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38화 (38/140)

〈 38화 〉 최철수: 이 친구, 천재가 아닐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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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촬영을 마치고 펜션으로 돌아오자 4시가 조금 넘었다.

강산은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30분 정도 후에 촬영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오늘 안에 식사 씬과 정사 씬을 마쳐야 한다.

강산은 두 씬 중에서 어느 씬을 먼저 촬영해야 할지 고민했다.

식사 씬을 먼저 하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다른 반찬들이야 미리 준비한 걸로 대체할 수 있지만 고기를 식탁에 내놓으려면 고기를 굽는 시간이 필요했다.

정사 씬은 시간상 밤을 배경으로 한다.

시간상 지금 정사 씬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이르고 배우들의 집중력도 걱정된다.

그리고 오늘 식사 씬을 촬영하고는 어제하지 못한 고기 회식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은 식사하기 조금 이른 시간이다.

오늘 점심은 야외에서 촬영하느라 김두호 부장이 평창군에 나가서 사온 김밥을 먹었다.

배우들과 스텝들의 사기를 올리려고 오늘 저녁은 든든하게 먹일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사 씬을 먼저 촬영하기로 하고, 오늘 저녁 촬영에 여유가 있는 선우혜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를 부탁했다.

“선우혜 선배님. 저녁 식사 준비 좀 도와주세요.”

“네. 감독님”

“2층 씬 촬영까지 끝나면 바로 식사 씬을 찍을 거예요. 그때까지 준비가 될까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연기하러 온 배우에게 저녁식사 준비를 부탁을 하는 것은 큰 실례라고 생각되지만 지금으로서는 고양이 손으로도 빌려야할 형편이다.

2000년 지금은 배우들도 시간이 나면 스텝들과 같이 영화를 만드는 데 힘을 거들었다.

에로영화라서, 현장이 열악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감독님. 고기도 구울까요?”

“소고기하고 돼지고기도 구워주세요.”

“네. 감독님”

선우혜는 신인 감독인 강산에게 항상 ‘감독님’이라는 말을 붙여서 말했다.

“선배님. 촬영하지 않을 때는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요.”

“아녜요. 감독님. 저는 이게 편해요.”

강산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우혜에게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지만, 선우혜는 강산에게 말을 높였다.

아직은 말을 편하게 할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고 거리를 두는 말이다.

그러나 강산은 이런 관계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선배님. 식사 씬에 올릴 소고기는 한 입 크기로 자른 것 하고 자르지 않은 것을 나누어서 구워주세요. 자르지 않은 것은 식탁에 올렸을 때 보기 좋게 따로 구워주세요.”

“네. 감독님. 돼지고기는 어떻게 할까요?”

“참! 돼지고기도 한 입 크기로 자른 것과 통짜로 자르지 않은 것을 구별해서 구워 주세요.”

“네.”

“식사 신 촬영까지 끝나면 모두 같이 식사할 생각입니다. 고기 좀 넉넉하게 구워서 준비해 주세요.”

선우혜가 주방에서 밥을 하고 국과 반찬들을 준비하는 동안, 김두호는 펜션 밖 바비큐 장에서 숯불에다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김두호는 알아서 일을 찾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리다고 제작부장인 김두호에게 고기를 구워 달라고 시키는 용자는 없을 것이다.

얼굴만 봐도 깡패같이 생긴 김두호에게 말이다.

*   *   *

“자. 2층에서 안정민 배우하고 이규리 배우가 먼저 찍을 거예요. 스텝들은 준비해 주세요.”

강산의 말에, 스텝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두 개의 방과 거실, 베란다가 있었다. 그 중에 방 하나를 다현의 방으로 설정하고, 그 방에는 침대 하나와 옷장이 놓여 있었다.

이번 씬은 한 밤중에 벌어지는 설정이므로 커텐으로 햇빛을 가려야 할 것 같다.

멀리 노을이 지고 있다.

노을이 진다는 것은 저녁이 된다는 것, 오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산은 스텝들이 비좁은 방안에서 카메라와 조명장비를 설치하고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2층 발코니에 나갔다.

잠시, 저녁노을을 보았다가 순간적으로 넋을 잃었다.

지는 해를 가리는 엷은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 나와 오대산의 자락을 비추는 풍경은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구름사이로 비치는 진홍색의 빛깔은 강산뿐만 아니라, 우연히 발코니로 나온 스텝들도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에 시간의 흐름을 잊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강산은 갑자기, 이 노을 장면을 <다현 이야기>에 넣고 싶었다.

색채의 마술사.

다시, 그 버릇이 나오는 것이다.

강산을 이층 방의 침대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이규리를 불렀다.

“이규리 배우님. 잠깐만 발코니로 나와 볼래요.”

이규리가 발코니로 나오자, 오대산에 펼쳐지는 붉은 물결에 이규리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와! 감독님. 노을이 보기 좋아요.”

“이규리 배우님. 저쪽으로 가서 노을 좀 보고 있을래요.”

이규리가 발코니에 서자, 강산은 노을이 비치고 있는 이규리의 얼굴에 카메라 초점을 맞춰보았다.

모니터에 나오는 이규리의 얼굴에 비친 노을이 이규리의 화장과 조화롭지 않았다.

눈매를 또렸하게 하려고 마스카라를 한 이규리의 짙은 눈매와 검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너무 선명해서 노을의 부드러움에 비해 조금 튀었다.

