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1화 (1/140)

〈 1화 〉 강산: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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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부경찰서] 귀하의 사건 [송치번호 2025-478639] 서울중부검찰청으로 인계하였습니다. 담당 검사가 지정되기 까지 1~3일 소요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를 받은 날부터였을 것이다.

강산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택배회사 작업장으로 가려고 중고 소나타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 갑자기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쥐어짜는 듯이 아파왔다. 당장이라도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견디기 힘든 경험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강산은 자동차나 택시처럼 작은 공간 안에 있는 것이 힘들었다. 밖에 나가야 하는 일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발작이 일어날 것 같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이라도 버스에서 내려 한동안을 쉬어야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가 강산에게 온 것 같았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온 후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했을까?’

자신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귀신에 씌었다고나 할까? 하루라도 빨리 재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런 실수를 하게 한 것 같다.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스스로 위로하는 말을 반복하지만 이제 다 끝난 일이다.

강산은 한강변에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녹색의 소주병과 뜯어진 새우깡 봉지, 그 옆에 놓여있는 핸드폰이 ‘드르륵’ 하고 울고 있다.

애플 프로덕션 시절부터 강산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김두호의 전화다.

강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참을 ‘드르륵’ 거리다 지친 핸드폰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드르륵거렸다.

강산은 핸드폰 전원을 길게 눌러 꺼버리고는 그대로 두었다.

어느새 녹색의 소주병이 조금씩 비어가고 있다.

어두워져가는 강변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고, 강산의 벤치 주위에는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다.

이제 한 모금만 더 마시면, 소주병은 빈 병으로 세상에 남겨질 것이다.

2025년, 이 세상과의 인연은 이제 끝이다.

*   *   *

강산은 중견의 영화감독이자 영화제작사 <좋은 친구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형 흥행작들은 없었지만 감독으로 만든 성인 영화들이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좋은 친구들>에서 만들고 인수한 에로영화들이 IPTV와 OTT에서 재평가 받으면서 적지 않은 수익, 아니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강산의 후원자인 해피미디어의 최룡해 회장을 도와주기 위해 50억대의 어음에 이서해 주었다.

해피미디어가 부도가 나면서, <좋은 친구들>까지 어려워졌다.

투자한 영화들의 흥행실패로 부족해진 자금을 채우려고 무리하게 투자한 20억원을 투자한 주식이 작전주로 상장 폐지 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믿었던 경리실장의 횡령으로 <좋은 친구들>이 끝내 부도가 났다.

강산은 신용불량자가 된 지도 어느새 3년이 지나고 있었다.

한동안 사람들을 피해 만나지 않았고 고시원 골방, 여관 달 방, 조그만 원룸에서 숨어 살다시피 했다.

강산은 세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첫 번째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룡해 회장이 ‘T’그룹의 후계자 분쟁을 하는데, 나는 오지랖이 넓게 고래 싸움에 끼어들었을까?

두 번째는 정상적으로는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때는 왜 굳이 무리까지 해가며 작전주에 끼어들었을까?

마지막으로는 김실장은 왜 횡령을 했을까?

강산의 번 돈의 절반은 김실장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김실장이 횡령한 돈은 그냥 줄 수도 있는 돈인데 말이다. 김실장의 횡령보다 믿음에 대한 배신이 더 마음 아프다.

이 모든 것은 ‘T’그룹, 태산미디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태산일보 최영수 전무.

그의 얼굴만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태산일보의 문화면 기사에는 언제부터인가 강산을 조롱하듯이 <에로영화감독 출신>이라는 닉네임을 강산의 이름 앞에 달았다.

강산이 투자하는 영화나 사업들에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다.

이상한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여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이상한 소문과 같이 게시했다.

그렇다고 강산이 수도승처럼 산 것은 아니다.

그런 관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므로 기자들과 싸우거나 태산일보를 고소할 수도 없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낼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들도 강산이 잘 나갈 때 이야기다.

지금은 모두 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은 신용불량자에다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다.

시간이 약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배운 게 도둑질이다.

재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강산은 30년 가까이 영화판에서 살았다. 영화감독과 제작자로 반평생을 보낸 것이다.

강산은 다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 제작 자금을 모았다.

<좋은 친구들>이 부도나기 전에 영화를 만들 때는 대부분의 영화는 <좋은 친구들>에서 자체 제작했다.

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50% 정도를 <좋은 친구들>에서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는 배급사나 개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영화제작 자금을 유치했다.

‘영화제작은 도박과 같다.’

영화 제작은 도박 같아서 투자한 영화 열 편 중에서 한 편만 흥행에 성공해도 아홉 편의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

극장 흥행수익뿐만 아니라 인터넷 VOD 서비스, DVD 판권, 해외 판권까지 각종 부가수입으로 수익을 누릴 수 있다.

