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선우혜: 어떻게 해야 하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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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먼저 장민호와 선우혜에게 촬영을 준비하게 했다.
아무래도 젊은 배우들보다는 관록 있는 배우들의 촬영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매끄러울 것 같았다.
펜션의 일층 안방에는 더블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영화촬영을 위해 사전에 준비한 침대가 아니다. 펜션에 비치되어 있는 침대지만 제법 고급스런 분위기가 났다.
벽에 걸려 있는 산수화 액자위에 미리 준비해온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의 포스터를 양면테이프로 정교하게 붙여 놓았다.
이것은 전생에 배운 편법이지만 세잔의 포스터가 안방의 분위기와 제법 어울려 보였다.
조명으로 빛의 양을 조절하고, 침대위에 있는 장민호와 선우혜, 두 배우에게 카메라를 맞췄다.
이 씬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아버지 덕수와 새엄마 영숙이 안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씬이다.
<다현 이야기>가 에로영화임을 보여주는 씬이지만 시나리오의 전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장민호와 선우혜는 잠옷을 입고 침대위에서 연기를 준비하고 있다.
강산은 장민호와 선우혜에게 A4지에 그린 스토리보드를 보여주며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선을 설명해 주었다.
촬영을 시작하자 카메라는 누워있는 두 배우의 얼굴과 상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컷을 따고는, 뒤로 물러서듯이 빠진다.
45도의 각도로 정면으로 촬영하고는 다시 배우들의 허리 아래, 다리가 서로 엉키는 장면을 촬영할 것이다.
피부의 질감,
강산은 장민호의 주름진 얼굴, 늘어진 피부와 선우혜의 하얀 얼굴, 탱탱한 피부를 부각시켜 보여줄 생각이다.
두 배우의 엉덩이와 허리부분은 엉덩이는 얇은 이불에 가리고, 겹치는 두 다리들만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상상력을 높여준다.
대신 선우혜는 작은 사이즈 팬티로 노출되는 육덕진 엉덩이는 지나가듯이 보여줄 것이다.
선우혜는 만일에 대비해서 얇게 공사를 했지만, 장민호는 아무런 공사를 하지 않았다.
물론 팬티는 입고 있었다.
“레디 액션”
덕수와 영숙이 잠옷을 입은 채, 침대위에 마주보고 있다.
영숙이 야릇한 눈빛으로 먼저 덕수의 가슴에 손을 넣어 손으로 애무하다가, 자연스럽게 덕수와 키스를 한다.
덕수가 영숙의 잠옷을 풀어 헤치고 영숙의 부푼 가슴을 부드럽게 애무하자, 영숙의 입술에서 가벼운 신음을 토한다.
장민호는 선우혜와 키스하면서, 다른 에로영화의 배우들처럼 적극적으로 연기하지 않았다.
회귀하기 전, 장민호는 어느 술자리에서 강산에게 키스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서는 말이야. 연애하는 것처럼 리얼하게 키스하면 안 돼. 상대 여배우의 얼굴이 일그러져서 예쁘지가 않아. 그래서 최대한 입을 상대배우와 가까이 하고, 입을 많이 벌리지 않아야 여배우의 표정을 살릴 수가 있어.”
덕수는 입을 조금 벌리고 영숙과 가볍게 키스를 나눈 후, 오른 손으로 영숙의 팬티를 다리 아래로 내렸다.
이불속에서 애무하는 시늉을 하다가 천천히 영숙의 가슴과 배에 키스를 하면서 내려갔다.
“컷, OK요”
* * *
촬영하기 전, 장민호는 강산에게 공사가 거추장스럽다고 공사를 하지 않고 연기하겠다고 했다.
에로배우에게 공사는 민감한 부분이다.
어떤 감독들은 먼저 배우들에게 공사를 하지 말고 연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감독의 요구에도 배우들이 거절하고 나서면 민감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말은 장민호가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선우혜가 상대배우가 공사하지 않으면 같이 연기하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그만이다.
이럴 때 감독으로서는 난감해진다.
잘못하다가는 두 배우의 자존심 대결에 끼어 촬영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회귀 전에 한 번은 A 여배우가 B 남자배우하고 절대로 같이 베드씬을 촬영하지 않겠다고 난리를 쳤다.
‘두 사람이 사귀다가 헤어진 것은 좋은데, 대체 왜 촬영장에서 싸우는 거야?’
촬영이 끝나가고 있는 중에 벌어진 일이라, 성질 같아서는 A 여배우가 나오는 씬들을 모두 다 도려내고 싶었지만, 강산의 선택은 에로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촬영해서 합성하는 거였다.
장민호 선생은 연기는 뛰어나지만 한 번 고집을 세우면 고집불통이다.
자신에게 남은 게 자존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장민호의 요구를 들은 스텝들은 강산이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보고 있었다.
강산은 선우혜에게 장민호의 의사를 전하고 양해를 구했다.
선우혜는 강산의 말에 난색을 표했지만, 강산이 예의를 갖추고 설득하자, 시작부터 분위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 마지못해 동의했다.
물론 선우혜는 공사하고 연기하기로 했다.
전생에 강산은 장민호와 여러 작품을 해 보았기 때문에, 장민호의 뛰어난 연기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공사는 다른 이야기다.
강산은 장민호가 50이 넘어가면서 발기부전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민호 배우 같은 연기 배태랑은 굳이 공사를 하지 않아도 정사 연기를 하면서 흔들림이 없다.
얼굴이나 몸짓은 흥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는 도리를 알고 움직임이 없다는 말이다.
장민호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넘기고,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오십도 중반을 넘어선 나이다.
