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강산: 다현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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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현이 칼로 상준을 찌른다.’
다음 씬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미에게 나쁜 짓을 한 것 때문에 분노한 다현이 상준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강산은 이 장면을 극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다현이 부엌용 식칼을 들고 상준을 쫓아다니고, 상준은 피를 흘리면서 1층에서 이층으로 도망가는 장면을 리얼하게 촬영하고 싶었다.
그 동안의 상준의 악행에 대한 다현의 복수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 극적인 쾌감을 줄 수 있게 말이다.
강산은 자신의 장기인 절묘한 카메라 워크와 템포로 숨이 막힐 듯한 긴박감으로 관객들이 손에 땀이 나게 만들고 싶었다.
관객들이 이 장면을 보고나면, 한동안 잊혀 지지 않을 정도의 다현의 광기, 이규리의 광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쉽지만 참기로 했다.
배우들의 움직이는 동선에 대한 카메라 위치,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합을 맞춰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도 부족할 것이다.
사실, 이런 장면은 수번의 리허설과 수십 번의 테이크를 통해 완성된다.
그리고 강산이 생각한 정도의 피들이 난자한 현장을 깨끗하게 닦으려면 하루 종일 닦아도 부족할 것 같았다.
부족한 시간만 생각하면, 이 장면을 건너 띄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고 싶은 유혹도 있다.
다음 씬에서 다현이 상준을 죽였다는 대사로 이 장면을 처리할까?
그러나 다현이 상준을 죽이는 장면은 영화의 흐름상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다.
다현의 정신병이 발작하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므로 사소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영화 촬영을 위해 소품으로 준비한 피는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극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필요하다.
어떻게 다현이 상준을 살해하는 장면을 만들어야 리얼리티와 극적인 긴장감을 줄 것인가?
상준역의 안정민은 180이 넘고, 다현역의 이규리는 168이다.
이규리는 여자치고는 큰 키지만 안정민의 건장한 체구에 비하면 너무 왜소해 보인다.
몸집이 왜소한 처녀가 건장한 청년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어떤 방법이 좋을까?
* * *
“어서 오세요. 상준씨”
“다현이,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네”
“여기 앉으세요.”
상준이 거실 소파에 앉자, 다현은 상준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다현은 상준에게 나쁜 짓을 당한 후부터 계속 상준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현이 중요한 말이 있다고 상준을 집으로 불렀다.
“그래. 무슨 일인데?”
“무슨 일요?”
“나를 왜 불렀냐고?”
“그 여자.”
“그 여자? 아~ 영숙씨... 잘 처리했어. 이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강산은 안정민에게 이번 씬부터는 주도권이 상준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다현에게 반말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상준은 이전 씬과는 다르게, 다현에게 말을 편하게 하고 있다.
다현의 시선은 상준이 커피를 마시는지, 커피에 집중하고 있다.
상준은 다현의 관심을 아는지, 커피를 마실 것처럼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를 반복한다.
“그건 그렇고, 다현아. 약속은 지켜야지.”
“이제 그만 하죠.”
“왜? 나는 이제 시작인데. 이제 단물은 다 빨아먹었다. 이런 건가?”
“이미, 충분... 하잖아요.”
“네가 그렇게 말하면 모든 끝나게 되는 거야? 나는 이제 시작인데, 네가 새엄마를 처리해 주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말은 증거가 없다고 이러는 거야!”
상준이 눈빛이 무섭게 변하면서, 다현을 위협하듯이 차갑게 말한다.
다현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에 ‘꾹’하고 이를 깨물었다.
“다현아. 이런 일은 말이야. 네가 아니라 내가 끝났다고 할 때 까지는 끝이 나지 않는 거야.”
“좋아요. 커피 마시고 2층으로 가요.”
“좋아. 이렇게 나와야지”
“대신, 다미는 절대로 손대지 말아요?”
“다미?”
“내 동생 다미”
“어... 알았어. 손대지 않으면 되잖아.”
“그럼, 커피 마시고 2층으로 가요.”
다현은 상준이 커피를 마시는 것을 확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상준이 다현을 따라 2층 다현의 방에 들어가자, 다현은 상의와 치마를 하나 둘씩 벗고 있었다.
수면제를 탄 커피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다현은 옷을 벗으면서도 애가 타는 눈빛이다.
상준은 다현의 침대 끝에 앉아서, 다현이 브래지어하고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잔뜩 긴장한 다현이 먼저 침대위에 올라가 천천히 눕자, 상준이 따라 침대로 올라가 다현이 옆에 누웠다.
상준은 다현의 위로 올라가서 다현의 얼굴을 내려 보다가 갑자기 ‘풀썩’하고 다현의 위로 쓰러졌다.
“컷, OK요. 지금부터는 다현이 상준을 살해하는 장면을 촬영할게요. 정민이 형은 내려가시고요. 이규리 배우만 촬영할게요. 이규리 배우님. 표정에 주의하시구요. 광기! 아시죠.”
“컷. 다시 갈게요. 이규리 배우님. 좀 더 광기어린 눈을 보여주세요. 다미를 건든 놈이잖아요.”
