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도화선 [13] >
할타스의 빈민층 대부분은 미래가 없다.
하루를 일해 버는 것이라곤 달랑 동전 몇 개뿐이었다. 그나마도 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빈민이란 건 같은 말로 강도 혹은 도둑이라 부를 수 있었기에.
제대로 된 문도 없이 뼈대만 세워 지붕만 얹어놓은 천막촌은 사람이 들고 나가기에 자유로웠다.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죽고 없는 재산이나마 털려 사라지는 일상 속에서, 사람이 미래를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네들의 미래는 그저 공허한 소망에 가까웠다.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나길.
그나마도 그러한 희망, 희망이라 부르기에 덧없는 환상이라도 꿈꾸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니 빈민은 동전 몇 개라도 들어오면 당장 쓰지 못해 안달이었다.
양파 한 개라도 살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아작아작 씹어 삼킨다.
그러나 잔돈의 사용처는 대개는 약이었다.
빈민들이 말하는 약, 혹은 그 약.
상인들이 말하기로는 정신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길지 않으나 팍팍한 삶을 잊게 하고, 몽롱하게 풀어진 의식 속에 쾌락을 불러오는 효능을 가졌다.
상식 있는 이들이 마약이라고 하는 종류였다.
할타스의 상인이라면 마약 유통은 기본 소양이다.
물론 대륙법에 엄히 처분되는 짓이기에 드러내고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대신 거대한 도시, 그 그림자에 도사린 건달들이 상인을 뒷배로 두고 만들어 팔았다.
사실, 빈민들에게 아무리 많이 팔아도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다.
약은 그저 족쇄다.
할타스의 빈민들, 짐승보다 더 값싼 노동력이 빠져나가지 않게 만드는 그러한 장치였다.
애초에 싸구려 마약이 멀쩡한 물건이겠는가.
그 부작용이 심했다.
약효가 떨어지고 나면 구토감, 복통, 두통 따위의 오만 불편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런가 하면 의존성은 강해 하루만 약을 걸러도 손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사나워져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타플강드 상단의 약이 인기였다.
타플강드 상단이야 부정하지만, 할타스의 시민이라면 약을 파는 조직원들만 봐도 어느 상단이 뒷배인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타플강드의 사업장에서는 일당 대신 약을 선택해 받을 수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게다가 다른 약에 비에 월등한 품질이라 오히려 손해를 보고 판다는 평가도 받았다.
부작용도 거의 없거니와, 약효 역시 다른 마약과 차별되는 점이 있었다.
다른 마약이 그저 쾌락만을 불러온다면, 그 약은 사람에게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피에 약이 섞여서 몸을 돌면 갑자기 팍팍한 삶이 안락해지며 나른한 고양 속에 싱긋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약은 빈민뿐만 아니라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그럭저럭 먹고는 사는 상단의 말단 직원들로부터 심지어는 중앙 구역의 부호들 몇몇마저 즐길 정도였으니까.
다른 상단이 그 약을 따라 해보려 해도 도대체 그 원료부터가 불명이었다.
실력 좋은 약제사들이 달려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쌓아놓은 지식의 깊이가 달라서.
과거 멸망해 버린 제국에서도 가장 소수의 지식층만이 공유하던 금단의 비술이었으니, 기초가 되는 공식을 대놓고 던져줘도 이해하는 이가 드물 건 자명하다.
고작 마약에 쓰이기에는 고위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고작 마약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약의 제조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군사적 목적을 가진 제품이었으니까.
사람이 오래 즐겨 그 성분이 몸에 남고, 그러한 상태에서 시동을 걸면 최소한의 의지로 명령만을 수행하는 인간 병기로 화했다.
결과적으로는 사장된 기술이기도 했다.
명령 수행을 위해 잠재력을 모두 신체 능력으로 치환하니, 이틀이 못 가서 극심한 노화 현상으로 인해 숨을 거뒀다.
제국은 이 기술을 이렇게 명명했다.
광전사.
* * *
발라스 의원이 유리관 속에 자리를 잡았다.
아래로부터 걸쭉한 액체가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액체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발목을 넘어 무릎, 골반, 허리를 지나 어깨까지.
마침내 대의원의 목 아래가 전부 잠겼다.
유리관 바깥에 선 전달자가 어려운 기색으로 머뭇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전달자가 참으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발라스 의원님. 혹여 그러할 일은 없겠지만.”
“아네. 도중에 멈출 수 없다는 거지. 아니, 멈춰서는 안 된다고.”
발라스 의원이 대답했다.
어찌 보면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의회의 대의원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발라스 의원에게 도중에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자체가 실례가 되는 행동이었다.
그가 인제 와서 목숨이 아까워 대법을 중지할까.
“그래. 그렇게 뭐든 확실히 해두게. 확실히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죄송합니다. 의원님.”
“죄송할 일이 아니래두.”
발라스가 웃는 낯을 했다.
“그럼, 들어가게나. 사내끼리라 해도 이미 홀랑 벗고 있으니 민망하기가 짝이 없군그래.”
“예. 보중하십, 아니, 아닙니다.”
