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김두호: 나? 뭐 하는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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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이 형. 남수의 불량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나게 운전해 주세요.”
안정민은 선글라스를 쓰고 에쿠스를 운전하면서, 왼팔을 창가에 걸치고 오른 손만으로 운전했다.
“정민이 형.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하고, 전화를 하면서 고객과 통화하는 장면을 촬영할 거예요. 화를 내는 대사는 애드립으로 해주세요.”
차 안에서 전화하는 장면은 나중에 남수가 로드킬을 피하려다 사고가 나는 장면으로 연결되도록 할 것이다.
에쿠스가 지나가는 장면을 여러 방향에서 촬영하고 이제부터는 전화하는 장면을 찍을 차례가 되었다.
남수가 사채를 사용한 고객들과 전화하는 장면은 실제로 안정민이 운전하면서 촬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근접 촬영이라 강산이 원하는 카메라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회귀하기 전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 충분한 공간이지만 지금은 카메라 성능 때문에 차 안에서 촬영할 수 없었다.
강산은 촬영감독 최철수와 카메라 각도를 상의했다.
“최감독님. 아무래도 차문을 열어야 카메라 공간이 나오겠죠?”
“그래야겠지”
“남수가 운전을 하는 느낌을 주고 싶은데요?”
“운전할 때 내가 창문 밖으로 몸을 빼서 촬영해볼게”
“위험하지 않을까요?”
“천천히 운전해 주면, 얼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한번 해 보죠.”
최철수는 정차된 에쿠스에서 오른 쪽 창문에 몸을 빼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어보았지만 카메라 화면에 걸리는 창틀을 피할 수 없었다.
“강감독. 아무래도 안 되겠어. 각이 안 나와”
“최감독님. 제가 운전하는 장면을 촬영할게요.”
“어떻게 하려고?”
“제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남수를 촬영할게요.”
“위험하지 않겠어?”
“얼마 안 되니까요. 어떻게든 해 봐야죠.”
강산은 회귀 전에 촬영감독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택시를 쫓아가면서 촬영하던 씬을 기억했다.
그 촬영 감독은 카메라를 수평으로 유지해주는 스테디 캠을 장착하고 있었지만, 강산은 에쿠스 매달려 촬영해야 했다.
강산이 필요한 장면은 5초 내지 10초, 남수가 운전하는 장면이다.
강산은 롤러스케이트를 몇 차례 연습을 한 후, 천천히 달리는 에쿠스에 매달려 남수가 운전하는 장면을 촬영하였다.
위험할 수 있는 장면인데도 안전불감증인지, 이런 일이 흔해서인지, 사람들은 강산보다 카메라를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회귀하기 전에는 카메라는 부서져도 카메라맨의 부상 방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말이다.
강산은 미리 보아두었던 경사진 길가에 에쿠스를 세웠다.
에쿠스 운전석 반대쪽 차문을 열고, 카메라가 촬영할 공간을 만들었다.
문제는 차는 세워져있지만 운전하면서 전화하는 중이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고민하던 강산은 촬영소품으로 준비한 낫을 들고 산속으로 조금 들어가더니, 나뭇잎이 많은 나뭇가지들을 베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촬영을 대기하고 있는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말했다.
“촬영 좀 도와주세요.”
강산은 스텝들과 배우들을 돌아보았다.
스텝들은 강산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자기가 맡은 장비를 잡고는 강산의 눈길을 피했다.
현장은 갑자기 서부영화의 한 장면으로 변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정오,
총을 찬(?) 아니 나뭇가지를 든 강산이, 적들 아니 스텝과 배우들의 눈을 한명씩 바라본다.
강산의 눈과 마주친 스텝들과 배우들의 초초한 모습,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강산의 더위에 찡그린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스텝들은 자신이 맡은 장비들을 힘주어 잡고, 배우들은 강산의 눈을 피한다.
강산이 총을 뽑으면 순식간에 피 튀기는 장소로 변할 것 같은 숨 막히는 긴장감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강산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강산의 눈을 피하지 않은 선우혜와 아무것도 모르는 김두호였다.
“선우혜 배우님, 김두호 부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네. 감독님”
“나? 뭐하는 데?”
선우혜는 강산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김두호는 이해가 안돼서 뭘 도와줘야 하는 지를 강산에게 물었지만, 강산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나누어 주었다.
선우혜가 나뭇가지를 들고 에쿠스 아래로 가자, 그녀를 따라갔다.
스텝들은 서둘러 촬영장을 세팅하고, 김두호와 선우혜는 강산이 준비해 온, 나뭇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들고 에쿠스 운전석 창가로 갔다.
강산은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재면서 나뭇가지가 나와야 하는 길이와 손이 안 보이는 높이를 계산했다.
덕분에 김두호와 선우혜는 나뭇가지를 올렸다가 조금 내리기를 반복 했다.
“OK요. 그 정도 높이를 유지해 주세요.”
강산이 지정해준 높이로 나뭇가지를 들려면, 김두호는 머리정도지만 선우혜는 벌을 서듯이 두 팔을 끝까지 올려야 했다.
안정민이 대사를 치는 동안 에쿠스를 운전하는 것처럼, 창가에 나뭇가지를 들고 재빠르게 달려가야 한다.
창문에 두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손이 보이면 바로 NG다.
에로영화에서 음모나 공사한 장면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김두호와 선우혜는 운전석의 창가를 돌아가며,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유치하지만 두 사람이 속도감이 있게 나뭇가지가 지나가야만 운전하는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컷. 잠깐만요. 선우혜 배우님, 좀 더 빨리 달려야 합니다.”
