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박성희: 난 아직도 순진한 소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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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호와 하수연이 리허설을 마치자,
강산은 두 사람을 불러 카메라 위치를 설명하고 두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동선과 감정을 설명해주었다.
“서윤호 배우가 여기 앉아서 TV를 보고 있으면 하수연 배우는 저기 반대편 소파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서윤호 배우를 보면서 대사를 치고 난 후, 세면장으로 걸어가는 거예요.”
“네”
“하수연 배우는 템포를 주의 하시고요. 서윤호 배우는 시선을 주의하세요. 그럼, 바로 들어가도 될까요?”
““넵””
* * *
[씬 87. 2에 1]
청자켓에 짧은 검정 치마를 입은 소연이 407호 안으로 들어오자, 창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윤기가 소연에게 말했다.
“안 올 줄 알았는데, 조금 늦었네.”
소연은 윤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반대편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TV 예능 프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연은 낮게 한숨을 쉬고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술에 물었다.
‘찰칵’ ‘찰칵’ ‘찰칵’ 라이터는 단번에 불이 붙지 않았다.
소연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며 몇 번의 공회전 끝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소연은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뱉고, 담배를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고 올게”
소연은 등 뒤로 윤기의 시선을 뒤로 하고, 세면장 안으로 들어갔다.
“컷. NG요. 두 분 잠깐 이쪽으로 와서 확인해 보세요.”
서윤호와 하수연은 강산이 보고 있는 모니터로 왔다.
강산은 모니터로 두 사람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자신들이 연기한 장면들을 확인하게 했다.
모니터를 보는 하수연과 서윤호, 두 사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자신들도 연기하면서 어느 정도 결과는 예상했었다.
하수연과 서윤호는 강산의 연기 지도가 너무 가혹하지 않기 만을 바랬다.
“잠깐. 여기 하수연 배우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서윤호 배우는 시선을 좀 더 드라이하게 해주세요. 하수연 배우는 좀 더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워야 해요. 담배가 아주 익숙한 것처럼 말이에요”
“아주 익숙한 것 처럼요?”
“으음... 소연이는 룸살롱에서 일할 때, 담배를 많이 피워 봤었다는 설정이에요. 두 달 전에 촬영했던 룸살롱 씬에서도 몇 장면이 있었잖아요. 기억나죠?”
“네. 거울을 보면서 경숙이 언니하고 세라 마담 언니하고 손님들 기다리던 씬하고, 손님들하고 룸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몇 장면이 있었어요.”
“이 장면에서 소연은 담배를 피우면서, 지우고 싶은 과거를 되살리게 되죠. 2차를 나가기 전에 담배를 피우던 과거 말이에요. 그래서 ‘빨리 끝내’ 라는 대사를 하는 거예요.”
“네”
“그리고 서윤호 배우.”
“네!”
“서윤호 배우는 영화에서는 잠시 지나가듯 편집하겠지만, 소연이가 담배 피우는 장면에 좀 더 집중해 주세요.”
“네”
“윤기는 소연이를 청수장까지 부르지 않아도 쉽게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소연이가 담배를 자연스럽게 피우는 모습을 보고, 소연이가 옛날과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는 되지요.”
“네”
“자. 이번 테이크는 연습했다 치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한 번 갑시다.”
강산이 다시 가자는 말에 하수연과 서윤호는 가슴을 쓰러 내렸다.
하수연은 손 거울을 보면서 립스틱을 좀 더 붉게 칠하고, 라이터를 켜는 연습을 했다.
‘찰칵’ 라이터는 한 번에 불이 올랐다.
실전에서는 힘을 너무 줬는지 잘 켜지지 않더니, 연습할 때는 라이터가 잘 켜졌다.
소연은 옷매무새를 다시 고치고, 긴 숨으로 호흡을 고르며 강산의 지시를 기다렸다.
씬 87. 2에 3에서는 하수연이 무난하게 라이터를 켜고 대사를 치고, 세면장으로 걸어갔다.
이번 씬은 무사히 잘 끝냈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면서 세면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마지막 세면장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당황한 소연은 자꾸만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문 앞에서 버벅거렸다.
하수연이 세면장 문을 열려고 발버둥 치자,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촬영장은 코미디가 되어 웃음 바다가 되었다.
“컷. NG요. 이번은 아주 좋았어요. 조감독은 세면장 문 좀 확인해 주시고요. 하수연 배우. 세면장으로 갈 때 조금 빠르게 걷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천천히 우아하게 걸어가 주세요. 다시 한 번 더 갈게요.”
씬 87. 2에 7에서는 하수연이 담배를 길게 들이키고 내뱉은 후, 대사를 하려고 했지만 대사를 마치지 못했다.
“씻고 올... 케겍...”
담배 연기에 목이 막혀 대사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컷, NG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갈게요.”
강산은 하수연이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하수연은 담배 냄새만 맡아도 기침을 하는 비흡연자다. 이번 영화 전에는 담배를 물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세 번의 사랑>의 설정 상 소연은 룸살롱에서 일하면서, 담배에 익숙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 * *
이 씬에서 담배는 소연의 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중요한 도구다.
하수연은 이 씬을 촬영하기에 앞서 연기 고민이 많았는지, 강산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물어왔다.
“감독님. 담배를 어떻게 피우는 것이 소연에게 어울릴까요?”
“무슨 말이에요?”
