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장민호: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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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었다 갈게요. 이규리 배우님. 다음 씬 좀 준비해 주세요.”
강산은 장민호와 선우혜 씬을 마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규리에게 다음 씬을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이규리가 준비하는 동안, 장민호는 잠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동안 강산과 스텝들은 침대를 창문 쪽으로 옮겨놓고, 이층에 있는 침대의 침대보로 바꾸어 놓았다.
세잔의 포스터가 있던 액자에는 로트렉의 물랭루즈 포스터로 교체되었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안방의 벽지도 블루톤으로 바꿔서, 이전 장면과 전혀 다른 배경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장민호가 다시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 속으로 올라가서 눕자,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레디 액션”
* * *
장민호는 근래 들어 고민이 많았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이렇게도 평생을 옭아매고 있다.
젊은 시절, 장민호는 극단 청춘만세에서 연기를 배우면서 주로 단역배우로 활동하면서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주말드라마 <대박 가족>에서 터프한 막내아들로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갑자기 큰 인기를 얻자, 물들어올 때 노 젖는다고 각종 광고와 밤무대에 출연하면서 돈도 벌었다.
동거하던 동료 연극배우 안주희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얻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장민호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 나쁜 친구들이 꼬였다.
친구들의 사기도박에 빠져 큰돈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사기도박으로 도박하던 친구들을 신고했다가 대마초로 되치기를 당해 장민호는 도박과 대마초로 잡혀 들어갔다.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도박뿐만 아니라 대마초 까지 피운 것으로 되어 방송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사실, 피라미에 불과하던 장민호가 주요인물이 된 것은 당시 부정부패로 집권당에 비난이 몰리자,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아무 배경이 없는 장민호를 재물로 삼은 것이다.
실제 재판에서는 사기도박의 피해자로 인정받고,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아무도 알아주거나 불러주지 않았다.
방송계에서 강제 퇴출당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 덕에 신혼이던 안주희와도 이혼하고, 아이들은 재혼한 남자의 아이가 되어 자라게 되었다.
그 후로 장민호는 독립영화나 에로영화, 재연드라마 같은 배우들이 기피하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박이나 대마초, 간통과 성매매를 했던 연예인들도 속속 복권되어 다시 방송과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민호는 연줄이 없어서인지, 배경이 없어서인지 재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유명한 배우가 되어 이혼한 전처와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연기를 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에로영화나 찍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장민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 *
우르릉 쾅! 쾅!
천둥소리가 방안을 울리고 있다.
어두워진 방안에 ‘번쩍’ 번개가 지나간 빛 사이로, 장민호의 잠든 얼굴이 비치고 있다.
창밖에는 천둥소리와 빗소리, 바람에 창가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소란하다.
카메라는 자정이 넘어가는 벽시계를 비춘다.
천둥소리가 사그라지고, ‘똑딱’, ‘똑딱’, ‘똑딱’ 괘종시계의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방안 가득 퍼지고 있었다.
잠시 후. 안방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어두운 그림자가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그림자는 조심스럽게 장민호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장민호가 놀라 눈을 떴다.
“누구야?”
“저예요. 아빠.”
“다현이니?”
“네.”
“무슨 일이야? 자지 않고.”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워요. 아빠. 옆에 있으면 안돼요?”
“그래. 그래.”
장민호는 침대 안으로 들어온 이규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강산은 장민호가 이규리를 어떻게 대할까 궁금했다.
장민호에게 애드립을 부탁한 순간이다.
강산은 장민호가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대사를 수정할 생각이다.
‘자, 장선생님. 자신의 침대 안으로 들어온 딸을 어떻게 대하실 생각이신가요?’
장민호는 이규리의 얼굴을 보다가 이규리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이규리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는 머리를 쓸어 주고, 등을 돌려 돌아 누었다.
강산은 잠시 기다렸다가 OK했다.
“컷. OK요. 장민호 선생님. 다른 버전으로 한 번 더 다시 가볼게요.”
두 번째 버전은 덕수와 다현이 관계를 갖는 것이다.
사실, 강산은 장민호가 애드립으로 이 장면까지 이끌어주기를 바랬다.
강산은 장민호와 이규리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연기해야할 장면을 설명했다.
“강감독,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장선생님. 다현이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장면입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을까?”
“장선생님. 이번 씬은 다현이 상상한 것인지, 현실인지 불분명하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될 거예요.”
강산이 ‘레디 액션’을 외치자, 브라운색 홑이불 속에서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카메라는 멀리서 방안을 비추다가 꿈틀거리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가 클로즈업 한다.
