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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69화 (69/140)

〈 69화 〉 강산: 일거리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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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미래를 고민하다 한강대 영화과 선배 최영준을 찾아가기로 했다.

최형준 선배의 졸업 작품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 때, 강산이 막내스텝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최영준 선배는 다른 선배들과는 달리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 한강대 영화과 출신들은 영화계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진출하는 선배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반에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준비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법대 선배라고나 할까?

배고픈 영화계를 떠나 방송국이나 에서 일한다는 것은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밝히는 속물이라고나 할까?

보통 영화계에서 감독으로 입봉 하려면, 10년 정도는 영화판에서 굴러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러나 CF나 뮤직비디오 분야는 아직은 진입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손쉽게 감독으로 데뷔하고 돈을 벌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가요계에서 뮤직비디오가 유행하자, 최영준은 CF에서 뮤직비디오로 전향해서 나름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최영준 선배님”

“누구?”

“선배님. 95학번 강산입니다. 선배님 작품 <청춘에게 고함>을 만들 때 막내스텝으로 일했습니다.”

“아! 강산이 오랜만이다.”

“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최영준과 강산은 최영준이 졸업작품으로 <청춘에게 고함>을 만들 때 처음 만났다.

최영준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일기획으로 들어가 CF를 만들었다.

강산에게 최영준은 하늘같은 선배였지만 자신의 작품에 같이했다고 학교에 와서 술을 살 때마다 항상 강산을 불러 인생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냐? 네가 나를 다 찾아오고”

“지나가다가 선배님 얼굴이나 뵐까 해서요.”

“아니. 뭐, 네가 낯을 좀 가리고 하지 않았냐?”

“아닙니다. 선배님.”

“못 보던 사이에 너 많이 변한 것 같다.”

“왜 그래서요. 선배님. 얼굴 무안하게”

“아냐. 능글맞은 말투도 그렇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날 찾아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최영준은 대학을 졸업하자 다른 동기나 선배들처럼 영화판으로 들어가지 않고 CF를 제작하는 대일기획으로 들어갔다.

최영준은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배가 아니다.

오히려 어린 후배들의 사기를 꺾는 선배,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선배로 알려졌다.

강산처럼 장래가 기대되는 후배, 명문정파의 후지기수에게는 최영준은 마교나 사파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돈으로 젊은이들의 영혼을 유혹하는 마귀처럼 말이다.

열악한 영화판에서 예술을 위해 생고생하는 선배들에게 최영준은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나 다름없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사랑을 팔아먹은 심순애, 독립군 동지들을 밀고한 일제의 앞잡이다.

영화만이 오직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유일신 기독교가 다른 종교 모두를 이단시하듯이, 영화가 아닌 일들은 모두 무시당했다.

강산이 독립영화제에서 <길을 걷는 아이들>로 감독상을 받으면서, 강산은 영화를 하는 선배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최영준이 만나거나 건드려서는 안 되는 후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강산이 스스로 최영준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어?”

“선배님. 부탁이 있어서요.”

“귀한 후배님이 부탁하러 왔는데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줘야지. 무슨 부탁인가?”

“저, 선배님. 일거리 좀 주세요.”

“무슨 일?”

“아무 일이나요. 제가 좀 급하거든요.”

“너, 소문에 준비하던 영화가 잘 안 됐다고 하던데, 소문처럼 사채 때문에 그러냐?”

“아뇨. 그것은 다 해결했어요. 집안 사정이 있어서요.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어렵지만, 일자리가 필요해요.”

“일자리야 많다만...”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아냐. 강산이 네 실력이야 차고도 넘치지. 그런데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이 분야가 좀 그러잖냐?”

“뮤직비디오가 어때서요?”

“자식, 알면서 그러고 있어.”

“제 생각엔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 세계를 인정하고, 이 일을 서로 하려고 할걸요.”

“그래?”

“선배님은 개척자예요.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 말이에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그러니까 제가 선배님을 찾아왔잖아요. 조금만 두고 보세요.”

“좋아. 그럼, 우리 같이 일해보자. 내일부터 나와라.”

*   *   *

강산은 최영준의 회사인 준픽쳐스(JUN PICTURES)에 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뮤직비디오들은 가수가 직접 출연해서 노래하는 스타일이나 가수는 출연하지 않고 배우들이 드라마 형식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준픽쳐스의 뮤직비디오는 드라마 스타일로 유명했다.

최영준의 개인적인 선호가 반영된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드라마 스타일 뮤직비디오에 TV와 영화 스타들의 출연하면서 얼굴 없는 가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영준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잘 짜여진 스토리로 만든 뮤직비디오는 큰 인기를 얻었고 짧은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다고 하였다.

뮤직비디오는 3~4분의 예술이다.

강산은 2주일 정도 최영준을 따라다니면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일을 배웠다.

최영준은 강산에게 카메라를 맡기기도 하고, 편집을 시키기도 했다.

