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267화 (267/268)

< 46. 도화선 [12] >

자유도시 할타스의 지분 매매 계약이 연기되었다.

성자가 치료를 약속한 상황이니, 대리인이 아니라 상단주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너 디엔바에게도 기꺼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절차는 다 마쳤으니, 백작가의 대리인으로 서명만 하면 되는 단순한 임무였다. 계약의 체결이 지연되는 상황은 가너에게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흘러가고 말았으니, 백작가의 체면이 달린 일이 되고 말았다.

백작가를 상대로 일개 상인이 되지도 않는 핑계로 대리인을 내세웠다. 자리에 공증인이 보고 들었으니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부장에게는 아닌 벼락같은 일이였다.

계약 하나 제대로 못 하느냐, 고작 어린애 하나 상대하지 못해 이 지경이냐. 상단주가 절대 점잖은 인물이 아니라 그 후폭풍이 눈에 선한 까닭이었다.

지부장이 제 처지의 처연함과 시엔에 대한 분노로 씩씩거리며 집무실에 들어서 문을 쾅 닫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의자가 빙글 돌며 그 위에 앉은 이가 드러났다.

지부장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요. 전달자님. 기별이라도 주셨으면.”

“내가 대접이나 받자 온 건 아니니.”

“그러면 어떤 연유로······?”

“그 사제 놈 말이야.”

“그 빌어먹을 놈이······! 사사건건 의회의 행사를 방해하는 놈입니다. 쳐죽일 놈 같으니!”

지부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전달자가 그런 지부장을 가만이 쏘아보았다.

지부장이 어깨를 움츠렸다.

“어, 어찌 그러시는지······?”

“내 처리해 주겠다 말했는데.”

“혹시 어떤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전달자의 드러난 눈이 찌푸려졌다.

“······자네는 대체 생각이 있기는 한가?”

전달자는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 실제야 몰라도 지부장에게는 그러한 인상이었다. 타플강드 상단주에 비하면 아주아주 훌륭한 인격자라고, 그런 평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전달자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지부장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어인 말씀이십니까요.”

“내 굳이 처리해 주겠다고 했으면, 알아서 준비해 둬야 할 게 아닌가. 그냥 손 놓고,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다 해라?”

“그, 무슨 말씀이신지.”

“하. 사제가 시 청사 안에서 사라지면 잘도 좋은 소리가 나오겠군. 쫓아내든 어쩌든 구실을 만들어 밖으로 빼내야 일을 벌일 것이 아니야!”

“아.”

지부장이 그제야 제 실책을 알아차렸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나?”

“아닙니다!”

“쯧. 됐고. 놈의 신원은. 알아냈나?”

“그것이······.”

지부장이 말끝을 흐렸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전달자의 표정이 펴질 줄을 몰랐다.

“대체 자네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군.”

“놈이 교단의 성자라는 것 정도만······.”

“잠깐, 성자라고?”

전달자가 되물었다.

“예, 본인의 입으로 그리 말했으니 확실합니다.”

“성자라.”

전달자가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성자는 좀 아니지.

전달자는 무적의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전달자에게도 천적이 있었다.

반은 사람이나 반은 악령인 전달자에게 성자 성녀는 최악의 상대다. 성자 성녀가 그저 신성이 충만한 사제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막대한 신성으로 인해 그 신체 능력 또한 인간을 초월한 초인들이었다.

신성 앞에 악령의 힘이 맥을 못 추니 전달자가 외려 보통 사람보다도 약해진다. 그 상태로 초인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전달자의 약점이었다.

전달자가 지부장을 노려보았다.

제 약점을 털어놓을수도 없으니, 괜히 성을 내며 지부장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봐, 지부장.”

“예.”

“성자가 사라지면, 교단이 가만히 있겠나?”

지부장이 눈을 굴렸다.

“자네 화풀이를 위해 의회가 교단 전체와 싸워야겠군. 자네 도대체, 아니, 진짜 자네. 생각이란 게 있기는 한가? 성자를 암살하자고? 네 주제에.”

“아닙니다. 그때는, 그때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네는. 후우.”

전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똑바로 하게.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전달자의 몸이 올올히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새까만 연기로 사르륵 흩어져가는 가운데, 지부장이 급히 소리쳤다.

“잠깐만,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야.