브라운 이불속에서 이규리의 손이 장민호의 허리근처에 천천히 움직인다.
잠시 후, 이불속에서 이규리가 장민호의 몸 위로 올라가자, 카메라는 뒤로 빠져 방안 전체를 비춘다.
강산은 최철수 촬영감독에게 카메라 필터를 교환하고, 브라운색 홑이불이 꿈틀거리는 장면을 촬영하게 했다.
잠시 후, 강산이 OK 신호를 주었다.
“컷. OK요. 장민호 선생님. 얼굴 컷 좀 따로 딸게요.”
이규리가 화면에서 벗어나고, 침대에는 장민호만 남았다.
카메라는 온전히 장민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지그시 눈을 감은 장민호의 얼굴에 조금씩 희열을 느끼는 연기를 했다.
“컷. 선생님. 쾌락 뒤에 남는 죄의식이 같이하는 표정을 지어주세요.”
강산이 난해한 요구에도 장민호는 쉽지 않은 연기를 보여 주었다.
장민호의 미친 연기력이 에로영화 같은 곳에서 소모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로 강산에게 장민호는 영화를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연기자였다.
강산은 이번 씬에서 배우들의 육체는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다.
실루엣이나 이미지만으로 브라운 홑이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상상하게 만들 것이다,
이 장면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지, 다현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지 애매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막장인 내용이지만 다현이 새엄마인 영숙을 왜 그토록 싫어하고, 상준에게 살인청부까지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려는 것이다.
다만 국민정서상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기에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어쩌면 아무런 반향도 없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에로영화다.
감독의 작가적 상상력에 아무런 제한이 없지만, 에로에 관한한 금기가 없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에로영화 말이다.
오히려 그런 논란이라도 생긴다면 이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아무튼 최종 편집을 할 때 이 장면을 넣을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이전의 장면들로 다현의 집착을 관객들이 이해하게 될 정도라고 생각되면 이 장면을 삭제할 생각이다.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추가할 생각이다.
“컷. OK입니다. 오늘 촬영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 *
“여보세요. 김실장입니다. 재일씨, 지금 통화가능 하세요?”
“네. 김실장님.”
류재일은 아버지의 비서인 김영호에게, 강산의 거취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마스테>의 실패로 강산과 류재일은 사채업자들을 피해 선후배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다가 해피머니에 잡혀갔다.
류재일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해피머니에서 풀려나자마자 바로 강산을 찾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강산이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 버렸다.
새엄마와 재혼한 아버지와 의절하고 가출했던 류재일은 강산을 찾기 위해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했다.
아버지는 비서실장인 김영호 실장을 불러, 류재일을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대신 류재일이 미국으로 유학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버지가 보기에 류재일은 나쁜 친구의 꼬임에 빠져 사채에도 손대고,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갔었다.
한국에 있다가는 다시 위험해 질수도 있는 것이다.
류재일은 아버지와 합의했다.
아버지가 말한 대로 류재일이 미국의 뉴욕대 대학원으로 유학 가는 대신, 아버지는 강산을 찾아서 도와주는 조건이다.
“전에 말씀하신 강산씨 소식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재일씨가 말한 대로 신안군에 있는 염전들을 모두 다 찾아보았습니다만 강산씨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김실장님. 수고스럽지만 신안 근처에 있는 다른 염전도 좀 더 찾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참! 일전에 해피머니 사람을 만난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만났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네. 그 사람 말로는 강산씨는 다른 사람과 달리 염전이나 배를 태우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계속하세요.”
“기타 솜씨가 괜찮아서 밤무대 일을 시키려고 했는데, 사장님 지시로 어떤 사람이 데려갔다고 합니다.”
“네? 사장이 왜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라고 합니다.”
“그럼 강산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사람 말로는 염전이 아니면 새우잡이 배를 타거나, 아니면 원양어선을 타지 않았을까? 하더군요.”
“하...”
류재일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화일 하던 강산에게 염전도 쉽지 않을 텐데, 새우 잡이 배나 원양어선이라니...
“운이 나쁘면...”
“운이 나쁘면요?”
“말씀드리기 조금 그런 이야기인데요.”
“말씀 하세요.”
“혹시 신체포기각서를 쓰신 적이 있으신가요?”
“네. 해피머니에서 썼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 말로는 채무자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 드물지만 신체포기각서도 같이 넘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 그래서요?”
“운이 안 좋으면... 수술을 당하기도 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