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45화 (45/140)

〈 45화 〉 이규리: 이제 OK하면 어떡해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점심 식사를 하고, 야외 촬영을 위해 펜션을 나섰다.

강산은 아침 산책을 할 때, 가봤던 저수지로 가면서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촬영할 생각이었다.

펜션을 벗어나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들판이 나타난다.

그 뒤에는 짙푸른 녹음과 울창한 수풀이 나타나고, 오솔길을 따라 30여 분 더 걸어가면 강산이 찾는 저수지에 다다른다.

촬영 장비를 가지고 이동하는 스텝들에게는 이 거리도 부담이다.

강산은 나지막한 언덕 구릉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나타나자, 스텝들에게 이곳에서 한 씬을 촬영하겠다고 했다.

새벽 산책을 하다 발견한 이곳은 주위에는 아무런 나무도 없이 혼자 소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뒤에 푸른 하늘을 배치해서 공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곳은 펜션을 찍어 두었던 배경과 연결시켜서 펜션 뒤에 있는 장소로 편집할 예정이다.

상준이 다미에게 나쁜 짓을 하는 씬과 다현이 그 장면을 멀리서 보고 다미를 구하려고 분노하는 씬들을 촬영할 예정이다.

카메라는 산책하고 있는 다현의 뒤를 따라갔다.

다현이 펜션을 나와 오대산의 아름다운 야생화 들판을 산책하는 여유로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산책하던 다현이 걸음을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카메라는 다현의 눈으로 변해 멀리 산등성이를 달려가는 다미를 발견했다.

다미는 누군가에 쫓기는 듯, 뒤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땅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다리를 다쳤는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주저앉아 뒷걸음을 친다.

이때, 다미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상준이었다.

상준은 허리를 접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땅바닥에서 떨고 있는 다미에게 다가갔다.

“헉, 헉, 헉, 거기 서라고, 허억 서라고 했잖아.”

“가까이 오지 말아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저씨. 싫어요!”

“가만히 누워있으면 금방 끝날 거야”

“살려주세요. 제발”

상준은 두려워 떨고 있는 다미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협박하듯이 말한다.

“살려달라고? 누가 너를 죽인데, 내가 너를 왜 죽여. 너는 나를 살인자로 만들고 싶은 거야. 나는 네 언니가 약속한 것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야.”

“싫어요. 아저씨”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다현이 빚을 받고 있을 뿐이야.”

“안 돼요!”

상준은 다미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만지다가 갑자기 다미를 쓰러뜨리고, 다미는 상준의 몸으로 가려졌다.

상준은 다미의 치마를 올리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미는 눈을 감고는 눈물을 흘린다.

“컷. OK요. 수고했습니다.”

다음 씬은 상준이 다미에게 못된 짓을 하는 장면을 멀리서 보고, 다미를 구하려고 다현이 달려오는 장면이다.

강산이 이규리에게 이번 씬을 설명하면서 카메라는 어떻게 이규리를 잡을 것인가를 설명했다.

‘이번 씬은 위험하다.’

이규리는 강산의 설명을 들으면서, 먼저 든 생각은 이번 씬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달리는 장면에 불과할 수 있지만 가능한 단번에 OK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얼핏 눈대중으로 재보는 것이지만 자신이 달려가야 하는 거리는, 적어도 30여 미터가 넘어 보였다.

무슨 에로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왔는데, 키스를 하거나 정사를 하는 씬보다 달리는 장면이 많다.

뒷모습에 감정을 실으라고 하고, 달리면서 감정을 표현하라고 한다.

설마 다리에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이규리는 강산 감독이 자신에게 왜 이런 장면에서 이런 표현을 요구하고, 다른 장면에서는 그런 표현을 요구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지만.

어떤 씬에서는 자신도 부족하다 싶었는데 OK를 하고, 어떤 씬에서는 잘했다 싶었는데 NG라고 한다.

어떤 씬은 그냥 넘어가면서도 어떤 씬은 감독 마음에 들 때까지 연기를 반복시킨다.

감독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기준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강산 감독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재촉하고 있다.

*   *   *

“레디 액션”

강산이 ‘레디 액션’을 외치자, 이규리는 숨을 크게 들어 마시고, 이빨을 ‘꼬옥’ 깨물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규리는 숨이 목까지 차오를 정도로 산비탈을 달려서 내려갔지만, 강산의 대답은 예상대로 ‘NG’였다.

“이규리 배우님. 좀 더 절박하고 악에 바친 표정으로 달려와 주세요.”

강산은 테이크가 반복되면서 이규리의 표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달리는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규리 배우님. 표정은 마음에 드는데요. 좀 더 열심히 달려줬으면 좋겠습니다. 10분만 쉬었다 갈게요.”

이규리는 나름 죽을힘을 다해 달렸는데, 강산 감독은 무심하게 더 열심히 달려달라고 한다.

몇 번의 테이크가 반복되지 않았지만 벌써 다리가 떨려오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이 든다.

