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이덕배: 나. 이덕배야! 이덕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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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은 잠깐만 진정하고”
사장실 분위기가 사나워지자, 최철수가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끼어들었다.
“우리 서로 차분하게 이야기 하면서 풀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최철수는 이덕배와 강산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산이 먼저 이야기 해보세. 산이, 감독하기 싫은 이유를 말해줄 수 있을까?”
“......”
최철수의 중재에도 강산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강산으로서는 영화감독이 무보수 명예직도 아닌데,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 대가를 말해주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잘못하다가는 회귀하기 전과 같은 삶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성급하게 입을 열수는 없었다.
최철수는 강산의 대답이 없자,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려고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산이가 하는 지금 일보다 감독일이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감독 일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가?”
강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흐음... 최감독님. 저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주신 사장님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왜?”
강산은 최철수의 말에 대답하기 곤란했다.
전생에 경험했던 일이라 그냥 오케이 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최감독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지만 일이 달라지면 보수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애플에서 잡부로 일하고, 잡부만큼 돈을 받고 있습니다. 노동의 강도와 질이 다른데, 보수에 대한 이야기 없이 감독 일을 하라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강산. 그건 좀 성급한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결국 강산이 돈 때문에 거절한다 싶어서 최철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으음... 신세대라고 하더니,
요즘 젊은이들은 일의 가치보다 돈을 우선 하는구나.
강산의 입장에서는 돈이 먼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굳이 먼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해줄 텐데 성급한 생각이다.
최철수는 일보다 돈을 우선하는 강산이 세대차이라고만 여기기에는 큰 아쉬움을 느꼈다.
“최감독님. 만일 최감독님이라면 영화감독을 하면서 촬영감독 봉급을 받으라면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이겠습니까?”
“......”
최철수는 강산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강산은 신인이고 자신은 경력이 얼마인데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철수가 처음 카메라 일을 배울 때에는 사수였던 김영준 촬영기사에게 맞아가면서 일을 배웠다.
일을 배울때는 주지도 않는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몇달이나 조수이자 가정부 생활을 해야 했다.
김영준 촬영기사에게 돈 이야기를 꺼냈던 선배는 '예술은 모르고 돈만 아는 놈'이라고 오질나게 맞고 쫓겨났다.
다만, 세상이 달라졌다.
최철수가 일을 배우던 시절과는 세상이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내가 맞으면서 배웠다고 후배들도 맞으면서 배우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에로영화판에서는 그 대가를 먼저 정하지 않고 일을 했다가는 뒤통수 맞기 쉬운 것도 현실이다.
최철수와 김두호는 따박, 따박, 바른 말로 말대꾸하는 강산에게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이덕배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덕배, 네가 결정하라.’
이덕배는 강산을 어떻게 처리해야 결과가 좋을지, 머리를 계속 굴렸다.
‘강공책이냐? 유화책이냐?’
고민하던 이덕배는 강산에게 강제로 굴복시키기 보다는 강산을 설득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이 아무리 화를 낸다고 무서워할 놈도 아닌 것 같고, 최철수가 한 똘아이라는 말이 걸린다.
상 똘아이 같은 놈이라는데, 잘못 건드렸다가는 일을 아예 망칠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면 자네가 감독을 할 텐가? 자네가 먼저 말해보게”
“제가 애플에서 감독 일을 하게 되면 먼저 채무를 정산해 주시고, 정산이 끝나면 다른 회사의 감독들과 같은 대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애플에서 감독을 하는 것은 강산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회귀 전에는 애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강산도 만들고 싶은 영화를 누구의 간섭 없이 마음껏 만들 수 있었다.
비록 에로영화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강산은 회귀 전과 다르다.
몸은 25세의 청년이지만 정신 연령은 50대, 25년 경력을 가진 영화감독이다.
그때처럼 초짜 신인감독이 아니라는 말이다.
회귀한 지금, 과거의 그 시간만큼 다시 에로 영화작업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군대를 두 번 가는 것 이상의 고통이다.
그것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일 뿐이다.
다만 지금 현재, 애플에 남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김부장!”
“넵!”
“장부 좀 가져와!”
“넵! 사장님. 그런데 무슨 장부 말씀이십니까?”
“미스 킴에게 말해서 내가 채무 장부 좀 보자고 한다고 해.”
“넵”
잠시 후, 김두호 부장은 검은색 장부를 가지고 사장실로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있는 이덕배에게 가져다주었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무실 문서는 종이가 아니라 컴퓨터파일로 정리되어 관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플에서는 별도의 장부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이덕배 사장의 취향 덕이다.
컴퓨터 파일은 믿을 수 없다나.
