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이덕배: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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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요?”
“그래, 강산.”
“걔가 누군데요?”
“이사장이 몇 달 전에 해피머니 최룡해 사장한테서 데려왔잖아. 그때 데려온 아이 몰라?”
이덕배는 최철수의 말에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를 데려온 것 같지만...
그것은 그때 기억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이덕배는 해피미디어 총무과에 세 작품을 납품하고, 최룡해 사장실에서 잔금 1,000만원이 든 금일봉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장석에서 어떤 서류를 뒤적이던 최룡해가 이덕배에게 물었다.
“이사장님, 일전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현장에서 일 할 스텝 말이에요.”
“아~ 네. 최사장님. 박감독이 사람이 없어서 영화를 제작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작비가 항상 부족하다고...”
“그래요.”
“제 생각은 아니고요. 박감독이 매일 우는 소리를 해서...”
“신경이 쓰인다는 말인가요?”
“네. 그래서 제작비 좀...”
“그럼. 이 사람을 데려가서 쓰세요.”
“네?”
“내가 이사장의 고민을 해결해 줄만한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요. 지금 총무과에 가면 강산이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최사장님. 사람까지 소개해 주시고, 그런데 잔금은 언제?”
“아~. 잔금 1000만원요. 마침 그 친구가 애플에 진 빚이 천만 원이에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 친구 정도라면 한 달에 200정도는 충분할 거예요. 잔금 1000만원 대신 그 친구를 데려가서 쓰세요.”
이 대화를 끝으로 이덕배는 그 사람을 데리고 애플로 돌아왔다.
최룡해 사장의 제안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다.
이덕배에게는 제안이 아니라 지시다.
최철수 감독이 말하는 강산이라는 자는 그때 데려온 사람인 것 같았다.
“최사장이 돈 대신에 어떤 애를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려오기는 했는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사장, 정말 몰라.”
“형님. 그런 애가 어디 한둘이에요.”
“아이쿠. 사장이라는 분이 직원이 열 명도 안 되는 코딱지만 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원이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죠. 뭐”
“허... 참, 애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기할 뿐이네”
“그런데, 형님. 그 강산이라는 애가 에로영화 감독을 할 수 있대요?”
“그건 강산이 말을 들어봐야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걔를 어떻게 봐서요.”
“강산이 그 애 말이야. 한강대 연극영화과 출신이거든.”
“한강대요?”
‘공부는 한국대, 영화는 한강대’
그만큼 연극이나 영화에 관한한 한강대 연극영화과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학교이자 학부다.
무식한 이덕배도 에로영화지만 영화판에서 지내면서, 한강대 연극영화과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형님. 한강대가 유명한 대학이라는 것은 저도 아는데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그 한강대 연극영화과를 나오면 영화를 잘 만드나요?”
“다 그런 건 아니지.”
“그렇겠죠. 그런데 강산이라는 얘는 형님이 어떻게 아는 데요?”
“강산이가 이곳에 온지 3개월이 지났잖아. 그동안 강산이를 많이 겪어봐서 알지.”
“걔가 뭐했는데요?”
“으음... 촬영보조도 하고 음향보조도 하고, 편집 보조도 하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했지. 아주 잘하더라고.”
“그 정도 가지고 어떻게 감독을 할 수 있는지 알아요?”
“사실은 말이야. 내가 지난번에 영화계 친구들하고 술을 먹다가 우연하게 영화잡지 기자하고 평론가하고 합석하게 됐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유망한 젊은 감독 이야기까지 나왔지.”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야. 그때 한 기자가 강산이 이야기를 하더라고. 정말 기대되는 감독이었는데 영화를 만들다가 엎어진 후로는 반년이 넘게 소식이 없다고 하더라고. 평론가도 강산이 이름을 알고 있고.”
“여기 애플에 있다고 하지요?”
“내가 뭐 하러 그런 이야기를 해. 영화평론가하고 영화기자는 영화계의 귀족이라면 우리들은 불가촉천민이야. 괜히 끼어들었다가 개무시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하이고... 이 일이 어때서요?”
“영화계에서 에로비디오는 돈에 미친 돈 벌레들이나, 영화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낙오자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거든. 아무튼 강산이가 독립영화계에서는 기대주였다고 하더라고”
“유망주는 무슨 개뿔... 형님. 형님도 아시다시피 이 바닥에 널리고 널린 게 유망주고 기대주요. 옛날에 한자리 했다고 자랑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아냐. 이사장이 잘 몰라서 그래. 강산이는 진짜야.”
“어떻게 아는데요?”
“그 기자가 강산이 대학생인 학부 시절부터 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나도 궁금해서 강산이 만든 단편영화를 찾아 봤는데 아주 괜찮더라고”
“그런 애가 왜 여기에 있는데요?”
“이사장이 데리고 왔잖아. 그런 고급인력을 데려다가 잡부처럼 쓰는 것도 이사장이고.”
“......”
“혹시 이사장. 그때 해피머니 최사장에게 사람이 없어서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한 거 아니야?”
“그거야 뭐,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라...”
최철수의 비꼬는 말에도, 이덕배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형님. 강산이란 애를 불러서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지 않겠어요?”
“확인은 해 봐야지”
“야! 김부장! 김부장!”
이덕배가 사장실 안에서 김두호 부장을 부르자, 잠시 후 사장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잔뜩 긴장한 김두호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그래. 너 강산이라는 애 알지?”
