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66화 (66/140)

〈 66화 〉 오부리 선배 : 기본기가 잘 잡혀 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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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오래된 턴테이블 옆에 있는 가죽 가방을 가리키자, 포터 아저씨가 강산이 가리킨 가죽 가방을 열어보았다.

가죽 가방 안에는 독일어로 된 레코드 세트가 있었다.

아저씨는 영어도 잘 모르는데 독일어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알파벳 위에 붙은 움라우트 덕분인지, 이상한 나라의 레코드라고 생각했는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강산은 최대한 숨을 길게 쉬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이것은 얼마예요?”

“그거, 6만원만 주슈?”

“6만 원요? 너무 비싼데요. 조금만 깎아 주면 안 될까요?”

“6만원은 줘야지. 산 가격이 있는 데, 대신 다른 가방도 같이 주리다.”

“다른 것은 필요 없는데요.”

“이것이 세트 같은 데, 하나만 사면 남은 것은 어떻게 팔아요.”

강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6만원을 내놓자, 고물상에 물건을 가져온 포터 아저씨는 가방 하나를 더 주었다.

강산은 다른 가방은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보지도 않았다.

사실 이 레코드가 어떻게 사용할지 잘 몰랐다.

운이 좋아서 영화에 사용할 수 있는 곡들을 발견하면 좋은 일이지만, 운이 나쁘면 사용하지 않는 고물 쓰레기만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   *   *

강산은 <두 자매 이야기>를 재편집하면서, 지난번에 편집할 때 삭제한 부분을 다시 보강하면서 감독판을 만드는 것처럼 다시 편집하였다.

동시녹음과 후시녹음의 음질 차이를 줄이고, 동시녹음에서 어색한 부분은 배우들을 다시 불러 녹음하고 전체 음량들을 조절했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절하기 위해, 분위기가 다른 화면들을 골라서 다시 색보정을 했다.

필림 영화 색보정은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이 있다.

아날로그 방식은 색을 바꾸거나 밝기를 어둡게만 할 수 있고, 그에 반해 디지털 방식은 많은 색을 만들 수 있고 특정한 부분만을 바꿀 수도 있다.

강산은 전생에서 배운 유용한 편집기술을 장비 문제로 사용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2000년 현재 기술로 가능한 방법을 이용해서 겨우 편집을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영화음악이다.

강산이 고물상에서 구해온 클래식 레코드는 기대 이상이었다.

독일 레코드에 실린 클래식 음악들은 전설적인 베를린필 연주자들의 실력도 뛰어나고 녹음상태도 아주 훌륭했다.

녹음상태는 2000년대의 CD 못지않았다.

1940년대 기술로 이런 음질을 녹음했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포터 아저씨가 덤으로 준 가방에는 미국의 1940년대 재즈 음반들이었다.

재즈 음반의 음질은 나름 괜찮았지만, 독일 레코드만큼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쉽게 찾을 수 없는 명곡들이 많았다.

이 많은 음악 중에서 <두 자매 이야기> 분위기에 맞는 음악은 많지 않았다. 선곡된 음악들은 에로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영화가 고급스러워지는 것은 좋지만 모든 음악을 이 LP판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일부 음악을 제외하고는 판매하는 음원을 사용하는데 전체적인 밸런스 차이가 너무 커 보였다.

문제는 그 밸런스 차이를 어떻게 채울 것인 가였다.

*   *   *

음악 감독이 필요하다.

새로운 음악 감독을 구해서 처음부터 음악을 다시 만들 필요는 없지만, <두 자매 이야기>의 빈자리를 채워줄 음악이 필요했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줄 음악 감독이나 아니면 영화에 절묘하게 어우러지도록 편곡해 줄 작곡가가 필요하다.

강산은 자신이 알던 영화음악 감독들을 생각했다.

조영옥, 박준석, 이영규...

2000년 지금 그 감독들은 강산의 찾기도 어렵고, 찾는다고 해도 섭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생에 강산이 최애하던 절친이자 음악 감독인 장애주도 지금 에로영화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음악 감독으로 적당할까?’

작곡이나 편곡 실력은 뛰어나지만, 대가로 줄 수 있는 예산은 한계가 있다.

결국은 열정페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강산은 전생에 영화음악에 재능 있는 젊은 영화감독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연락처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떠오르는 사람이 이재윤이다.

이재윤은 강산이 룸싸롱에서 오부리(손님이 노래를 신청하면 즉석에서 밴드가 그 반주를 하는 것)밴드 알바를 할 때, 강산이 키타를 치고 옆에서 키보드를 치던 오브리 파트너다.

옛날에는 리듬박스 하나에 전주, 간주, 중간에 에드립을 하는 오부리카토까지 모두 다 외워서 반주를 했다.

요즘은 반주기가 좋아서 리듬과 코드 진행, 베이스 키타 부분이 자동으로 연주된다.

강산이 알바를 하던 룸살롱 다정은 반주기 음악에 손님들이 노래하는 방식보다 리듬박스에 오부리 연주자가 손님들의 노래를 반주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덕분에 강산과 이재윤뿐만 아니라 많은 반주자들이 오브리를 하며 먹고 살았다.

갈수록 노래방 반주기 성능이 좋아지면서, 오부리밴드는 고급 룸싸롱에서나 일부 남아있고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   *   *

강산과 기타.