“컷. 이규리 배우님. 식칼을 내리칠 때요. 주저하는 표정이 나와선 안돼요. 그리고 우발적인 살인와 의도적인 살인은 찌른 횟수로 구별하거든요.”
“컷. 이규리 배우님. 광기가 안 보여요. 주저하지 말고 연속으로 수차례 베개를 찌르세요. 지금 다현이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 * *
덕수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다현과 다미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현아. 무슨 일이야?”
“......”
다현은 피가 뭍은 하얀 잠옷을 입은 채, 거실의 소파위에 앉아 있었다.
다현은 무릎을 가슴 안으로 끌어안고 몸을 앞뒤로 흔들고, 다미는 다현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덕수는 다현의 모습을 보고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이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담은 컵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그 옆에 알약 3개를 내려놓았다.
다현은 알약을 입에 털어놓고 물을 마셨다.
“다현아.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상준씨를 죽였어요.”
“사고가 난거야?”
“아뇨. 내가 죽였어요. 내가 상준씨를 죽였다구요.”
“그래, 알았다.”
“아빠, 내가 왜 상준씨를 죽였는지 아세요.”
“후... 왜 그랬니?”
다현이 상준을 죽였다는 말에, 덕수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계속된 다현의 추궁에 한숨을 내쉬었다.
덕수의 표정은 ‘또 시작하는 구나’ 하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다현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다현은 귀신에 씌운 듯이 눈이 반짝 빛났다.
“아빠는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잖아요. 다미가 그 새끼에게 어떤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아빠가 다미에게 관심이 없으니, 내가 다미를 보호해야 하잖아요.”
“후우... 그래, 알았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데, 아빠는 그냥 알았다는 말로 끝나는 거예요. 내가 왜 그 개새끼를 죽였는지 알아! 그 자식이 다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구!”
“그래... 알았다고 했잖아. 다현아 이제 그만하자. 제발! 그만하자고.”
덕수는 다현의 말을 들어주다가, 더 이상 들어주기 어려운 듯이 ‘제발’이라는 말을 크게 했다.
주위를 전환하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다현에게 그만하자고 했다.
“어떻게 그만 해! 그 개자식이 다미에게 나쁜 짓을 했다구요. 아빠가 그 여자에게 빠져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다미가 그런 일을 당하는 거잖아요. 다미야! 네가 아빠에게 직접 말해! 어서!”
다현은 옆에서 떨고 있는 다미를 보고 말했다.
그러자 덕수는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듯이 화를 냈다.
“다현아. 이제 그만하자. 이제 그만! 너는 외동이잖아. 너는 동생이 없어. 다미라는 애는 없다고! 그 얘는 네가 만들어낸 허상이야. 이제 그만하자. 제발.”
덕수의 말에 다현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미를 보고, 덕수를 보고 있는 다미의 눈빛과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니야! 다미는 살아 있다구! 다미가 저기 있잖아, 다미야. 아빠가 네가 없었대. 다미야. 아빠에게 말해 봐!”
덕수가 다미는 다현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라고 하자, 덕수를 바라보고 있던 다미가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덕수는 다미와 눈을 마주 본적이 없었다.
지금도 덕수는 다미는 보지 않고, 다현이 하고만 보고 말하고 있었다.
다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덕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다현은 덕수가 자신의 옆에 서있는 다미를 보고 허상이라고 하자, 덕수에게 소리쳤다.
“미친 사람은 다미가 아니라 아빠잖아! 아빠는 그 여자에게 미쳐서 다미를 버리려고 하는 거잖아!”
“다현아! 이제 제발 정신 차려!”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야! 그 여자 때문에 이러는 거 맞지! 그런데 아빠. 어떡하지. 그 여자도 이미 죽어버렸는데”
“다현아! 그만 해! 이제 제발 정신 차려!”
흥분한 다현은 덕수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다현을 막고 있던 덕수를 세차게 밀어서 넘어뜨렸다.
덕수는 그대로 넘어지면서 TV선반 거치대 모서리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현이 쓰러진 덕수를 일으켜보려고 했지만 덕수는 의식을 잃은 듯 상체가 축하고 늘어졌다.
“아빠! 아빠!”
다현은 덕수의 몸을 흔들었지만, 덕수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잠시 후, 다현은 아빠 덕수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자 남은 것을 알았다.
“다미, 다미야!”
다현은 두리번거리며 다미를 찾았다.
거실과 안방, 부엌 그리고 2층 방까지 뒤져 보았지만 언제나 곁에 있던 다미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다현은 허망한 시선으로 다미가 있던 소파 옆을 보았다.
꿈이 아닌가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지만 TV선반 거치대 옆에 차갑게 누워있는 덕수를 보았다.
그리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밧줄이 걸린 의자 위로 다현이 올라가 밧줄을 막 목에 걸려고 하는 순간, 화면은 어둠속에 묻힌다.
잠시 후, 어둠속에서 ‘또각’, ‘또각’ 여자의 하이힐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왔다.
뒷모습이 영숙을 닮은 여자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다시 어두워진다.
“컷. OK입니다. <다현 이야기>가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