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261화 (257/268)

< 46. 도화선 [6] >

컹컹! 컹컹컹!

사냥개가 연신 울부짖으며 날뛰었다.

“바크, 왜 그래? 좀 얌전히, 젠장. 앉아! 앉아!”

타플강드 상단의 경비원 티오가 준엄히 외쳤다.

한 마리 몸값이 티오의 일 년 급여보다 더 비싼 귀한 품종의 사냥개였다. 길들여 몰기는 하나 기실 개가 상전이다.

그런 이유로 티오가 상전 모시듯이 하니 사냥개가 그 사육사를 보통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짐승은 제게 잘해주는 이가 최고였으니까.

“앉아! 착하지, 앉아!”

컹컹! 컹컹컹!

티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바크가 계속 짖었다.

티오가 당황했다.

적을 발견하면 제자리에서 세 바퀴 돌고 엎드렸다 다시 세 바퀴 돌고.

티오가 추격을 명령할 때까지 그렇게 신호를 보내도록 훈련이 된 녀석이었다.

이렇게 대뜸 짖어대며 목줄을 잡아당기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애가 대체 왜 이래? 바크야. 엎드려!”

끼잉, 끼이잉.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낑낑거리는 소음뿐이었다.

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간 꼬리며, 그 아래로 질질 새는 것이 오줌까지 지리는 꼴이었다.

“아니, 뭐야, 저녁이 상했나? 바크야? 악!”

순간 사냥개가 휙 뛰쳐나갔다.

사냥개의 힘이 얼마나 좋은지, 손에 쥔 목줄을 붙잡고 티오의 몸이 질질 끌려갈 정도였다.

“젠장! 바크! 안 돼! 안 돼! 멈춰! 멈춰!”

티오가 열심히 외쳤으나 명령이 모두 무용이었다.

끝내는 손에 힘이 풀려 목줄을 놓치고 나니,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치는 사냥개의 모습도 머지않아 시선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X발, 안 되는데.”

티오가 울상을 지었다.

저 사냥개 한 마리가 얼마짜린데.

도망이라도 쳐서 놓쳤다가는 곧장 노예 신세가 되고 말 터였다.

급여 전부 변제하느라 한 푼 못 받고 무급으로 일하는 노예 신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젠장, 바크! 이리와! 바크! 바크!”

티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목이 찢어져라 외쳐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X발, 이제 개새끼한테도 무시를 받고! 개새끼, 내가 그간 얼마나 잘해줬는데.”

티오가 분통을 터뜨리며 발을 굴렀다.

그러나 기다리던 개소리는 돌아오지 않고, 발바닥이 땅을 내리치는 철퍽철퍽 소리만 연신 울렸다.

음? 철퍽?

티오가 문득 치미는 이질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원의 잔디는 전문 정원사가 넷이나 달라붙어서 관리한다.

푹신하면서도 부드러운 잔디밭이란 아무리 발을 세게 굴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인데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황망히 얼어붙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그래. 물이 고였을 수도 있고, 아까 바크가 지린 오줌 밭인 거 아냐?

그러나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는 생각이었다.

그보다 더한 불안감 때문에. 사람이 간혹 영성이 열려 여섯 번째 감각을 틔울 때가 있었다.

대개는 누군가의 안위에 대한 직관에 대해서였다.

뭔가 큰일이 났다.

티오가 삐걱삐걱 고개를 숙였다.

질척한 질감의 무언가였다.

잔디 대신 그 형상을 했으나 살점으로 뭉친 듯한 기괴한 모양새였다.

그러길 잠깐, 신발의 콧등으로 그것들이 번졌다.

“으악! 아아악!”

티오가 몸서리를 치며 발을 털었다.

피와 살점이 튀어 오르며 신발이 순간 제 질감을 되찾았다.

그러나 사람의 다리가 두 개라, 한쪽을 털면 하나를 지지대로 세워야 하는 법이었다.

문득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든다.

티오가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아아아악! 그아아악!”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마수가 피부에 자리를 잡고 아래로 뿌리를 내려 소화액을 분비했다. 강산으로 체내가 녹아나니 그 용해액을 집어삼켜 영양으로 증식하여 번진다.

태고의 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살점들로 이루어진 생명의 요람이자, 또한 모든 것을 집어삼켜 지우는 끝 없는 탐욕의 무덤이었다.

* * *

타플강드 의원이 제 반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작된 모양이군?”

분명 타플강드 의원 혼자 있는 방이었다.

돌연 대답이 날아들었다.

“예, 비명이 울리더군요.”

발끝부터 머리에 이르기까지 온통 검게 싸맨 청년이 어둠 속에서 스르륵 솟아올랐다.