강산이 군대에 갈 때까지만 해도 기타는 취미에 불과했다.

학교 축제나 학과 수련회에서 류재일이 바이올린으로 김원중의 바위섬을 연주하며 여자 선후배들을 유혹할 때, 강산은 통기타 반주와 노래로 남자 선후배들의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했다.

강산이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는 아르바이트지만 기타로 오부리까지 하며 살게 되었다.

강산에게 기타는 운명 같은 인연이지만 여기에는 우연한 사정이 있었다.

강산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대했다.

당시 논산으로 입대하고 6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면, 충청도 인근 부대에 배치되기 때문에 논산으로 입대하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산은 논산에서 최전방까지 올라간 흔치 않은 병사 중의 한 명이다.

입대 동기들은 대부분 논산 근처의 다른 부대로 배치되거나, 전방으로 올라가는 동안 중간 기착지에서 두 명, 세 명, 내리면서, 버스 안에는 강산과 다른 한 명만 남았다.

강산이 탄 버스는 의정부 306 보충대에 도착하고, 강산과 다른 한 명을 두고 논산으로 돌아갔다.

강산은 동두천, 연천을 거처 5사단 36연대 2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강산은 보병 땅개로 뺑뺑이를 돌고 있었다.

어느 날, 대대 연병장에서 대대 인사계가 드럼을 칠 줄 아는 놈 나오라고 했다.

드럼을 치던 대대 밴드병 제대하게 되어, 새로운 밴드병을 찾으려는 것이다.

아무도 나오지 않자, 신병들의 출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한강대 연극영화과를 실용음악과처럼 음악 하는 학과로 오해한 대대 인사계의 선발로 본의 아니게 대대 밴드원으로 보직이 바뀌게 되었다.

오해가 아니라도 아무나 뽑으면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강산은 드럼을 치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지만, 인사계는 배우면 된다는 말을 하고는 가버렸다.

당시 대대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박철호 상병은 제대한 고참 대신 들어온 강산에게 드럼 대신 기타를 치게 했다.

자신이 드럼을 치려고, 강산에게 자신의 기타를 넘겨준 것이다.

“기타는 이렇게 잡는 거야. 이제 알겠지?”

“네. 그런데 박상병님.”

“왜?”

“......”

“말을 해. 말을 해야 알 거 아니야.”

“제가 말입니다. 드럼병으로 왔는데 기타를 치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데?”

“나중에 인사계가 알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기타를 잘 치는 것도 아니지 말입니다.”

“인사계는 네가 뭘 하든 관심도 없어. 만일에 인사계가 물어보면 네가 원해서 했다고 하면 되고, 기타 문제는 배우면 되고. 아무 문제가 없지.”

입대하기 전, 록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박철호는 군대에 입대하고 대대 밴드원으로 선발되자, 당연히 드럼을 치려고 했다.

군대 짬밥에 밀려 본의 아니게 상병 때까지 기타를 잡았다고 한다.

후임병으로 강산이 왔으니 얼마나 예쁘고 좋았을까?

이제야 드럼을 치게 되었구나 하고 말이다.

제대하면 밴드에서 드럼을 쳐야 하는데, 3년 동안 기타만 치다가 드럼 치는 법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강산은 박철호의 속도 모르고, 박철호에게 기타가 아니라 드럼을 쳐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기타가 아니라 드럼병으로 뽑혔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드럼을 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강산은 갑자기 이유도 모르고 박철호의 지시로 원산폭격을 해야 했다.

그제야 알았다.

기타가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강산은 본의 아니게 기타로 보직을 바꾸고, 사수인 박철호에게 기타 잡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박철호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산의 기타 음이 틀릴 때마다 대나무 뿌리를 말린 정신봉으로 머리를 틀린 음만큼 때렸다.

‘나도 맞으면서 배웠어.’

강산은 박철호에게 맞으면서 기타를 배웠다.

대나무 뿌리 정신봉에 맞지 않으려면 절대로 틀리지 말아야 했다.

기타 코드 잡는 법, 스트록 하는 법, 장비를 끄고 켜는 순서, 기타를 다루는 기본부터 배웠다.

덕분에 강산의 기타 실력은 매우 빨리 늘었다.

강산은 정신봉에 맞지 않으려고 초인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기타를 배웠다.

지금도 가끔 사람들이 손에 지휘봉 같은 것만 들어도 머리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사수인 박철호는 애드립을 싫어했다.

항상 정박에 정확한 음을 내야 했다.

강산이 연주하다가 흥에 겨워 오버라도 하면, 연습 중에는 바로 끊고 정신봉을 사용하고, 공연 중에 오버하면 공연을 끝나고 결산을 하고 머리를 박아야 했다.

기타를 배우기는 제대로 배웠다.

군대를 제대하고 알바로 오부리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됐으니까 말이다.

다정과 같은 곳에서 오부리를 하기에는 쉽지 않다.

강산은 2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밴드 선배님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오부리밴드 구성원을 선발했다.

당시 선배님들이 강산의 기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기본기가 잘 잡혀 있다.’

군대에서 맞기 싫어서 배운 기타 덕분에 밥을 먹고 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이재윤은 강산과 반대로 정통파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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