이덕배는 컴퓨터 해킹이나 바이러스를 아는 것도 아니지만 컴퓨터를 믿지 않았다.
이사장은 검정색 장부의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강산이라... 여기 있네. 채무는 총 1,000이고. 우리 애플에 온지 삼 개월이라. 1개월 당, 월 100으로 하면 300을 갚았다고 치고. 총 채무 1,000에서 300을 빼고 남은 것은 계산해보면 총 700이 남아있네.”
회귀 전, 강산은 채무 1,000만원에 다시 또 이자 200만원이 붙어서 채무는 총 1,200만원이 되었다.
나중에, 강산은 이덕배에게 왜 이자를 200이나 붙였냐고 물었다.
이덕배는 그냥 1년을 채우려고 그랬다고 했다.
“그럼, 먼저 제가 감독 일을 시작하면 현재 남은 잔액은 700으로 고정해 주시고 이자는 더 없는 걸로 해 주시죠.”
“좋아.”
“그리고 제 봉급은 편당 100만으로 하고, 7편을 만들면 남은 채무를 탕감해 주세요. 그 후에 하는 작품들은 다른 영화사 감독 평균 비용으로 계산해 주는 것이 제 조건이에요.”
“좋아. 그런데 말이야. 내 조건은 두 가지야. 첫번째 조건은 수준이하의 작품은 영화는 안 돼.”
“그야 당연하죠.”
“두 번째 조건은, 이 두 번째 조건이 제일 중요하지.”
“말씀하세요.”
“2주 이내에 영화 두 편을 만들어서 내 앞에 갖다 놓아야 한다는 거야. 그게 강산, 네 조건을 받기위한 내 조건이야.”
이덕배는 아무렇지 않게 강산에게 2주 이내 두 편을 만드는 것을 조건으로 들었다.
강산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강산이 한 편을 만들고, 다른 한편은 다른 감독이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미래가 달라지고 있다.
최철수는 지금 이 순간, 심장이 쫄깃해졌다.
이덕배는 자신의 폭탄을 강산에게 떠넘기려고 하는데, 강산은 아무것도 모르는지 이덕배의 제안을 받으려고 한다.
최철수는 강산에게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랬다가는 이덕배에게 무슨 일을 당할 지도 모르지만 강산을 추천한 자신으로서는 작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오지랖이 넓게 나서서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최철수는 강산에게 눈으로 말하지만 분명하게 조심하라고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2주내에 두 편. 만들어 드리지요. 그럼 사장님은 제가 말한 사항을 계약서에 써 주세요.”
“뭐? 계약서...”
강산이 계약서를 언급하자, 이덕배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우리 세계에서 계약서는 힘이 있는 사람끼리 불필요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자신이 돈을 주고 부리는 직원하고, 계약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세계에서 계약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린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이 세계에서는 계약서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하지, 지키지 않으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계약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이 굳이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자식은 법으로 해결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강산의 계약서 요구는 이덕배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덕배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덕배의 표정을 보고 있던 최철수와 김두호는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했다.
“좋아. 써 주지. 계약서. 그런데 말이야. 먼저 두 편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계약서는 아무 소용없어. 그 조건을 지키는 것을 보고 계약서를 써 주겠어.”
최철수와 김두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두 편을 보고 계약서를 써주겠다는 이덕배의 말은 나름 어느 정도 양보한 것이다.
그러나 강산은 단호했다.
계약서가 먼저라고 하면서, 이덕배의 양보에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뇨. 계약서가 먼저입니다. 계약서를 먼저 써주지 않으면 감독 일을 맡지 않겠습니다.”
이덕배의 표정을 보니, 이제 곧 뚜껑이 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이덕배의 뚜껑이 열리면 모든 일이 끝장이다.
이덕배의 손버릇은 김두호나 최철수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두철 감독도 이덕배의 애플을 피해 바나나로 도망친 것이고, 지금 이런 상황도 벌어지는 것이다.
“야! 강산! 사장님이 이 정도 양보를 해줬으면 너도 양보를 해야지. 사장님! 내가 이놈을 알아듣도록 손을 좀 봐 주겠습니다.”
김두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이덕배가 미치기 전에 먼저 불을 질러야 한다.
그러나 강산은 김두호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덕배를 보며 말했다.
“사장님 생각도 김부장 생각과 같습니까?
“......”
“그럼. 이야기는 끝난 걸로 알고 일어서겠습니다.”
큰 소리를 치던 김두호도, 상황을 지켜보던 이덕배, 최철수도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강산이 소파에서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자, 이덕배가 소리쳤다.
“야! 강산! 아직 안 끝났어. 너 나 못 믿어. 나, 이덕배야! 이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