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29화 (29/140)

〈 29화 〉 평론가: 강산 감독요. 뭐라고 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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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호(55세).

본명은 민정우. 연기경력이 30년이 넘는다.

극단 청춘만세 출신으로 에로영화에 출연하기에는 연기경력과 실력이 아까운 분이다.

젊은 시절 한때, 사기와 도박에 연루되어 전과자가 되어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공중파나 중요한 영화에서는 불러주지 않았다.

지금 현재는 독립영화나 에로영화 등에 주로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친절한 할아버지나 재벌가 회장 역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강산이 지금부터 3년 후에나 만나게 되지만 이번에는 그 인연을 앞당기기로 했다.

선우혜(42세).

본명은 이정숙. 연기경력은 10년이 넘는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풍만한 몸매가 인상적인 배우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남매를 키우고 있다.

에로영화에서 바람을 피우는 아주머니나 며느리, 하숙집 아줌마, 다방 주인 등으로 자주 출연한다.

주로 아주머니 역으로 다양한 영화나 재연 드라마 등에 출연하고 있다.

강산이 회귀하기 전에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연기는 계속하고 있었다.

안정민(32세).

본명은 한철민. 연기경력은 5년 정도 된다.

많지 않은 에로영화 남자 배우들 중에서는 연기가 되고 몸매가 되는 배우이자 나름 이 세계에서는 원로배우다.

연기 매너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지만 부족한 자원 중에서는 제법 괜찮은 마스크와 몸매를 가지고 있다.

강산의 작품에도 여러 번 출연했었다.

나중에 에로배우를 은퇴하고 공인중개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가끔씩 아르바이트로 독립영화에 출연도 한다고 들었다.

이규리(23세).

본명은 최영희. 연기경력은 3년 정도. 청순한 얼굴과 반전 몸매로 유명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출연한 적이 있지만 앵앵거리는 발성 때문에 연기력은 크게 평가 받지 못했다.

에로영화계로 들어와서는 뛰어난 미모와 몸매로 큰 인기를 얻었다가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강산이 본격적으로 에로영화를 만들 때는 이미 은퇴했는지, 이규리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만 강산이 우연히 이규리가 출연한 작품을 보다가, 가끔씩 보이는 매혹적인 시선과 감정 표현에 감탄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규리의 이름을 프로필 북에서 본 것이다.

강산은 프로필 북에서 이규리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별표로 표시하고, 옆에 반드시라는 말을 적었다.

박미혜(22세).

본명은 이은영. 연기경력은 2년이 넘는다. 박미혜 배우는 전생에서도 잘 알고 있는 배우다.

박미혜는 에로영화에서 은퇴하고, 연극배우로 전향하면서 정혜영으로 개명했다.

나중에는 봉중호 감독의 작품에서 출연하고부터 홍상순, 류재일 감독들의 작품에도 출연한 연기파 중견배우였다.

강산의 작품에도 출연한 바 있었다.

지금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외모로 순진한 여고생이나 여동생 역을 주로 맡고 있었다.

*   *   *

시간이 부족하다.

먼저 시나리오를 2개를 만들어야 한다.

전생에서 강산은 <사랑의 스와핑>이라는 제목의 70분짜리 에로영화를 만들었다.

참고로 <사랑의 스와핑>이라는 조금 촌스러운 제목은 제작자인 이덕배 사장이 정했다.

<사랑의 스와핑>의 시나리오는 권수현 작가가 사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용은 단순하고 전형적인 내용이다.

- 결혼 5년차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양평으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신혼부부와 스와핑을 하게 된다. 부부들은 서로 질투하고 싸우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

강산은 양평에 있는 모텔을 빌려 2박 3일을 촬영했다.

전형적인 방법이지만 먼저 한 층에 있는 3개의 방을 빌린 후, 방들을 돌아가면서 배우들을 교체하고 베드신을 촬영했다.

주변의 경치를 촬영해서 인서트 컷으로 사용하고, 부부들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나 대화하는 장면, 화내고 싸우는 장면을 촬영하고 화면들을 이어 붙여 편집했다.

<사랑의 스와핑>에는 에로비디오의 전형적인 구성이 등장한다.

남자를 유혹하는 여배우의 에로틱한 노출 장면과 눈만 맞으면 섹스 하는 ‘갑자기 베드신’이 등장한다.

다만 다른 에로영화들과 다르게 야외 섹스 씬을 시도했다.

야외 섹스 씬은 아무리 에로배우라도 많은 사람들이 노출된 장소에서 알몸연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스텝들은 야외촬영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막아야하고, 배우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섹스 씬을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연기하는 배우나 연출하는 감독, 촬영하는 스텝들, 모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런데도 배우들과 스텝들이 적극적으로 촬영에 응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에로영화의 레전드가 된 이규영이 보여준 ‘대낮의 육교 씬’을 촬영할 때에는 300여명의 일반인들이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고 한다(미친 밤, 1999, 홍단).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당시 강산은 나이도 어리고, 잡부에서 낙하산을 타고 감독이 된데다, 에로영화를 처음 찍는 신인 감독이었다.