전달자라 불리는 의회의 일원이었다.

타플강드 의원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모습이었으니까.

“준비는 완벽하겠지?”

“안심하십시오. 누구라도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

“이걸로 만화원도 끝인가. 쯧쯧. 폐하께서도 그냥 순순히 죽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꼭 이렇게 직접 손을 써야 한다니. 용의 저주라는 것도 별거 아닌 모양이야.”

“그 무슨 불경한 말씀이십니까? 폐하께선 대의를 위해 용의 숨통을 끊고 홀로 저주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가장 고귀한 신분에 걸맞은 고귀한 희생이었습니다만.”

전달자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타플강드 의원이 비릿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나?”

“그럴 리가요.”

전달자가 킥킥 웃으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딱딱한 태도는 어디로 가고, 장난끼 넘치는 청년이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저주의 존재를 알았으면 용의 근처에도 안 가셨을 분인데요. 그 졸렬하고 옹졸하신 분께선 도저히 새 시대의 주인 감이 아니셨지요.”

타플강드 의원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용의 숨통을 끊으시겠다고 나서셨지. 그게 그분의 위엄을 드높일 거로 생각하셨겠지만, 내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오죽하면 그분의 업적에 용살자를 붙이겠다 말씀하시더군요. 진을 빼 제압한 용을 한칼로 처형만 하시려는 주제에 말입니다.”

“뭐. 드래곤 슬레이어라. 탐나는 칭호가 아닌가. 무릇 사내라면야 거기 혹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 비참한 최후를 모른다면 말이죠.”

대의원과 전달자가 서로를 보며 킬킬거렸다.

꼬박꼬박 높임말을 쓴다고 해서 곧 존경을 표시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높임말이 때로는 조롱을 내포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 타플강드 대의원이 아쉬운 낯을 했다.

“기왕이면 생포했으면 좋겠는데. 성유해의 소재도 알아야 하니. 하필이면 그걸 들고 도망을 치셔선.”

“애초에 생포를 목적으로 한 함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비스트와 아우터를 전부 밀어넣었다고?”

“거기에 초월 주문이 세 개입니다. 반 차원 차단 결계에다가 정신 파괴, 거기에 마력 충돌 지대까지 쌓아두었으니.”

“안에서 마법은 못 쓸 테고, 그럼 맨몸으로 비스트와 아우터 백을 상대해야 한다라. 확실히 살기는 글렀군.”

타플강드 의원이 돌연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비스트와 아우터를 반만이라도 남겨놓는 게 낫지 않았나? 그거 한 마리에 같은 무게의 황금이 녹아났는데 말이야.”

“기회가 있을 때에 확실히 제거해 드려야 합니다. 성유해의 힘을 빌린다면 어설픈 함정 따위는 통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게 문제야. 그 방해 주문 속에서도 성유해의 힘이라면 어느 정도는 마법을 쓸 수도 있을 텐데. 기껏 만든 비스트와 아우터가 상하기라도 하면.”

제국 기술로 만들어진 최고의 키메라들이었다.

같은 무게의 황금이라는 것이, 인간보다 훨씬 그 중량이 나가다 보니 한두 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성유해를 회수하실 수도 있겠지요. 절반만 받겠습니다. 어떠세요?”

“흠, 흠. 그렇다면야.”

타플강드 의원이 눈을 빛냈다.

성유해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대의원들이 지금이야 협력하는 척을 하지만, 새 시대가 열리고 나서는 또 상황이 달라지리라.

그때 성유해야말로 강력한 수단이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장을 열어 병을 들어 보인다.

전달자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수정잔에 호박색 미주가 담긴다.

늙고 젊은 두 사내가 잔을 높이 들었다.

타플강드 의원이 건배사를 뱉었다.

“그럼. 폐하를 추모하며.”

“폐하를 추모하며.”

* * *

흔히 대형의 미술 조형물을 동상이라 불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틀린 표현이었다.

동상은 동으로 만들어져 동상이었으니까.

석재로 만들어진 조각은 석상, 목재로 만들어지면 목상으로 불러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피와 살로 만들어진 조형을 일컬어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나마 적당한 표현은 육상이 되리라.

타플강드 본단 정원에 본래 없던 육상들이 섰다.

핏줄이 서 맥동하는 질감이며, 하나같이 뒤틀려 누운 자세에 일그러진 표정의 육상들.

고통을 표현하는 듯한, 그러한 섬뜩한 조형이었다.

시아노말로캔스, 원시의 바다를 이루는 마수가 만들어낸 작품들이었다.

불길처럼 번진 시아노말로캔스가 대저택의 정원을 집어삼키며 결국 본채 건물에 닿았다.

