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강산: 형이 내게 그럴수 있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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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송치번호 2025-478639] 서울중부검찰청으로 인계하였습니다. 담당 검사가 지정되기 까지 1~3일 소요될 수 있습니다.
강산에게 박찬이 형사가 문자를 보내왔다.
경찰에서 수사한 사건을 검찰로 보내는 것을 ‘송치’라고 한다.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송치서류에 자신들이 수사한 의견을 의견서에 첨부한다.
박찬이 형사는 강산의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의견’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첨부한 것이다.
이제 공은 이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에게 넘어갔다.
검사는 강산을 재판에 기소할 것인가, 기소하지 않을 건가를 결정한다.
그런데 검사의 기소 여부결정은 경찰의 송치의견과 달라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강산에게 재판에 기소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유죄판결의 결과에 상관없다.
기소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강산은 영화계에서 매장될 것이다.
사실 재기할 힘도 돈도 없지만 희망도 없다.
기소내용이 불량하다.
강산은 영화계에서 퇴출될 것이다.
승냥이 같은 연예계 기자들이 강산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얼굴이 두꺼워지는 게 인생이다.
강산은 살아온 세월도 그리 고결하지 않고 지켜야할 명예도 높지 않았다.
그래도 인생의 마지막을 ‘성추행’ 감독으로 마무리하기는 너무 억울하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이래서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가족들과 그리고 하수연 배우, 영화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미안하다.
강산은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쉰이 넘어가면서 감정도 말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이며 강산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강산은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박찬이 형사에게 받은 모욕감은 강산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영화 <세 번의 사랑>을 준비하면서 숨겨놓은 지적재산권뿐만 아니라 사채까지 빌어서 이번 영화에 올인 했다.
지난번에는 얼마라도 숨겨놓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진짜 파산이다.
* * *
“I am sailing. I am sailing...”
강산은 촬영감독인 박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형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이 전화음으로 계속 흘러 나왔다.
강산은 전화를 끊지 않고 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을 계속 들었다.
박형수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일부러 전화를 끊지 않으려고 기다리는 것이지만 어느새 노래에 빠져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Sailing’을 들을 때마다 아르페지오 주법의 기타 사운드와 로드 스튜어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라 생각했다.
쉰이 된 지금은 로드 스튜어트의 목소리에서 삶의 깊이와 짙은 연륜이 느껴진다.
그때 강산의 상념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 뭐냐?
“아... 형, 지금 전화 통화 가능하세요?”
- 그래. 무슨 일이냐?
“아 참! 형.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 뭐가?
“경찰에게 준 거 말이에요.”
- 그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나한테 할 말이에요. 내가 형 때문에 얼마나 곤란하게 된 줄 아세요?”
- 곤란이라... 그게 말이야. 내가 없는 일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알려질 내용 아니냐? 내가 조금 빨리 경찰에게 주었을 뿐이잖아.
“그래도... 형이 어떻게?”
- 나중에 경찰이 나를 불러서 조사하면 나만 불편해질 거 아니냐.
강산은 경찰 조사에서 하수연이 당한 부상은 불행한 사고에 불과할 뿐이고, 성추행이 아니라 연기지도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박찬이 형사는 강산에게 메이킹 필름 하나를 보여주었다.
메이킹 필림에는 강산이 서윤호에게 하수연을 좀 더 거칠게 연기하라는 내용이 저장되어 있었다.
강산에게 불리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한 자료였다.
이런 영상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있다고 해도, 형수 형이 경찰에게 제공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처음 통화할 때는 몰랐지만 박형수의 말을 듣다보니 화가 나기 시작한다.
“형수 형. 너무하잖아요?”
- 내가 뭐 어때서?
“아무리 그래도 형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요.”
- 하!...
촬영감독인 박형수는 한강대 대학 연극 영화과 93학번 선배다. 강산과는 친형제처럼 지낸 지, 20년이 넘었다.
강산과 박형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다. 강산은 박형수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박형수도 강산의 목소리에서 짙은 절망을 느꼈는지, 자신이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강산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던 말을 어렵게 꺼냈다.
- 하영란!
“네? 뭐라고요?”
- 하영란이라고.
