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강산: 제가 왜 해야 하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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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 사장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강산은 최룡해와 이덕배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최룡해에게 물었다.
최룡해는 고개를 돌려 강산을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두 작품 모두 괜찮았지만 그 중에 <두 자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무시해도 될 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던가요?”
“그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단순한 에로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전혀 다른 영화가 보이더군요.”
“다른 영화라면?”
“오랜만에 보는 심리스릴러 영화였습니다. 관객들과의 심리전이 재미있더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좋은 영화라고 하기는 몇 가지 점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 걸리는 것인지요?”
강산의 질문에, 최룡해는 안경을 밀어 올리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최룡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강산과 이덕배의 시선이 최룡해에게 머물자 입을 열었다.
“음악, 그리고 녹음, 배우들...”
“배우들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조금 있지만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기복이 있는 것 같더군요. 관점에 따라서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배우들의 연기보다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운 음악하고, 동시 녹음과 후시 녹음이 섞인 녹음상태라고 생각해요.”
“그 점들은 이덕배 사장님 말대로 시간이 부족한 점이 있지요.”
“오호. 감독님 말은 시간을 더 주면 영화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시간이 돈이지요.”
“시간이 돈이라... 강산 감독님. 감독님 생각에는 얼마 정도의 돈이면 이 영화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강산이 한 발을 뒤로 빼자, 최룡해는 강산에게 한 발 더 다가온다.
“감독님. 한번 생각해보시죠.”
최룡해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강산을 다시 잡았다.
강산은 자꾸만 다가오는 최룡해를 계속 밀어내기 어려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음악은 새로 하는 것이 좋고, 후시녹음도 동시녹음 부분과 어색한 부분은 다시 녹음해야 하고, 몇몇 장면은 다시 재촬영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생략한 부분은 촬영해서 보강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린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재촬영 부분과 편집과 후보정을 다시 하려면 한두 달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강산 감독이 다시 해 보시죠.”
“그런데 최사장님. 제가 왜 해야 하죠?”
“네?”
최룡해가 다가오자, 강산은 한 발 더 뒤로 갔다.
아쉬울 게 없다.
회귀 전이었다면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정으로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회귀한 지금, 25년이 넘은 연륜은 청년 강산에게 잠시 멈추라고 한다.
강산의 겉모습은 이십 대 청춘이지만, 머릿속에는 오십 대의 경험이 숨어있었다.
경험이라는 스승이 강산에게, 이런 일에는 절대로 먼저 나서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세상의 일들은 목마른 자 중에서 제일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처럼 필요한 자가 먼저 나서게 된다.
기다려야 한다.
목이 마르지 않은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기다려야 한다.
“감독님. 혹시, 비용문제 때문에 그러신가요? 비용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시죠. 내가 그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지요.”
“최사장님.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음... 돈이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가요?”
“제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강산의 말에 당황한 사람은 제안을 거절당한 최룡해보다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이덕배였다.
‘아니 내가 진작에 나하고 하던 것처럼 하지 말라고 경고 했는데’
이덕배는 최룡해의 얼굴이 언제 변할까, 갑자기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강산을 알고 난 다음부터, 갑자기 나대는 심장을 조절하기 어려웠다.
사실 조직을 은퇴한 것도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였는데, 지금이 조직생활을 할 때보다 더 심장이 뛴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다시 묻죠. 강산 감독님.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제가 최사장님에게 몇 가지 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제 질문에 최사장님이 답변을 주시면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말씀하시죠.”
“먼저 제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강산은 최룡해 사장에게 자신을 아느냐고 물었다.
* * *
4개월 전,
사실 4개월 전이라고 하기는 모호한 시간이다. 회귀한 강산에게는 25년 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2,000년 현재로 보면 4개월 전 이야기다.
해피머니가 보낸 추포꾼들에게 잡혀 온 강산과 류재일은 청담동 반지하 빌라에서 이틀을 지낸 후, 해피머니 건물 6층에 모였다.
빌라의 깍두기머리 경비원의 말에 따르면 본사 건물 6층에서 심사원이 자격심사를 한 후, 빚을 갚기 위해 각자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강산은 반지하 빌라에서 자기소개서 5장을 작성해야 했다.
깍두기머리 경비원은 자기소개서에 적은 기술이나 자격증에 따라 공장이나 공사 현장에 보내지기도 하고, 아무 기술이 없는 사람은 염전이나 새우 잡이 배를 타기도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반성문이나 하소연을 쓰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특히 힘든 곳으로 보내진다고 말했다.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이나 새우 잡이 배 같은 곳으로.
