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1화 (11/140)

〈 11화 〉 강산: 무언가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씬 87. 3에 1.]

소연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것처럼,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세면장을 나온다.

세면장에서는 열린 문틈으로 수증기가 배어 나왔다.

하수연이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나오는 모습은 오드리 햅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나온 장면이 연상 되었다.

홀리(오드리 헵번 분)가 창가에서 앉아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문 리버(Moon river)를 부르는 장면은 오드리 햅번의 매력이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다.

‘너무 예쁘게 나오면 안 되는데.’

소연은 상의에 하얀 티 하나만 걸친 채로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하의 실종이다.

카메라는 위에서 천장을 응시하는 소연의 얼굴과 하얀 박스티에 가려진 가슴과 허리라인을 지나 드러난 가늘고 긴 다리로 내려간다.

잠시 후, 소연은 팬티를 무릎 아래로 끄집어 내렸다.

카메라는 소연의 손을 따라 움직이다가, 소연의 전신을 위에서 아래로 촬영했다.

소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샷은 조금 있다가 따로 딸 것이다.

카메라는 다시 소연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누워있는 장면까지 촬영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윤기의 등 뒤에서 소연을 비춘다.

잠시 후, 소연이 윤기에게 말했다.

“빨리 끝내.”

윤기는 소연이 세면장에서 목욕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다.

윤기는 소연이 환영까지는 아니라도, 결국은 자신을 따라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연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소연이 거절하고 만들어진 이런 상황도, 소연이 빨리 끝내라는 말도 너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소연아. 우리 먼저 이야기부터 하자.”

“......”

윤기는 소연에게 먼저 이야기부터 하자고 했지만, 소연은 윤기를 보지 않고 천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묵묵부답이다.

“소연아. 이야기 먼저 하자고!”

윤기는 침대에 누워있는 소연을 일으켜 세우고는 탁자 옆에 있는 의자에 앉게 했다.

윤기가 소연의 눈을 바라봤지만, 소연은 윤기의 눈을 피한다.

“나는 할 말 없어”

강산은 서윤호와 하수연의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발성과 어색한 표정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테이크는 리허설이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의 연기를 끝까지 보기로 했다.

“내 눈을 봐? 소연아. 내 눈을 피하지 말고 똑똑히 보라고? 나, 윤기야. 윤기. 우리 사랑했잖아. 네가 전에 내게 말했잖아. 나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내가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던 윤기라고!”

서윤호가 대사를 씹은 것 같았지만 강산은 ‘컷’을 하지 않았다.

강산이 ‘컷’을 하지 않자, 배우들은 OK를 받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지 연기를 계속했다.

윤기가 소연의 가슴을 잡는 장면도 소연의 리액션도 어색하다.

서윤호는 자신의 연기가 강산에게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수연을 침대 오른편 가에 엎드리게 하는 장면이나 하수연이 서윤호를 침대 위로 올리고 서윤호의 몸 위로 올라가는 장면도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았다.

“컷. NG요.”

강산이 ‘컷’을 외치자, 하수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가운을 걸치면서 몸을 가리고 자세를 낮춘다.

서윤호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뻘쭘한 표정이다.

“서윤호 배우, 하수연 배우. 잠깐만 이쪽으로 와서 모니터 좀 확인하세요.”

강산은 모니터 쪽으로 배우들을 부르고, 그동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텝들을 불러 다시 처음처럼 세트장을 정리하게 했다.

서윤호와 하수연은 강산의 앞에 있는 모니터를 보면서 자신들의 연기 장면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연기할 때 알고 있었지만, 모니터에 보이는 자신들의 연기가 너무 어색하다.

강산은 짙은 선글라스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배우들을 바라본다.

“어떻게 생각해요?”

강산은 배우들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연기한 장면을 스스로 확인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지도했다.

강산의 이런 연기지도 방식은 강산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태랑 배우들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렇다고 강산이 배우들에게 화를 내거나 거친 행동으로 위협하거나 심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짙은 선글라스에 감춰진 눈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너희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수연과 서윤호는 강산의 이런 지도 방식이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강산 감독이 심한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고 혼을 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어디가 어색한지, 잘 알겠죠. 어때요. 다시 가도 될까요?”

강산은 서윤호와 하수연에게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말해 주고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세 번의 테이크를 반복했지만, OK는 나지 않았다.

시간이 2시를 넘어가고 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강산은 누가 어깨를 툭툭 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박성희 미술감독이 손목을 가리킨다. 점심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말이다.

“잠깐만 주목해 주세요. 점심식사 하고 다시 갈게요.”