강산은 이규리에게 마스카라와 화장을 지우고, 민낯에 가깝게 최소한의 화장으로 해  달라고 했다.

이규리는 화장을 지우고 입술에 립밤만 바르고 발코니로 나왔다.

거의 민낯같은 이규리의 얼굴에 붉은 노을빛이 파스텔처럼 부드러운 질감으로 스며들었다.

강산이 최철수 촬영감독을 돌아보자, 최철수도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강산은 결심했다.

“잠깐만요. 방에 계신 스텝들은 발코니로 나와서 촬영 준비를 해주세요. 발코니에서 먼저 한 씬을 찍을 거예요.”

강산의 말에 2층의 방안에서 촬영을 준비하던 스텝들은, 감독의 변덕에 불평을 하며 발코니로 나왔다.

스텝들도 발코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노을에 ‘와’하고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규리 배우가 노을을 감상하고 있으면, 안정민 배우가 이규리 배우 뒤로 가서 하는 씬입니다.”

“네”

발코니 씬은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강산이 즉흥적으로 추가한 씬이다.

“다현이 노을을 감상하고 있으면 상준이가 다현이 뒤로 가서, 치마를 천천히 올릴 거예요. 다현이가 잠깐 놀라는 척 하면서 고개를 돌려 상준이와 눈을 맞췄다가 상준이 연기를 시작하면 다시 노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거예요.”

“네”

“최철수 감독님. 지금 발코니에서 내츄럴 뷰(Netural View)로 이규리 배우가 노을을 보는 장면을 잡았다가, 1층으로 내려가서 2층 발코니를 로우앵글(Low Angle)로 노을을 감상하는 이규리 배우를 찍고 오죠.”

“오케이”

내츄럴 뷰는 ‘기본각도’라고 한다.

카메라에 담는 피사체의 눈높이와 카메라의 위치를 수평으로 같은 각도에서 촬영하는 기본적인 앵글이다,

로우앵글이란 ‘앙각’이라고도 하는데 피사체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촬영하는 앵글을 말한다.

강산은 조명기사이자 조감독 역할을 하는 서지수에게 발코니 촬영을 준비하게 했다.

강산은 카메라를 들고 최철수 촬영감독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최철수는 강철이 지정한 위치에서, 이규리가 발코니에 서 있는 장면을 촬영했다.

카메라는 펜션의 아래층에서 담쟁이덩굴을 따라 올라가다가, 2층의 발코니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있는 이규리에게 잠시 멈춘다.

“컷, OK요.”

강산은 재빨리 오케이를 하고, 최철수와 같이 2층으로 올라왔다.

강산은 장민호와 선우혜가 아닌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드러날 수 있는 대사의 양을 최대한 줄였다.

특히 이규리의 발성은 앵앵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이규리의 대사 씬에서는 관객들이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잠시 후, 스텝들이 촬영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를 하자 이규리와 안정민에게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레디 액션”

*   *   *

최철수는 강산의 헬프 신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경험이 부족한 강산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성의를 가지고 도와줄 생각이다.

비록 에로영화 촬영감독이지만 영화를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

최철수의 예상과는 달리, 강산은 경험 많은 감독처럼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을 바로 바로 조율했다.

고집이 센 장민호 배우의 요구나 여배우들의 기싸움도 요리조리 피해가고 스텝들의 불평들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리 양해를 구했다.

강산은 다른 에로영화 감독들, 아니 에로영화에 한정하지 않아도 다른 영화감독들과는 감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타고난 리듬감이 다르다고나 할까?

우리나라 재즈 연주자가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뉴욕의 할렘에서 자라난 흑인 재즈 연주자의 리듬감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한다.

LA 뒷골목을 걸어가는 흑인 갱스터가 내뱉는 랩이나 춤사위에서 보이는 불균형한 스텝을 우리나라의 랩퍼나 춤꾼들이 배워서 춤을 춘다고 그 맛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강산이 자신에게 촬영을 지시하는 카메라 앵글이나 각도, 씬을 통제하는 방식은 다른 감독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자연광을 이용하는 방식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색감과 타이밍, 카메라 워킹들에 대한 지시였다.

‘이 친구, 천재가 아닐까?’

강산은 효율적으로 현장을 관리하면서, 씬들을 빨리 찍었다.

스텝들도 배우들이 리허설하는 것 같아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바로 오케이했다.

사실, 강산처럼 빨리 찍는 감독들은 에로영화세계에서는 적지 않다.

에로영화에서는 시간이 돈이다. 제작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 출연료가 일당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빨리 찍다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기 마련이고, 이런 부분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최철수가 보는 카메라 뷰파인더에 보이는 배우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에로영화계에서 나름 연기력이 괜찮은 배우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다.

강산은 여배우들의 아름다움은 살리면서, 여배우들이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은 줄이고 있었다.

강산이 알고 하는지 우연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은 강산과 촬영을 시작한 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다.

이제까지는 주로 야외촬영이 이루어졌지만, 카메라를 고정해서 촬영하지 않았다.

강산은 배우가 움직일 때만 카메라를 움직이게 하거나,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카메라가 따라가거나 하였다.

단순한 씬이라고 생각한 장면들에 이상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다만 이제까지 촬영한 씬들은 배우들의 대사가 많지 않은 씬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보이는 그림 위주로 구도를 잡고 촬영했다.

최철수는 배우들의 대사가 많아지는 씬들에서 강산이 어떻게 배우들을 컨트롤할 지 궁금해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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