20년이 넘는 영화감독 경력이 무색하게 분야의 특성이 있어서인지, 새로 배우는 것들도 많았다.

다만, 자신이 만든다면 다른 구도나 템포로 촬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최영준이 곁에서 보기에도 강산은 실력은 다른 후배나 감독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산의 능력을 인정한 최영준은 제작비의 단가나 일정이 안 맞아서 거절하던 작품들을 강산에게 맡기기로 했다.

강산은 준픽쳐스의 소속 감독으로, 기자재와 스텝들을 지원받고 한 작품 당 1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작품, 한 달에 네 작품을 한다면 400만원이다.

에로영화도 1주일이면 만드는데, 3~4분짜리 뮤직비디오는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처럼 일이 들어오지 않아 본의 아니게 일주일째 대기만 하고 있었다.

건당 보수를 받기로 했는데 하는 일 없이 일주일이 지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느 날, 강산은 평소처럼 고시원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최영준의 전화가 왔다.

최영준의 사무실에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젊은 여자는 검은색 원피스에 큰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최영준은 그 여자를 채은숙이라고 하면서 강산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여기는 강산 감독이고 이 분은 가수 채은숙 님. 서로 인사하죠.”

“안녕하세요. 강산입니다.”

“아~ 네. 채은숙이에요.”

강산은 채은숙과 인사를 하고 최영준을 보자, 최영준은 웃으면서 말했다.

“강산 감독. 이 분은 강감독이 만드는 뮤직비디오 첫 고객님이야”

“아~ 네.”

“자. 서로 인사는 했다 치고, 자세한 촬영 컨셉이나 일정들은 두 분이 이야기를 하면서 정하시죠.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그만”

최영준은 바쁜 일이 있다는 듯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사무실에는 강산과 채은숙만 남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최영준이 강산에게 들어보라고 트로트 CD 하나를 주었다.

그 노래가 이 여자의 노래였나 보다.

“우리 자리를 옮길까요?”

“네?”

“여기는 최사장님 사무실이잖아요. 회의실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네.”

강산은 최영준 사장의 옆방에 있는 회의실로 채은숙을 안내했다.

강산이 회의실에 들어가서 탁자 반대편에 앉자, 긴장한 채은숙이 맞은편에 앉았다.

채은숙이 선글라스를 내려 탁자위에 올려놓자, 그제야 강산은 채은숙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누구지? 이름은 조금 익숙하데, 얼굴은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아! 못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채은숙은 이번에 만든 트로트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그동안 트로트 가수들이 만들지 않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채은숙은 1997년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을 받고 바로 가수로 데뷔했지만, 발표하는 곡마다 인기를 얻지 못하고 무명 시절을 이어가고 있었다.

매니저 최대만은 채은숙에게 성형수술을 권하고 있었다.

최대만의 말에 따르면 채은숙의 얼굴, 대륙의 여신이라는 탕쉐이 같이 둥근 얼굴에 뚜렸한 이목구비가 대중들에게 섹시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들의 인기를 얻으려면 고*영처럼 갸름하게 얼굴을 고쳐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얼굴에 손대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매니저인 최대만의 말대로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채은숙은 새 앨범을 홍보하는 방법으로 뮤직비디오를 생각하고, 뮤직비디오 계에서 잘 나가는 준픽쳐스 최영준 감독을 찾아왔다.

최영준은 채은숙의 제안을 거절했다.

준픽쳐스는 발라드와 아이돌 음악을 주로 하고 있었고 트로트는 준픽쳐스 이미지에 맞지 않았다.

최영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채은숙이 수차례 찾아왔다.

채은숙은 이번이 성형 수술하기 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듭된 거절에도 자꾸만 다시 찾아와서 난처해진 최영준은 강산을 불러 일을 맡기고는 다른 일이 있다고 나가 버렸다.

“안녕하세요. 정식으로 소개하죠. 이번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게 된 강산입니다.”

“네~ 채은숙입니다.”

“우리 차나 마시면서 이야기 할까요. 커피 좋아하세요?”

“네”

강산은 회의실 구석에 있는 믹스커피를 타고 채은숙에게 권했다.

“제가 트로트를 잘 몰라서 그런데요. 채가수님은 언제 데뷔하셨어요?”

“97년에 데뷔했어요. 전국노래자랑으로요.”

“아! 정말 좋았네.”

“네~ 아시네요.”

강산은 이 채은숙이 그 채은숙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싸라앙~, 그 싸라앙이~’

회귀하기 전, 채은숙은 2010년에 발표한 <당신의 여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데뷔곡인 <정말 좋았네. 원곡: 주현미>도 역주행하면서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채은숙은 중년의 아이돌이라고 할 정도로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과 미모, 뛰어난 무대매너로 중년층의 남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아무튼, 지금 현재의 채은숙은 무명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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