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74화 (74/140)

〈 74화 〉 강산: 저는 이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두성호는 홍대 근처 영화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어젯밤 늦게 까지 술을 먹고 잤다가, 오늘 음악잡지 <월간 클라식> 기자와 인터뷰 약속을 지키려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숙취에 더부룩한 속을 달래며 홍대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인터뷰 약속이 오후로 미뤄졌다고 연락이 왔다.

‘쒸트! 이럴 거면 출발하기 전에 연락을 주지’

갑자기 시간이 난 두성호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 사우나나 하려고 서교호텔 사우나를 찾았다.

마침, 사우나 입구에 내부 수리중이라는 푯말을 걸어 놓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두성호는 만화방 또는 비디오방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주변을 찾다가, 간판미술가가 그려 놓은 성인 영화 간판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삼류 성인영화가 잠을 자도 감독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아서 건물 지하에 있는 작은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영화관 안에는 관객들이 많지 않았다.

성인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라서 그런지, 관객들은 일부러 거리 두기를 하려고 하는 것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자 극장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두성호는 불편한 좌석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다.

‘음... 쇼팽의 에튜드 이별의 노래인데?’

‘이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이 부분은 드뷔시의 달빛’

‘이 부분은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1번’

피아노 초보들을 위한 클래식 입문 곡부터 마스터들만이 소화할 수 있는 곡들이 두성호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대체 누가 연주한 거야’

두성호는 숙취에 눌린 무거운 눈을 떠야 했다. 음악평론가로서 아무리 피곤해도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두성호의 두 눈에 비친 것은 두 여자가 야생화가 펼쳐진 들판을 산책하는 장면이었다.

햇볕이 어지러운 카메라 워킹이 눈에 거슬렸지만 그늘진 들판을 산책하는 두 아가씨 뒤로 흘러나오는 쇼팽의 피아노곡 녹턴이 가슴을 울렸다.

그 후로는 무슨 음악이 나올지 흥분되어 잠을 잘 수 없었다.

압권은 노을 씬이었다.

넓게 펼쳐진 산 노을에 흐르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는 두성호가 들어보지 못한 음원이었다.

많은 클라리넷 거장들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그윽하고 여유로운 연주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쉬트! 이런 명곡들을 성인영화에 사용하다니, 대체 이런 영화에 음악을 사용하게 해준 쓰레기 같은 음악감독이 대체 누구야?’

*   *    *

레젼드 가수 남인수의 본명은 강문수, 남인수는 예명이다.

1936년 데뷔한 이래 20여 년간 약 1천 여곡에 가까운 노래를 불렀다.

대표곡으로는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무너진 사랑탑〉이 있다.

나인수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취미를 노래를 하다가 서른이 되자 남인수의 모창 가수로 밤무대 가수를 시작했다.

낮에는 택시 기사, 밤에는 밤무대 가수를 하면서 살았지만 점차 노래 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50대 중반이 되었으니, 무명가수지만 가수 생활도 20년이 넘었다.

아무리 밤무대라도 20년이 넘게 가수로 먹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노래 실력으로만 본다면 유명 가수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나인수는 강산이라는 뮤직비디오 감독을 알게 되면서 꿈이 하나 생겼다.

무명가수로 은퇴하기 전에 다른 가수들처럼 뮤직비디오라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강산이 만든 채은숙의 <가을에 떠난 사랑>, 조병선의 <사랑하고 싶어요.>, 유시내의 <그 사랑을 몰랐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자신도 이런 뮤직비디오 하나 가졌으면 싶었다.

강산은 나인수에게 돈과 시간만 준비되면,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돈은 500정도라 돈을 준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월요일 빼고는 일주일 내내 밤무대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산이, 하루 안에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하루 안에 끝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가요?”

“약속된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하루 이상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말이에요.”

“하루 안에 끝내려면 선생님이 공연하는 형식으로 촬영하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강산은 아버지뻘인 나인수에게 선생님이라 부르고, 나인수는 강산이 아들 뻘이라 이름을 불렀다.

실제로 나인수의 큰아들과 강산의 나이가 같았다.

“그 방법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선생님. 그 방식으로 촬영하려면 제작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왜요?”

“촬영 시간은 2~3시간이면 되지만 먼저 촬영 세트장을 섭외하고, 가짜 밴드들을 섭외하고, 무용수는 섭외하지 않는다고 해도 촬영 스텝들 비용까지 하면 적어도 700에서 900정도 들 거예요.”

“음... 500으로는 어렵다는 말인가요?”

