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50화 (50/140)

〈 50화 〉 강산: 사랑의 블랙홀을 아세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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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지쳐있는 스텝들에게 먼저 식사부터 하고, 촬영을 시작하자고 하였다.

이동하느라 지친 스텝과 배우들은 강산의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강산은 스텝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촬영감독인 최철수와 너와집의 구조를 살피고, 집안과 밖에서 촬영하기 적당한 장소와 카메라 각도를 의논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다 붕가붕가 하는 부엌 씬, 마당에서 빨래하면서 붕가붕가 하는 빨래 씬, 건넌방에서 유혹하는 씬, 우물이나 개울에서 목욕하는 씬들을 정리했다.

스텝들이 장비를 풀고 잠시 쉬고 있는 동안 쪽지 대본처럼 A4 종이에다 배우들의 대본과 콘티를 다시 수정하기 시작했다.

강산은 스텝들과 배우들이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치자,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촬영 준비해주세요. 남수가 집으로 올라오는 씬부터 먼저 찍겠습니다.”

남수(안정민 분)가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가 너와집을 발견하고 너와집으로  올라오는 씬이다.

남수 인적이 드문 산길을 운전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고 자동차 핸들을 급하게 꺽었다.

에쿠스는 도로에서 벗어나 언덕에서 굴러가는 사고가 났다.

자동차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남수는 고장 난 자동차를 뒤로 하고, 도와줄 사람을 찾아 나섰다.

밤새 산속을 헤매다가 화전민들이 사는 너와집에 도착하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강산은 너와집 방향에서 남수가 걸어오는 찍고는 다시 남수의 뒤로 돌아가 너와집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찍었다.

*   *   *

“댕, 댕”

안방에 걸려있는 괘종소리가 두 번 울렸다.

카메라는 안방에 있는 괘종을 비추고 지금이 오후 2시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정신을 차린 남수는 어느 집의 낯선 천장과 괘종이 두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루에는 시아버지 정학(장민호 분)과 며느리 은숙(선우혜 분), 정학의 딸 가희(이규리 분), 정학의 조카 가은(박미혜 분)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강산은 여배우들에게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젊은 여자들이 더위에 지친것처럼 머리에 긴 수건을 두르고 상의를 좀 더 여유 있게 풀고, 치마를 말아 올리게 해서 자연스럽게 가슴이나 다리가 드러나는 포즈를 하도록 했다.

이 씬은 성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점심 식사를 하는 씬이지만, 자연스럽게 성적인 느낌이 들도록 의도한 장면이다.

안방에서 깨어난 남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마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정학이 말했다.

“이제 정신이 드시우.”

“네. 그런데 여기가 어딘가요?”

“여기는 송암리에서 한 30리 정도 떨어진 곳이요.”

“죄송한데요. 송암리는 어디 군에 속해 있나요?”

“장해군이요. 그런데 장해군이 어딘지는 아시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알아서 뭐 하겠소. 거, 다리가 불편한 거 같은데, 걸을 만한 것 같으면 식사나 하시고 내려가시구려. 나는 밭이나 매러 나가봐야겠소.”

장민호는 밀짚모자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쟁기를 들고 담장 밖으로 나갔다.

“컷. OK요. 다음 씬부터는 <사랑의 블랙홀> 영화처럼, 2시 괘종이 울리면 남수가 안방에서 일어나고 같은 하루가 반복하는 씬을 촬영하겠습니다.”

스텝들과 배우들은 강산이 출발 전에 나눠 준 트리트먼트에도 <사랑의 블랙홀>이란 영화 제목을 적어 두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강산이 다시 <사랑의 블랙홀>을 소환하자, 배우들과 스텝들은 의아해한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타임루프물의 원조로 여겨지는 유명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사랑의 블랙홀?”

“그런 영화도 있었어?”

“무슨 영화죠? 들어 본 거 같은 데요.”

“흐흠, 흠, 흠. 강감독.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이 나오는 영화 말인가?”

배우들과 스텝들이 <사랑의 블랙홀>을 두고 웅성거리자, 최철수는 강산이 설명하기 쉽게 <사랑의 블랙홀>에 나오는 배우들을 언급했다.

강산이 <사랑의 블랙홀>을 설명해 주는 것은 <남수 이야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 해럴드 래미스 감독이 1993년에 만든 영화인데요. 타임루프물의 원조로 평가 받고 있죠.”

“어떤 내용이지.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이가 먹다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성촉절(2월 2일)을 무한 반복하게 된 기상캐스터 필 카너즈(빌 머레이)가 방송 스텝 리타(앤디 맥도웰)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래서 <남수 이야기> 타임 루프 시간이 2시로 한 건가?”

“<사랑의 블랙홀>의 오마주죠.”

“우리 영화하고 <사랑의 블랙홀>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가?”

“타임루프물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성장 영화라면 우리 영화는 블랙 핑크 코미디 영화입니다.”

“핑크 코미디?”

“네. 에로영화란 말이죠. 코미디니까 재미있게 촬영했으면 합니다.”

<사랑의 블랙홀>은 반복되는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첫 키스만 50번째>,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같은 타임루프물의 원조로 평가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12월에 개봉했으나 서울관객 8,912명밖에 동원하지 못했다.

스텝들과 배우들이 다시 세팅하기 시작하자, 강산은 안정민을 따로 불렀다.

