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70화 (70/140)

〈 70화 〉 채은숙: 제작비 때문인가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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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평소 TV를 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 날은 전날 과음을 했는지 국물을 먹으려고 설렁탕 식당에 들렀다가 누군가 틀어놓은 TV프로에서 본 것 같다.

KBC 아나운서 이은희씨가 진행하는 <아침 산책>이라는 아침프로였다고 기억한다.

이은희씨는 미녀 스타일이 아니라 아줌마 스타일이지만 차분하고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진행자로 유명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안의 화제인 <당신의 여자>를 부른 채은숙씨를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채은숙씨.”

“네, 선생님,”

“채은숙씨. 1997년 팔도노래자랑 최우수상으로 데뷔하고 10년이 넘었네요. 무명 시절이 길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방 축제공연도 하고, 밤무대도 뛰고 행사가 없으면 아르바이트도 하고 지냈어요.”

“아르바이트요?”

“네. 식당에서도 하고 편의점에서도 하고, 화장품 샵에서 화장품도 팔았어요.”

“그렇군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래하다가 결국 해내셨군요. 요즘 인기 실감하세요?”

“네. 예전보다 많이 알아봐 주시는 거 같아요.”

“어떠세요? 지금은 행복하시죠?”

“네. 행복해요. 무명 시절이 길어지면서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노래가 좋아서 지금까지 계속해온 것 같습니다.”

“그럼 채은숙씨의 노래를 하나 듣고 다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채은숙은 스튜디오의 가운데로 나가, ‘사아공의 배엣노래~’로 시작하는 <목포의 눈물, 1935>을 불렀다.

방청객들은 채은숙의 노래에 따라 박자를 맞춰 리액션을 해 주었다.

강산은 채은숙의 독특한 성조에 설렁탕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목포의 눈물>을 들었다.

노래 가사의 하나하나가 강산의 감정선을 건드리고 소름 돋게 만들었다.

“수고 하셨어요. 은숙씨. 물 좀 마시고 이야기하죠.”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네?”

“10년 전에도 <목포의 눈물>을 선생님 앞에서 부른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세요?”

“기억이...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요, 우리가 어디서 만났던가요?”

“이은희 선생님이 MC 하시던 가요 산책에서 <목포의 눈물>을 불렀는데요.”

“아! 생각나요. <목포의 눈물>, 바로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선생님이 제 노래가 좋다고 방송 끝나고 단골 한정식 집에 데려가서 밥도 사주셨잖아요. 선생님. 그때하고 지금 얼굴이 너무 달라졌죠?”

“아유. 농담도 잘하네요.”

“그래서 기억나지 않으시잖아요?”

“제가 기억하는 채은숙씨는 예쁘고 재능 있는 신인가수였다고 기억해요. 금방 성공하리라 생각했는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누, 눈물이 나서요. 선생님 죄송해요.”

이은희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주자, 채은숙은 화장을 지키려는지 흐르는 눈물을 찍어 눌렀다.

“처음 만난 매니저에게 사기도 당하고, 소속사하고 정산문제로 소송도 하구요. 눈하고 코를 고치는 간단한 성형수술을 했는데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해야 했어요.”

“아~ 그랬군요.”

“이제야 수술도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운이 좋게도 <당신의 여자>가 인기를 얻으면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마음껏 노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   *   *

채은숙은 강산을 따라 준픽쳐스 회의실 자리에 앉았다.

뮤직비디오 감독이라는 강산과 악수를 하면서 슬쩍 보았지만, 두꺼운 안경테에 마른 몸매를 가진 강산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준픽쳐스...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제작비가 부족하다고 해도 그렇지,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먼저 말을 하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해피머니에서 사채를 더 빌렸을 것이다.

채은숙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매니저의 소개로 해피머니에서 사채를 빌렸다.

나름, 승부를 건 것이다.

그런데 준픽쳐스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학생처럼 보이는 감독에게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맡기다니.

강산도 채은숙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난 채은숙은 회귀 전에 알던 채은숙과는 얼굴이 너무 달랐다.

최영준이 들어보라고 건네준 CD의 목소리와 <정말 좋았네.>가 아니었다면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강산이 기억하는 채은숙은 눈, 코, 입을 모두 성형한 티가 나는 전형적인 강남 미인이었다.

성형 수술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 이런 얼굴이었구나!’

그런데 지금의 채은숙은 강산이 알던 채은숙의 얼굴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지금의 모습이 더 나은 것 같았다.

큰 눈에 오뚝한 코와 입이 균형 잡힌 미인으로, 대륙의 여신이라는 중국 영화배우 탕쉐이를 닮았다.

탕쉐이.

<색*>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탕쉐이를 강산은 아주 좋아했다.

믿지 않겠지만 순전히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다.