*   *   *

촬영 계획표상의 일정은 보통 정오,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현실은 촬영 일정에 따라 날마다 식사 시간이 달라진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으면 그 날이 특이한 날이다.

촬영장 밥 차의 메뉴는 1식 6찬이 기본이다.

보통 밥과 국, 김치, 튀김, 조림, 무침, 기타 메뉴 1개로 구성된다. 메뉴에 따라 가격은 1인당 6,000원에서 12,000원까지 다양하다.

오늘 점심은 배우들과 스텝들이 힘내라고 강산이 직접 황기삼계탕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강산은 점심 식사하기 전에, 의상팀에게 몇 가지 준비사항을 지시하고 식사를 하러갔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세트장 건물 주차장으로 가서 담배를 꺼냈다.

예전부터 영화판에는 담배가 창작 도구로서 인정되었다.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은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담배를 물었다.

스텝들과 배우들도 시간만 나면 아무데나 모여서 너구리굴을 만들었다.

담배를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영화판에서 일주일만 지나면 골초가 된 것처럼 담배를 물었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서 흡연 공간을 따로 두고 있었다.

세트장이 있는 건물 주차장이 흡연 공간이었다.

어느새, 김두호가 나타나 강산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제수씨 건강은 어때?”

“머, 그저 그렇지.”

“신부전증, 그거 좋아지기 어려운 병이라고 하던데”

“후... 의사 선생 말이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게 최선이래.”

“아이들은?”

“큰애가 동생들을 챙겨주고 있어. 참 애란씨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데, 어때 만나볼래?”

김두호는 자기 아내에게 쏠린 강산의 관심을 전환하려고 김애란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애란.

김애란은 강산의 영화사 ‘좋은 친구들’에서 경영지원실 실장으로 경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강산이 에로영화 감독을 시작하던 애플에서부터 알았으니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다.

강산이 최종 부도를 맞기 전에, 김애란의 5억의 횡령으로 강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실, 5억으로는 부도를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5억이라는 돈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속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김애란하고 강산은 사장과 직원의 관계만이 아니다.

강산과는 사적인 관계도 있었다.

김애란은 강산의 오피스 와이프처럼 회사에서 안방 마님처럼 일했다. 그녀는 강산의 비서 실장이자 회사의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하는 관리 책임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저작권을 신경 쓰지 않던 시절에 강산이 ‘좋은 친구들’에서 만든 작품들이나 애플에서 만들었던 작품들도 찾아서 저작권 등록을 해주었다.

“됐다. 애란씨는 됐어.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 다 잊었어. 두호야. 그래도 집에는 자주 들어가야지 않겠냐?”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더 불편해. 누워있는 집사람 보기도 그러고, 아이들도 나 없이 지내는 게 익숙해져서 집에 가면 오히려 애들이 불편해 해.”

“그래두. 집에 자주 들어가. 그러다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김두호의 아내 문숙은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만성 신부전증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병이 계속 진행하여 말기가 되면 투석이나 신장 이식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신부전증 환자는 혈압을 낮추는 약물을 복용하고 식이요법을 통해 단백질 섭취를 줄여야 한다.

강산도 안다.

김두호가 얼마나 아내 문숙을 사랑하는지, 그래서 김두호에게 더 미안하다.

강산의 재기를 돕기 위해 김두호는 잠시 아내의 곁을 떠나온 것이다.

강산은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꼭 성공해야 한다.

*   *   *

늦은 점심을 하고 촬영장에 다시 모였다.

배우들이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강산은 의상팀을 따로 불렀다.

하수연이 입은 하얀 티 대신 하얀 티셔츠를 준비하고 단추 밑에 똑딱이 단추를 달게 했다.

다음 촬영부터는 ‘쫙’하고 한 번에 뜯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윤기가 흥분해서 소연의 상의를 뜯으려고 하는데, 하얀 티가 단번에 찢어지지 않아 NG가 났다.

잘 찢어지게 하얀 티에 미리 칼질을 해 두었는데,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보니 하얀 티 때문에 NG가 날 것 같아 티셔츠로 바꿨다.

덕분에 하얀 티를 입고 촬영한 장면들을 다시 촬영해야 한다.

스크립터에게 하얀 티를 입고 촬영한 장면들 중에서 다시 찍어야 하는 장면들을 체크하게 했다.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컷. NG요.”

강산은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NG 선언을 반복했다.

배우들도 연기 기준을 잃은 것 같았다. 묵묵히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던 강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테이크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지만 강산이 원하는 수준과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시간이 없다. 재작비가 다 되가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

무언가 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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