이 말은 어지간한 유혹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고, 오로지 작품만을 위해 진정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강산이 선우혜에게 귓속말로 조용하게 말했다.
‘선배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장민호 선생님. 발기부전이에요.’
* * *
장민호는 선우혜와 키스를 하다가, 선우혜의 몸 위로 올라갔다.
모니터의 화면에서는 장민호와 선우혜의 상체는 가슴 위만 노출되고, 두 배우의 가슴과 허리 사이에는 얇은 이불로 덮여 있다.
선우혜는 강산이 기대했던 대로 장민호가 이불속에서 하체를 움직일 때마다 리듬을 타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 부분이 맞지 않으면 정사연기가 어색해진다.
정사 타이밍을 맞추려고 배우들끼리 살짝 꼬집거나, 눈을 맞추는 등 자기들만의 신호를 주고받기도 한다.
두 배우는 능숙하게 합을 맞추고 있었다.
잠시 후, 장민호는 절정이 오른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몸을 잠시 부르르 떨었다.
잠깐이지만 장민호의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카메라는 장민호의 얼굴에서 긴장된 종아리와 발가락에 힘이 쏠리는지 움찔거리는 장면에 멈추고 있다가 발가락에서 힘이 풀어지는 모습까지 잡았다.
강산은 ‘컷’을 하고, 다시 선우혜 위에서 장민호가 ‘푹’하고 고개를 떨구는 뒷모습을 잡았다.
강산은 정사의 여운을 느끼는 모습을 잡으려고,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장면이 있었다.
장민호는 여운이 남은 표정을 하고, 선우혜의 무언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산은 조용하게 최철수 촬영감독에게 신호를 주었다.
‘감독님. 영숙의 표정을 비추고 기다려주세요.’
덕수는 영숙의 몸 위에서 떨어지며, 정사가 힘들었다는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거친 소리를 내던 영숙의 신음소리가 가라앉으면서 부풀어 오르던 가슴도 내려앉았다.
잠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던 영숙은 덕수를 향해 몸을 돌려 누워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치고는 활짝 미소 짓는다.
강산은 선우혜의 표정변화를 보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컷. OK요. 아주 좋습니다.”
강산이 요구한대로 두 배우는 NG없이 5분이 넘는 씬을 롱테이크로 찍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이다.
강산은 장민호와 선우혜의 연기에 감탄했다.
특히, 선우혜.
장민호 배우야 회귀 전에도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우혜의 연기는 기대한 것 이상이다.
선우혜가 장민호와 정사를 마치고, 잠시 동안이지만 아쉬워하는 표정연기는 강산이 요구한 사항이 아니다.
선우혜의 연기는 그녀의 애드립이었다.
강산은 선우혜에게, 영숙이 덕수와 결혼을 한 것을 덕수의 돈을 보고 결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선우혜는 영숙의 표정으로, 관객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의심하는 작은 불씨를 켜놓았다.
강산이 선우혜를 캐스팅한 것은 그녀의 연기력보다 인성 때문이다.
전생에 그녀와 촬영하면서 경험한 것이지만, 감독들의 곤란한 요구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대배우들과의 트러블도 잘 받아주었다.
에로영화 신인감독시절 강산은 에로영화를 촬영하면서, 여배우들의 신경전에 말려 큰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래서 선우혜를 캐스팅한 것이지만 지금 보니, 선우혜의 연기실력이 이 정도였는지 몰랐다.
연기력 못지않게 외모도 나쁘지 않다.
강산이 기억하는 선우혜의 모습은 지금보다 살이 너무 쪄서 후덕한 몸매를 가진 중년 부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살이 조금 오른 성숙한 중년 여성이지만 몸매관리를 잘해서인지 30대 중후반의 여배우처럼 보인다.
그래서 지금 선우혜의 모습은 조금 생경하다.
* * *
선우혜는 요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5년 전, 선우혜의 남편은 회사 동료와 바람이 나서, 어린 남매와 자신만 남겨두고 바람처럼 떠나가 버렸다.
선우혜는 결혼하기 전만 해도 TV에서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연극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었지만, 결혼 후에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이혼한 후에는 먹고 살기위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다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선우혜는 독립영화나 방송드라마, 에로영화, 홈쇼핑 게스트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 중에 에로영화에서 제일 많이 불러주었다.
지금은 제법 일들이 많아지면서 저축도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엄마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애가 엄마의 직업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지, 선우혜에게 엄마 직업이 뭐냐고 자꾸 물어 보았다.
1박 2일이나 2박 3일 촬영이 있으면, 이모할머니 집에 애들을 맡기고 일하러 갔다.
아이들도 머리가 커가면서 이일을 계속해야할 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혼한 전남편이 찾아와서는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이제 와서 아이들의 아빠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선우혜가 거절하자, 면접교통권을 이유로 소송하겠다고 하였다.
남편은 선우혜가 에로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는 선우혜의 직업을 이유로 아이들의 양육권을 달라고 했다.
선우혜는 법률구조공단에서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변호사는 재판으로 가면 에로배우라는 직업이 불리할 수 있다고 한다.
애들을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아이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슨 행패란 말인가?
선우혜는 에로배우 연기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제는 돈이다.
에로영화에 출연하면 일당 30만원에서 40만원을 받지만 다른 일들은 하루에 15만원에서 20만원을 받았다.
한 달에 10일 정도 일했으므로 에로연기를 하면 300만원에서 400만원을 벌수 있지만 에로영화 빼고 다른 일만 해서는 아이들을 키우기 어렵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에로연기를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에로연기를 계속하다가는 아이들을 전 남편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