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58화 (58/140)

〈 58화 〉 이만: 리얼로 촬영했으면 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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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이만”

수업을 마치는 벨소리가 ‘딩동댕동’ 하고 울리자, 백팩을 매고 아르바이트 하러가는 이만을 부르며 류재일이 이만에게 다가섰다.

이만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멈춰 섰지만, 자기를 찾는 사람이 재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제이, 나는 이미 거절했잖아, 더 이상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만은 냉정하게 류재일에게 말하고, 재일을 무시하고 서둘러 걸어갔다.

류재일은 이만의 차가운 태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만과 같이 걸어가면서 말했다.

“이만, 잠시만 시간을 내줘.”

“나는 이미 말했어.”

“이만, 제발, 잠시만 시간을 내주면 다시는 쫓아다니지 않을게.”

“제이, 너 정말 끈질기구나. 5분이야”

류재일을 무시하고 길을 가던 이만은 더 이상 류재일을 무시하기 어려웠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류재일에게 말했다.

“알았어. 5분이면 충분해. 이만, 나는 이만에게 다른 제안을 하고 싶어.”

“무슨 제안?”

“내가 이만의 시간을 사고 싶어?”

“무슨 말이야.”

“네가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을 사고 싶다는 말이야.”

“아르바이트”

“일주일 정도. 그동안 네가 영화 출연하면 포기해야 하는 아르바이트 대신 출연료를 따로 지불하려고 해”

“아르바이트 비용대신 출연료를 준다고?”

“예스”

이번 단편 영화는 학교 과제로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에 참여하는 스텝들이나 배우들은 학교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무보수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류재일은 이만을 설득하려고 출연료를 꺼낸 것이다.

“내 몸값은 비싼데?”

“알고 있어. 대신 너무 세게 부르지는 말고”

“알았어. 내 메일로 시나리오 좀 보내줘. 시나리오를 보고난 후에 결정할게”

“OK, 바로 보내줄게. 고마워”

사실 이만도 류재일을 알고 있었다.

일전에 지도교수인 브랜든 교수가 류재일이 만든 <어떤 낯선>이라는 10분 정도의 단편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떤 낯선>이라는 단편영화는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짧은 영상이었다.

어느 오래된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어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닫히고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밀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검은 페도라를 쓴 라틴계 중년 아저씨, 회색 후드를 둘러쓴 흑인 젊은이, 하얀 수염에 배가 나온 시칠리안 할아버지가 있었다.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는지 멈춰서면서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가

미묘한 분위기를 변했다.

카메라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신체, 눈과 귀 등을 부각하는 감각적인 영상과 주변에서 발생하는 낯선 소음들을 부각시켜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갑자기 암전이 일어나고 ‘휘이익’ ‘새액’ ‘읔’ ‘커억’ ‘악’ 불협화음으로 관객들은 소리만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밀고 엘리베이터를 나갔다.

<어떤 낯선>은 뉴욕대학교 교수들과 동료 학생들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류재일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만들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만도 류재일의 작품에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샘 맨더스의 작품에 참가하면서 펑크 난 아르바이트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류재일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주면 아르바이트 비용 대신 출연료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이만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이. 전화가 너무 늦었지. 내일 이야기 할까?”

“아냐. 이만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래, 결론은?”

“출연할게”

“오케이! 잘 결정해서 다행이야. 내가 네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줄게”

“크레디트에 내 이름을 올려줄 수 있어?”

“당연하지. 네가 주인공인데”

“그럼, 시간을 맞춰보자.”

*   *   *

류재일은 이만에게 이번 영화를 위해 별도로 의상을 준비하지 말고, 평소에 입던 청바지에 하얀색 라운드 티나 편안한 상의를 입어 달라고 했다.

류재일은 이만에게 트리트먼트를 전해 주었다.

이만이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촬영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류재일은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 이만이 미국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여성으로서 받는 현실적인 차별을 리얼한 장면과 페이크 장면들을 섞어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려고 했다.

류재일은 이만의 전신을 촬영하고 이만이 화면에 보이는 장면을 살폈다.

이만은 아프리카계 모델 특유의 시원하게 뻗은 다리와 빛나는 피부,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가 우아하게 보였다.

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류재일은 앤드류와 폴, 이만과 촬영장소를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장소 섭외는 어디까지 됐어?”

“맨하튼에서 촬영한다는 것 외에는 아직 모든 것이 미정이야.”

“먼저 할렘 주변은 제외해야 해.”

“찬성이야. 그곳은 너무 위험한 거 같아. 피어하고 이스트빌리지도 제외해야 할 거야.”

“브롱스도 안 돼”

“오케이. 그럼 남은 지역에서 괜찮은 곳을 찾아보자.”

“내가 근무하는 브루클린 버치 커피숍은 어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브루클린으로 결정하자.”

촬영장소를 브루클린으로 정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촬영해야하므로 장소의 특성상 자연광을 위주로 조명을 맞춰야 한다.

류재일은 시간대에 따라 햇빛이 변화되는 브루클린의 거리를 사진을 찍어서 미리 확인해 두기로 했다.

류재일의 방의 한쪽 벽에는 범죄자의 인맥지도처럼 이만이 움직이는 동선들에 따라 브루클린의 거리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이만이 가는 장소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촬영해야 하는 시간대별로 표시해 두었다.

이것은 스토리 보드를 대신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류재일은 이만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이만은 류재일의 작은 아파트 벽에 붙여져 있는 동선을 보고 감탄했다.