반쯤 사라진 전달자가 기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부장이 진땀을 흘렸다.

계약이 연기가 되고 말았다. 백작가에서 상단주가 직접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자는 상단주의 없는 질병을 치료해준다 나섰다.

보고할 일은 산더미나 지부장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쯧.

이윽고 안개로 변한 전달자가 바닥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췄다.

지부장이 창백한 낮으로 진땀만 뻘뻘 흘렸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피하고 외면해서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는 법이었다.

지부장이 어물거리며 보고를 올리지 못하는 사이, 할타스에 새로운 소문이 널리 퍼졌다.

타플강드 상단주가 짐승과 붙어먹는다더라.

그러다가 하물이 썩어 고자가 되었다지?

그 때문에 남사스러워서 얼굴도 못 비춘다던데.

타플강드는 대륙 제일의 상단이고, 또한 그만큼 적이 많았다. 경쟁 관계의 상단은 물론이거니와, 휘하의 새끼 상단들 역시 잠재적 적들이었으니까.

애초에 거래를 족쇄로 아래로 매어두었으니 외려 경쟁 상단보다 더 원한이 깊은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참 재미있는 소식이었다.

대륙 제일의 거상이 짐승을 탐하다 지독한 성병에 걸렸다니. 이해 관계자들이 아니더라도 비웃으며 떠들기에 이만한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할타스의 상단 주인들로부터 아래로는 빈민들까지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떠들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그 소문을 접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아아아!”

타플강드가 술잔을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힌 크리스탈 잔이 산산이 부서졌다.

많은 이들이 화가 치솟아 기물을 부수지만, 사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애꿎은 금화만 날리는 일이라 오히려 화기가 더 치솟기만 한다.

“되는 일이 없어! 되는 일이 없다고!”

상단 본단 저택이 날아간 일이 저번주였다.

빌어먹을 만화원 놈들은 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저택과 그 안의 전력도 함께 날아갔다.

비스트와 아우터. 금화를 녹여 만든 최강의 군대를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의회의 병력이 아닌, 타플강드의 사병들이었다.

다른 의원들이 치하의 말을 던졌으나 그뿐이었다.

말로야 참으로 큰일을 해주었다 치하하면서도 그 손해에 대해서는 왜 의회를 찾느냐는 것이다.

상단의 재산이 곧 의회의 재산이지 않으냐면서.

그러나 대의원들이 저마다 연구를 독점하여 만든 강력한 사병을 이끌고 있었다.

의회는 하나지만, 새 시대가 열리고 나서는 그렇지 아니할 예정이라서. 그때 강력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수작들이었다.

그렇다고 성유해를 되찾기라도 했으면 몰라.

저택에 남은 것이 그저 먼지와 같은 고운 모래들 뿐이었다.

결국, 강력한 사병과 만화원을 맞바꾼 셈이었다.

사비로 모두에게 좋은 일만 했다.

타플강드 의원은 그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근본이 상인이라서.

명맥한, 그리고 어마어마한 손해였다.

그 화가 다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새로 도는 소문은 아주 환장할 것이었다.

짐승과 붙어먹어 성병에 걸렸고, 그 결과 그게 썩어 떨어진 고자가 되었다니.

마음 같아서는 모두 앞에서 바지춤이라도 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봐라, 멀쩡한 물건 가지고 개소리를 지껄이지 말라 호통을 치면서.

“어떻게든, 아니, 개 같은! 으아악!”

타플강드 의원이 발악을 했다.

테이블을 엎고 발로 차 부수고, 커튼을 잡아당겨 뜯어 쫙쫙 찢어버리고, 그림을 집어 들어 내동댕이치고 화병을 던졌다.

방 안이 난장판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쑥대밭이 된 방 안에서 타플강드 의원이 혼자서 씩씩거렸다. 분풀이를 해도 해도 분은 안 풀리는데 체력만 달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것이다.

그러자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은 내내 시간을 두고 두드렸던 소리이나, 더 부술 것도 없고 체력도 없어 멀거니 서고 나서야 귀에 들어온 것이다.

“뭐야?”

-지부장이 대기중입니다만.

타플강드 의원의 눈에 다시 불꽃이 확 튀었다.

“냉큼 들어오라 해!”

뒤이어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벌써부터 허리가 휘어 굽실한 지부장이 방 안에 들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상단주님, 제가, 제가 다 말씀드릴. 억.”