이런 협박이 통했는지, 강산도 류재일도 나름 열과 성의를 다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강산은 자신들을 지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도망을 가려고 했다.
실제로 도망가기에는 줄줄이 늘어서 있는 깍두기들과 잡혀 오자마자 써야 했던 신체포기각서가 마음에 걸렸다.
“이영철!”
“네”
책상에 앉아 있는 김부장이 이영철을 부르자, 강철과 같이 온 사람들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갔다.
김부장님이 호명하면 큰소리로 대답하고 앞으로 나가라고 사전 교육을 받았다.
운명이 걸린 시간이 되리라는 긴장감에, ‘네’라는 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너는 힘쓰는 거 외에 다른 재주는 없냐?”
“네.”
“원금 1,000에 이자 700, 총 1,700. 일가친척 중에 네가 빌린 돈을 갚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나?”
“네”
“마지막 기회다.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연락할 기회를 주겠다.”
“없습니다.”
“그래. 이영철. 너는 원양어선 6개월, 염전 1년,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할래.”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까?”
“없어”
“그럼 원양어선을 타겠습니다.”
“좋아. 네가 받을 임금 월 300중에서 6개월 치 임금을 선금으로 빚 1,700을 차감하고 100을 줄 거야. 이 계약서에 싸인하면 인솔자가 부산으로 데려가 줄 거야.”
“네”
이영철이 대답하자, 늘어선 깍두기 중에서 한 명이 나와 이영철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 류재일!”
“네”
류재일은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고 강산과 눈을 마주치고는 책상 앞으로 나갔다.
“한강대 출신. 너는 공부 말고 다른 재주는 없냐?”
“네”
“원금 500에 이자 500. 총 1,000이야. 마지막 기회다. 일가친척 중에 네가 빌린 돈을 갚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냐?”
“없습니다.”
“그래. 류재일. 너는 염전 7개월, 강원도 대관령 10개월 둘 중의 하나야.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것을 선택할래.”
“대관령에서는 무엇을 합니까?”
“몰라. 배추를 뽑던가? 무를 뽑겠지? 빨리 선택해라. 5분 지나면 네가 아니라 내가 결정하게 될 거야.”
“그럼, 전화 좀 써도 되겠습니까?”
“좋아. 형만아. 얘 좀 데려가서 전화 좀 쓰게 해줘라.”
책상에 앉은 자가 형만을 부르자, 깍두기 중에서 한 명이 나와 류재일을 밖으로 데려갔다.
“다음. 강산!”
“네”
“기타를 칠 줄 안다고?”
“네.”
“얼마나 쳤어?”
“군대에서 3년, 아르바이트로 다정 룸싸롱에서 기타 오부리를 1년 했습니다.”
“그래. 요즘 군대도 3년인가?”
“사실은 2년이 조금 넘습니다.”
“음, 거기! 누가 얘한테 기타 좀 갖다 줘라!”
“넵!”
깍두기 중에서 한 사람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더니, 깁슨 기타를 가져왔다.
이런 곳에 깁슨 기타라니?
강산은 기타에 앰프와 이펙터 코드를 연결하고, 음을 튜닝하고는 전기기타를 잡았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인생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군대에서 맞아가면서 배운 기타가 구명줄이 될지도 모른다니,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띠딩, 딩가 띵가’ 강산은 기타 튜닝을 하며, 손가락을 풀었다.
오랜만에 잡는 기타라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연주만은 잘 마치기를 기도했다.
“벤처스의 파이프라인을 연주하겠습니다.”
“시작해”
“넵”
‘띵가 가딩가 띠디딩가 띵가 가다 딘가 ...’
기타를 배운 사람들이 기타 실력을 뽐내고 싶을 때 연주하는 벤처스의 파이프라인을 연주하자, 깍두기들은 짝다리를 흔들며 강산의 연주에 따라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강산은 파이프라인이 끝나자, 바로 보니엠(Boney M)의 <rasputin>과 송창식의 <한 번쯤>을 연달아 연주했다.
“제법이구만. 트로트는 되나?”
“당근이죠.”
강산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고봉산 <용두산 엘레지>를 연주했다.
사실은 몇 차례 실수가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그런 실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다.
자신 있게 치면 아무도 모른다.
“자네는 신림사거리 국일관이나 한국관에서 10개월 어때?”
“제가 룸싸롱에서 오부리 할 때도 월 200은 넘게 벌었는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월 200에 10개월이면 2,000이잖아요. 제가 류재일 몫까지 일하기로 하고, 류재일은 나가게 해주세요?”
“안 돼. 이 자식이 죽을라고,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딜을 걸고 있어? 너는 국일관이야. 거절은 없어!”
</rasput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