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상준: 손을 빼지 않았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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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독. 아래층에서 식사준비가 다 됐다고 하는데, 아예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 씬을 찍는 것이 어떨까?”
조감독겸 조명기사 서지수가 강산에게 말했다.
이번 영화의 현장 스텝들이 부족하자 조명기사인 서지수가 강산의 조감독을 맡았다.
아이러니하지만 며칠 전만 해도 강산은 서지수 조명기사의 보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지수가 강산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기사님. 오늘 예정한 분량을 촬영하지 않으면 내일 일정이 너무 힘들어져서요. 힘들지만 식사 씬을 먼저 찍고 나서 저녁 식사하시죠. 이층 씬은 식사하고 마지막에 찍을게요.”
오늘 촬영해야 할 씬은 식사 씬만 해도 세 씬이나 되고, 정사씬도 한 씬이 남았다.
안타깝지만 발코니 씬은 사전에 예정된 씬도 아니었다.
오늘 안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서지수는 강산이 어떻게 이 난관을 해결할지 궁금해진다.
본래 예정된 씬을 촬영하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할 텐데, 강산은 발코니 씬을 추가했다.
아무튼 강산은 줄어든 저녁 시간 안에 예정된 씬들을 마쳐야 한다.
서지수는 강산이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강산은 촬영시간을 줄이기 위해, 장민호와 선우혜, 선우혜와 이규리, 이규리와 안정민이 식사하는 세 씬을 연이어 촬영하기로 했다.
선우혜가 식사준비를 하고, 발코니 씬 촬영을 마친 이규리가 식탁에 반찬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강산은 선우혜에게 첫 번째 씬은 돼지고기, 두 번째 씬은 소고기를 자른 것과 자르지 않은 것, 세 번째 씬은 돼지고기를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 했다.
스텝들이 촬영준비를 마치자, 식탁위에는 돼지고기와 상추, 기타 반찬들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 * *
이번 씬은 덕수와 영숙이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다현과 처음으로 같이 식사하는 씬이다.
“어서 와라.”
덕수는 2층에서 내려오는 다현에게 식탁에 앉게 했다.
다현이 의자에 앉자, 부엌에서 음식을 하던 영숙은 돼지고기를 담은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고 다현의 앞에 앉았다.
“어서와. 처음 준비한 음식이라 다현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
영숙은 다정하게 다현에게 말을 걸었지만, 다현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이 영숙의 말을 무시한다.
무안해진 영숙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덕수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음식 간은 맞으세요?”
“맛있네. 아주 꿀맛이야.”
영숙이 애써 웃으면서 덕수에게 말하고, 덕수는 돼지고기 쌈을 먹으며 영숙에게 말했다.
그러나 다현은 돼지고기에는 손을 대지 않고, 다른 반찬들만 깔짝거린다.
영숙은 신경이 쓰였는지 다현에게 말했다.
“다현아. 입에 안 맞아?”
“......”
“맛있네. 맛있어.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 같네.”
덕수는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영숙의 요리에 만족한 얼굴로 칭찬하자 영숙의 표정이 밝아진다.
다정한 신혼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던 다현의 표정이 좋지 않다.
새엄마 영숙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지만, 영숙이 오기 전에는 집안의 식사는 다현이 준비해왔다.
“흥! 아빠. 그럼,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아니다. 아냐. 그 동안도 좋았는데 지금도 좋다는 말이다.”
“흥! 다미는 식사하지 않겠대요.”
다현의 말에 덕수의 얼굴이 굳어진다.
덕수와 다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숙도 다현의 말에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덕수는 굳어진 표정을 부드럽게 고치며 다현에게 물었다.
“흠, 흠, 왜?”
“왜긴 왜요? 아빠는 정말 몰라서 물어요. 저 여자 때문이잖아요.”
“어허! 새엄마한테 저 여자라니!”
“그럼 저 여자를 저 여자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다미도 저 여자하고는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잖아요.”
“어허! 말조심하라고 했잖아. 그래도!”
“고정하세요. 여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잖아요. 차츰 익숙해지겠죠. 다현이 고기 좀 한번 먹어보렴.”
“......”
“고기가 입에 맞지 않니? 아까부터 고기에 손을 대지 않네.”
영숙은 화가 난 덕수를 진정시키려고 말을 돌렸다.
다현은 심퉁하게 대답한다.
“나는요. 돼지고기는 안 먹어요. 잘 먹었습니다. 새. 엄. 마. 아빠, 이젠 올라가도 되죠.”
다현은 덕수를 보며 말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컷. OK입니다. 다음 씬 바로 갈게요. 선우혜 배우님과 이규리 배우님 옷 좀 갈아입고 준비해 주세요.”
강산은 배우들에게 대사가 막히거나 떠오르지 않으면 당황하지 말고, 에드립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 * *
다음 씬은 아버지 김덕수가 출장을 가고 난 후, 새엄마 영숙과 다현이 둘이서 식사를 하는 씬이다.
강산은 이전 씬과 차이를 주려고, 조명의 강도와 색상을 미묘하게 변화시켰다.
그렇다고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규리와 선우혜는 방금 전에 촬영한 씬과 다른 시간으로 보이게 화장을 고치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선우혜는 식탁에 먼저 앉아 숨을 고르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강산과 눈을 맞췄다.
