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30화 (30/140)

〈 30화 〉 혜능: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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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까?, 바람이 흔들리는 것입니까?”

스승이 말했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다. 단지 네 마음일 뿐이다.”

이 구절은 중국 선종(禪宗)의 제6대 조사인 혜능의 일화라고 한다.

나뭇가지가 아니라 깃발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튼, 이 불경구절은 영화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으로는 왕가위의 <동사서독, 1994>,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1999>,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 2005>이 있다.

강산은 이번에 영화 두 편을 만들면서,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라는 무협영화 제작과정을 참고하기로 했다.

왕가위 감독은 회귀하기 전이나 회귀한 지금에도 강산의 롤 모델이자, 스승이나 다름없다.

물론, 강산 혼자 생각하는 것이다.

‘강산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기존 작품들의 동어반복이자 자기복제에 불과하다.’

회귀 전, 어느 평론가는 강산의 작품에 대하여 테러 같은 악평을 늘어놓았다.

‘다만 왕가위가 성인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악평을 하던 평론가도 강산 영화의 스타일리쉬한 영상미는 왕가위 못지않다고 인정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강산을 ‘보급형 왕가위’ 또는 ‘성인용 왕가위’라고 했다.

왕가위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남겨진 자의 고독함을 주제로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색채감이 뛰어난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촬영 예정기간을 지키지 않는 감독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이런 부분도 강산이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나타나기도 했다.

왕가위는 <동사서독>을 만들면서 왕가위 특유의 즉흥적이고 계획성 없는 제작방식과 제작비 부족으로 촬영이 자주 중단되었다.

촬영이 한번 중단되면, 촬영을 하던 배우들과 스텝들은 촬영이 재개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했다.

<동사서독>의 배경인 황량한 고비사막 한가운데서 말이다.

당대의 최고 배우인 장국영, 임청하, 양조위, 장학우, 장만옥, 양가휘, 유가령, 양채니 등도 예외가 없었다.

제작비 부족으로 <동사서독> 촬영이 중단되는 동안, 촬영재개를 무작정 기다리던 배우들과 스텝들은 <동사서독>의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동사서독>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스텝들 그대로 <동성서취>라는 조잡하고 유치한 B급 코미디 영화(감독 유진위, 제작 왕가위)를 만들었다.

<동사서독>과 <동성서취> 두 영화의 흥행결과는 아이러니하다.

먼저 개봉한 <동성서취>는 홍콩 영화사상 역대급 흥행작이 되었고, 그 수입으로 <동사서독>은 다시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든 <동사서독>은 흥행에 실패, 실패정도가 아니라 대참패했다.

아무튼, 강산은 왕가위 감독처럼 명작을 만들지 못하겠지만, 2주일 동안에 출연배우 그대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    *    *

강산은 애플의 사장실에 모인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고, 지난밤에 정리한 두 영화의 대본을 A4지에 나누어 주었다.

이 대본은 완결된 대본이 아니라 대강의 트리트먼트다.

첫 번째 <다현 이야기>는 아버지 덕수의 재산을 차기하기 위해 벌이는 새엄마 영숙과 새엄마를 질투하는 다현과 다미 자매의 치정극이다.

두 번째 <남수 이야기>는 사채업자 남수가 교통사고로 화전민 집에 찾았다가, 타임트랩에 걸려 무한 반복하면서,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다현 이야기>와 <남수 이야기>는 에로영화의 기본인 베드 씬은 여러 차례 나올 것이다.

다만 스토리가 없이 눈만 맞으면 갑자기 섹스, 무작정 섹스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촬영할 때에는 지금 나눠준 대본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배우들과 스텝들이 달라지는 스토리에 조금 당황하겠지만 영화 세계에서 이런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에로영화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에로영화는 다른 영화들보다 제작환경이 더 열악해서, 밑도 끝도 없는 촬영상황이 더 많을 뿐이다.

지금의 시나리오는 촬영 현장에 맞게 수정되고 더 정교해 질 때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감독들 중에는 대본도 없이, 촬영을 시작하는 감독도 있었다.

여배우가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옷을 벗어야 하기도 했는데, 첫촬영으로 베드씬을 하기도 했다.

강산은 회귀 한 후, 처음 만나는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자신이 준비된 감독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밤에 A4지에 급하게 정리한 두 영화의 트리트먼트를 나누어 주었다.

“지금 나눠준 것은 실제 대본이 아니라 트리트먼트입니다. 실제 대본은 촬영할 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산에 이어 이덕배 사장이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이 영화를 잘 부탁한다는 연설을 마치자, 배우들과 스텝들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강산은 이덕배 사장에게 검은색 에쿠스를 빌려 달라고 했다.

검은색 에쿠스는 이덕배 사장이 신주단지 모시듯이 아끼는 자가용이었다.

“사장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에쿠스 좀 빌려주십시오.”

“에쿠스는 왜?”

“영화에 필요해서요.”