그런데도 스텝들은 아무런 텃세도 부리지 않고, 배우들도 신경전을 벌이지도 않았다.

강산이 야외 촬영을 요구해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허술한 이야기 구조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적극적인 연기 덕분에 나름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스텝들과 배우들은 이덕배 사장에게 영화가 완성하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정신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이 작품을 제때에 완성하지 못하면 너희들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장님 찬스를 쓰기로 했다.

이덕배 사장에게 배우들과 스텝들이 이 작품에 헌신적으로 임할 수 있게, 스텝과 배우들을 따로 불러 격려(?)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덤으로 무뚝뚝하게 옆에 서 있는 김두호도 차출해 달라고 했다.

이덕배 사장은 김두호의 반항을 진압하고는 흔쾌히 강산의 요구에 응했다.

“아무 걱정 말고 영화나 잘 찍어”

*   *   *

이번에는 회귀하기 전의 양평이 아니라 오대산이다.

두 편을 동시에 촬영해야 하는 것도 고려됐지만, 이번에는 회귀 전과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는 오대산으로 가는 동안 한 편을 촬영하고, 오대산에서 한 편 더 촬영할 생각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회귀하기 전에 에로영화 감독들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다.

다만 이 아이디어가 너무 전형적이라, 강산은 다른 내용을 추가해서 서로 다른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강산은 머릿속에서 시나리오를 먼저 쓴 다음,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찍어보고 머릿속에서 편집해 보았다.

이 방식은 아티스트적인 면모와 엔터테이너적인 면모를 절묘하게 갖춘 천재라는 봉중호 감독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봉중호 감독의 영화 <우주 열차>에 출연했던 크리스 볼튼이, 영화잡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봉중호 감독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주열차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감독을 제일 우선시 합니다. 왜냐하면 감독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봉중호 감독이 저를 선택했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봉중호인데?”

“봉중호 감독의 현장은 어땠어요? 기대하던 대로이던 가요?”

“환타스틱한 경험이었어요. 정말로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단해요.”

“뭐가 제일 인상적이던가요?”

“봉중호 감독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편집본이 들어 있어요.”

“완벽한 편집본요?”

“네. 봉중호 감독은 영화를 찍고 나서 편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완성되어 있는 편집본대로 영화를 찍는 거예요.”

“예를 들면요?”

“대개의 감독들은 와이드 샷으로 전체 장면을 찍고, 그 다음에는 등장하는 인물을 기준으로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서 촬영합니다. 그런데 봉중호 감독은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요?”

“봉감독만의 방식으로 촬영하죠.”

“어떤 의미죠?”

“음, 봉감독은 다른 감독들처럼 전체 와이드 샷을 찍지 않고, 처음부터 배우 중심으로 찍기 시작해요. 내가 대사를 하는데 첫 번째 대사는 정면에서 찍는다면 두 번째 대사는 이쪽에서 찍고, 상대배우의 대사는 제 등 뒤에서 찍는 거예요.”

“전체 장면은 촬영하지 않나요?”

“저도 봉감독에게 그렇게 물어봤죠. 왜 전체 장면을 촬영하지 않느냐고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봉감독은 편집할 장면까지 정해 놓은 건가요?”

“그래서 봉감독은 머릿속에 완벽한 편집본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기가 막히는군요.”

“보통 사람들과는 레벨이 다른 천재에요.”

“그런데 배우들은 봉감독의 방식에 동의하나요?”

“100 퍼센트, 퍼펙트하게요. 봉감독은 확고한 비전이 가지고 영화를 찍어요.  배우들은 봉감독을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죠.”

쉽게 말해서,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 공부한다는 말처럼 봉중호 감독은 영화 편집에 필요한 부분만 촬영한다고 것이다.

봉중호 감독의 이런 촬영방식은 강산이 영화를 만드는 방법과 거의 같았다.

봉중호야 타고난 천재라서, 이런 방법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지만, 강산은 천재라서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조금 눈물겨운 말이지만, 생계형 기술이다.

보일러공이 보일러를 고치는 기술처럼 강산이 먹고 살기 위해 배운 생계형 기술이다.

에로영화계의 부족한 제작비 덕분이기도 하다.

적은 제작비로 최대한 효과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장면들이나 반복 촬영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필요한 장면들만, 완벽한 구도로.

20여 년간, 수백 작품을 만들고 또 만들고, 실수를 반복하면서 익혀 온 생존형 기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강산의 영화들에 숨은 부족한 제작비, 배우들의 연기력, 열악한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강산의 영화에서 보이는 영상미와 색채감, 새로운 촬영기법들은 강산의 재능을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강산의 작품들이 에로영화라 처음부터 평가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맨유 출신 축구선수 박지상을 두고, 타고난 천재임에도 못생긴 얼굴과 많이 뛰는 스타일 때문에 노력형 천재로 평가 받는다는 말이 있다.

강산의 작품은 쓰레기장에서 핀 장미꽃처럼 부족한 환경 속에서 나오는 탁월한 결과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에로영화 분야에서는 작품의 내용이나 퀄리티와 상관없이 빨리 찍는 감독이 너무 많았다.

강산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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