강산은 이규리가 숨이 돌아온 것 같아 보이자,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이규리 배우에게 배려하려고 여유로운 척 했지만, 예상한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두세 번 더 하고 그중에서 선택할 생각이다.

정말 시간이 별로 없다.

“이규리 배우님. 힘내서 이번 한 번에 끝내죠. 파이팅!”

“네~”

강산은 이규리에게 힘을 주려고,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이규리에게 파이팅을 했다.

다시 촬영이 시작하자, 이규리는 다리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지만 다시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뒤에서 다미역을 맡은 박미혜, 다미에게 나쁜 짓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던 안정민, 다현이 달려오는 장면을 촬영하던 스텝들은 깜짝 놀랐다.

이규리가 악에 찬 모습으로 다미에게 달려오다가, 그만 ‘삐끗’하고 미끄러져 쓰러진 것이다.

순간, 강산은 NG를 외치려고 했는데, 이규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바로 일어나 다미에게 달려왔다.

악에 바친 얼굴로 다미에게 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대사를 쳤다.

강산은 다현의 악에 찬 얼굴 연기가 마음에 들었지만, 미끄러지는 장면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아깝지만 NG 컷이다.

“컷. NG요.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갈게요”

강산이 무심하게 NG를 하자, 이규리가 무언가 굉장히 억울한 일을 당한 듯이,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으엉’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규리는 강산에게 OK를 받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이번에 OK를 받지 못하면 다음번에는 정말로 다시 달리기를 할 힘이 없을 것 같았다.

달리기를 싫어하는 이규리로서는 강산의 계속되는 NG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온힘, 아니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이규리의 달리기를 하면서 악에 찬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다.

다만 그 상대가 다미에게 나쁜 짓을 하는 상준이 아니라 감독인 강산이지만 말이다.

미끄러진 다리가 쓸려 아프다거나, 머리 모양새가 흐트러졌다거나, 호흡이 힘들다던가, 이런 사소한 감정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이규리는 진심을 다해 연기를 한 후, 심사관인 강산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산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외친다.

“NG요”

이규리는 자신도 모르게 억울함에 두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규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자, 스텝들뿐만 아니라 강산도 당황했다.

‘왜 울지? 쓰러졌을 때 많이 다쳤나? 아... 시간이 별로 없는데.’

한 동안 울고 있는 이규리를 지켜보던 강산은 시계를 보았다.

촬영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어려웠다.

다시 촬영을 시작하려고 조용히 스텝들에게 촬영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자, 최철수 촬영감독이 조용하게 강산을 말렸다.

“이번에는 강감독이 양보하게.”

“네? 뭘요?”

“이번 씬은 그만 OK 하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자구.”

“왜요?”

“흐음...”

최철수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킨다.

강산이 엄지손가락을 따라 바라보니 아직도 오열하고 있는 이규리가 보았다.

“저게 왜요?”

강산은 이규리가 울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이번 씬을 마무리하지 않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감독, 이것 좀 봐보게”

최철수는 방금 촬영한 장면을 강산에게 보여주었다.

강산은 OK하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자는 최철수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방금 촬영할 장면을 천천히 돌려 보았다.

다현이 쓰러졌다가 바로 일어나 달려오는 장면이 오히려 상황이 급박하다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달려올 때, 이규리의 악에 바친 표정이 괜찮아 보였다.

“어때? 강감독, 이 정도라면 OK해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강산은 미리 구상했던 이규리의 동선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강산은 최철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규리 배우님. OK에요. 수고했어요.”

강산은 이규리가 울음을 그치기를 좀 더 기다렸다가, 이규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어깨를 ‘툭’하고 두드려주었다.

그러자 간신히 울음을 그쳤던 이규리가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제 OK하면 어떡해요. 진즉에 OK 해줬으면, 내가 이런 추한 꼴을 보이지 않아도 됐잖아요. 이제 어떡해요. 으엉, 어떡하냐구요. 흐흐흑”

놀란 강산이 울고 있는 이규리에게 눈물을 닦으라고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건네주었다.

산발한 이규리는 강산이 건네준 수건에다 코를 ‘흥, 흐~응!’하고 코를 풀더니, 다시 강산에게 돌려주었다.

수건을 돌려받은 강산은, 여배우의 코 묻은 수건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고.

달리기 씬 이후 장면에서는 이규리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 보였다.

다미의 얼굴을 보며 ‘괜찮아?’ ‘누가 이랬어?’ 하고 하는데, 짧은 대사인데도 긴박함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규리의 앵앵거리는 코맹맹이 소리도 울다가 조금 목이 상했는지, 허스키해진 목소리가 그리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러워진 것 같았다.

무언가 알을 깨고 나온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이규리의 앞길을 막고 있던 삼재 귀신이 이제야 성불하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이규리의 앞길을 막고 있던 가시밭길을 열어준다고나 할까?

이상하게도 모니터에 보이는 다현의 얼굴에 생기가 넘쳐 보였다.

예전에는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이규리가 강산이 원하는 다현의 모습과는 조금 들떠있어 보였다.

이제는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완전한 다현이 되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