“그래. 오케이. 걱정하지 말고 마음대로 써. 네 마음대로”

이덕배는 강산에게 에쿠스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했다.

그래도 김두호를 따로 불러, 주의를 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너. 깨끗하게 반납해라. 무슨 말인지 알지.”

*   *   *

어제 저녁, 강산은 급하게 섭외된 배우들에게 일주일 동안 두 편의 작품을 동시에 촬영한다고 하였다.

내일 애플프로덕션으로 올 때, 도시사람 의상과 시골사람 의상 등 여러 종류의 의상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여배우들도 당연히 여러 종류의 의상을 준비해 오겠지만, 강산도 소품실에서 다양한 종류의 의상들과 촬영에 사용할 장비들을 챙겨왔다.

주차장에는 에쿠스와 봉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산은 김두호가 운전하는 에쿠스의 조수석에는 장민호가 타고, 뒷자리에는 선우혜, 이규리, 박미혜, 여배우들 3명이 타게 했다.

아무래도 승차감이 불편한 봉고보다는 에쿠스가 나이가 많은 장민호와 여배우들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좋을 것이다.

강산이 회귀한 후와 회귀하기 전과 달라진 점 하나는 여배우, 아니 여성들에 대한 매너다.

회귀 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지만 2025년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그러나 여배우들은 강산이 자꾸 불편한 점이 없는가를 물어보는 신인감독 강산을 매우 낯설어했다.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가 싶어 어색하다.

봉고차에는 강산과, 안정민, 최철수 촬영감독, 서지수 조명기사, 이영철 녹음기사와 촬영장비들을 구겨서 넣었다.

“감독님. 여기 유모차는 뭐예요?”

“아~ 그거요. 촬영할 때 쓰려고요.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챙겨주세요.”

*    *    *

서울을 벗어나자, 강산은 국도로 길을 잡았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택한 것은 오대산에 있는 펜션으로 가는 동안 촬영해야 할 배경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에로 영화의 특성상 야외 촬영 씬보다는 실내에서 촬영하는 씬이 많다.

실내 씬은 저녁에도 촬영 가능하지만 야외 씬은 촬영하기 어렵다.

인서트 컷으로 사용하려면 배경이 아름다운 장소가 나올 때마다 가능한 많은 장면을 촬영해 두어야 한다.

<남수 이야기>는 무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남수(안정민 분)가 정학(장민호 분)에게 쫓기는 씬들에서, 무더위가 남수를 더욱 절박하게 보이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날의 느낌을 주기 위해, 여름 볕에 지친 나무들과 메마른 대지에 쏟아지는 햇살, 넓고 푸른 하늘을 만날 때마다 미리 촬영하려고 한다.

나중에 <남수 이야기>를 편집할 때, 남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비추는 장면에서 남수의 시선을 따라 하늘로 화면을 전환한다.

하늘을 편집점으로 해서 미리 촬영해둔 푸른 하늘과 더위에 지친 나무 장면들을 연결시켜, 무더위와 남수의 절망스러운 감정을 만들 것이다.

강산은 봉고의 조수석에서, 촬영 일정과 시나리오, 촬영 장소와 촬영순서를 고치고 콘티를 만드느라 머리가 아프다.

봉고가 언덕 위에 오르자, 탁 트인 경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강산은 차를 멈추게 하고, 스텝들과 배우들을 내리게 하고 첫 촬영을 준비하게 했다.

굽이굽이 뱀이 꼬인 것처럼 돌아가는 이 국도는 아래로 새로운 도로가 나면서 지나가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의 개성과 여배우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강산은 안정민에게 미리 준비하게 했던 하와이 셔츠를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이 하와이 셔츠는 남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단벌 신사로 나올 것이다.

“정민이 형. 상의 단추 2개를 풀고 머리 좀 정리해 주세요.”

강산은 안정민과 인사를 나누면서, 강산보다 7살이나 많은 안정민을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배우들과 기싸움을 하느라고 배우들과 말을 트지 않고 항상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전생을 통해 그런 기싸움이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알면서, 이번에는 배우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로 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안정민은 영화 <남수 이야기>에서 사채업자 남수 역으로, 남수는 사업용으로 에쿠스를 자가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안정민은 기지개를 크게 켜고 상체를 좌우로 돌리며 몸을 풀었다.

김두호에게 차키를 넘겨받고, 에쿠스 운전석에 앉아 후방거울을 보고 머리를 정리했다.

“사장님이 아끼는 차에요. 조심해서 몰아요.”

“알았어.”

“흠이라도 생기면 사장님이 화낼 거예요.”

“알았다고”

“담배 피울 때, 담뱃재 안 들리게 조심하고요”

“알았다고 했잖아”

김두호는 운전석에 앉는 안정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 마디를 더하고 나서야 에쿠스에서 물러섰다.

영화 촬영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 쫄기는...”

안정민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제작부장 김두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폭출신이라는 소문만 아니었다면 한 번 불러서 혼을 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두호의 인상이 너무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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