탕쉐이가 중국에서 <색*>이후로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강산은 탕쉐이에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었다.

참고로 탕쉐이에게 보낸 시나리오는 성인영화가 아니었지만 다른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미안하다는 메일을 받았다.

탕쉐이는 한국영화 <늦가을>에 출연하고 <늦가을>을 연출한 김모 감독과 눈이 맞아 결혼까지 이어졌다.

전생에 강산은 김모 감독을 부러워하면서, 만약 자신의 시나리오를 탕쉐이가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아무튼, 채은숙은 괜찮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형수술은 왜 했는지 의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수술은 큰 실수다.

빅 미스 테이크.

미적으로만 보아도 수술 후의 채은숙의 얼굴은 개성이 없다.

우연히 본 방송프로그램에서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한동안 쉬었다고 하던데 말이다.

굳이 얼굴을 성형하지 않아도 좋은 얼굴을 가지고, 돈을 들여 수술했다가 부작용에 다시 수술하고, 귀한 시간만 버린 것이다.

“채은숙씨, 뮤직비디오 이야기나 하죠.”

“제 노래를 들어보셨어요?”

“네. 노래가 좋던데요. 가을 분위기에 맞는 것 같더군요.”

“그렇죠. 감독님이 듣기에도 그렇죠.”

“네. 은숙씨는 어떤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하세요?”

“제가 뮤직비디오를 처음 촬영해서 잘 몰라서 그런데요. 감독님. 뮤직비디오에는 어떤 스타일이 있나요? 안 되는 방식은 있나요?”

“음... 제한은 없어요. 아주 다양한 방식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대표적이죠.”

“두 가지요?”

“가수가 직접 출연하는 방식과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 방식, 두 가지요.”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 방식은 어떤 방식이죠.”

“요즘 유행하는 얼굴 없는 가수 있잖아요. 조*모 가수가 1집에서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만들었던 뮤직비디오 말이에요.”

“ <to heaven="">요”

“참고로 저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도 않고 추천하지도 않습니다.”

“왜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거든요.”

“그럼, 제가 직접 노래 부르는 영상을 촬영해야 하나요. 그건 제가 조금 어려운데요.”

채은숙이 준픽쳐스에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한 것은 무엇보다 최영준이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에 반해서다.

그런데 강산이라는 감독은 자신에게 직접 출연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촬영하자는 것이다.

매니저는 채은숙의 얼굴 때문에 인기가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채은숙씨, 저하고 이야기할 때에는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하셨으면 합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입니다.”

“솔직하게요...”

“애매하게 표현하면 제가 채은숙씨 의사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내 솔직한 마음은 내가 노래하는 방식보다 드라마 식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음,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왜요? 제작비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왜 물어보셨는데요.”

“채은숙씨가 원하는 것을 알고 싶어서요.”

“감독님! 지금 제가 돈이 없다고 놀리시는 건가요?”

“아뇨.”

“아니면요.”

“드라마 식이라고 해서 제작비가 많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제작비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드라마 식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방법이 없지는 않지요.”

“어떻게요?”

“채은숙씨가 직접 출연해서 연기를 하면 드라마 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요?”

“네.”

“저는 연기자가 아니라 가수인데요.”

“가수는 연기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요. 10년만 지나도 가수 출신 연기자는 흔한 이야기가 될 거에요. 제가 가르쳐 드리지요.”

“그래도 연기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요.”

“채은숙씨가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정말 안타깝군요.”

“네?”

“저는 <가을에 떠난 사람>의 노래를 듣고 영화 <만추>가 떠올랐거든요.”

“만추요?”

“네. 영화 <만추> 아세요?”

“아뇨.”

“영화 <만추>는 살인죄로 복역하던 여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청년을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운명처럼 엇갈리게 되죠. 여죄수와 청년과의 사흘간의 불꽃같은 사랑을 그리는 영화에요.”

“슬픈 이야기네요.”

“슬프지만 아름답고 성숙한 여자의 이야기지요.”

“뮤직비디오로 담기엔 이야기가 너무 많지 않나요?”

“저는 채은숙씨가 만추의 그녀가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장면하고, 그 남자와 만나지 못하고 교도소로 돌아가는 장면들을 뮤직비디오로 담을 생각이에요.”

“저 말고 다른 전문 배우가 출연하면 안 되나요?”

“저는 부족한 제작비 안에서 드라마 식으로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한 것 뿐이니까요.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생각이나 한 번 해보고 결정하세요.”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는가요?”

“오늘 저녁 아홉 시까지는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저녁까지면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 아닌가요.”

“삼 일 후에는 촬영을 시작해야 해서요. 채은숙씨의 결정에 따라서 촬영방식을 정하고 이틀 동안 촬영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그날 저녁, 채은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독님. 제가 연기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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