“소연이 있잖아요. 87번 씬에서 소연이 피우는 담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그렇죠. 그 씬에서 소연에게 담배는 마음의 준비를 말하죠.”
“그래서요. 감독님은 어떤 분위기를 생각하고 계신가 싶어서요.”
“내가 생각하는 소연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타짜>의 정마담이 <차이나타운>에서 피우는 모습이라 생각해요. 자연스럽지만 편안하지만은 않은 모습이요.”
“자연스럽지만 편안하지 않은 모습이요?”
“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모습이죠.”
하수연은 <타짜>의 정마담, <차이나타운>의 엄마 김*수 배우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을 반복으로 돌려보았다.
하수연이 봐도 그녀의 담배를 피우는 연기가 너무 멋이 있었다.
그녀의 담배 피우는 연기에서 그녀 자체가 보이지, 담배는 보이지 않는다.
하수연은 흡연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금연초로 연습을 했다.
전자담배로도 연습할 수 있지만, 담뱃재나 실제로 피우는 것처럼 보이려면 전자담배보다는 금연초로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수연은 강산 감독에게 실제 현역 텐프로에서 일하는 여성을 소개 받았다.
그녀에게 하수연은 담배를 잡는 각도와 담뱃재를 터는 태도까지 레슨 받았다.
담배를 피우는 씬은 10번의 테이크를 반복하고 나서야 OK를 받았다.
“컷. OK요. 잠시 쉬었다가 바스트 샷 좀 딸게요.”
강산은 서윤호와 하수연의 정면과 측면 바스트 샷을 촬영하고, 하수연이 담배를 비벼 끄는 손가락을 클로즈업하는 샷을 따면서 하수연에게 말했다.
“수연씨. 담배 연기를 좀 길게 내뿜어 주세요. 하얀 담배 연기가 진한 녹색의 커텐 위에 겹쳐지게 촬영할 거예요.”
하수연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 장면을 카메라는 하수연을 정면으로 잡았다가 조금 옆으로 빠져 담배 연기를 따라간다.
편집점을 잡으려는 것이다.
담배 연기에 하수연의 얼굴이 가리는 장면은 좋았지만, 담배 연기는 길게 가지 못하고 흩어졌다.
강산은 담배 연기가 가늘고 길게 짙은 녹색의 커튼까지 닿기를 원했다.
왕가위의 영화처럼 스타일리시하게 화면에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수연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어 보았지만, 강산이 원하는 담배 연기의 길이나 양에 비하면 너무 부족했다.
“OK. 하수연 배우는 다음 씬은 준비해 주시고요. 서윤호 배우는 퇴근해도 됩니다. 김두호 부장. 여기 와서 좀 도와주세요.”
강산은 하수연 대신, 김두호 불러 담배 연기를 내뿜게 했다.
하수연에게 계속 담배를 피우게 했다가는 컨디션까지 나빠질 것 같았다.
다음 씬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담배는 안 된다.
김두호가 하수연의 대타로 담배 연기를 내뿜자, 담배 연기는 커튼에 까지 닿았다.
스텝들은 OK를 기대하면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강산을 바라보았다.
결과는 'NG.'
강산은 김두호가 내뿜는 담배 연기가, 여자가 피우는 담배 연기 같지 않다고 퇴짜를 했다.
다시 스텝들은 담배를 피우는 여자 스텝을 수배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담배 피우는 여자 연기자로 캐스팅된 스텝은 박성희 미술 감독이었다.
박성희 미술 감독은 강산 영화의 미술 파트너다.
강산이 생각한 이미지를 이야기 하면 영화에 맞는 실제 배경과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실제로 존재하는 평범한 집이나 공간을, 벽지를 바꾸고 공간을 재조정해서 강산의 원하는 세트로 만들어주었다.
“안 돼, 안 돼”
“뭐가 안 돼요?”
“강감독, 난 정말 안 돼!”
“그러니까 왜 안 되는데요.”
“남편은 아직도 내가 담배를 피우는 줄 모른단 말이야.”
“설마~ 설마...”
“그래 설마야.”
“김선생이 아직도 박감독의 본성을 모른다는 말이에요?”
박성희 미술 감독의 남편인 김상연은 시인이자 문화 평론가다.
김상연과 박성희는 10살이 넘게 차이가 났다.
박성희가 김상연보다 10살이 많았는데, 김상연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까지 이르렀다.
“그래, 나는 상연씨에게는 아직도 순진한 소녀, 아니 아줌마야”
“아... 그럼 곤란한데요. 나는 박감독님의 섬세한 손과 우아한 담배 연기가 필요한데요.”
“으음... 출연료를 별도로 주신다면이야...”
“당연한 말씀!”
박성희 미술감독은 담배를 피우는 연기와 손만 출연하지만, 출연료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산은 박성희에게 담배 연기를 우아하고 퇴폐적으로 내뿜어 달라고 하면서 담배 연기를 반복하게 했다.
“컷. 박감독님. 담배 연기를 좀 더 우아하고 퇴폐적으로 보이게 피워주세요.”
“아니, 강감독! 어떻게 담배 연기를 우아하고 퇴폐적이게 해요!”
“노 프라블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감독님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렇지.”
박성희는 강산이 박감독은 가능하다는 말에 만족했는지 반항하는 대신 담배를 다시 물었다.
거의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 나서야 담배 피우는 연기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