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강산: 투자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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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장. 어떻게 되고 있어?”
“잘 안 돼요. 형님.”
“전화도 안 받고?”
“네. 전화도 안 받고 씹은 지 오래고, 핸드폰 문자도 안 보네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숨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형님은 다른 소식 없어요?”
“없어. 나한테는 연락할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네. 가족들에게는 물어 봤어?”
“마누라도 모른다고 하고요.”
“그래도 가족들은 손대지 말고”
“형님. 저 이제 안 그래요. 손 씻었다고 했잖아요.”
이덕배는 최철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이덕배와 최철수는 경기도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화성 출신인 최철수와 군포 출신인 이덕배는 사회에서 만난 사이다.
이덕배가 에로영화계에 문외한이라 촬영감독인 최철수의 조언이 회사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 * *
독사파의 행동대장.
이덕배는 자신이 모시던 독사파 두목인 차영일이 서울지방경찰청 광수대 형사들에게 잡혀가면서 조폭세계에서 은퇴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는 두목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은퇴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더 이상 조폭세계가 오래가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두목인 차영일은 유력한 정재계 인사들이 뒷배를 봐줬지만 정권이 바뀌자, 오히려 꼬리 자르기 제거 대상이 되었다.
개처럼 충성을 다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이덕배가 독사파를 은퇴하고, 만든 회사가 애플 프로덕션이다.
사채업자인 해피머니 최룡해 사장에게 돈을 빌렸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에로비디오 영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도 최룡해 사장이 가르쳐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룡해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고 숨는 채무자를 잡는 일을 이덕배에게 맡겼다.
그 채무자들 중의 하나가 에로비디오를 만드는 영화사 사장이었다.
이덕배가 보기에 여배우들만 잘 섭외하고 찍기만 하면 쉽게 돈을 벌수 있는 것 같아서 에로비디오 제작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복잡한 일들이 많았다.
그때 이덕배를 도와준 사람이 최철수 촬영감독이다.
* * *
“그러게 좀 참지. 왜 박두철을 때려서 이 사단을 만들고 그래.”
“하... 그게요. 이 자식이 자꾸 놀려서 말이에요.”
“그래두. 박감독도 이제 마흔이야. 회식자리에서 보는 눈이 있는데, 애들 앞에서 박감독 쪼인트를 까면 어떡해?”
“형님. 제가 박감독 술주정을 한두 번 겪어봤겠어요. 둘이 있을 때는 ‘형님’ ‘사장님’ 하면서 ‘충성’ ‘충성’ 하잖아요. 그런데 술만 먹으면 자꾸 깐족 깐쪽 대면서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성질을 건드리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렇지, 박감독도 체면이 있는데?”
“형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알잖아요.”
“과거 이야기”
“네. 과거 이야기요. 박감독, 이 자식이 죽으려고 애들 앞에서 ‘조폭이 예술을 뭘 알아’ ‘예술은 노동이 아니야’ ‘세상이 바뀌었는데 노동 3권을 보장해 줘야지’ 하면서 자꾸 놀리잖아요.”
“그래도 좀 참아야지. 애들 앞에서 영등포 구공탄의 불주먹을 보여주어야 하겠어?”
이덕배 사장의 조폭시절 별명은 영등포 구공탄이었다.
영등포 구공탄이란 ‘한대 맞으면 아홉 개 구멍에서 피를 흘린다.’ 라는 식의 무협지식 별명이다.
조폭세계를 은퇴한 이덕배의 이런 별명은 새로운 영화 사업을 하는데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애플이 조폭과 관련된 회사라는 소문에, 배우들도 출연하기 꺼려하고 영화를 만드는 스텝들도 같이 일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소문이 사업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연예기획사에는 조폭출신 선후배들이 많이 진출한 덕에, 나름 유명한 에로배우들이 강제 출연하기도 했다.
밤의 세계에서 맺은 인연들이 음양으로 도움을 주고, 애플프로덕션에게는 별다른 행패를 부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소문난 잔치 집에 꼬이는 날파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직원들도 이덕배 사장을 어려워(?) 아니, 무서워해서 애플 프로덕션에 지원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직원들을 채용하기 어려웠다. 어렵게 뽑은 직원도 회사에 적응하기보다 이직하기 바쁘고.
사실, 이덕배가 직원들에게 직접 손을 댄 적도 화를 낸 적도 없었지만, 이덕배의 얼굴만 봐도 무서워했다.
얼굴이 너무 무섭다. 웃어도 무섭다. 웃으면 더 무섭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 박감독 같은 사람도 없어!”
“네. 저도 알지요.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있었다는 거, 형도 잘 알잖아요. 그동안 박감독이 여배우들 건들어서 이상한 소문나고, 제작비도 빼돌려도, 다 모른 척 해줬잖아요.”
“뭐. 이 세계가 다 그렇지. 그래도 박감독은 이 바닥에서 양심적인 놈이야. 이사장도 알잖아. 어떤 감독들은 직원들 식대하고 배우들 출연료도 떼먹는다는 말도 있어.”
“후... 이미 벌어진 일이라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고”
“연락처는 남겨 놨어?”
“네. 형님. 그런데 어떡하죠. 이번 달에 세 작품을 납품하지 않으면 최사장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텐데요.”
