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형사 박찬이: 왜 그러셨어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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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감독님.”
“네. 형사님”
“감독님 현장에서는 촬영 도중에 그만 두는 스텝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다들 그렇지요. 영화판이 다른 직업들보다 워낙에 힘든데다 박봉으로 유명하지요.”
“특히 감독님 현장은 다른 감독들 현장보다 유난하다고...”
“형사님. 다른 현장들 하고 비슷합니다.”
“감독님. 이런 말하기 조금 그런대요.”
“뭐가요?”
“강산 감독님. ‘클라식블라인드’ 라고 아시죠?”
“잘 모릅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죠. ‘클라식블라인드’는 영화계 스텝들이 사용하는 익명의 커뮤니티입니다. 거기에 말이에요. 감독님의 욕설과 폭행으로 일을 그만두는 스텝이 많았다는 말이 있던데요.”
“루머일 뿐입니다.”
강산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강산의 전성기에는 강산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쳤다.
강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완벽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스텝들을 갈아 넣었다.
이것은 강산만이 아니라 다른 감독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감독들은 스텝들을 다루는 방법으로 말로만 하지 않고 욕설과 폭행을 사용하기도 했다.
강산은 욕설에 관해서는 부인할 수 없지만 폭행에 관해서는 억울한 면이 많다.
젊은 시절에 벌어진 일 때문에 그러는 말인 것 같은데, 그때 일은 폭행이 아니라 우연하게 벌어진 싸움이었다.
그들은 스텝도 아니고 촬영장에서 시비를 걸고 위협하던 양아치였다.
다만, 강산의 트레이드마크로 유명한 자연광과 아름다운 배경 장면, 스타일리시한 장면들은 스텝들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것이다.
강산의 현장은 스텝들에게 편한 현장은 아니다.
박찬이 형사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영화판 스텝들의 어려운 환경은 강산의 현장만 그런 것이 아니지만 강산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말들은 하도 많이 들어서 강산도 스텝들이 그런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형사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신선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그럼 스텝을 모집하는 공고문에 ‘현장이 쉽지 않아서 인내심이 많으신 분을 모집합니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님 영화 조명팀에서 2020년에 올린 공고문인데 모르십니까?”
“어느 영화나 촬영을 하다보면 그만두는 스텝들이 많이 생깁니다. 워낙에 힘든 일이라 스텝들이 교체되는 경우는 다반사지요.”
“다반사요?”
“네. 다반사. 아주 흔한 일이라는 말이죠.”
“그래도 사람을 구하는데, 인내심이 많으신 분을 모집한다는 말은 특이하지 않은가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강산이 계속 박찬이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부인했다.
박찬이는 서류를 뒤적이며 강산을 자극할만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하수연씨 말에 따르면 감독님이 상해 외에 폭행도 있는데요.”
“폭행요? 그런 적 없습니다.”
“하수연씨 말에 따르면 감독님이 서윤호씨에게 연기시범을 보이면서 하수연씨 뺨을 때렸다고 하는데요?”
“형사님.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때리는 연기도 연기지만 맞는 연기도 중요합니다. 이런 장면에서 NG가 나면 맞는 역할을 하는 연기자가 제일 피해가 크지요.”
강산이 말을 멈추자, 박찬이 형사가 재촉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서윤호 배우와 하수연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감독님 말씀은 하수연씨를 위해서, 하수연씨를 때렸다는 것입니까?”
“네. 연기지도를 한 것입니다. 하수연 배우가 서윤호 배우에게 뺨을 맞고도 서윤호 배우에게 보여주는 독한 눈빛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감독님 말은 맞는 연기를 하는 하수연씨와 때리는 역을 하는 서윤호씨의 연기지도를 위해서, 감독님이 하수연씨를 때렸다는 건가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하수연씨도 동의한 것입니다.”
연기지도를 하다가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아주 흔한 일이다.
박찬이 형사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범죄라도 되는 듯이 취조를 받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산은 당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기지도를 받던 하수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 하수연은 진지하게 강산에게 물었다.
‘소연이 윤기에게 맞은 후에 소연은 어떤 눈으로 윤기를 봐야 하죠?’
하수연의 그 눈빛을 기억하는데.
“동의했다고요. 감독님. 진짜로 하수연씨가 동의한 게 맞습니까? 아까부터 계속 하수연씨가 동의했다고 하는데요. 동의한 사람이 맞았다고 폭행으로 고소하는가요?”
“사실 저도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촬영을 하다보면 이런 상황은 너무 많습니다. 그때마다 고소를 하면 영화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세요.”
“나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하수연씨를 위해서, 연기지도를 한 것인데, 고소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감독님. 감독님 말은 하수연씨를 위해서 서윤호씨에게 하수연씨를 세게 때리라고 했고, 또 서윤호씨가 세게 때리는 시범을 하수연씨에게 했다는 말인가요.”