“네”
강산은 아직은 어색한 사이인 김두호보다 선우혜에게 좀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우혜는 강산에게 ‘네’하고 대답했지만 이내 곧 퍼져버렸다.
결국 김두호만 남았다.
혼자 남은 김두호는 본의 아니게 선우혜 몫까지 더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김두호가 보기에도 선우혜가 움직이는 속도는 너무 느렸다.
그래서 김두호는 더운 여름날의 뙤약볕 아래에서 쉬지 못하고 원을 그리며 달렸다.
숨은 그림으로, 강산은 선우혜와 이런 내용들을 사전에 말을 맞춰 두었다.
적당한 때를 맞춰 선우혜가 퍼지기로.
운전석에 앉은 안정민은 남수가 되어 대사를 시작한다.
“아저씨.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지 않겠어요. 아저씨 사정은 내가 알바가 아니고... 그럼 회사로 찾아가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거기서 뵙겠습니다.”
“컷. OK요. 안정민 배우님 좋습니다. 이대로 죽 가시죠.”
“아가씨. 아가씨가 죽는다고 해서 돈을 빌려준 거 아니요. 그런데 안 갚아도 된다는 말은 뭐요? 지금 내 성질 테스트 하는 거요!”
다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안정민이 에쿠스를 벗어나자, 스텝들은 다음 촬영을 위해 움직였다.
김두호는 땀이 가득한 얼굴을 닦으며, 도로가에 서있는 에쿠스로 올라왔다.
너무 더워서 좀 더 쉴 만도 한데, 김두호의 관심은 더위나 잡부일보다 에쿠스의 청소상태였다.
“아 씨팔! 담배 조심하라고 했는데?”
김두호는 안정민이 흘린 담뱃재를 닦으며, 안정민이 지나간 운전석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 * *
안정민은 <남수 이야기>의 하와이 셔츠에서 남색 체크무늬 반팔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야구 모자를 쓰면, <다현 이야기>의 별장관리인 상준이 되었다.
이런 장면들은 안정민만이 아니다.
다른 배우들, 장민호와 선우혜, 이규리와 박미혜도 마찬가지로 옷을 자주 갈아입었다.
경치가 좋은 곳이나 적당한 곳이 나타나면 남녀 배우들은 강산이 시키는 대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연기를 준비했다.
촬영 장소는 동일하지만 영화에 따라 화면에 잡히는 풍경이나 배우들의 역할은 너무 달랐다.
남수는 하와이 셔츠를 입고 산길을 건달처럼 건들거리며 걸어가다가, 나무들이 많은 숲으로 들어가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며 달리기도 했다.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서 선우혜와 이규리, 박미혜가 산나물을 캐는 모습을 엉큼한 눈으로 훔쳐보는 장면을 찍었다.
잠시 후, 안정민은 하얀 와이셔츠를 갈아입으면 별장관리인 상준이 되었다.
상준은 다현(이규리 분)에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화를 하거나 삿대 짓을 하면서 위협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장민호는 잘 다려진 와이셔츠와 바지를 입고는 중년의 신사가 되어, 선우혜와 같이 산책을 하다가,
밀짚모자를 쓰고 늘어진 라운드 티를 입으면 중년의 농부가 되어 아무 밭이나 들어가서 농사를 짓는 연기를 해야 했다.
배우들은 강산이 배경 상황을 설명해 주었지만, 지금 장면들이 이전의 촬영한 장면들과 어떻게 이어지는 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강산이 시키는 대로 연기할 뿐이었다.
* * *
강산과 일행들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어제 예약해 둔 힐링하우스 펜션에 도착했다.
유럽풍의 힐링하우스는 오대산 산세가 아름다운 전나무 숲속 끝에 갑자기 나타난다.
재벌이나 서울 부자들이 강원도에 숨겨놓은 별장처럼 보였다.
이곳은 강산이 회귀 전에 영화 촬영장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힐링하우스는 오대산의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라고나 할까.
2010년 즈음이었나, 레알 정보통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오대산의 숨은 명소로 소개하면서 유명해 졌다.
이전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라서 손님들이 많지 않은, 주말이 아니면 거의 없는 덕에 에로영화를 촬영하기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강산이 2007년에 <부부의 신세계>라는 성인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한 적이 있었다.
별채에서 바라보는 오대산의 가을 전경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강산은 어제 저녁에 힐링하우스 펜션에 전화해서, 3일정도 별채를 사용하고 싶다고 미리 예약했다.
힐링하우스 펜션 사장은 강산의 전화를 받고 조금 당황했다.
아직 주변 편의시설 공사들이 마무리 되지 않아서, 아직은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평창군청에서 미리 힐링하우스 이름을 올려놓으라고 해서 군청에 팬션으로 올려놓았지만 개업식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누가 숙박하겠다고 연락이 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알았는지 예약을 묻는 전화가 와서, 아직은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서 손님을 받기 어렵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손님은 아무 상관없다고 별채만 사용하다 가겠다고 계속 사정하는 통에 마뜩하지 않지만 숙박을 허락한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군청에서 영화촬영에 협조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강산과 일행들이 할링하우스 펜션에 내리자,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다가왔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진정한 피톤치드의 향인가?
강산의 일행들은 오대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상쾌한 공기를 감상할 여유도 없이 움직여야 했다.
주인 부부의 안내에 따라 별채에 짐을 내리자마자, 촬영장비들을 점검하고 본격적인 촬영을 준비했다.
강산은 배우들에게 연기해야 하는 간략한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대사를 적은 쪽지 대본을 나누어주면서 배우들에게 애드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을 대신하기 위해, 가능한 배우들의 실제 대화를 날것 그대로 담고 싶었다.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강산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