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73화 (73/140)

〈 73화 〉 채은숙: 반주 없이는 노래하기 힘들어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군위의 한밤마을은 ‘내륙의 제주’라고 한다.

제주는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고 하지만 한밤마을은 ‘여자’ 빼고 ‘돌’과 ‘바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돌이 많아서 한밤마을의 돌담길이 유명하다.

집들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돌담들이 4km 정도 이어지고 끊어져 미로(迷路) 같은 골목길이 만든다.

강산은 깊어가는 가을, 산수유와 감나무, 은행나무의 잎들이 떨어져 있는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는 채은숙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 돌담길을 따라 걸어오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보았다.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할머니는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은 상태로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돌아가신 할머니 뒷모습이 닮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강산은 잠시 쉬었다 하자고 촬영을 잠시 멈추고, 할머니에게 가서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를 따라갔다.

강산은 할머니에게 촬영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다 늙은 할매가 뭐 볼 게 있냐고 강산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강산의 계속되는 간곡한 부탁에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채은숙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

캐리어를 끌며 걷다가 반대에서 걸어오는 할머니를 보고 멈춰 서는 장면,

할머니와 둘이서 돌담길을 걸어가는 뒷모습,

상매댁이라는 남천고택에서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채은숙을 배웅하는 장면,

채은숙은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돌아가는 뒷모습이 울고 있었다.

*   *   *

촬영을 모두 마치고 화곡역으로 돌아오자 저녁 8시가 넘었다.

어제 먹었던 국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여관으로 돌아가다가, 실비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

조천일과 남일규가 군위까지 와서 그냥 가기 섭섭하다고 술이나 한잔하고 가자고 해서 실비집으로 들어갔다.

채은숙은 숙소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같이 따라왔다.

실비집이란 실제로 들어간 실비(實費)만 받고 파는 집을 말한다.

술을 팔기도 하고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본래는 술값만 받고 안주는 무료로 제공되는 술집들을 말한다.

진주 실비, 통영의 다찌, 마산의 통술집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진주 실비집은 안주 값을 받지 않지만 마산 통술집은 안주 값을 따로 받는다.

통영 다찌집은 처음부터 기본상이 차려서 나오지만 진주 실비집은 기본상이 차려진 뒤에 한 가지씩 계속 이어져 나온다.

이곳은 실비집이라고 하지만 전통적인 실비집이 아니라 1인당 만오천원을 받았다.

안주로 밤 게와 고동, 육회와 코다리 조림, 농어와 가오리찜, 묵은지 수육 등 여러 가지 해산물과 고기들이 나왔다.

강산은 안주가 너무 좋아 술을 마시지 않고 음료수만 마셔도 즐거웠다.

술잔이 돌면서 술기운 덕인지 돌아가면서 노래하다보니 노래자랑 시간이 되었다.

조천일이 먼저 근래에 유행하는 컨츄리 꼬꼬의 <오! 가니>를 부르며 분위기를 잡으면서, 남일규가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을 불러 분위기를 살렸다.

이어 강산이 나훈아의 트레이드마크인 입술을 깨무는 표정을 지으며 특유의 모창으로 <고향역>을 불렀다.

<고향역>은 강산이 전생에 모임에서 흥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노래였다.

강산의 노래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평소라면 낯가림이 심하던 채은숙이 강산에 이어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실비집 안은 작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역시 가수는 가수다.

채은숙이 노래를 마치자, 다른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박수와 앵콜을 외치고 강산일행이 앉은 자리까지 와서 술잔을 권했다.

“은숙씨. 관객들이 앵콜을 하는데, 한 곡 더 해주시죠.”

“죄송해요. 제가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잘못해서요. 반주 없이는 노래하기 힘들어요.”

다른 자리에 있는 아저씨, 아줌마도 채은숙의 노래에 반했는지, 한 곡만 더 해달라고 채근했다.

채은숙의 얼굴을 보니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강산은 채은숙의 낯가림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다 구석에 통기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사장님. 저기 기타 좀 써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강산은 콜트 통기타를 들고 와서 ‘탕’ ‘퉁’ ‘탕’ 하고, 음을 조율하고, 채은숙에게 준비가 되었다고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주저하던 채은숙이 강산에게 말했다.

“감독님. 무슨 노래가 좋을까요?”

“트로트 가수가 하는 앵콜곡에는 지방마다 반드시 불러야 하는 국룰이 있는데 모르세요?”

“모르는데요.”

“그럼, 그동안은 어떻게 앵콜송을 하셨는데요?”

“제 노래를 한 곡하고 앵콜송이 있으면 또 다른 제 노래를 하거나 주최 측에서 불러 달라고 하는 노래 세 곡을 준비했어요.”

“으음. 그럼,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데요.”

초청 가수들은 앵콜송으로 보통 세 곡을 준비한다.

히트곡이 많은 유명 가수들은 자신의 곡으로 앵콜송을 채우기도 하고 최근 유행곡을 부르기도 한다.

