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47화 (47/140)

〈 47화 〉 상준: 영숙씨, 이 세계는 말이에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다시 촬영을 시작해야했다.

내일부터 <남수 이야기>를 촬영하려면, 오늘 안에 <다현 이야기>를 모두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강산은 <다현 이야기>를 어떻게 엔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영숙이 덕수의 돈을 차지하기 위해, 상준과 짜고 다현의 조현병을 이용해서 이 사건들을 만들고 다현이 상준과 영숙에게 복수하는 형식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이 모든 사건들은 현실이 아니라 조현병을 앓는 다현의 상상 속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하고, 다현이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본래 준비한 대본은 첫 번째 안이었다.

첫 번째 안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것이지만 그래도 만족한 결론은 아니었다.

아무리 에로영화지만 반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두 번째 이야기는 전생에 인상 깊게 보았던 김재운 감독의 <장화전, 2003>의 마무리와 유사한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장화전은 지금부터 3년 후인 2003년에 들어서야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아무리 회귀했다고 해도 다른 감독들의 수고가 담긴 작품들을 해칠 수는 없다.

그리고 회귀한 것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   *   *

1층의 거실 소파에서, 다현과 다미가 TV를 보고 있었다.

본래 펜션의 일층의 거실에는 TV만 있고, 다른 팬션처럼 ‘휑’하니 텅 비어 있었다.

강산이 영화촬영을 위해 펜션 주인부부에게 가구를 부탁했다.

주인부부는 강산을 위해 본채의 거실에 있던 소파와 탁자들, 주인아저씨는 특별히 아끼는 수석들까지 빌려 주었다.

다현은 TV를 보다가 조금 떨어져 있는 다미에게 다가가 앉았다.

TV 음악프로를 보고 있는 다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왼손에 난 상처를 보고 놀란다.

“이게 뭐야?”

“......”

TV를 보던 다미는 슬쩍 다현을 보았다가, 무심하게 왼손을 내리고 다시 TV를 보았다.

다현은 자신을 무시하는 다미에게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누가 이랬어? 누가 이랬냐구!”

“......”

다미는 다현의 얼굴을 보지 않고, 다현에게 왼손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이 몸을 잔뜩 움추렸다.

“보여줘 봐. 팔 좀, 보여주라고”

“......”

다미가 자신의 팔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자, 다현은 강제로 다미의 몸을 자기 앞으로 당겼다.

보여주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다미의 팔을 억지로 걷어 올려서 검붉게 멍든 상처를 확인하고, 다른 곳들을 들추면서 다리에 난 상처도 확인했다.

“누가 이랬어?”

“......”

“그 여자야. 그 여자가 그랬어?”

“......”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왜 이런 짓을 당하고 참고 있어. 왜 말을 안했어? 왜 말 안했냐고! 이 바보야.”

다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는 다미를 다그쳤다.

이윽고 다미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너 뭐라고 했어.”

“괜찮다고”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대답해. 그 여자가 이런 거야? 그 여자가 이랬냐고?”

“아냐. 그 여자가 한 게 아냐.”

“그럼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했어.”

“......”

“말을 해. 제발 말 좀 해!”

“그 여자가 아니야.”

“그럼 누구야! 그 여자가 아니면 대체 누구냐고?”

“......”

“다미야! 언니가 미치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신경질적인 다현의 말이 갈수록 높아지자,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던 다미가 입을 열었다.

“상준 아저씨”

“뭐? 뭐라고, 다미야 너 뭐라고 했어?”

“상준 아저씨라고.”

“상준씨. 상준씨가 왜? 상준씨가 네게 왜 이런 건데?”

“언니가...”

“언니가 뭐?”

“다현 언니가 진 빚을 나한테 갚으래.”

“뭐라고?”

“언니가 상준 아저씨에게 진 빚이 있다고, 언니 대신 나한테 받는 거래”

“무슨 개소리야!”

순간, 다현의 화난 얼굴에는 상준을 경멸하는 표정과 함께 다미에게 미안한 감정이 지나간다.

다현이 상준에게 새엄마 영숙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을 대가로, 상준은 다현 뿐만 아니라 다미에게도 나쁜 짓을 한 것이다.

상준이 자기에게 한 짓은 참는다고 하지만 다미에게까지 나쁜 짓을 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다현은 상준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컷. OK요. 다음 씬 준비해 주세요.”

강산이 ‘OK’를 했지만 이규리는 다현의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규리는 한쪽 구석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규리 배우님.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스텝들과 다음 씬을 준비하던 강산은 구석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이규리가 걱정됐다.

강산이 괜찮냐고 물어보았지만 이규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몰입되어 연기를 하다보면 캐릭터의 상황과 일치되는 감정에 빠지기 쉽다.

배우들은 촬영하는 중에는 연기를 하는 배역과 싸우지만 촬영이 끝나고 난 후에 다가오는 공허감과 트라우마 등 다양한 감정들과도 싸워야 한다.