그만큼 영화는 투자 대비 효율, 가성비가 높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 번이라도 흥행의 맛을 본 사람들은 영화판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강산이 제작하려고 하는 영화는 2025년 현재, 유행하고 있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2025년의 영화 키워드는 아이들과 같이 보는 가족영화나 블록버스터급 SF영화나 20대가 선호하는 영화다.

예전에는 영화 제작투자를 결정할 때, 제작자의 ‘감’과 ‘유행을 읽어내는 능력’을 제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등장하면서 부터 투자방식이 달라졌다.

제작자의 감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트렌드와 여론을 분석하고 영화의 흥행을 예측하고 투자한다.

이런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강산에게 좋지 않았다.

최근의 유행 트렌드와 강산의 영화를 비교 분석한 빅데이터는 강산의 영화가 흥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산의 영화의 특성인 왕가위식 색채감, 여배우의 섹시함, 성애의 리얼함은 포르노로 대체된 지 오래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강산은 ‘옛날 사람’이라는 말이다.

강산은 투자처를 구하기 위해 충무로를 돌았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영화제작사 친구들은 강산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러나 강산이 영화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투자를 부탁하면, 돌아오는 것은 ‘지금은 여유가 없다’거나 ‘나중에 술이나 같이 먹자’는 의례적인 인사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 몰래 돈 봉투를 찔러주는 친구도 있었다.

강산은 자존심이 너무 상했지만 거절하지는 못했다.

인간적인 정리와 비즈니스는 구별해야 사업가다.

옛날의 좋은 인연으로 오늘 비즈니스를 결정하는 것은 사업가로서는 피해야 할 금기다.

강산이 부도나기 전에 만들던 성인영화들은 이제는 한물 간 소재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에로비디오가 망한 것은 무엇보다 포르노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포르노는 불법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포르노를 구할 수 있다.

덕분에 재능 있는 감독들은 성인영화를 만들지 않고, 투자자들은 성인영화에 투자하지 않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토머스 그레셤의 말처럼 우리나라에는 에로비디오와 만들지 고급 성인영화는 만들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인 추세다.

강산은 16mm 에로비디오 영화감독 출신이지만 35mm 극장용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감독이자 제작자다.

남성중심의 성(性)적 판타지를 연출하는 성인영화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여배우들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육체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강산의 전성기에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도 강산의 영화에서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다.

강산에게는 ‘성인영화 전문 감독’, ‘성공한 영화제작자’ 외에도 평생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키워드가 있다.

‘에로영화 출신 감독’

*   *   *

에로영화란 성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의 영화를 말한다.

에로영화에서 ‘에로’란 일본식 영어로, ‘에로티시즘’이나 ‘에로틱’이라는 용어를 줄여서 부르던 ‘에로’에서 유래했다.

에로영화라는 말은 1980년대의 극장개봉용 국내성인영화들을 통틀어 말하다가 비디오 시장이 유행하면서 저급한 수준의 비디오 영화를 에로영화라고 하였다.

그러던 중 에로영화도 예술성을 갖춘 극장 개봉작과 이후 비디오 유통을 목적으로 한 영화를 구분하기 위해 전자를 성인영화라고 하고, 후자를 에로영화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성을 소재로 하는 모든 영화들을 통틀어 저급한 에로영화로 보는 편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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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에로영화 감독출신이지만 성인영화감독으로 성공했다.

강산의 성공은 직접 감독과 제작자로서 만든 성인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도 있지만, <좋은 친구들>에서 만들었던 수백 편의 에로비디오 영화가 큰 역할을 했다.

2010년부터 IPTV와 인터넷 VOD 서비스에서 에로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 강산의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로영화출신 영화감독’

강산은 자신의 이름 뒤에 붙는 ‘에로영화출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싶었다.

2015년, 마흔이 넘어서자 더 이상 성인영화를 만들지 않고 제작자로 변신했다.

국내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나 재난영화에 투자하거나, 외국의 예술영화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나름 괜찮은 성과를 얻었지만 100억 원 가까이 투자한 <타이푼>과 <여름 이야기> <새로운 세계>가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회사 <좋은 친구들>까지 어려워졌다.

사실 이 영화들은 절반의 투자금의 절반밖에 얻지 못했지만 나중에 부가수익을 통해 어느 정도 복구될 것이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해피미디어 최룡해 회장에 대한 연대보증이고, 결정타는 작전주에 투자한 주식실패였다.

거기에 믿었던 경리실장의 횡령이 심리적으로는 더 큰 상처를 주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화계의 호사가들은 맥주집의 오징어처럼 강산을 잘근 잘근 씹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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