“정민이형! 남수가 안방에서 괘종이 2번 울리면 어제의 시간이 반복되는 설정이에요. 같은 하루가 반복되자 남수가 당황하는 표정부터, 반복되는 상황이 익숙해져서 지루해하는 표정 등 다양한 표정을 반복해서 찍을 거예요.”

“오케이!”

강산은 안정민이 이해하고 오케이를 하는지, 습관적으로 오케이 한다는 생각에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잠깐만요. 배우님들, 여기 좀 집중해 주세요.”

배우들이 강산에게 집중하자, 다음 말을 이었다.

“괘종이 2번 울리면 남수가 안방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무한 반복하는 설정으로 가겠습니다. 안정민 배우가 안방에서 일어나서 ‘여기가 어딘가요?’ 하는 대사를 하면, 다른 배우님들은 같은 대사를 반복하시구요. 안정민 배우는 대사를 반복해도 좋고 애드립으로 고쳐서 해도 좋습니다.”

강산이 레디 액션을 외치자, 안정민은 안방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기한다.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일어나 대사하기도 하고, 나름 여러 가지 다양한 표정으로 일어나면서 ‘여기가 어딘가요?’ 하는 대사를 했다.

“컷. NG요. 정민이 형. 표정이 너무 비슷해요. 타임루프를 한 처음에는 어제와 같은 시간이 반복되니까 깜짝 놀라지만, 타임루프도 반복되면 익숙해지잖아요. 그땐 진짜 느슨하고 지루한 표정을 지어줘야 해요.”

다시 촬영을 시작했지만 안정민에게서 다양한 표정, 관객들의 시선을 끌만한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강산은 이 영화 <남수 이야기>가 유쾌한 핑크 코미디처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안정민 배우가 타임루프 연기를 즐겨야 하는데, 아직은 역할에 빠져들지 못한 것 같았다.

“컷. NG요. 잠깐만 쉬었다가 갈게요.”

강산은 안정민을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정민이 형. 연기를 즐겨야 해요. 상황이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남수 표정이 너무 경직된 거 같아요. 표정을 변화주기 어려우면 동작이나 발성을 다르게 해주세요.”

계속되는 강산의 NG에 안정민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현 이야기>의 이규리를 보면서, 자신의 연기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연기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산감독은 자신을 연기초짜처럼 요구하는 것 같았다.

강산은 구체적으로 안정민의 표정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 지적하고 다른 연기를 요구하는데 너무 불쾌하다.

안정민은 연기 인생 처음으로 자기 마음대로 연기해 보기로 했다.

강산이 ‘레디 액션’을 외치자, 괘종이 두 번 울리고 남수가 안방에서 깨어났다.

남수는 자신이 맡은 대사를 하지 않고, 마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안정민이 다음 대사, ‘여기가 어딘가요?’ 하는 대사를 하지 않자, 다른 배우들은 강산의 NG를 예상했다.

그러나 강산은 아무런 신호를 주지 않았다.

마루에서 남수의 대사를 기다리던 정학이 먼저 말했다.

“이제 정신이 드시우.”

그런데 갑자기 안정민은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밥을 달라고 했다.

안정민의 에드립에 당황한 주위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노련한 장민호가 안정민의 연기를 받아주며 선우혜에게 눈치를 주자, 선우혜가 안정민에게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아 주었다.

“컷. OK요. 좋습니다. 정민이형, 이런 식으로 다시 갈게요.”

강산이 OK를 하자, 정작 놀란 것은 안정민이다.

안정민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강산에게 반항하듯이 애드립 연기를 해본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안정민에게 NG를 반복하던 강산이 에드립 연기에 OK를 한 것이다.

이번에도 당연히 강산이 NG를 걸 것이라고 생각하고, 강산이 NG를 하면 어그로를 끌어서 한바탕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OK라니, 뭔가 아쉽고 허전하다.

강산이 왜 OK를 한 것인지, 안정민은 진지하게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정민은 이제까지 감독이 시키는 대로 연기해왔다.

에로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다 생긴 조그만 흠은 무시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강산은 어떤 씬에서는 사소한 흠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어떤 씬들은 그냥 지나가면서 말이다.

안정민은 자신의 상투적인 연기에 변화를 주려고 고민하면서 표정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본능적인 표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남수의 표정이 자연스러워지자, 상대 연기자들도 남수를 따라 능청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신이 드시우.”

“네. 오늘 반찬은 뭔가요?”

“고등어구인데요.”

안정민은 장민호가 ‘이제 정신이 드냐?’ 는 대사에 ‘여기가 어딘가요?’로 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나 대화가 익숙한 것처럼 안정민이 ‘반찬이 뭔가요?’라는 말로 바꿔서 애드립을 했다.

본래 대사가 없던 선우혜가 마침 밥상 위에 있던 고등어를 보고 고등어구이라는 말로 받았다.

“고등어 말고 육고기는 없나요? 제가 고등어는 비려서...”

“아버님. 돼지고기라도 구워 올까요?”

“그럴 필요 없다. 불청객이 되어가지고 주는 대로 먹기 싫으면 굶어야지. 여기가 주문하면 내주는 식당이야!”

“돈을 주면 안 될까요?”

“이보슈. 다리가 불편한 거 같은데, 걸을 만한 것 같으면 식사나 하시고 가시구려. 나는 밭이나 매러 나가봐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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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OK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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