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최룡해 : 보너스라고 해두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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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은 한국대 음악대학 작곡과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주독야경 하듯이, 낮에는 작곡을 하고 밤에는 다정 룸살롱에서 오부리 반주를 하며 살았다.
이재윤은 170cm 중반의 마른 몸매에 항상 긴 머리를 올백으로 묶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이재윤의 뒷모습만 보면, 이재윤을 여자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뒤에서 다가와 이제윤의 얼굴을 보고 당황하는 사람은 100%다.
이재윤은 피아노 전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키보드를 잘 쳤다.
사실, 한국대 음대 작곡과 출신인 이재윤이 룸싸롱에서 키보드를 치는 것은 오버스펙이자 재능 낭비와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 먹고살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음대 작곡과 출신들은 전공과 상관없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교직을 이수해서 중고등학교 음악교사가 된다.
국내 대학원을 진학해서 석, 박사 과정을 밟거나 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국내대학에 남기도 한다.
이재윤은 한국대 음대를 졸업한 후에도 클래식 음악 작곡을 계속했다.
음악을 계속하는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씩 먹고 살기 위해 실용음악으로 전향했지만 이재윤은 끝까지 클래식 음악을 고집하며 살았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룸싸롱에서 오부리까지 해야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작곡가로 인정받고 먹고살려면 대학에 남는 방법이 가장 좋다.
작곡으로 먹고 살기에는 클래식 시장은 크지 않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이재윤이 탁월한 음악을 작곡하거나 성과를 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전생에서 강산이 죽을 때까지 이재윤의 포텐은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강산이 우연히 보았던 이재윤의 곡들은 음악을 잘 모르는 강산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곡이었다.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실내악곡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부드럽고 소박한 분위기의 소품 스타일의 곡을 보았다.
이재윤에 부족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강산과 이재윤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재윤은 오부리 알바를 계속했지만, 강산은 알바를 그만두고 <나마스테>로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다가 에로영화 감독이 되어 바쁘게 살았다.
강산은 이재윤과 굳이 만나야 하는 이유도 없어서 만나지 않았다.
<좋은 친구들>을 운영하면서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갔던 룸살롱에서 이재윤을 만났다.
우연히 룸살롱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강산은 이재윤의 존재를 아예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이재윤은 다른 룸살롱에서 오부리를 하고 있었다.
강산은 오부리를 마치고 나가는 이재윤을 따라가서 담배를 같이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강산은 이재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이재윤이 작곡을 하던 생각이 나서, 지금도 작곡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냐. 결혼하고 딸아이 키우다 보니 먹고 살기에도 힘들어.’
* * *
강산은 이재윤에게 <두 자매 이야기>와 <사랑의 데자뷰>의 영화음악을 부탁해 보기로 했다.
이재윤이 영화음악을 맡긴다고 해서 모든 장면에 사용할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강산이 이재윤에게 기대하는 것은 영화장면에 맞게 강산이 요구하는 분위기에 맞는 클래식 음악을 선곡해주거나, 장면과 장면사이에 빈 공간을 메울 수 있는 곡을 작곡, 편곡해 주거나, 아니면 선곡을 도와주기를 원했다.
강산이 예전에 알바를 하던 다정 룸싸롱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다.
다정 룸살롱의 이름은 램프로 바뀌었지만, 램프에는 다정에서부터 알던 박상무가 일하고 있었다.
강산은 박상무에게 이재윤의 전화번호를 얻어서 이재윤에게 연락했다.
전생이었다면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를 안주로 소주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커피숍에서 이야기했다.
“오랜만이네요. 재윤이 형.”
“오랜만이다. 너는 잘 지냈어?”
“네. 잘 지내셨어요.”
“나야 그저 그러지. 참, 지난번에 무슨 영화 들어간다고 오부리 그만두지 않았냐?”
“그랬었죠.”
“그래. 영화를 어떻게 됐어?”
“잘 안됐어요.”
이재윤은 강산의 오부리를 그만두며 같이 술을 마시던 기억을 되살리며 강산을 기억했다.
강산이 ‘잘 안됐다’는 말에 당황한 이재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아요. 지금은 다른 작품들을 하고 있어요. 형은 어떻게 지냈어요.”
“나야 그저 그러지. 그런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냐?”
“재윤이 형. 아직도 곡을 쓰세요?”
“곡이야 항상 쓰지. 발표하지는 못하지만.”
“형. 나하고 같이 일 좀 합시다. 내 작업비는 섭섭지 않게 줄게”
“무슨 일인데?”
“영화음악”
* * *
이제윤은 강산의 영화, <두 자매 이야기>와 <사랑의 데자뷰>를 여러 번 보았다.