“연기에는 액션과 리액션이 중요합니다. 때리는 연기 못지않게 맞는 연기도 중요합니다. 이런 연기에 능숙한 배우들은 실제로 때리지 않고 맞지 않아도 실제처럼 연기합니다. 그런데요?”
강산은 말을 잠시 멈췄다. 말의 힘을 더하려면 잠시 말을 끊어가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런 쉼표는 강산이 영화에서 배운 호흡이다.
“그런데요?”
“으음... 서윤호 배우하고 하수연 배우는 연기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때리는 액션과 맞는 리액션 연기가 너무 어설퍼서 계속 NG가 났습니다.”
“감독님. NG하고 하수연씨를 위해서 세게 때리라고 지시하는 것하고, 감독님이 직접 하수연씨를 때리는 시범을 보이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NG가 나면 그만큼 수연씨가 맞는 씬을 반복해야 하니까요! 형사님. 지금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대체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이러시는 겁니까?”
박찬이는 강산의 거친 항의에 조금 기가 죽은 듯이 말했다.
“아... 그래도 서윤호씨에게 진짜처럼 세게 때리라고 한 것은 심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하수연씨가 다치게 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요?”
“형사님! 그것과 사고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사고는 서윤호 배우가 하수연 배우를 벽으로 밀칠 때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
“서윤호 배우가 하수연 배우를 때리는 장면은 그 뒤에 나옵니다. 때리는 씬과 사고는 시간상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다면 사과드리죠. 잘 몰라서 물어본 건데, 감독님 성격이 다혈질이신가요?”
“......”
“감독님. 지금 너무 흥분하시는데요.”
강산은 박찬이 형사의 실수를 잡고 늘어지려고 했다. 박찬이는 재빨리 실수를 인정하고는 강산의 급한 성격을 꼬집으며 빠져 나갔다.
강산은 한 템포 쉬어 갈려고 박찬이가 준 믹스커피를 찾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아닙니다. 흥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 말은 어설프게 맞는 연기를 반복하다보면 하수연 배우가 제일 많이 다치게 되니까, 차라리 진짜로 하고 빨리 끝내는 게 하수연 배우에게 좋은 방법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감독님이 하고 싶은 말, 무슨 말은 하고 싶은 것인가요?”
“제 말은 폭행이 아니라는 연기지도라는 말입니다.”
“연기지도요. 쓰음... 연기지도라고요.”
“네. 연기지도”
박찬이는 강산을 코너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연기지도라고 빠져나가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감독님. 으음... 그리고 말입니다.”
박찬이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갑자기 강산의 눈을 바라보면서 뜸을 들인다.
강산은 잘 대답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성추행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네~에! 지금 뭐라고 하시는 말인가요?”
“성추행요.”
“말도 안 됩니다. 성추행이라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강산은 미리 준비한 답변 패턴을 잊어버릴 만큼 형사의 ‘성추행’은 강산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강산은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어 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절대로 아니다.’ 라고 온몸으로 부정했지만 형사의 표정은 강산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그것도 조사해 보면 알게 되겠지요.”
이 질문은 박찬이 형사가 강산의 감정을 흔들어 놓으려고, 돌발적으로 던진 질문이다.
강산의 격렬한 반응에 박찬이 형사는 내심 성공했다 생각했다.
모든 신문의 기본은 피신문자가 준비해 온 답변을 할 수 없게 상대방의 심리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박찬이는 무슨 질문으로 강산의 감정을 흥분하게 할까 고민하다가 폭행, 인성, 성추행 등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그중에 성추행이 성공한 것이다.
성인영화 감독에게 여배우 성추행 논란은 업계의 특성상 많은 성인영화 감독들의 뒤를 따라다닌다.
소문만이 아닌 감독들도 많지만 강산은 이런 천박한 감독들과 다르다는 자존심을 갖고 살아왔다.
강산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리 자신이 성인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여배우들을 존중하며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사실, 감독이라는 일을 하면서 출연한 여배우들과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도덕하다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니까.
‘에로영화출신 중년 감독과 미모의 신인 여배우’
말만 들어도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 좋은 그림이다.
세상사에 닳고 닳은 중년 남자가 감독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순진한 여배우에게 못된 짓을 했다.
사람들은 ‘못된 짓을 했다.’가 아니라도, 최소한 ‘못된 짓을 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박찬이 형사의 질문에 생각 없이 대답하다가는 형사가 미리 쳐 놓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 이것은 함정이다. 그래서 강산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려고 침묵을 유지했다.
박찬이는 강사의 얼굴을 보면서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런데 감독님. 하수연씨, 가슴은 왜 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