“그러게, 내가 해피 최사장과 진작 헤어지라고 말했잖아.”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그만 두려고 하면 최사장이 나를 순순히 놓아주겠어요. 이번 일이 잘못되면 내 목에 올가미를 더 조여 놓을 거예요.”
이덕배는 조폭세계가 싫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세상은 조폭세계 못지않게 아니, 조폭세계보다 더 복잡하고 숨겨진 부분이 많았다.
“아무튼 남은 시간 안에 두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지.”
“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해피머니 최사장 관계도 다시 생각해 볼게요.”
“문제는 말이야. 지금 마무리 편집하고 있는 <지금 만지러 갈까요?>는 납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머지 두 개가 문제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러게 왜 외주를 안 주고, 두 개를 다 박감독에게 맡겼어?”
“박감독, 이 자식이 굳이 자기가 만들겠다고 우겨서 맡긴 거잖아요. 그런데 이 자식이 잠수를 타버린 거예요.”
“이사장. 오늘이 15일이야. 박두칠 감독이 지금 돌아와도 한 작품 이상은 어려워. 이사장, 박감독이 돌아올 거 같기는 해?”
“솔직히 말해서 어려울 것 같아요. 연락이 안 되네요. 연락이라도 되면 어떻게라도 해볼 텐데요.”
“그럼, 이제 어쩔 거야?”
“형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개를 만들어야 해요. 잘못하다가 최사장이 위약금 문제를 들고 나오면, 저는 최사장 노예가 되고 애플 프로덕션도 최사장에게 빼앗기게 될지도 몰라요.”
“이사장. 그게 말이야. 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형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두 개를 최사장에게 납품만 하면 되지, 우리가 만들어서 납품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지”
“그건 그런데요. 어떻게 하려고 하는데요.”
“사오면 되잖아. 다른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를 사오면 될 거 아냐?”
“아! 그러네요.”
“이사장이 잘 아는 제작사 좀 알아보고, 나는 외주할 감독 좀 수배해 볼게”
“네. 형님. 부탁할게요.”
* * *
강산은 야전침대에서 일어났다.
소품실은 애플프로덕션이 있는 건물 4층 구석에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분명하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복도로 돌아가니 예상한대로 화장실이 있었다.
옛날에 강산은 애플프로덕션에서 숙식을 하면서 남자 화장실에 있는 샤워장에서 몸을 씻었다.
에로영화사는 영화를 찍다보면 몸에 땀이 차는 일이 많기 때문에 샤워실을 별도로 두거나 남녀 화장실에 간이 샤워실을 두었다.
강산은 얼굴을 씻고는 화장실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 적에 가지고 있던 얼굴인가?’
자기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기억에도 없는 마른 얼굴이다.
그동안 피곤에 절었는지, 얼굴 전체에 작은 피부트러블과 잔 수염이 듬성듬성 보인다.
최철수 촬영감독 말에 따르면 오늘이 2,000년 6월 15일이라고 한다. 왜 6월 15일일까?
회귀한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나마스테>를 찍던 시점이나, 해피머니에 돈을 빌리던 시점, 아니면 작전주에 홀려 주식투자를 하는 시점으로나 회귀시켜주지.
왜 하필이면 해피프로덕션에서 일하던 시기로 회귀한 것일까?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과거라고 생각하는 기억들이 꿈을 꾼 것은 아닐까?
강산은 옥상으로 올라가, 건물 아래로 보이는 거리들을 바라보았다.
애플프로덕션은 서대문구 독립문역에서 가까운 영천시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의 1층은 돼지갈비 식당이다.
회귀하기 전, 강산의 몸매가 균형을 잃고 둥글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2층은 재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사가 있었다.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애플프로덕션은 3층과 4층을 사용하고, 덤으로 건물의 옥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2000년의 거리는 신기하고 감동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입은 옷들이 조금 촌스럽게 보였지만 25년 만에 다시 보는 세계, 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들도 신기하다.
그 동안 잊어버렸던 이승완의 ‘그대를’ 이나 소찬이의 ‘눈물’, 제이의 ‘그제처럼’을 들려오니 진짜로 회귀한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온 세계는 눈물겹도록 정겨웠다.
아~참! 잊어버린 것이 있다.
강산은 많은 회귀류 소설이 그러하듯,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무언가를 써놓아야 한다.
강산은 회귀 전의 기억들을 노트에 써 놓으려고 노트를 펴고 볼펜을 잡았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써놓아야 할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강산은 경제 신문 주식면을 찾아서 기억에 나는 주식들과 맞춰보았다.
주식을 생각하면 무슨 삼... 전자... 라는 말이 떠오른다.
2025년에 그게 12만원이 넘었다고 난리가 났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삼송전자는 2000년 지금도 12만원이 넘는다.
그렇다면 삼송이 아니라 혹시 아남전자, 해태전자 이야기인가? 아남이나 해태전자는 지금 2, 3만원 수준이다. 이 주식이 나중에 12만원이 되면 6배를 번다는 말인가?
투자라면 비트 코... 비트 코... 뒤에 무슨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비트라... 세제를 말하는가?
비트 세제를 만드는 일본기업 lion에 투자하라는 말인가? 그래도 일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그럴 순 없지.
그렇다면 혹시 비트라는 빨간 무같이 생긴 것을 말하는 것일까?
비트 농사를 하면 나중에 돈을 번다는 말 같은데, 영화를 그만 두고 농사를 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