전달자가 말을 바꿨다.
보중하기는 뭘 보중하나. 대법이 실행되는 순간 그는 어찌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때 새로운 시대가 어찌 되었는지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오게나. 아주 천천히. 내 느긋하게 기다리도록 하겠네.”
마침내 전달자가 안개로 화해 모습을 감췄다.
발라스 의원이 정신을 집중했다.
유리관 안쪽, 액체 속에 찬연한 빛무리가 어렸다.
빛과 빛이 이어지며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을 이어 복잡한 도형을 이루었다.
도형과 도형이 합쳐지며 공간에 술식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발라스 의원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 같은 색으로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림.”
발라스 의원이 눈을 감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 * *
제인과 케빈은 남매 사이였다.
부모는 모른다. 기억하는 순간부터 남매는 세상에 두 사람뿐이었다.
딱히 비극적인 일은 아니었다.
비극이라기에는 빈민가에서 너무나 흔했으니까.
덕분에 남매는 제 이름조차 몰랐다.
제인이 스스로 저와 남동생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세상 가장 흔한 이름이기도 했고.
케빈은 예전에 일을 한 번 나서고는 돌아와 앓아누웠다. 빈민가에서는 작은 질병조차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남매는 천천히 말라 죽고 있었다.
제 한 입 살피기도 어려운 빈민가에 두 입을 살피고 있으니 먹는 것이 절반인 까닭에.
그래도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사제님들이 빈민가에 진료를 와주시니 한 달을 앓던 남동생이 몇 분 만에 벌떡 일어났다.
몸이 허하여 그렇다며 곡식까지 주시고, 더불어 매일 찾아오니 극성을 부리던 도둑들도 요즈음은 자취를 감췄다.
사제들이 떠나면 다시 극성을 부릴 터이니 식량을 아낄 이유도 없다.
며칠은 굶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남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혈색이 돌았다.
오랜만에 일을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온 케빈이 가장 먼저 제 누나를 찾았다.
“누나, 나 왔.”
케빈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몽롱하게 흐릿한 초점으로 멍하니 누운 제 누이가 보였으니까.
“누나, 또 약했어?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헤에에…….”
“아, 진짜. 정신 못 차리네. 누나, 누나!”
케빈이 제인의 뺨을 치고 또 멱을 잡고 흔들었다.
“나도 나았으니까, 자유도시를 떠나자고 했잖아! 그런데 또 약에 취해서는!”
“헤에라아…….”
“뭐야, 뭐라는 거야!”
“헤라구운.”
“헤라군?”
“헤라구우우운!”
문득 제인의 초점이 남동생을 향하더니, 괴성과 같은 고함을 질렀다.
케빈이 눈을 부릅떴다.
사람이 배를 뚫리고 나서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제인의 손이 제 남동생의 뱃속 깊숙이 박혔다.
“커헉. 왜, 왜……”
“헤에라아아아구운!”
제인이 그리 소리치며 손을 잡아당겼다.
사람의 내장이 꽉 쥔 손에 줄줄이 딸려 나왔다.
“헤라구운!”
제인이 손을 쫙 그러쥐었다.
손아귀의 내장이 뭉개져 형체를 잃었다.
사람의 내장이 본래 질기기 짝이 없으니 악력으로 찰흙처럼 짓뭉개는 것이 보통 신력이 아니었다.
“누, 나…….”
케빈이 왈칵 피를 토했다.
자유도시를 떠나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남매가 끌어안고 그렇게 울며 다짐한 것이 바로 그제인데.
멀어져가는 케빈의 의식 속에, 천박 밖으로 뛰쳐나가는 누이의 모습이 거뭇하게 흐려져 갔다.
* * *
할타스 시 청사는 쌍둥이 건물이었다.
하나는 시의 업무를 처리하는 시청이며, 옆에 선 똑같은 건물은 귀빈을 모시는 시청 회관이었다.
디엔바 백작가의 행차에 따라 시청 회관의 귀빈은 고급 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위 귀족가를 모시는 데에 다른 손님과 함께할 수는 없었으니까.
디엔바의 군대가 근처에 시설에 주둔하고, 청사의 정문을 지키며 위병 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오위 일등병님, 저게 뭐 같습니까?”
“몰라. 알 게 뭐야?”
오위 일등병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저만치 먼 곳에, 미친 듯이 뛰어오는 몇 사람이 보였다.
본래 사람이 뛰는 자세가 여럿이나, 개중에 전력으로 달려 허리는 굽고 팔은 바쁜 모양새였다.
제난 삼등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리로 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음?”
“저거, 피 아닙니까?”
“피라고?”
오위 일등병이 눈을 가늘게 떠 초점을 맞췄다.
붉은 옷인가 싶었더니, 피를 뒤집어쓴 형상이다.
무어라 빽빽 소리를 지르는데, 사람이 여럿이고 또 악을 질러 뭉개져 잘 들리지는 않았다.
순간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똑바로 제게 향하는 시선이었다.
오위 일등병이 창을 앞으로 겨누며 소리쳤다.
“젠장, 벼락 대기조 호출을, 호각 불어! 빨리!”
