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최룡해: 두 분은 어떻게 보셨어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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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에쿠스가 청담동에 있는 해피머니 건물 앞으로 도착했다.
김두호는 이덕배와 강산을 건물 앞에 내려주고, 에쿠스를 주차하러 갔다.
이덕배와 강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피머니 사장실이 있는 건물 7층으로 올라갔다.
강산은 최룡해가 부른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최룡해는 왜 자신을 불렀을까?
지금은 회귀 전에 최룡해를 처음 만났던 2,005년이 아니라 2,000년이다.
자신을 부른 이유도 모르고, 예전보다 5년이나 빨리 만나는 것이지만 특별하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최룡해가 강산의 영화를 보았다면 알 것이다.
다른 감독들이 만든 에로영화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강산은 자신이 있었다.
2주 만에 뚝딱하고 급하게 두 편을 만들었지만 20년이 넘는 감독 경력이 담겨있다.
최룡해가 회귀하기 전처럼 특별한 감각이 있다면 강산의 영화를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 * *
“어서 오세요. 이사장님. 이 분이 강산 감독이신가요?”
“네. 최사장님.”
이덕배와 강산이 사장실로 들어서자, 최룡해가 두 사람을 소파로 안내하면서 강산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175cm 정도의 중키에 마른 몸매, 올백의 머리, 둥근 안경테를 쓴 최룡해는 회귀 전에 보았던 모습과 같은 모습이었다.
강산은 반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최룡해입니다.”
“강산입니다. 저는 명함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두 사람이 최룡해 오른쪽 소파에 앉자, 여비서 박윤경이 이덕배와 강산 앞에 커피를 내놓았다.
커피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박윤경을 보고, 강산은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인사를 하려고 ‘저기...’ 하고 박윤경을 불렀다.
박윤경은 강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지나가려고 하자, 최룡해가 강산에게 말을 걸었다.
덕분에 강산은 박윤경에게 하던 말을 마치지 못했다.
“감독님. 커피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럼, 다른 차라도.”
“아뇨. 아닙니다.”
당황한 강산이 최룡해에게 말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아, 아이스커피가 있으면 그것으로 했으면 해서요.”
“네. 윤경씨, 아이스커피로 한 잔 더 부탁해요.”
“네. 사장님”
박윤경은 최룡해의 말을 듣고, 아이스커피를 준비하러 사장실을 나갔다.
* * *
강산은 회귀 전에 박윤경을 만났던 일들이 생각났다.
최룡해는 자신이 투자한 강산의 영화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강산은 최룡해의 보물이 되었다.
사채업자, 중소도시 영화관 극장주, 삼류 종편채널 주인 등 조금은 음습한 이미지를 히트작을 만드는 영화투자자, 새로운 미디어 그룹 회장으로 이미지를 바꾸어주었다.
이에 대한 보상인지 몰라도 삼십 대 중반의 노총각 강산에게 자신의 비서 박윤경을 소개해주었다.
젊은 남녀들이 만나다 보면 다른 감정이 생기리라 생각했는지, 최룡해는 강산과 박윤경을 자주 만나게 했다.
뚱뚱한 에로 영화감독 강산,
미디어 그룹 회장의 미녀 비서 박윤경.
박윤경의 마음은 모르지만, 강산은 박윤경이 마음에 들었다.
강산은 박윤경을 만나면서 어쩌면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당시 강산은 에로 영화감독을 하면서 계속되는 야근과 고칼로리 야식으로 잘생긴 얼굴과 몸매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예전 잘생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당시 강산은 시골 촌 놈이나 다름없었다.
강산은 호텔 커피숍이나 갤러리 같은 장소에서 여자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영화 일을 하면서 촬영하는 것은 익숙했다.
아는 커피라고는 한강대에서 뽑아먹던 자판기 커피나, 애플에서 먹던 믹스 커피가 전부였다.
애플에서 독립해서 만든 <좋은 친구들>에서도 나중에는 달라졌지만 자판기와 믹스 커피, 두 종류의 커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산은 호텔 커피숍 커피는 잘 몰랐다.
그래서 강산은 박윤경이 주문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따라 마셨다.
강산과 박윤경이 만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박윤경이 무슨 약점을 잡혀서 뚱뚱한 강산을 만나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강산은 내심 박윤경과 진전된 관계를 기대했지만, 박윤경과는 잘 되지 못했다.
박윤경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해피 미디어를 그만두었다.
강산은 자신의 뚱뚱한 모습이나 에로 영화감독이라는 배경이 박윤경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박윤경은 최룡해 사장을 사랑하고 있었다.
최룡해는 박윤경의 마음도 모르고, 박윤경을 강산에게 소개해 준 것이다.
