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강산: 에로를 하면 어떡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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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하수연씨 가슴은 왜 만졌어요?”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박찬이는 강산을 바라보며 시니컬하게 물었다.
강산은 애써 당황한 표정을 무표정하게 돌리면서 박찬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되물었다.
“하수연씨 말에 따르면, ‘강산 감독이 청수장 씬에서 연기지도를 하는 척 하면서 골방으로 데려가 하수연씨의 가슴을 만졌다.’ 라고 하네요.”
“오햅니다. 형사님. 그런 일 없습니다.”
“감독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은 하수연씨 가슴을 만진 일이 없다는 말인가요?”
“음...”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없었다는 말인가요? 대답하시죠.”
박찬이는 강산을 몰아붙였다.
강산의 긴장한 표정을 보니, 여기에 무언가 더 있는게 틀림없다.
더 밀어 붙여야 한다.
“그게 대답하기 좀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감독님. 말 돌리지 마시고 있다. 없다. 이 말만 하시죠.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제 말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형사님이 말하는 성추행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나는 하수연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한 적이 있지만 하수연 배우를 성추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감독님 말을 정리하자면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하수연씨 가슴은 만졌지만 성추행이 아니다.’ 라는 말인가요?”
“네.”
“정말, 대단하시네요. 감독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다시 묻죠. 하수연씨 가슴은 왜 만졌습니까?”
강산은 대답하기 곤란했다.
박찬이 형사는 아마도 소품실에서 연기지도 할 때, 벌어진 해프닝을 말하는 것이다.
“음... 영화 <세 번의 사랑>은 성인영화입니다. 서윤호 배우와 하수연 배우가 신인이라 그런지 성애연기가 너무 서툴러서요. 연기 지도를 하다가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고소장에 따르면 고의로 하수연씨 가슴을 만졌다고 하던데요.”
“고의라뇨. 형사님! 지금 형사님은 제가 딸 같은 배우를 성추행하려고 의도적으로 여배우의 가슴을 만졌다는 것입니까? 그것도 서윤호 배우가 보는 앞에서요!”
“저는 고소장에 써진 대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하수연씨 가슴을 만진 적이 있습니까?
“연기지도였을 뿐입니다. 형사님.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연기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일 뿐입니다.”
“그럼. 감독님은 평소 배우들에게 연기지도 할 때, 여배우들 가슴을 실제로 만지면서 연기 지도를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상황에 따라 지도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떻게 다른데요?”
“디렉션으로 가능한 배우들에게는 제가 원하는 그림을 바로 디렉션 해주죠. 이 장면에서 이렇게 연기하라고요. 문제는 디렉션으로 해결이 안 되는 배우들인데요. 그런 배우들에게는 직접 연기를 시연하거나 연기를 지도해 줍니다.”
“그러니까 감독님 말씀은 말로 안 되는 여배우들은 가슴을 막 만지면서 연기를 지도한다는 말인가요?”
강산은 자신을 비꼬는 박찬이에게 화를 내려고 하다가, 박찬이 형사의 눈을 보았다.
이런 질문들은 박찬이가 파놓은 함정 같았다.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말을 잘 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다가는 함정에 빠질지도 모른다.
강산은 박찬이 형사가 답을 정해 놓고, 자신을 몰아가는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강산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형사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데요?”
“디렉션이 통하지 않으면 적당한 상대를 불러서 여배우 대역으로 직접 시연합니다.”
“적당한 상대라... 보통 누구를 말하나요?”
“보통은 조감독이나 김두호 제작 부장을 부르죠. 조감독을 여자 배우라고 생각하고, 제가 조감독의 가슴이나 허리, 엉덩이를 터치하면 조감독이 여배우가 해야 하는 반응을 연기하게 하죠.”
“계속하세요.”
“조감독이 배가 좀 나와서 뚱뚱한데다 수염이 덥수룩한 애라서요. 제가 조감독의 몸을 만지고 조감독이 리얼한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다보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럼 촬영장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배우들의 어색한 분위기나 표정이 좋아지지요.”
“그럼, 그때는 왜 그랬어요?”
박찬이 형사는 강산에게 그때는 왜 하수연의 가슴을 만졌냐고 묻는다.
“형사님. 그때도 배우들이 인정하는 연기지도였습니다.”
“감독님. 말 돌리지 마시고요. 그때는 왜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연기지도를 했는지 말씀해 주시죠.”
“......”
“감독님!”
“잘...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요?”
“하... 감독님. 지금 나하고 장난하세요. 장난 그만하시고 답변하세요.”
“형사님. 제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모르지만 왜 직접 연기지도를 하려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필요한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보시죠.”
박찬이 형사는 강산을 더 이상 압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산에게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하는 여유까지 보여 준다.
범인들을 많이 조사해 본 형사들은 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자신을 변명하려고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말이 많이 하다보면, 반드시 그 말중에 실수가 나온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배우들이 너무 얼어있던 것 같았습니다. 신인배우라 그런지, 촬영장의 귀신에게 잡혔는지, 노출 연기가 부담스러웠는지 모르지만 서윤호 배우뿐만 아니라 하수연 배우까지 평소와 다르게 자꾸만 NG가 났습니다.”
강산은 박찬이의 표정을 보면서 말을 조절하려고 했다.
박찬이의 여유로운 표정이 강산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는 상관하지 마시고 계속하세요.”
“윤기가 화가 나서 소연이에게 나쁜 짓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잠깐만요. 나쁜 짓이 뭔가요?”