채은숙 같은 무명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보다 축제 분위기를 살리는 흥겨운 노래를 한다.

강산은 축제에서 초청 가수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들을 생각했다.

“죄송해요.”

“뭐, 나한테 죄송할 것 까지야...”

“그런데 감독님 국룰이 뭐예요?”

“규칙 같은 말이에요. ‘국민룰’의 준말인데, 지금은 조금 빠르지만, 나중에 많이 쓰게 될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말이 있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트로트 가수라면 지역에 따라 구별해서 불러야 해요.”

“지역에 따라서요?”

“전라도에 가면 <목포의 눈물>, 경상도에는 <용두산 엘레지>, 서울, 경기도에서는 <미아리 고개>, 강원도에서는 <한 많은 대동강>을 기본으로 불러야 해요.”

“아~”

채은숙은 그동안 지방 공연을 갈 때마다 노래는 잘하는데, 현장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나름, 현장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래를 열창하고 열심히 춤까지 추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채은숙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무언가 관객들과 어우러지지 않고 겉돈다는 느낌이 있었다.

“채 가수님. 그럼 여기가 경북 군위니까 <용두산 엘레지>부터 시작할까요?”

“네. 감독님”

강산은 일행들과 실비집 손님들에게 채은숙을 소개라는 멘트를 했다.

원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너스레를 떨 만큼 얼굴이 두꺼운 편은 아니지만 살아온 연륜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화본역 주민 여러분. 많이 기다렸습니다. 자! 방금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가수 채은숙 양이 부릅니다. 용두산 엘레지~”

채은숙은 강산의 기타반주가 시작하자, 옆자리에 있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용두산 엘레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용두산 엘레지>에서 엘레지란 비가(悲歌), 슬픈 노래를 말한다.

본래 원래는 ‘슬픔의 시’,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의 시’를 말하는 문학작품에 사용되는 용어였다.

18세기부터는 슬픈 정서를 나타내는 음악작품의 표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우리나라의 고유어에도 ‘엘레지’라는 단어가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엘레지는 ‘수컷 개의 성기’를 뜻하고 표준어이다.

“용두~사나아. 용~두~사나. 너마논 변치 마알자.”

채은숙이 노래를 시작하자, 그녀의 허스키 보이스가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용두산 엘레지>는 고봉산 작곡, 최치수 작사로 1950년대 만들어졌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채은숙이 용두산 엘레지를 마치자 바로 이어 <한 많은 대동강>, <목포의 눈물>을 연이어 부르고, 강산이 화려한 기타 반주로 흥을 돋우었다.

*   *   *

강산은 채은숙의 <가을에 떠난 사랑> 뮤직비디오를 마치고 한동안 일거리가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트로트 작품들이 이어졌다.

사실, 트로트 뮤직비디오는 돈이 되지 않는다.

트로트 가수들은 뮤직비디오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다.

노래방이 유행하면서 뮤직비디오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신곡이 나왔다는 것을 알릴정도의 뮤직비디오라면 만족했다.

채은숙의 <가을에 떠난 사랑> 뮤직비디오가 조금씩 유명해지면서 다른 트로트 가수들에게 새로운 욕심이 생겼나 보다.

그래서인지 트로트 가수들은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강산이 소속된 <준 픽쳐스>를 찾았다.

그런데 <준 픽쳐스>는 회사의 이미지와 트로트는 맞지 않았다.

<준 픽쳐스>는 발라드 음악을 주로 하고,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사장인 최영준도 개인적으로 트로트를 선호하지도 않고, 굳이 트로트까지 하지 않아도 할일은 많았다.

그런데 트로트 가수들이 <준 픽쳐스>를 많이 찾아왔다.

강산이 감독을 맡아주면서 인력의 여유가 생긴데다, 트로트를 마냥 거절하기에는 요구사항이 까다롭지 않아 좋았다.

제작비도 나쁘지 않고.

강산은 한 달에 2~3곡 정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트로트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트로트 뮤직비디오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가수들을 만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다 보니, 어느새 두세 달이 훌쩍 지나갔다.

강산의 한 달 수입은 월 200정도 되었다.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일한 보수가 200밖에 되지 않아서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커리어가 에로영화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 싫지는 않았다.

강산은 트로트 가수들과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트로트 가수들의 애환을 많이 들었다.

그들에게 뮤직비디오는 진지하다.

무명가수들은 밤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TV방송에 출연하거나, 두 번째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홍보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방송에 출연하려면 인맥이 필요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다.

인맥이 없는 가수들에게는 그나마 뮤직비디오가 편하다.

방송국에 출연 로비를 하려면 인맥과 돈이 필요하지만, 뮤직비디오는 돈만 있으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를 만들려면 한 편당 500에서 1,000이 필요하다.

이것은 강산이 만드는 뮤직비디오가 그렇다는 것이다.

유명한 TV 탈랜트나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는 5,000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만들려고 하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야 한다.

강산의 주요한 고객은 트로트 가수들이 되었다.

연배가 많은 분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 중에 남인수의 이미테이션 모창가수 나인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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