아니, 박윤경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박윤경의 감정에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강산에게 소개 시켜 준 것인지도 모른다.
최룡해가 ‘T’그룹의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쓰러지고, 강산도 회사를 잃고 백수로 지내면서 최룡해와 소식이 끊겼다.
강산은 최룡해가 전라북도 무주의 한 요양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다가 최룡해를 간호하고 있는 박윤경을 보았다.
강산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박윤경은 강산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르쳐준 커피 선생이나 다름없었다.
* * *
“우리 커피나 마시면서 영화나 한 편 감상하시죠.”
최룡해가 리모컨을 누르자, 창문의 검은 커튼이 중앙으로 닫히고 그 위에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사장실 안에는 조명이 꺼지고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최룡해의 뒤에서 ‘촤르르’ 하고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영화가 시작했다.
무슨 영화인가 싶었더니, 강산이 만들어서 최룡해에게 납품한 가칭 <다현 이야기> 였다.
다현과 다미가 들판을 걸어가는 장면 시작으로 영화제목이 올라오는데, 영화의 제목은 <두 자매 이야기> 였다.
<두 자매 이야기>는 제작자인 최룡해가 정한 제목이다.
가칭이었지만 <다현 이야기>는 조금 밋밋하고, <두 자매 이야기>는 동생인 다미의 이야기가 많지 않다.
납품한 작품의 영화제목은 보통 제작자가 정하기 때문에 강산은 <두 자매 이야기>라고 변한 제목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감독은 청단.
강산은 감독의 이름으로 본명인 강산이 아니라 청단이라는 가명을 감독 이름으로 올렸다.
청단은
〈미친밤〉, 〈소빠때: 쏘세지가 빠다를 만났을 때〉, 〈불타는 해석남녀〉 등을 연출한 홍단 감독의 이름을 오마주한 것이다.
전생에서는 강산이라는 본명을 감독 이름으로 사용했다가, 죽을 때까지 강산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어 되었다.
강산은 당시 실명을 감독 이름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두 자매>가 상영하는 동안,
강산은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 편하게 영화를 감상하지 못했다.
검사를 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멋있는 부분보다는 아쉬운 장면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부족한 시간과 예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장면들,
배우들의 아쉬운 연기에 삭제한 장면,
후시 녹음과 동시 녹음이 조화롭지 못하고 어색한 음향,
장면과 장면 사이에 미세하게 달라지는 화면 톤,
시간 부족으로 인한 정교하지 못한 편집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중에 영화 음악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음악을 빼는 것이 나았을 것 같은 장면들도 보였다.
에로 영화에서 음악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차라리 독립영화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여길 정도로 투자에 매우 인색하다.
영화를 만들 제작비뿐만 아니라 시간도 부족한 형편에 영화 장면에 맞는 음악을 새로 만들거나 고민하는 것은 사치스런 감정이다.
그래서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듯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음원들 중에서 분위기에 맞는 음원을 구매해서 사용한다.
기대가 없는 관객들에게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음악에 투자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나마 무언극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잠시 후, 영화가 끝나자, 불이 켜지고 창문을 가린 커튼이 올라갔다.
사장실 안이 밝아지고 최룡해와 이덕배, 강산은 영화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두 분은 어떻게 보셨어요?”
“......”
강산은 최룡해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기는 눈으로 보지’하고 시니컬하게 반응하고 싶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최룡해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덕배는 최룡해의 얼굴과 강산의 얼굴을 교대로 보았다.
강산이 대답하지 않고 침묵이 이어지자,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엔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으음... 이사장님은 그렇군요. 강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룡해는 강산에게 말하면서 안경을 고쳐 썼다.
대화를 하다가 안경을 고쳐 쓰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다.
강산은 최룡해가 묻는 의도를 생각했다.
이 영화를 만든 강산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이유가 뭘까?
먼저 영화 <두 자매>의 단점들을 인정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장점들을 말해보라는 말인가?
최룡해의 의도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강산의 침묵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최룡해의 눈치를 보던 이덕배가 다시 강산을 도와주기 위해(?), 아니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룡해에게 말했다.
“저어... 최사장님. 강산 감독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시간요?”
“네. 저희 애플에 불가피한 일이 생겨서, 강감독에게 작품 제작 시간을 많이 줄 수 없었습니다.”
“이사장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그게... 저...”
“저에게 말하기 곤란한 일인가요?”
“아닙니다. 최사장님. 제가 최사장님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최룡해는 이덕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희 애플 전임감독인 박두철 감독이 갑자기 다른 회사로 이적하는 통에요. 갑자기 투입한 강산 감독이 열흘 동안 두 작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부족했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아~, 이제야 왜 그런지 이해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