“네. 500으로는 선생님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럼, 어렵다는 말이 아닌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선생님이 혼자 출연하면서 노래하는 형식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조금 단순하지요.”

“산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 방법은 마음에 안 드세요?”

“같이 출연하고 싶은 분들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면 선배님이 뮤직비디오를 만들 두 분을 더 모셔서 비용을 나누면 어떨까요.”

“그래. 두 사람만 더 모아오면 된다는 말인가요?”

“다른 가수 분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현장을 보면 1곡당 2~3시간 정도 걸리더라고요. 다른 가수들 두 분을 더한다고 해도 이론상으로는 하루 안에 촬영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럼 촬영 비용을 나누어 부담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럼, 언제 정도 가능할까요?”

“선배님이 뮤직비디오를 만들 사람을 모아서 연락 주시면, 스케줄을 잡아 보겠습니다.”

*   *    *

며칠 후, 강산은 나인수의 전화를 받았다.

“산이, 통화 가능해요?”

“네. 선배님”

“자네가 일전에 말 한대로 두 명을 더 구했어요. 언제 정도 촬영할 수 있을까?”

“장소 섭외를 하고 촬영준비를 하자면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반주를 맡아줄 밴드는 내가 섭외할게요.”

“선배님. 밴드는 섭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밴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전에 내가 노래하는 형식으로 촬영한다고 밴드가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밴드가 나오지만 밴드는 실제로는 연주하지 않습니다. 연주하는 것처럼 연기만 합니다.”

“산이. 나보고 립싱크를 하란 말이에요?”

“선생님. 대부분의 가수들이 립싱크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합니다. 밴드를 사용하면 밴드 비용도 문제가 되지만 현장 녹음 문제 등등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밴드 비용은 내가 부담하기로 하고 녹음 문제도 내가 책임질게요.”

“선배님. 밴드를 사용하면 하루 안에 다른 분들도 함께 촬영하기 어렵습니다. 녹음 문제도 있고요. 제가 음악은 조금 알지만 음악감독 같은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럼, 음악감독을 구하면 될 거 아닌가?”

“선생님. 저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만드는 뮤직비디오에서는 선생님이 노래하는 모습만 촬영하고, 음원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일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은 결국 나에게 립싱크나 하라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산이. 립싱크하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에요.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지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야. 립싱크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반드시 밴드를 사용해야 해요.”

“선배님. 그럼 저는 이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죄송하지만 선생님, 다른 감독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   *

강산은 뮤직비디오를 그만두려고 고민하고 있었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뮤직비디오 만드는 일이 익숙해지는 것이 불편하다.

회귀하기 전에 경험했던 일이지만 <나마스테>가 엎어지자, 강산은 노가대에 나가 일을 했었다.

노가대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아침과 점심, 점심과 저녁 사이에 새참(오전에는 주로 빵을 주고 오후에는 일터마다 조금씩 다르다)을 준다.

또 점심을 먹고 나면 1시까지는 단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노가대 일이 힘들다 보니 일하는 시간이 괴롭지만, 새참으로 주는 빵과 짧은 낮잠이 마약이다.

이 마약의 달콤함에 노가대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마시는 한 잔의 술에 피로를 잊었다.

이런 단순한 노가대는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노가대를 시작한 지 보름 정도 되었을 때에 영화에 대한 생각 뿐만 아니라 해피머니에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만일 해피머니에 잡혀오지 않았다면 계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회귀한 후, 애플프로덕션을 나와 뮤직비디오 일을 하면서 에로영화 족쇄를 간신히 벗어났는가 싶었다.

원래는 뮤직비디오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 만들고 가수들과 회식하는 생활이 익숙해지고, 영화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강산은 3분 예술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3분에 불과하지만, 뮤직비디오의 아이디어를 내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을 혼자서 하다 보니, 생각처럼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작품을 시작할 때는 사정 미팅을 하고 마칠 때에는 가수들이 고맙다고 식사하자, 술 한잔하자고 하는데 마냥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러다가는 이번 생의 커리어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뮤직비디오 감독이 될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전생의 에로영화가 더 낫지 않을까 고민이다.

에로영화를 만들면 돈이라도 많이 받지, 뮤직비디오는 돈도 안 되는데 일은 에로영화 못지않게 힘이 들었다.

*   *   *

어느 날,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회귀하기 전에는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일과 관련된 전화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는 모르는 전화도 다 받았다.

“여보세요? 실례지만 강산 감독님 핸드폰인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가요?”

“저는 나인수씨의 아들 김철수라는 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나인수씨 뮤직비디오 일로 전화 드렸습니다.”

“그 일은 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감독님. 아버지 나인수씨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부탁 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