강산이 ‘레디엑션’을 외치자, 이규리가 2층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현이 2층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자, 영숙이 웃으며 다현에게 식사를 권했다.
“어서와. 다현아. 지난번에 먹었던 돼지고기는 별로였지. 그래서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준비했어.”
“다미는 오늘도 아줌마하고는 식사하지 않는데요.”
다현은 영숙을 새엄마로 인정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에게 홀려 재혼한 아빠도 잘못이 있지만 모든 죄의 근원은 영숙이다.
영숙은 돈을 노리고 늙은 아버지를 유혹해서 재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 그래”
영숙의 대답과 표정은 다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생인 다미가 새엄마가 싫다고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새엄마인 영숙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다현은 다미를 무시하는 영숙의 태도에 영숙이 더 싫어졌다.
“다현아. 용돈은 안 부족해. 부족하면 내가 좀 도와줄까?”
“칫! 용돈이 부족하면 아빠한테 달라고 하지. 내가 당신한테 왜 부탁해요? 그리고 내 용돈을 당신이 왜 줘요!”
다현이 화를 내자 영숙은 가만히 있었다.
남편인 덕수가 있었다면 중재해 주기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출장을 간 상황이다.
식탁에는 어색한 침묵과 빈 젓가락만이 식탁 위를 오간다.
영숙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다현에게 말을 걸었다.
“다현아. 소고기 좀 먹어보렴. 투 뿔이래.”
다현은 영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영숙의 말을 무시하다가 한마디 했다.
“난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잘라먹지. 누가 잘라놓은 고기는 안 먹어요.”
“그래. 내가 금방 다시 준비해 올게”
영숙은 부엌으로 가서 프라이팬위에 소고기를 굽고는 접시위에 올려 다현이 앞에 내놓았다.
맛있게 보이는 잘 구워진 소고기 스테이크.
“컷. OK요. 이규리 배우는 바로 다음 씬을 준비하시고요. 스텝들은 이규리 배우가 옷을 갈아입고 오면 바로 시작할게요.”
* * *
이번 씬은 다현이 별장관리인 상준에게 새엄마 영숙을 집에서 내쫓아 달라고 부탁하는 씬이다.
이 영화 <다현 이야기>에서 이번 씬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공을 들여서 촬영하고 싶은 씬이다.
상준이 다현의 제안을 받고 새엄마 영숙을 해치고, 다현에게 그 대가를 요구하면서 영화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진다.
강산은 관객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의 진행에 큰 반전을 주고 싶었다.
먼저 관객들이 평소 다현에게 마음을 빼앗겨 있던 상준이, 다현의 유혹에 넘어가서 영숙을 해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관객들의 생각이 자연스러우려면 다현, 이규리가 그만큼 매력적인 여성으로 만들고 싶었다.
범죄를 부탁한다고 해도 상준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시간상, 공간상 제한 때문에 부엌의 식탁에서, 이런 제안과 유혹이 벌어져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간이 된다면 이규리가 풀코스 화장을 하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나 어두운 밀실에서 상준을 유혹하는 장면을 수차례 촬영한 다음에 그중에 제일 좋은 테이크를 선택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오늘 안에 이 장면을 완성해야 한다.
잠시 후, 이규리는 가슴 부분이 깊이 파인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이 옷은 강산이 애플에서 출발할 때부터 준비해 온 의상이다.
관객들이 이규리의 빨간 원피스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가슴에 빠져 이곳이 식탁이라는 장소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설정한 것이다.
강산은 이규리에게 허리를 곧게 펴서 가슴골이 더 드러나게 해달라고 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카메라는 다현과 상준을 같이 잡았다가 상준의 시선으로 다현의 가슴으로 다가간다.
가슴골이 깊이 패인 원피스에 숨겨진 이규리의 큰 가슴은 다현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골이 오르내렸다.
상준은 다현의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빠. 내가 무슨 말 하는 줄 알겠어?”
“그러니까 새엄마를 내쫓아 달라는 말 아니야. 내 쫓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 여자를 내쫓는 것으로 만은 부족해”
“그럼”
“다시는 내 눈에 그 여자가 보이지 않게 해 주었으면 해”
“보이지 않게. 네 말대로 해주면 나는 무엇을 얻는 거지.”
“돈이든 뭐든 오빠가 원하는 거, 다~”
다현은 ‘오빠가 원하는 거’ 하면서 살짝 가슴을 더 드러냈다.
상준은 깊게 파인 붉은 원피스 속에서 움직이는 다현의 가슴골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장면에서 안정민이 보여주는 연기가 진짜로 연기인지, 아니면 본능적인 적응력인가 궁금해진다.
“다현아.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줄 거야.”
“그래”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어?”
“그렇다고 했잖아.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다현은 고민하고 있는 상준의 결심을 도와주기 위해, 오른손을 뻗어 상준의 왼손을 잡았다.
상준은 다현의 손에서 왼손을 빼지 않았다.
“할게. 다 할게. 다현이 네가 원하는 것을 다해 준다는데, 내가 무엇을 못하겠어.”
“기대할게 오빠. 내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잘 알지. 알고말고.”
“알았어. 오빠. 식사 많이 해”
“그런데 돼지고기 밖에 없어. 나는 소고기가 좋은데”
“오빠. 고기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맛있어.”
“그렇지. 나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