지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퉁퉁한 주먹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턱을 정통으로 갈긴 정타에 지부장의 골이 흔들려 곧장 주저앉았다.

“너, 이, 너 이 새끼! 너, 이 버러지 같은!”

타플강드 의원이 그리 소리치며 발을 놀렸다.

퍽, 퍽, 퍽. 어윽, 악, 끄악. 사람 맞는 소리가 그 신체와 입에서 함께 튀어나왔다.

“병신 새끼가!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네놈이!”

“억, 어윽, 의워, 제가, 악, 허윽.”

지부장이 몸을 둥글게 말고 얼굴을 감쌌다.

그 위로 성난 발길질이 연신 날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몸으로 드는 충격이 잦아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끝났나?

지부장이 슬그머니 팔을 내려 눈치를 보았다.

멀어지는 타플강드 의원의 뒷모습. 방 안을 휘적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다 무언가 하나 집어들고 지부장이 보니 부러진 탁자의 다리 한 짝이었다.

“이언님, 이언님, 재가. 재가 다. 말쑴드릴.”

지부장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입 안에 온통 핏물이 넘치고 버적버적하게 씹히는 것들이 전부 부러진 이빨 조각들이다.

그 탓에 발음이 샜다.

“개 같은 놈! 개보다 못한 놈! 개보다 더한 놈!”

개가 들었다면 서운할 소리였다.

그러나 지부장은 개가 아니었기에 그저 공포에 질렸을 뿐이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탁자 다리를 번쩍 치켜들었다.

지부장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막으니 몽둥이와 부딪쳐 손가락 세 개가 직각으로 꺾였다.

본래 사람의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이언님, 이언님, 이언님, 악! 아아아악!”

“이런 개 같은! 병신 새끼!”

퍽! 퍽! 자비 없는 몽둥이질이 계속 이어졌다.

타플강드 의원의 전신에 점점이 피가 튄다.

처절하게 울려 퍼지던 비명도 어느 순간부터 뚝 끊겨 그저 가죽 부대 두들기는 소리 뿐이었다.

그러다가, 탁. 몽둥이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의원님, 이러다 죽겠습니다.”

“넌 뭐야! 이거 놔! 안 놔!”

“대의원님. 조금만 진정하세요. 예?”

“진정은 무슨,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타플강드가 붙들린 몽둥이를 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윗덩이마냥 꿈쩍도 않으니 혼자 끙끙 힘을 쓰다 헉헉거리며 손을 놓았다.

“숙부님.”

“허억, 허억. 그래. 자네인가.”

“정신이 좀 드세요?”

“그래. 후우우. 내 좀 흥분한 모양이야. 이젠, 후. 이젠. 그래.”

타플강드 의원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런다고 해결이 될 일이 아니지. 먼저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부터 알아야겠어. 이보게, 지부장.”

전달자가 바닥에 쓰러진 지부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여기저기 터져 얼룩덜룩한 꼴에, 얼굴이 두 배로 부풀었다. 멍하니 벌어진 입에서는 소리 없이 피거품만 잔잔히 끓어올랐다.

전달자가 손을 뻗어 지부장의 목을 짚고, 뒤이어 부푼 살덩이가 되어 버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전달자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상단의 이인자, 본단 지부장은 이렇게 상단주에게 맞아 죽었다. 허망한 최후였다.

“너무 심하셨어요. 지부장이 실수를 했다고 해도, 이리 죽을 이는 아니었는데요.”

“에잉, 허약한 놈. 겨우 그거 맞았다고.”

“숙부님.”

“왜, 내가 못 할 소리 했나?”

타플강드 의원이 콧방귀를 뀌었다.

전달자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대체 어찌 된 거죠? 시중에 도는 소문이, 차마 입에 담을 것이 아니던데요.”

“그야 이제부터 들어 봐야지! 저놈이 알 테니까.”

“······이야기도 안 들어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전달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명백한 책망의 눈빛이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숙부님.”

“왜! 이딴 무능한 새끼 하나 쳐죽인 게.”

“의회의 신민이었어요. 제국의 핏줄이라구요.”

“그러니 더 참을 수가 없지! 불결한 혼혈 종자! 더러운 피가 섞이니 이딴 저능아가 나오지! 오히려 이런 잡종이 더 더러운 새끼들이야.”

