로 바꾸는 것도 권해볼 생각이다.

오늘의 일정은 세 사람 중에서 최수현과 박은아를 먼저 촬영하고, 나인수 선생은 제일 나중에 촬영하려고 한다.

나인수 선생은 다른 가수들의 립싱크 촬영과 다르게, 밴드 세션들과 같이 실제 공연을 촬영한다.

실제 공연을 촬영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가수 두 분은 최대한 빨리 촬영하혀고 한다.

남은 시간에는 나인수 선생 촬영에 집중할 생각이다.

강산은 촬영계획을 설명하려고 최수현과 박은아를 불렀다.

최수현은 이십대 초반의 청순하게 생긴 아가씨였고, 박은아는 사십대 중반의 원숙한 중년 여성이었다.

“오늘 촬영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한 분당 리허설 한번, 본 촬영 세 번을 하려고 합니다. 먼저 리허설 한번을 해보고 문제가 없으면 본 촬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본 촬영을 할 때마다 옷을 갈아 입으셔야 하는데요. 제가 의상 세 벌을 가져와 달라고 했는데 가져오셨어요?

““네””

“음... 이제부터 시작할 텐데요. 누가 먼저 촬영할까요?”

촬영은 한 사람당 두 시간 정도가 예정되어 있다.

강산에게는 누가 먼저 촬영하는가는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촬영하는 가수들에게는 순서가 민감하다.

뮤직비디오 촬영이 흔한 때가 아니라서 그런지, 최수현과 박은아의 표정이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먼저 촬영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럼, 나이 순서대로 최수현씨 먼저 촬영할까요?”

“.....”

최수현은 긴장이 되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박은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순서를 뒤로 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박은아 선생님 먼저?”

강산이 박은아의 의사를 물어보듯이 박은아를 바라보자, 박은아가 최수현의 얼굴을 보았다가 강산에게 말했다.

“감독님. 내가 먼저 할게요.”

“고마워요. 언니, 정말 고마워요.”

“아냐. 빨리 하고 빨리 끝내고 쉬면 내가 더 좋지”

박은아가 흔쾌히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강산은 박은아의 트로트 곡 <그래서 좋아>를 틀어놓고 리허설을 했다.

리허설을 하면서 어느 타이밍에 어떤 장면을 잡을 것인지 가수의 특징이나 매력 포인트를 체크해 두어야 한다.

이번 촬영을 위해 <준 픽쳐스>의 카메라 세대를 동원했다.

중앙 카메라는 무대전체를 잡아주는 롱샷으로,

우측 카메라는 가수의 표정과 행동을 클로즈업으로 하는 바스트샷으로 촬영하고,

좌측 카메라는 이동하면서 촬영하는 카메라다.

강산은 리허설 도중에 나타난 문제부분들을 메모장에 정리하고 스텝들에게 지시했다.

“조명팀은 흥겨운 노래답게 조명을 즐겁고 현란하게 해주세요.”

“댄서분들은 춤동작을 좀 더 크게 해 주시고요. 회 차마다 조금 다르게 설정해 주세요.”

“악기를 다루는 분들도 간주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즐겁게 연주하는 표정을 지어주세요.”

“모두 조금 오버 액션을 해도 좋습니다.”

트로트 곡 <그래서 좋아> CD를 크게 틀어놓았지만 어차피 소리는 녹음되지 않는다.

강산은 실제 촬영으로 들어가기 전에 조명, 카메라 상태를 최종 점검하고 실제 촬영에 들어갔다.

실제 촬영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차례의 촬영이 끝나자 박은아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촬영했다.

세 차례의 촬영을 모두 마치고 박은아와 스텝들이 쉬는 동안 강산은 모니터에 촬영한 장면들을 비교해 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몇 장면을 발견하고, 박은아와 보충촬영을 하고 촬영을 종료했다.

박은아의 촬영을 마치자 12시가 넘었다.

다음 최수현의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 위의 조명들을 다르게 세팅하고 있었다.

강산과 스텝들은 간단하게 김밥을 먹고, 어묵 국물로 마른 목을 축이고 있었다.

이어 다음 최수현의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인수 선생의 아들 김철수와 나인수 선생의 노래를 반주해 줄 밴드 세션들이 하나 둘씩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김철수가 강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아~ 네. 김철수씨”

“감독님. 시간이 되시면 잠깐 밴드 연주자분들을 소개시켜드려도 될까요?”

“네.”

김철수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분들을 차례, 차례 소개시켜 주었다.

“이 분은 기타를 하시는 백운규 선생님. 이 분은 베이스 손지윤 선생님, 이분은 드럼의 백승호 선생님, 이 분은 키보드 김세현 선생님.”

“네. 강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산은 나인수의 밴드를 맡아줄 세션들과 인사를 하고, 다시 최수현을 촬영하기 위해 무대 세트를 집중했다.

무대 위로 올라가서 무대 세트를 점검하고 촬영상태를 확인하면서 슬쩍 무대 뒤에 있는 최수현을 보았다.

최수현은 긴장이 되는지 심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최수현님. 준비 되셨어요?”

“네.”

“그럼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강산은 음향 스텝에게 신호를 주자, 최수현의 발라드 곡 <블랙 커피>가 촬영장에 울려퍼졌다.

<블랙 커피>는 어린 소녀에게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블랙커피처럼 쓰다는 감성적인 내용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최수현은 립싱크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노래하는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왜 그러지?’

강산은 최수현이 왜 그렇게 긴장하는지 표정이 굳어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최수현에게 이런 감정을 보이면 더 긴장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심하게 대했다.

“조금만 쉬었다가 본 촬영을 가겠습니다.”

강산은 최수현이 여배우라면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여배우의 감정을 조절해 줄 텐데,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다, 한 시간 안에 모든 미션을 마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어떻게 하지. 아직 감정이 잡히지 않은 것 같은데’

최수현은 노래를 부르기 좋아해서 가수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감정조절이 서툴렀다.

한번 긴장하기 시작하면 자꾸만 몸이 굳어져서 자연스러워지는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런데 이런 뮤직비디오 촬영은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강산은 본 촬영을 시작했다.

최수현의 굳은 표정은 <블랙 커피>의 청순한 느낌이 살지 않았다.

강산은 모니터에 보이는 최수현은 립싱크도 맞지 않고 표정도 굳어 있어서 OK를 할 수 없었다.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갈게요. 두 번째 본 촬영입니다. 최수현 가수님. 몸 좀 풀어주시고 표정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해주세요.”

최수현은 자신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긴장을 떨쳐내기 위해 입을 ‘푸르르’ 가글하듯이 입을 풀고, 목운동을 하듯이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강산은 두 번째 본 촬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최수현의 모습을 좀 더 뒤로 빼서 전신위주로 촬영하고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도 줄였다.

최수현에게 몰리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밴드 세션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넣었지만 가짜로 연주하는 밴드원들의 모습이 더 어색했다.

설상가상이다.

이제 마지막 촬영만 남았는데 이전 2회 차 촬영에서 에서 건질만한 게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강산은 모니터를 다시 확인하다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지 난감했다.

“10분만 쉬었다가 마지막 촬영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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