“하영란... 걔가 누군데요?”
- 너 정말 기억 안나. 너하고 사귀던 97학번 후배 영란이 말이야.
“그 영란이요?”
- 그래. 그 하영란
“형! 걔가 여기서 왜 나와요?”
하영란.
한강대 연극영화과 97학번으로, 연극영화과 2년 후배다.
강산의 단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적도 있었고, 불과 몇 달 동안이지만 동거까지 했던 사이다.
강산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강산을 버리고 한강대 연극영화과 선배이자 백산건설 둘째 아들인 최현철과 결혼했다.
강산에게 하영란은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 하수연이 말이야. 97학번 하영란 딸이다.
“하수연이 하영란의 딸이라고요.”
- 그래.
“아! 어쩐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어요. 하수연이 영란의 딸이었구나.”
- ......
“잠깐요. 형! 하수연이 영란의 딸이라면 최씨여야 하잖아요?”
강산의 말은 하수연이 하영란의 딸이라면, 하수연은 하영란과 결혼한 최현철의 딸이 된다.
따라서 하수연의 성(姓)이 하씨가 아니라 최씨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 그거... 예명이래.
“아~ 예명.”
하수연이 연예인이므로 본명이 아니라 예명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강산은 갑자기 바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 그래. 본명은 최지희래. 예명으로 어머니 성을 따서 하수연이라고 지었다고 하더라.
“그건 그렇다 치고. 형! 형은 하수연이 영란이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 그래...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요?”
- 안지는 얼마 안 돼.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알았다.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어요.”
- 아냐. 영란이 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하나 뿐이다. 하수연이 네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네가 하수연이 하영란이 딸이란 걸 알면, 상대하기 불편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미안하게 됐다.
“형! 그래서 그런 거예요?”
- 그런 거라니?
“형도 하영란이를 좋아했잖아요. 그래서 메이킹 필림을 경찰에게 준거예요?”
- 야! 캉산!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오는데?
박형수는 옛날부터 강산의 이름을 캉산이라고 불렀다.
캉산이 강산보다 더 어울리다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강산을 캉산이라고 불렀다.
“영란이 때문에 형은 동기인 최현철을 싫어했잖아요.”
- 영란이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현철이 하고 갈라선 거지. 그게 어떻게 영란이 때문이냐.
“형. 내가 형하고 1년이 넘게 같이 살았는데도 그런 말을 나한테 하고도 미안하지 않아요.”
- 그럼, 너는? 하영란 때문에 그때 폐인으로 살았잖아?
“누가 폐인으로 살아요. 아주, 아주 잠시 동안 그랬었던 적이 있었죠.”
- 그래 나도 아주 잠시 좋아했었지.
“아무튼 형수 형! 하수연이 영란이 딸이라고 해도 나를 경찰에게 찌른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 그런 거 아니다. 캉산.
“영란이 때문이 아니라면 최현철이 때문이에요.”
- 나도 최현철이 걔 별로야. 그 자식하고 연락하지 않은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친해도 네가 더 친하지. 최현철이 하고 친하겠냐.
“그럼 왜요?”
- 그게... 말하기 조금 곤란한 사정이 있다.
“곤란한 사정이라고 감추지 말고, 제가 이해되게 말 좀 해주세요?”
- 그게 말이야...
“형. 나 다시 안 볼 거예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죽어도 다시 형 안 볼 거예요.”
- 휴... 강산아. 내가 왜? 네 영화에 합류한 줄 아냐?
“......”
- 그것도 홍상순 감독 영화를 캔슬하고 말이야.
* * *
홍상순.
홍상순 감독은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유명한 예술영화 감독이다.
박형수는 홍상순 감독의 영상 파트너로, 홍상순 감독의 작품의 대부분을 촬영감독으로 같이 했다.
강산은 <세 번의 사랑>을 준비하면서, 강산의 파트너 촬영감독 김성규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성규가 다른 작품에 참여하고 있어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당시, 강산도 박형수에게 촬영감독을 부탁할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홍상순 감독의 다음 영화 <해변의 키스>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박형수가 홍상순의 영화를 뒤로 하고, 강산의 영화에 참가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