<두 자매 이야기>는 심리 스릴러 영화로, 분위기에 맞는 클래식 음악들을 선정하고 강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산은 이재윤의 선곡이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이제윤이 선곡한 음악의 길이와 화면의 길이가 맞지 않는 부분들은 강산이 편집을 수정해서 클래식 음악과 화면의 분위기를 맞췄다.
특히 이규리가 2층에서 노을을 보는 장면에서는 독일 LP판에 있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의 음악을 사용했다.
2악장 아다지오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1985>에서도 나온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는 카렌(메릴 스트립)과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가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아프리카의 장엄한 풍광을 배경으로 클라리넷이 느린 템포로 천천히 흘러나온다.
2악장 아다지오는 오대산의 펼쳐진 노을과 만나 이규리의 미소가 자연스럽게 노을에 스며들었다.
목관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이 서정시처럼 붉은 노을과 여인, 그리고 모차르트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안정민이 이규리의 뒤에 나타나자, 주위는 조금씩 어두워지고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소리도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현과 다미가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한 들판을 산책하는 장면에서는 이재윤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직접 연주해서 녹음했다.
강산의 영화가 이재윤의 음악이 만나, 조금은 비어있는 음악들이 채워지고 어색한 배우들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음악의 힘인가?
강산은 다현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 미친 여자로만 보여주지 않았으면 했다.
동생 다미와 같이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을이 물드는 하늘을 보며 행복에 빠지는 여자로 그리고 싶었다.
이재윤의 음악은 강산이 상상하던 다현과 감정들을 만들어주었다.
<사랑의 데자뷰>에서는 드뷔시의 달빛(claire de lune)과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 등 여러 가지 클래식 음악이 사용되었다.
클래식음악 애호가가 아닌 일반 관객들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조금씩 사용하면서 감정을 이어 주었다.
강산의 영화 <두 자매 이야기>와 <사랑의 데자뷰>가 이재윤을 만나면서 한층 더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워졌다.
음악 때문에 편집을 다시 해야 할 정도로 이재윤은 강산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주었다.
* * *
강산은 두 작품을 새롭게 편집해서 최룡해 사장에게 주었다.
최룡해 사장은 강산에게서 두 작품을 받자마자, 사장실에서 시사회를 열고 먼저 <두 자매 이야기>를 감상했다.
전에는 강산과 최룡해, 이덕배, 세 사람 외에도 실무진들도 같이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최룡해와 강산, 두 사람만 보는 시사회였다.
강산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영화를 평가받는 시사회라 나름 긴장되었다.
사장실 커튼이 올라가고, 다시 사장실이 환해졌다.
강산은 최룡해 사장의 말을 기다렸는데, 최룡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사랑의 데자뷰>를 상영했다.
<두 자매 이야기>를 감상할 때와 다르게 <사랑의 데자뷰>를 볼 때에는 최룡해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가끔씩 ‘피식’ 하고 웃다가, 어쩐 장면에서는 ‘하하하’ 하고 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시 사장실에 불이 켜지고, 최룡해의 표정을 보니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강산은 은근히 기대하며 최룡해에게 말을 걸었다.
“최사장님. 어떠셨나요?”
“만족스럽습니다. 강감독님, 이제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세요?”
“아직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사장님이 약속하신 1,000만원을 받으면 고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주시면 1,000만원을 바로 보내드리죠.”
“고맙습니다. 1,000만원을 주시면 애플프로덕션에 남은 빚을 갚을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애플에서 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중입니다.”
“애플에는 얼마나 남았나요?”
“네?”
“애플에 남은 빚이 얼마나 되시냐고요? 아니 애플은 강감독님 계획에서 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애플 문제는 제가 처리해 드리죠. 그러니까 애플에 남은 빚은 제가 깨끗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왜, 제게 이런 호의를?”
“보너스라고 해두죠.”
“보너스요.”
“작품이 기대 이상이라서요. 이런 작품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산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 생각되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두 자매 이야기>와 <사랑의 데자뷰>는 어떻게 하시려는 건가요?”
“제가 영등포와 노량진, 부천에 극장이 있어요. 그곳에서 2주나 한 달 정도 걸었다가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할 생각입니다.”
“네.”
에로비디오로 출시하기 전에 극장에서 개봉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홍보를 위한 것이다.
극장에 걸렸었다는 이력이 붙으면, 극장 개봉이력이 없는 작품보다 2,000에서 3,000장이 더 나간다.
그래서 에로비디오용 영화는 극장개봉이라는 이력을 붙이려고 일주일이라도 변두리 영화관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강산의 영화도 극장에 올렸다가 반응이 안 좋으면 바로 비디오로 출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