“네. 사장님.”
“그 애,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네. 사장님.”
“걔 좀 빨리 데려와”
“네. 사장님.”
김두호 부장은 군기가 든 목소리로 대답하고 대표실을 나가려고 하다가, 잠시 주저하며 돌아선다.
“사장님... 그런데 강산이는 왜? 무슨 잘 못이라도...”
“이 자식이, 너 언제부터 내말에 토를 달고 그랬어! 내가 데려오라면 그냥 데려 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아닙니다. 사장님!”
김두호는 이덕배가 화를 내자, 잔뜩 기합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재빠르게 사장실을 나갔다.
김두호가 나가자 최철수가 이덕배에게 말했다.
“이사장. 강산이는 박두철 감독처럼 다루면 안 돼”
“왜요?”
“강산이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예술가 기질요?”
“그래, 예술가 기질. 예술가 기질이 없으면 감독 일하기 힘들지. 다른 말로는 똘아이라고 하지. 똘아이. 한 번 고집을 세우면 죽어도 바꾸지 않을지도 몰라”
“예술가 기질요. 그럼 형님은요?”
“나야. 예술가하고는 거리가 멀지. 샐러리맨이야, 샐러리맨. 돈을 주면 어떤 일도 하는 샐러리맨. 그런데 강산이는 우리들과는 너무 달라”
“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가 잘난 줄 알고 설치는 놈들, 내가 한두 번 다뤄 봤나요.”
“조심해서 다뤄. 너무 무리하지 말고”
“형님은 지켜보기만 하세요. 내가 다른 것은 잘못해도 삐딱한 놈들 성질 하나는 잘 고치니까요.”
“이사장. 지금 아쉬운 건 강산이 아니라 이사장이라는 거 잊지 말고”
* * *
강산이 사장실로 들어오자, 소파에 앉아있던 이덕배는 험상궂은 얼굴로 강산을 스캔하듯이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강산에게 물었다.
“네가 강산이야?”
“...”
강산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덕배의 사나운 기세에 눌려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덕배의 뒤에 있던 김두호가 강산에게 소리쳤다.
“야! 사장님이 묻는데, 공손하게 대답하지 못해! 이 새끼가 디져 불라고.”
김두호는 건방지게 이덕배 사장의 말을 씹는 강산을 위협하려는 듯 강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강산은 김두호를 잠시 보았다가 가볍게 무시하고는 이덕배 사장을 보았다. 잔뜩 인상을 쓰고 앉아있는 이덕배의 사나운 얼굴은 지금 봐도 무섭다.
알고 보면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
강산이 애플을 독립한 후에도 강산을 많이 도와주었다.
그래도 무섭다.
‘호오... 분위기 살벌한데’
전생에서는 이때, 이덕배 사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쉰 살이 넘은 경험이 이십대의 강산의 몸 안에 숨어있다.
강산은 담담하게 이덕배의 성난 눈빛을 받았다.
이덕배와 강산이 눈빛으로 주고받는 장면을 무협지를 빌려 표현하자면,
이덕배가 강력한 철퇴로 강산을 내리쳤지만, 강산은 몸을 살짝 돌려 철퇴를 피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이 벌이는 일촉즉발의 기세에, 이들을 보고 있는 최철수와 김두호의 심장이 쪼그라든다.
‘이 자식 제법인데’
사장실 안의 어색한 침묵을 깬 사람은 이덕배였다.
이덕배는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고 들어가려고, 강산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이 급한 이덕배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다.
“네가 한강대... 그 뭐냐...”
이덕배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강산에게서 고개를 돌려 최철수를 보았다. 최철수에게 대답을 구하는 것이다.
‘뭐야. 이덕배 이 자식의 기억력은 휘발성인가? 방금 전에 말을 해줬는데 그것을 잊어버려’
최철수는 긴장이 풀리는지, 긴 숨을 쉬고는 조용히 말했다.
“연극영화과.”
이덕배는 최철수에게서 고개를 돌려 강산을 보며 말했다.
“그래. 연극영화과! 네가 그 한강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면서”
“네”
“그럼, 영화 좀 만들어 봤겠네.”
“네”
“그래. 몇 작품이나 만들어봤어?”
“세 작품 정도 만들었습니다.”
“장편은?”
“없습니다.”
“그러면 곤란한데...”
이덕배는 강산의 경력이 자기 기준에 부족하다는 듯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치국 먼저 마신다고.
회귀하기 전의 강산이라면, 이덕배의 마뜩한 모습에 조바심을 내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강산은 뱃속에 구렁이 몇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말이다.
이덕배가 뭐라고 하든, 아쉬운 사람은 강산이 아니라 이덕배 자신이다.
강산은 이덕배가 뭐라고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회귀하기 전처럼 이덕배의 허세에 어린아이처럼 서툴게 감정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서 이야기 하지. 강산이라고 했지, 저기 앉아.”
이덕배는 강산을 자신의 오른쪽 소파에 앉게 했다.
강산이 오른쪽 소파에 앉자, 최철수도 반대편 소파에 앉았지만 김두호는 소파에 앉지 못하고 이덕배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강산이라고?”
“네”
이덕배는 조금 전에 물어봐 놓고는 처음 본 것처럼 다시 강산의 이름을 물었다.
“자네, 박두철 감독 아나?”
“네.”
“으음... 지금 말이야. 우리 애플프로덕션에서 말이야. 박두철 말고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