대지와 이어진 대리석 토대와 만나, 석재에 뿌리를 내리고 살을 뻗어 중력을 거슬러 타고 올랐다.

저택의 외관이 서서히 살점에 뒤덮여 간다.

개중 유리창에 피어 뿌리를 뻗으니 얇은 유리라서 금방 관통하여 반대편에 이르렀다. 새로이 피어나 증식할 자리를 만난 것이다.

그렇게 내부의 침식이 시작되었다.

한편, 본단에 부여된 감지 마법이 생물체의 침입을 감지했다.

그러자 주문의 수식이 내장된 명령을 수행했다.

설계된 회로를 따라 저택의 심처로 마법적 신호가 전달되고, 거대한 세 개의 장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원형의 유리 통이었다.

의회의 인장 반지를 낀 이들이 유리통 안에 자리를 잡았다. 빛나는 바닥을 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그들의 나체에 빈 곳 없이 빽빽하게 새겨진 좁쌀만 한 글자들이 온갖 색채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 주문이 저택을 휘감았다.

동시에, 병 안 술자의 검지 끝의 미세한 부분이 자취를 감추었다.

잘리거나 타거나 말라 스러지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소멸, 육신의 일부분이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는 현상이었다.

초월 마법.

존재의 소멸을 대가로 이루어지는 강력한 주문.

의회의 가장 위대한 마법적 성과였다.

* * *

시엔은 베른닐의 품에 얌전히 안긴 상태였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마수를 제어하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 걷고 움직이는 판단조차 방해가 되니까.

시아노말로켄스는 다른 마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마수라 해도 산 것이다. 그것들도 좋아하는 먹이와 취향이 있고, 원하는 생태와 환경이 있었다.

모든 산 것, 동물과 식물이 통틀어 그러하듯이.

그러나 원시의 바다에게는 예외였다.

그저 살아있기만 한 것, 사방으로 번져 그 숫자를 불리니 그저 그뿐으로 존재했다.

그러니 그 모든 영역을 시엔이 통제해야 했다.

저택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막고, 일행이 닿아서 침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제어하는 중이었다.

과거 경지를 한참 뛰어넘은 지금에 와서도 힘에 부치는 작업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연산이 이루어지니, 용의 신체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뇌가 녹아내렸으리라.

아닌 게 아니라 입에 짭짤하니 비린 맛이 돈다.

점막으로부터 미세한 출혈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나, 어차피 그렇게 버틸 필요도 없었다.

정원의 가장자리, 담에 닿은 부분으로부터 살점이 색을 잃고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시엔의 역소환, 마수를 본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는 과정이었다.

이미 정원을 빙 둘러 정리를 마쳤다.

그러니 저택에 닿은 녀석들만 남기도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정원의 넓은 부지를 제어하는 일과, 딱 저택만을 둘러 막아내기는 아예 그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지금 조금만 더 고생해야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음?”

시엔이 눈썹을 까닥거렸다.

저택 내부로 파고든 시아노말로켄스로부터 연결이 뚝 끊겼다.

시엔이 의지로 풀어주거나 개체의 소멸이 아니고서야 현상계에 실체화한 마수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는다.

시아노말로켄스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것들이 무수히 모여 형상화하는 군집체였다.

그는 일정 지점을 기준으로 칼로 베듯 소멸시킬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보호막이네? 워. 이건, 대단한데.”

시엔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보호막이라도 미세한 틈은 있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그러한 틈을 메꿀 이유도 없고.

보호막이란 사람이나 짐승, 혹은 화살 등의 투사체 따위를 막아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니 주문식 자체가 아주 촘촘한 그물을 짜도록 만들어졌다.

그물 구조는 충격을 효율적으로 분산하고, 일부 파괴되더라도 균열이 번지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벽 구조는 부분 충격에 취약하고 균열이 번지기 쉬우면서도 마력 소모는 더욱 늘어난다.

그래서 과거 흑마법사의 시대에도 먼 옛날에 이미 사라진 방식이었다.

“세상에, 벽 구조라니. 누가 이런 무식한…….”

“아무리 견고해도 벽 구조라면 그 한계는 명확할 텐데요.”

“선배님, 제가 깨 보겠습니다. 그, 이 세올도 큰 거 한 방만 쏴 보고 싶은데…….”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이걸 뭐하러 깨?”

“방어막을 깨야 안에 들어가잖아요?”

“어차피 완전 단절형이면 안에서도 못 나와. 이미 마수가 들어갔고, 연결이 끊겨 통제도 안 되는데.”

시엔이 픽 웃으며 말했다.

“지가 살고 싶으면 방어막 풀고 나오겠지. 뭐.”

< 46. 도화선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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