“형사님. 성인영화에서 나쁜 짓이 뭐겠습니까? 총을 쏘겠습니까? 칼로 누구를 찌르겠습니까? 그것을 하려고 윤기가 가슴을 터치하고 벽으로 밀어붙이는 거요.”
“아~ 네. 계속하세요.”
“서윤호 배우가 하수연 배우의 기에 눌렸는지, 얼마 되지 않는 대사를 제대로 치지 못하고, 하수연 배우에게 나쁜 짓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주저하는 거예요.”
강산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슬쩍 박찬이 형사를 보았다.
박찬이는 강산의 촬영현장이 연상되는지 타이핑하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강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윤기가 소연의 가슴을 잡은 후에 소연의 상의를 멋있게 찢어야 하는데, 윤기가 소연의 가슴을 못 잡아요. 그리고 소연의 상의를 찢어야 하는데 상의가 찢어지지 않아서 NG가 나요. 뺨을 맞는 합이 맞지 않아 빗나가서 NG가 나고, 윤기가 소연에게 나쁜 짓을 하는데 주저해서 NG가 나고, 서윤호 배우가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하수연 배우가 흔들리고 현장은 총체적으로 난국이었습니다.”
“......”
“촬영 삼일 째가 되었을 거예요. 촬영이 20회 차를 넘어가는데, 이제까지 연기를 잘하던 하수연 배우가 서윤호 배우에게 전염됐는지, 감정선을 잃어버린 거 같았어요. 당당하게 맞서야 할 소연이 순진한 소녀가 되어 윤기의 폭력에 움찔거리고, 눈빛도 자꾸 흔들려서 하수연 배우가 소연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감독님. 말씀하시는데 죄송한데요. 아까부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말씀 중에 나오는 소연이는 대체 누굽니까?”
“하수연 배우가 영화 <세 번의 사랑>에서 맡은 배역 이름입니다. 참고로 서윤호 배우가 맡은 배역 이름은 윤기입니다.”
“네... 계속하시죠.”
“저는 흔들리는 하수연 배우에게 소연의 감정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산이 말끝을 흐리자, 박찬이가 재촉한다.
“감독님. 그래서요.”
“저는 서윤호 배우와 하수연 배우를 데리고 소품실로 갔습니다.”
“골방이 아닌가요? 하수연씨는 골방이라고 하던데요.”
“형사님. 골방이 아니라 소품실입니다. 소품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소품실을 골방이라고 하시는데 좀 고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골방이라고 계속 하는 건 무슨 의도가 있는 거 아닙니까?”
“네... 골방. 아니 소품실. 주의하겠습니다. 감독님. 계속하세요.”
강산은 박찬이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려고 했지만 박찬이는 재빠르게 인정하고 빠져 나간다.
“형사님. 이야기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아서 그런데요. 제 말 좀 끊지 않으면 안 될까요?”
“네. 죄송합니다. 계속하세요.”
“아니 참, 그런데 어디까지 이야기 했나요?”
“서윤호씨 하고 하수연씨를 데리고 소품실로 가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소품실에 데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보고 배우들에게 시간을 주려고 했었는데 나아지는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특별 지도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
강산은 이 말을 하고는 다음 말을 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박찬이의 시선은 강산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사운드가 비는 것이지만 이런 공백은 관객들의 긴장감을 모으는데 도움을 준다.
“그때, 제가 두 배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산이 이 말을 하고는 다시 뜸을 들이자, 박찬이 형사가 끼어들었다.
“뭐라고 했는데요?”
“아~ 참! 형사님. 계속 끼어드실 생각이세요? 제가 맥을 잃어버렸잖아요.”
* * *
“서윤호씨. 하수연씨. 지금 우리가 영화 촬영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연기수업을 하고 있는 중인가요?”
“......”
강산은 낮은 소리로 두 사람에게 평소에 하던 서윤호 배우, 하수연 배우라는 호칭에서 ‘배우’라는 접미사를 빼고 ‘씨’라고 불렀다.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 장소도 사람들이 골방이라고 부르는 소품실로 불렀다.
평소 부르던 호칭도 일부러 바꿔서 사용한 것이다.
강산은 서윤호와 하수연에게 영화를 촬영하는 프로배우가 아니라, 연기학원에서 연기수업을 받는 아마추어 학생이냐고 비난하는 것이다.
“윤호씨!”
“네.”
“수연씨 터치하는 데 왜 주저하세요? 수연씨가 무서워요? 아니면 더러워요?”
“아닙니다.”
“소연이 윤기에게 침대에 누워서 ‘빨리 끝내’ 하는 장면에서 윤기는 어떤 감정일거라고 생각해요?”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제 말했잖아요. 윤기는 단순히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요. 윤기는 소연에게 자신의 순정을 무시당한 거라 생각하고 눈이 돌아간 거잖아요. 눈이 뒤집어진 윤기가 소연이 가슴 만지는 것을 주저할 거 같아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주저해요. 그리고 눈이 돌아간 윤기가 소연의 가슴을 살며시 애무하면 어떡해요?”
“수연씨가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윤호씨. 윤기가 소연씨를 그런 배려할 정신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에로를 찍고 있는 건가? 에로가 아니잖아. 이 장면에서 에로를 하면 어떡해!”
“......”
“그리고 수연씨!”
“네.”
“수연씨는 왜 윤호씨가 가슴을 터치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움찔하세요.”
“......”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아무리 어색해도 윤기 손을 피하면 어떡해요. 윤기가 눈이 돌아가서 다가오는데 소연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무서워하는 거 아닐까요.”
“놉!”
강산은 하수연에게 ‘놉!’하고 소리를 높였다.
배우들이 이해할때까지 기다려주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