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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36화 (36/140)

〈 36화 〉 박미혜: 감독님 저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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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아침 공기는 차갑고 신선하다.

맨살이 오싹할 정도로 서늘하다. 회귀하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이다.

강산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10시부터 촬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어제는 3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어제 촬영을 종료하고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을 때, 강산은 오늘 촬영할 일정과 시나리오, 콘티들을 정리한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십대의 청춘으로 회귀한 후에는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조금만 쉬어도 배터리가 다시 완충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오늘 오전과 오후에는 주로 야외 씬들을 촬영하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 남은 실내 씬들을 촬영할 예정이다.

강산은 야외 촬영을 나가기 전에, 힐링하우스 주인부부에게 연못을 만들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전생의 기억이지만 주인부부에게 예전에 보았던 연못 위치에 데려가서 생각한 것 보다 좀 더 크게 만들라고 했다.

너무 깊지 않게 파는 대신에 더 넓게 조성해서 산불에 대비하라고 말이다.

회귀 전에 난 강원도 산불이 어느 계절인지 헷갈려서, 사시사철 물을 채워두고, 겨울에는 우물을 파거나 따로 물을 준비해 두라고 했다.

*   *   *

오전 촬영에 앞서 강산은 이규리와 박미혜에게 다현과 다미 두 자매가 관계를 설명했다.

“일단 두 자매 관계는 아주 좋아요.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로 다현은 다미를 엄마 대신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의무감이 조금 집착하는 것처럼 보여야 해요.”

이규리의 키는 168이 되고, 박미혜도 163이 된다.

이규리의 볼륨이 좋은 몸매 때문에 볼륨이 다소 부족(?)한 박미혜는 실제보다 더 작고 왜소하게 보였다.

강산은 두 자매가 대문을 나서는 장면을 여러 번 나누어 촬영했다.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 즐겁게 뛰어가는 장면을 촬영한 후, 바로 펜션 주위를 산책하는 장면을 촬영하였다.

관리인 상준(안정민 분)이 그녀들을 지켜보는 장면, 몰래 스토킹하는 장면을 바로 이어서 촬영했다.

펜션에서 조금만 산으로 더 올라가면, 원추리와 이질풀꽃. 제비꽃, 노루귀 등 같은 야생화들이 함께 섞여 피어있는 들판이 나왔다.

이규리와 박미혜는 다시 다정한 자매가 되었다.

다현과 다미가 야생화로 덮인 들판에 누워서 하늘을 보는 장면, 야생화를 감상하는 장면, 들판에서 서로 꽃을 따서 장난으로 던지는 장면들을 촬영했다.

특히 이규리는 카메라 정면으로 꽃잎들을 던지는 모습을 따로 데 예쁘게 퍼지지 않는다고 여러 번 던져야 했다.

덕분에 김두호는 촬영장 주변에서 꽃잎들을 따고 있었다.

험악한 인상에 다소곳이 야생화를 따는 김두호의 투박한 손.

강산은 다음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최철수 촬영감독에게 카메라의 위치를 의논하다가, 해의 위치를 보았다.

“최감독님. 무당벌레가 하늘을 보듯이 바닥에 누워서, 배우들을 촬영해 주세요.”

“이규리 배우님과 박미혜 배우님은 파란우산과 빨간 우산을 쓰고 꽃향기를 맡는 연기를 해주세요.”

“최감독님은 배우들의 우산 색깔과 해의 빛의 변화를 관리해 주세요.”

강산은 영화를 촬영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회귀 전의 버릇이 나왔다.

색채의 마술사.

강산이 전생에 재능낭비로 여겨지던 자연광의 조절은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익힌 기술이다.

자연광은 그 날의 날씨와 계절, 시간대가 주는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원하는 그림을 나올 때까지 테이크를 반복하거나 그 시간대에 나와서 촬영하기도 한다.

그래서 회귀한 지금은 가능한 스텝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나온 것이다.

이규리는 야생화들이 가득한 들판을 자유롭고 행복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규리의 흩날리는 머릿결과 그 뒤에 펼쳐지는 푸른 하늘이 대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촬영을 반복했다.

“컷. 이규리 배우님. 한번만 더 갈게요. 조금만 더 활짝 웃어 주세요.”

강산은 관객들에게 다현이 편집증적인 우울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에는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청순하고 아름다운 이규리가 나중에 상준에게 나쁜 짓을 당할 때, 안타까운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이규리는 여러 차례 행복한 표정으로 들판을 달려가는 장면을 되풀이해야했다.

강산이 OK를 했을 때에는 다리가 풀어져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험을 해야 했다.

박미혜는 다미가 산책하면서 야생화 향기를 맡는 장면이나 야생화를 꺾어서 머리에 꽂고 미소 짓는 장면을 촬영했다.

강산은 박미혜에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이규리와 박미혜는 강산의 지시에 따라 연기하고 있지만, 에로영화를 찍으러 왔는데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컷. 박미혜 배우님. 한번만 더 갈게요. 조금만 더 미묘하게 미소 지어 주세요.”

강산이 다미의 존재여부를 불분명하게 바꾸면서, 이 영화에서 다미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다미가 특별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등장하기만 해도 이 영화의 미스테리한 부분이 되기를 원했다.

이 부분은 다미역을 맡은 박미혜의 연기력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강산은 박미혜의 연기력을 믿고 시나리오를 변경한 것이다.

박미혜의 다미는 살아있는 인물로 관객들을 현혹하고, 다현이 다미에 대한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연기력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박미혜의 연기가 이상하다.