그래서 연기 후휴증 같은 문제도 나온다.

이런 감정적으로 격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배우가 익혀야 하는 스킬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이런 부분도 경험이 필요하다.

촬영을 시작한 지 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규리가 순간적으로 연기에 몰입하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감독들은 이규리가 가진 능력을 아무도 몰라보았을까?

이규리의 전작들에서 왜 그런 역할들만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규리는 이런 격렬한 감정을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반대로 기쁘기도 했다.

배우를 하는 동안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얼마나 좋을까하고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들 몰래 혼자서 미친년처럼 연습하기도 했었다.

만일 이런 역할이 자신에게 들어온다면 할 수 있을까?

자기에게 이런 역할이 들어오지 않겠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연기를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규리에게 이런 역할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연기를 할 기회를 강산 감독이 준 것이다.

*   *   *

다음 씬은 선우혜와 안정민이 부엌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씬이다.

강산은 이 씬을 찍으려고 하고 있지만 나중에 편집할 때 넣어야 할지 삭제해야 할지 고민이다.

마지막 장면으로 남겨둔 반전을 생각하면, 이번 씬이 있어야 개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번 씬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막는 것은 아닐까?

설명충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편집할 때 빼더라도 지금 이 씬을 촬영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이번 씬은 영숙과 상준이 관계를 설명해주면서 본래 영숙과 상준이 세운 계획과 다현의 제안 중에서 상준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강산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심리 게임을 하고 있다.

‘영숙과 상준의 처음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영숙은 왜 상준에게 왜 계획을 멈춰달라고 했을까?’

‘상준은 다현의 제안대로 영숙을 진짜로 죽였을까? 상준이 영숙을 죽이지 않았다면 영숙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숙을 죽인 것은 다현의 제안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강산은 영숙의 죽음과 상준의 보상에 대하여 관객들이 의심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상준이 이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숙을 진짜로 죽여 버렸다면 ‘왜 죽였을까?’ 하는 의심의 불씨를 만들려는 것이다.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이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예상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상준씨. 우리 이제 그만해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영숙씨.”

“그만 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장난하고 있던 건가요.”

“약속했던 돈은 모두 드릴게요.”

“영숙씨. 돌아가기에는 우리가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지금은 돌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는데요.”

영숙의 뒤에서 머그컵에 믹스커피를 타고 있던 상준이 커피를 식탁위에 놓고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상준과 영숙은 단순한 관리인과 사모님 사이가 아니다.

영숙이 덕수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로, 영숙이 덕수와 결혼하는데 상준이 큰 도움을 주었다.

순간 상준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상냥한 청년의 얼굴에서, 가슴 한 구석이 섬뜩해지는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

“영숙씨. 다 왔는데 왜 그래요? 그새 마음이 변한 거예요.”

“그만해요.”

“이거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상준씨. 약속한 돈은 모두 드린다고 했잖아요. 이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어요.”

상준은 식탁에서 일어나 천천히 영숙의 뒤로 돌아갔다.

영숙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고 두 눈이 흔들린다.

상준이 갑자기 포옹하듯이 영숙의 어깨를 껴안으며 영숙의 귀에 대고 말했다.

“영숙씨~. 내가 그런 푼돈이나 받자고 이번 일을 시작한 것 같은가요. 이거 정말, 나를 너무 띄엄띄엄 보는 것 같은데요.”

안정민은 상준의 대사를 마친 후, 선우혜의 뒷목을 혀로 핥고 귓구멍에 입김을 불자, 선우혜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이 장면은 강산이 선우혜에게 제일 싫어하는 애무를 물었는데, 선우혜가 말해준 것이다.

덕분에 선우혜가 진저리를 치는 장면이 리얼해졌다.

“이, 이제 그만해요. 부탁이에요. 상준씨.”

“우리 서로 다 동의하고 시작한 거 아닌가요? 내가 다현이를 맡고, 영숙씨가 덕수 아저씨를 맡기로 하지 않았나요.”

상준이 이야기를 하면서 영숙의 가슴 안으로 손을 넣으려고 하자, 영숙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상준의 손을 밀어냈다.

상준의 팔에서 벗어난 영숙은 엄격한 표정으로 상준에게 말했다.

“상준씨. 이제 그만 하세요. 다른 사람이 봐서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왜 이래. 이제는 결혼한 몸이다 그런 거야. 갑자기 착한 척하고 싶어진 거야?”

“다현이가 아파요. 아픈 아이에게 너무 심하잖아요.”

“허~ 참. 이일을 설계하고 나한테 제안한 사람이 영숙씨 아닌가? 그때는 다현이를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더니, 이제 사장님 마누라가 됐으니 다 끝났다는 건가. 이봐, 영숙씨!”

“제발, 그만해요. 부탁드릴게요.”

“그럼, 내가 덕수 아저씨를 찾아가서 그 간의 일들을 전부 말해도 되나요?”

“그건 안 돼요.”

“영숙씨! 이 세계는 말이에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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