“숙부님!”

전달자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타플강드 의원도 마주 고함을 질렀다.

“내가! 바깥 놈들이 뭐라 떠드는 줄 알아? 짐승과 붙어먹은 고자새끼라고! 이 씹어먹어도, 개 같은!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타플강드야! 대륙의 주인이다! 그런 고귀한 내가! 내 체면이!”

타플강드 의원은 일개 상인이 아니었다.

의회의 대의원, 새 시대의 지배자였다.

“시대가 열려도 어떤 놈들은 떠들겠지! 고자 새끼가 젠체한다고! 어떤 놈이 날 존경하겠냐고!”

시엔은 그저 약이나 올리려는 심산이었지만, 의회의 대의원에게는 인격 살해와 같은 모함이었다.

전달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일단 어떻게든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 일단 어떻게든.”

타플강드 의원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어떻게?

공식 발표를 해도 그뿐이었다.

이미 소문이 도시에 자자한 상황이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것이 잘 익은 홍시와 같은 꼴이었다. 조금만 더 놔두면 알아서 물러 쪼개져 내용물이 샐 상이었다

“의원님?”

“······발라스 의원께 연락을 드려라.”

“그게 무슨.”

“때가 되었다고. 그렇게 전해. 어차피 소문이야. 발표를 해도 그뿐이지. 아예 떠들지 못하도록 싹 쓸어버려야겠지.”

“하지만, 대계를 실행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대계는 2차 계획이었다.

본래는 가너 디엔바를 암살하고 그 혐의를 헤라군 백작가에 뒤집어씌우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면 두 백작가의 조사대 겸 군대가 할타스에 집결하게 될 테고, 그때 대계를 통해 양쪽의 군을 전부 쓸어버릴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후부터는 이제 귀족과 귀족의 분쟁 따위가 아니다.

왕국 수준에서 나서는 전쟁이 발발한다.

그러한 계획이었다.

“어차피 디엔바의 애송이가 도시에 있잖나! 애송이를 죽이고 대충 기사 몇만 살려서 돌려보내! 뭐든 헤라군 만세만 외치면 될 거 아냐! 알아서 전쟁을 벌이든 뭐든!”

“숙부님, 대법 수준의 이상 현상을 일개 백작가의 소행으로 몰 수는······”

“그러면 이대로 소문이 온 대륙으로 퍼지도록 놔 두자는 건가!”

“하지만 의회의 일이.”

“내가 의회야! 내가 의회라고!”

전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장 다음 회합부터 의원들의 맹공이 쏟아지리라.

어쩌면 대의원직의 박탈까지도 거론될지도 모르는 큰 실책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필히.

거사가 가까워진 지금, 대의원 하나 치우는 일에 반대할 인물이 많지 않을 터였다.

심지어 같은 파벌의 의원들마저도.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대의원으로서 자격이 있는 인물인가는 둘째였다.

왜냐하면 그는 숙부님이까.

공명정대하고 유능한 타인보다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숙부가 권력을 잡아야 했다.

그가 제국의 동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때려죽이는 사람이라 해도 숙부님이니까.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당장 술식을 전개하시라 전해. 도시 밖으로 한 놈이라도 빠져나가기 전에 끝장을 봐야 하니까.”

전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안개로 흩어져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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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타스의 모처. 타플강드 의원에게서 떠난 전달자가 곧장 악령으로 화해 스며들었다.

“발라스 의원님, 때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었는가.”

발라스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야말로 정말로 존경할만한 인물이었기에.

누구와는 다르게.

“의원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대계를 대신할 인물을 준비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되었네. 이미 살아서 고통뿐인 삶, 내 죽음으로 새 시대에 도움이 되면, 그 도움이 나림 그 아이의 이름으로 역사가 되는 일인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역사 기록은 의원님께서 직접 희생하지 않으셔도 얼마든지······”

“아닐세.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이 늙은이가 먼저 본을 보여야겠지.”

“의원님!”

전달자가 안타까움에 소리를 질렀다.

발라스 의원이 그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나림 그 아이가 천상에서 외롭지 않겠나. 살아서 잘해주지 못한 애비이니, 사후에나 만나 부녀의 정이나 나눠보려 하네.”

< 46. 도화선 [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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