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강산 :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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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머니 최룡해 사장이 애플에 남은 빚을 대신 갚아주었다.
강산은 애플에서 몇 달간 더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에로영화계와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애플을 나오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지?’
막상 애플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강산은 노량진 고시원을 생각했다.
회귀 전에 강산은 공시생 하숙생과 주인아주머니와의 욕정을 그린 <하숙집 주인>을 노량진 근처의 하숙집에서 촬영한 적이 있었다.
강산은 노량진역 근처, 정진학원 사거리에서 위쪽으로 주욱 올라가다 보면 언덕배기 옆에 있는 고시원을 구했다.
고시원에서의 시간은 회귀하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회귀하자마자 영화 두 편을 만들고, 다시 영화를 재편집하느라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하영란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그래. 그런데 영란이를 만나서 뭐라고 하지.
임신한 줄 몰랐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않을까?
최현철하고 잘살고 있을 텐데, 강산의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지.
아직은 하영란을 만날 때가 아니다.
지금 하영란을 만나기에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고.
강산은 아버지와 여동생들이 보고 싶었다.
회귀 전 이즈음, 강산은 해피머니에서 빌린 돈을 갚지 위해 애플에서 에로영화를 만들었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느라,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리를 다친 후에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 다시 일을 하다가 부러진 다리는 지병이 되었다.
여동생들은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하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강산은 회귀하기 전의 강산과 다르다.
강산은 최룡해 사장이 보너스로 준 1,000만원을 아버지에게 드리기로 했다.
1,000만원이라면 아버지 치료비를 하고, 여동생들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1,000만원은 강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1,000만원을 아버지에게 드리고 나면 다시 빈털터리로 돌아가게 된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전생에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여동생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공부를 하거나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반대로 부도가 나서 빈털터리가 되었던 시절에는 여동생들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강산에게 돈은 바람과 같았다.
억지로 잡으려고 하면 모으지 못하고, 포기하고 일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생의 기억들이 흐려진다.
회귀하면 점차 기억을 잃는 것이 일반적인지, 아니면 오십이 넘어서 기억력이 약해질 때 회귀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전생의 기억들이 선명하지 않다.
중요한 사건이나 인상적인 일들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여러 가지가 뒤섞이면서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다.
과거와 달리 애플을 벗어나고 지금 현재의 고민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돈만을 생각하면 에로영화만 한 것도 없다.
회귀하기 전의 기억에 따르면 그 시절의 2,000년은 에로영화를 만들기만 해도 돈이 되는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다면 에로영화가 돈을 벌기 쉬울 것이다.
그래도 에로영화는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강산은 애플을 싫어했다.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였다.
그렇게 싫어하는 곳이었는데, 막상 애플을 벗어나자,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헤매고 있다.
* * *
강산은 고향 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해피머니 최룡해 사장이 재편집 대가로 준 1,000만원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무슨 일이든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 타이밍에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치료비와 동생들의 학비다.
강산은 애플에서 일하느라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오히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여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큰오빠라고 계절마다 김치를 담거나 반찬을 만들어 보내왔다.
“나 왔어요! 아무도 없어요?”
오늘은 토요일이라 동생들이 집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향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참고로 주오일 제도는 2004년에, 주오일 수업은 2012년부터 시행되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강산 혼자 있었다.
낡은 마루 창문에는 바람이 들어오고, 마당의 정원에는 잡초들이, 뒷마당 텃밭에는 정리되지 않은 채소들이 보였다.
강산은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고, 창고에 가서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있는 작은 정원은 생전에 어머니가 가꾸던 곳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돌보는 사람이 없는지, 정원에는 쓰러진 꽃들 사이에 잡초들이 많아졌다.
강산은 마당의 정원에 난 잡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불편하다. 아버지가 누워있고 동생들은 공부하느라 정원을 돌볼 시간이 없었구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아끼고 가꾸던 곳이다.
잡초를 메면서도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오빠! 오셨어요?”
“그래. 정화야, 오랜만이구나.”
“오빠. 이리 줘. 내가 할게?”
“아냐. 괜찮아. 참! 아버지는 어디 가셨니?”
“아버지는 읍내에 침 맞으러 가셨어. 오후 6시 정도에 오실 거야.”
“아버지는 괜찮아 지셨니?”
“많이 좋아지셨어. 조금 거동이 불편하지만 혼자서도 걸어 다니셔”
“그래, 알았다. 정연이하고 정미는 어디 있니?”
“정연이 언니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정미는 친구들하고 놀고 온대요.”
“그래. 가방 두고 씻고 오렴.”
“네 오빠. 그런데 마루에 저것은 뭐예요?”