* * *
“이게 뭐야? 뭐 이딴. 으엑.”
가너 꼬맹이가 인상을 쓰며 스푼을 내려놓았다.
뒤이어 손수건을 꺼내 혓바닥을 슥슥 문질렀다.
“아니, 무슨 요리가 이래?”
가너 꼬맹이가 떫은 표정으로 음식 투정을 했다.
몇 종류의 고기를 넣고 푹 끓인 탕이었다.
문제는 그 향이었다.
약초 비슷한 알싸한 쓴 내음이 한 입 푸자마자 입안에 진하게 번졌다. 잡초를 씹은 것처럼 비리고, 박하처럼 화한 풍미가 있다.
“이딴 걸 사람 먹으라고 내온단 말야?”
“제 것은 괜찮은데, 문제가 있으십니까?”
데먼 경이 걱정스러운 얼굴 물었다.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는가 가너의 탕을 한 숟갈 떠먹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것과 똑같았으므로.
시엔이 키득거리며 끼어들었다.
“고수를 못 드시는 모양이네요.”
“고수 말이십니까?”
“독특한 향취가 나는 채소인데, 아무래도 어린 애의 입맛에는 좀 난해하겠지요.”
어린 애의 입맛.
가너 꼬맹이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또 저 사제다. 대체 왜 이리 못살게 구는데?
사실 고수가 워낙에 호불호가 심한 맛었다.
입에 맞으면 이만한 향미가 세상에 또 있나 싶을 정도이나, 맞지 않으면 손톱만큼만 들어가도 요리 전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시엔은 이미 아는 사실이나, 일부러 그랬다.
“아이의 혀에는 어렵겠지요. 요리사를 불러 고수를 빼고 달리 내놓으라 하죠.”
“큭. 아니, 아니야. 괜찮아요, 사제님. 저는 이미 어엿한 성인이기도 하고.”
가너가 손을 내저으며 제 탕을 끌어당겼다.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탕을 떠먹는다.
“다시, 다시 먹어 보니 제법 괜찮네. 음. 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이 아주 썩었다.
아이 같다는 말이 성인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나, 정작 어린 이만은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억지로 꾸역꾸역 탕을 삼키는 모습을 보면 역시 애는 애다 싶었다.
비단 시엔만 그리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식탁을 둘러싼 인원들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음?”
“어?”
시엔과 세올, 파린의 고개가 동시에 휙 돌았다.
희미한 마력 반응을 눈치챘기에.
어지간한 수준의 마법사라 하더라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마력이었다.
그러나 그 실낱같은 에너지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얇은 비단실 끝에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주문의 실체가 강맹하기 그지없다는 뜻이었다.
탕을 팍팍 퍼먹던 파린이 인상을 구겼다.
“뭐야, 이거. 기분 나빠.”
“뭔지 알겠어?”
“몰라. 근데 뭔가 더러워. 음습하고, 무슨 노인네 썩은 냄새처럼.”
“그런 말 하면 못쓴다.”
시엔이 핀잔을 주었지만, 보통 주문이 아님은 잘 알겠다. 트리예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배, 왜 그래요?”
“뭐야, 너. 못 느꼈어?”
“그러니까 뭘요?”
“훗. 그게 바로 너와 나의 수준 차이지.”
“아니, 그래서 뭐냐니까요.”
“이 선배가 모자란 후배에게 알려줘야겠네. 뭔가 방금 주문의 반향 같은 게. 근데 애매한 게, 떠 묵직한 것이, 보통 주문이 아닌 거 같거든?”
세올도 참 오래 살다 보니 경지에 이르긴 했다.
트리예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시엔을 바라보았다.
시엔이 세올도 제법이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 확인시켜주었다.
데먼 경이 조심스레 물었다.
“성자님? 뭔가 문제라도…….”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하네요. 당장 기사분들과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상황에 대비하셔야겠는데요.”
“알겠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이나 데먼 경이 되묻는 대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가너가 퉁명스레 입술을 삐죽거렸다.
“칫, 누가 주군인지 모르겠네.”
“도련님, 죄송합니다. 하나, 도련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몸,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좌시할 수는 없으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애초에, 아니다.”
가너가 곱지 않은 눈빛으로 시엔을 쏘아보았다.
“성자님?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요. 뭔가 사달이 벌어진, 혹은 벌어질 것 같네요. 그런 감이 와서요.”
“아니,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도…….”
계속해서 시엔이 못마땅한 가너 꼬맹이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듣는 소리래 봐야 믿음이 갈 리가 없었다. 잘은 모르겠는데 일이 벌어졌다니. 그게 말이야 뭐야?
그러나 잠시 후, 가너의 표정 역시 진중해졌다.
피투성이가 된 데먼 경이 뛰어들어 왔기에.
“도련님,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데먼 경? 다치셨어요?”
“제 피가 아닙니다. 걱정은 마십시오, 그보다는.”
데먼 경이 걱정하는 가너를 안심시키고는,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습입니다. 헤라군 놈들이 선을 넘었습니다.”
< 46. 도화선 [1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