박미혜에게 기대한 모호한 눈빛과 호흡, 조금은 자연스럽지 않은 동작들을 요구했는데, 강산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컷 NG요. 박미혜 배우님. 조금 늦어요. 여기에서 눈빛이 변하거나 움직이면 안 됩니다. 자연스러운 템포를 유지해 주세요.”

“컷 NG요. 박미혜 배우님. 너무 빨라요. 여기에서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자연스럽게요. 한 번 더 갈게요.”

“컷 NG요. 박미혜 배우님. 세 박자에요. 먼저 마음속에서 딴, 딴, 딴, 박자를 세고 세 박자에 꽃을 꺾고, 다음 세 박자에 향기를 감상하고 자연스럽게 머리에 꽂고 돌아서서 가는 거예요. 템포를 유지에 신경을 써 주세요.”

강산은 회귀하기 전의 만났던 박미혜를 에로영화 프로필 북에서 봤을 때,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본래는 박미혜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규리의 불안한 연기를 보완하려고 캐스팅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박미혜의 기본기가 약해보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박미혜는 처음의 다미의 감정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연기도 밋밋하다.

다미의 역할상 관객들이 존재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하려면 박미혜가 존재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반전을 줄 수 있다.

박미혜는 강산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었다.

*   *   *

회귀하기 전, 박미혜는 강산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정혜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연극배우 출신 중견 신인으로 뒤늦게 데뷔했지만 영화계에서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알려지고 있었다.

강산은 자신의 대표작이 된 <동창생>에서 정혜영을 주인공 여자 친구의 어머니로 캐스팅했다.

<동창생>을 촬영하면서 강산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정혜영이 함께 했다.

술자리가 돌아가면서, 강산과 정혜영만이 남아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혜영은 술을 많이 마셨는지, 불콰한 얼굴로 강산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감독님. 저 모르세요?”

“네. 정혜영 배우를 제가 왜 몰라요. 아니까 섭외했죠.”

“그럼, 전에 만났던 거 기억하세요?”

“......”

술이 ‘확’ 깬다.

강산은 대답을 잠시 멈추고 머리를 돌려 보았지만, 정혜영을 전에 어디서 보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강산은 여자들의 이런 질문에 약했다.

사실 강산이 만난 여자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기억나는 여자보다는 기억나지 않는 여자들이 더 많았다.

여자들의 이런 질문에 잘못 대답했다가는 본전도 찾기 어렵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테니 말이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정배우님, 이 작품 전에 우리가 만났던가요?”

“감독님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음... 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네. 그럼, 감독님과 저는 처음 만난 것으로 하지요.”

“네?”

“기억나지 않는다면서요.”

“그렇다고 그러시면...”

“그럼, 박미혜라고 여자는 기억하세요.”

“박미혜요?”

“네. 박미혜”

강산은 정혜영이 박미혜라는 이름을 언급하자,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정혜영은 강산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호호호’ 하고 웃기 시작했다.

정혜영의 웃음은 강산은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감독님이 대답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알겠어요. 죄송해요. 감독님. 감독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요. 정말 죄송해요.”

정혜영이 정색하면서 강산에게 사과했지만 강산의 마음이 이미 틀어졌다.

강산은 마음속으로 정혜영과의 촬영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했다.

‘제기랄, 아직 세 씬이나 더 남았구나.’

강산은 표정을 다시 고치며 정혜영에게 말했다.

“아녜요. 정혜영씨. 기억하지 못하는 제가 잘못이죠.”

“그래도 저는 감독님이 저를 기억하지 못해서 조금 섭섭하네요.”

“네?”

“박미혜. 제가 박미혜에요.”

“......”

“박미혜라는 이름은 에로배우를 할 때 쓰던 이름인데요. 기억나세요?”

“잘...”

“딴, 딴, 딴,”

정혜영은 ‘딴’ ‘딴’ ‘딴’하면서 강산을 바라본다.

강산은 정혜영이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빛도 부담스럽고, ‘딴, 딴, 딴’ 하는 소리도 이상하다.

“무슨 소리에요?”

“템포에요. 연기를 할 때 마음속에서 세는 박자인데 잘 모르세요?”

“......”

“으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건 그렇고 제가 박미혜라는 이름으로 에로영화에 출연할 때, 감독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요?”

“무슨 작품요?”

“<우리 한번 할까요?>”

“뭘요?”

“영화 제목요.”

“네?”

“와아... 감독님, 너무하네요. 자기가 만든 영화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고. 출연했던 배우도 기억하지 못하고”

“으음...”

강산은 머리를 굴려 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기는 강산이 만든 에로 영화만 해도 수백편이 넘고, 영화 제목은 애플 홍보팀에서 마음대로 바꾸기도 해서 제목만 들어서는 기억하기 힘들었다.

강산도 수 백편을 만들면서 비슷한 스토리에 여배우들만 교체하면서 섹스 씬을 반복하던 작품들이라 그런지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많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억력도 좀 그렇고.

“정말 너무한데요. 저에게 그 작품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인데요.”

“그런데 왜 그만 두셨어요?”

“무엇 말이에요?”

“그거... 에로영화 말이에요.”

“그거요. 어느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내 연기에 너무 쇼크를 받아서요. 그래서 에로영화를 그만두고 연극으로 전향했어요.”

회귀하기 전이나 회귀 한 후에도 정혜영의 말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박미혜라는 이름은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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