“아~ 저거 아버지가 좋아하는 소머리야.”
“어디서 났어?”
“읍내에서 샀어. 그러고 보니 빨리 삶아야겠다. 정화야.”
“네?”
“물 좀 올려놓으렴.”
“네~”
강산은 마당 구석 수돗가에서, 두 조각이 난 소머리를 고무 대야에 넣고 물에 담가 두었다.
소머리에서 핏물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잡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소머리를 2시간 정도 물에 ‘푹’하고 담가두어야 한다.
강산은 부엌 아궁이에 잔솔을 넣고 불을 지피는 정화를 보았다.
어머니의 몸빼 바지를 입은 정화의 어린 모습은 예쁘고 귀엽지만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정화는 본인도 공부해야 하지만 고3인 언니 정연이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전생에서 정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로 나가 버스회사의 경리로 일했다.
그곳에서 버스 기사를 하던 매제와 결혼했지만 아이 둘을 두고 이혼했다.
나중에 정화가 기사 식당을 차릴 때, 강산이 도와줬지만 아무래도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강산이 애플에서 에로영화 감독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다가 퇴원하고는 집에서 요양하고 계셨다.
여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도 집안에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갈 수 없었겠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대학에 진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고향 시골에서는 여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충분하다는 분위기였다.
대학은 집안의 장남이나 사내들이 가는 곳이다.
여자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광주나 다른 도시로 나가 직업을 구해야 했다.
강산은 중학교 때부터 광주에 유학 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서울에 있는 한강대에서 공부했다.
세 여동생들은 그냥 시골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당시에는 강산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가야 했다.
전생이지만 쉰이 넘게 살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강산의 가졌던 기회는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동생들의 희생 덕에 얻은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에는 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 * *
“이게 뭐냐?”
“돈이에요.”
“무슨 돈인데?”
“제가 영화를 만들고 받은 돈이에요.”
“그런데 왜?”
“아버지 치료비하고 동생들 공부시키는 데 쓰세요.”
강산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소머리국밥으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돈이 든 봉투를 내놓았다.
여동생들은 강산이 갑자기 내려온 것도 이상하지만 내려오자마자 집안일을 하고 소머리를 삶는 것도 이렇게 봉투를 내놓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큰오빠는 집에 내려오면 자기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식사를 할 때만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명절에도 고향으로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만 있었는데 갑자기 집에 내려오더니 아버지에게 봉투를 내놓은 것이다.
아버지는 강산이 내려놓은 봉투를 보고만 있었다.
“됐다. 네 형편도 어려울 텐데, 돈은 무슨 돈이냐. 받았다고 칠 테니 다시 가져가거라.”
“아니에요. 이번에 작품 하나를 마쳤더니 제작사 사장이 수고비로 준 거예요. 저는 다음 작품을 하면 돈은 다시 벌 수 있어요.”
“네 아버지 아직 안 죽었다. 아직은 아들한테 손 안 벌려도 된다.”
“받으세요. 아버지가 안 받으면 제가 불안해서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요. 아버지 수술비하고 치료비로 쓰세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아버지의 다리수술비와 치료비로 과수원을 담보로 농협에서 대출받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뇌출혈까지 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집에서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
강산의 무심한 탓에 어린 동생들은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해드리고 싶었다.
최소한 돈이 없어 집에서 고생하다가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남은 돈은 애들 대학 공부하는 데에 써 주세요.”
“애들 공부는 네가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고등학교는 마칠 수 있게 하마.”
“아뇨. 아버지. 고등학교 정도로는 안돼요.”
“고등학교면 충분해”
“이번에는 내가 애들을 대학에 꼭 보낼 게요.”
아버지는 강산이 달라진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강산은 자기와 닮아 고집이 세고 무뚝뚝했다. 한번 고집을 세우면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았다.
외동아들에다 어려서부터 객지에 나가 혼자서 공부하더니,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스러운 면이 많았다.
대학도 아버지인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정하고, 학과도 강산이 하고 싶은 공부라고 법대를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정했다.
강산은 아버지와 관계가 불편해지자 방학이 되어도 시골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아내가 있을 때는 아내를 통해 강산의 사정을 들었지만, 아내가 죽은 후에는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려오더니 돈 봉투를 내놓은 것이다.
강산은 고개를 돌려 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대학은 내가 반드시 보내 줄 테니까, 허튼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내 말 알았지!”
“““네”””
“그리고 이 돈은 내가 주는 용돈이야. 먹고 싶은 거나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너희들 마음대로 써”
강산은 봉투 3장을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연, 정화, 정미는 봉투를 받으면서 오빠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무리한 생각이라고 자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같은 큰오빠가 대학을 보내 준다고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