“와우! 제이. 정말 대단한데”

이만은 류재일의 벽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상황지도 옆에는 재일이 파파라치처럼 틈틈이 아만의 얼굴 표정들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벽에 붙여져 있었다.

류재일은 이만에게 촬영하는 순서와 장소, 그리고 대강의 트리트먼트를 사장님에게 보고하는 부장처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폴이 이만의 앞에서 촬영하고 앤드류는 표시된 장소에서 촬영할 거야.”

“오케이”

“이만, 다음 주 수요일부터 촬영을 시작할까 하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나는 준비 됐어”

“스텝들이 거리에서 촬영하다보면, 촬영하는 중에 혼자 있는 상황이 많이 생길거야. 그러다보면 위험하거나 상처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 이만. 촬영을 계속하기 어려우면 신호를 줘. 그럼 바로 내가 나설게”

“어떤 종류의 일들을 말하는 거야?”

“있잖아.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 성희롱 같은 거.”

“내가 아프리카계 흑인 여자라서 하는 말이야.”

“아무튼 위험하다 싶으면 신호를 줘”

“무슨 말인지 알았어. 그런데 저 사진 마음에 드는데 구할 수 없을까?”

류재일은 이만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이만을 만날 때마다 스냅사진처럼 류재일이 이만의 모습들을 찍어 놓은 것을 프린트 한 것이다.

이만의 얼굴에 맞는 카메라 각도를 찾으려고 여러 각도에서 이만의 얼굴을 촬영해보았다.

이만이 가리킨 사진은 이만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활짝 웃는 장면이다.

평소 이만은 웃는 얼굴이 많지 않았다.

웃을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항상 피곤한 표정이었다.

건강한 치아가 다 보이게 활짝 웃는 모습은 자신도 많이 보지 못한 모습이었는지 마음에 들었나보다.

“물론, 나중에 잘 프린트해서 액자로 보내줄게. 그럼 다음 주에 촬영장에서 보자.”

*  *  *

갑자기 이만이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류재일은 내일 모래 촬영을 앞두고 무슨 일이 생겼는가 싶었다.

조금은 걱정된 마음으로 이만을 만나러 브루클린으로 갔다.

맨하튼의 브루클린 거리는 류재일이 만들려고 하는 영화 <어느 하루>의 주요 촬영 장소였다.

이만은 브루클린 거리의 <버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버치> 커피숍은 뉴욕의 커피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커피숍으로, 플렛 화이트나 아메리카노가 대표 메뉴다.

그중에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류재일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이만에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커피숍 구석으로 갔다.

노트북을 열어 스토리보드를 다시 정리하면서 이만이 퇴근하는 것을 기다렸다.

“제이, 이곳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

“아냐, 이만. 덕분에 맛있는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래 무슨 일인데 보자는 거야?”

“그래. 제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내 의견을 들어줬으면 해서”

“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이거 너무 긴장 되는데? 혹시 영화 출연에 문제가 생긴 거야.”

“그런 말을 하려는 거 아니야.”

“후... 그럼 됐어. 나는 이만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긴장했잖아?”

“진짜 긴장했어?”

“그래.”

“좋은 일인데. 제이가 그만큼 나를 아낀다는 말이잖아.”

이만은 류재일의 긴장한 표정에 소리 내며 웃다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류재일을 보았다.

류재일도 이만과 같이 웃다가 심각해진 이만을 따라 표정을 고쳤다.

“제이. 이번 영화 있잖아.”

“왜 그래, 이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아냐. 나는 지금 심각해.”

“이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데?”

“나는 제이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리얼로 촬영했으면 해”

“왜?”

“아무리 생각해도 리얼이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다큐로 가자”

류재일은 이만이 출연을 번복하는 것은 아니라서 내심 안심했지만 다큐로 가자는 말이 부담이 된다.

“이만, 리얼은 나도 생각해 본 방식이야. 이만도 알다시피 이번 영화의 스텝으로는 나하고 앤드류, 폴 밖에 없어. 폴이 이만의 앞에서 촬영하고, 앤드류는 고정카메라로 촬영해야 해서. 현장을 통제할 수 없어.”

“나도 알고 있어”

“촬영 중에 예측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워.”

“나도 알아. 어떤 상황인지, 하지만 이 영화가 리얼이 아니면 관객들을 속이는 거 같아. 할 수 있다면 리얼로 하는 게 좋겠어.”

“이 영화의 대부분이 리얼이야. 페이크는 얼마 되지 않아. 여자가 맨하튼 길거리를 세 시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라”

“그것도 아프리카계 흑인 여자가 말이지.”

“미안. 그런 의도는 아니야.”

“알아. 그래서 더욱 리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도 리얼 위주로 촬영할거야. 70%이상이 리얼이야. 30%도 페이크지만 실제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거야.”

“나는 100% 리얼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조작했다고 하면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할 거야.”

“내가 다큐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첫 번째는 배우의 안전 때문이야. 두 번째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는 거고. 세 번째는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해. 영화를 촬영하다가 내 욕심 때문에 이만의 안전을 해칠까 두렵기 때문이야.”

“네 마음은 이해해. 안전에 관한 부분은 내가 책임질게”

“이만. 나는 네가 위험해지는 것을 감수할 수 없어”

“제이, 네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진심으로 고마워. 하지만 나는 보통 흑인여자가 아니야.”

“......”

류재일은 이만이 서툰 동정, 아니 남자들에게 의존하는 가식적인 행동을 싫어했다.

그래서 류재일은 이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프리카 소말리야 출신 여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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