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도화선 [5] >
도시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타플강드와 할타스 상인 연합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나고 나서부터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창고며 공방, 가게와 사업소에 연신 무장 병력이 들이닥쳐 부수고 약탈하며 태우는 일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치안을 지켜야 할 치안대가 오히려 약탈에 앞장을 섰다. 소방대원들이 오히려 방화를 저지르고 돌아다녔다.
그네들이 전부 상단의 봉급을 받는 처지였다.
상시에야 구역을 맡아 관리한다지만, 막상 전면전이 터지고 나니 상단의 사병에 불과한 치들이라서.
도시를 양분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었다.
서로 피해만 계속 쌓일 뿐이니, 이득을 보는 이라고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용병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용병 중에 가장 큰 이득을 챙긴 이가 바로 시엔이었다.
어지간한 용병단 급의 보수를 따박따박 챙겨 받는 와중이었다.
심지어 본인은 편히 지내며 말로만 사람을 부리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자유도시의 점유를 건 싸움은 할타스 상인 연합의 확실한 우세였다.
만화원의 마법사들이 타플강드 상회의 시설물들을 화력으로 빵빵 터뜨리고 다녔으니까.
만화원의 마법사들은 중간이 없기도 했다.
성유해의 힘을 빌린 강력한 마법은 그냥 시설과 그 안에 든 것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 안에 든 장부며 사람, 재화에 이르기까지 몽땅.
상인 연합의 입장에서는 공격을 만화원의 의뢰로 돌리고, 용역을 수비적으로 운용하여 시설들을 지키는 편이 나았다.
시설이 날아가면 복구하는 데에 또 금화가 든다.
장부와 인명이 상하고, 거기에 재물을 약탈당하면 그만한 손해도 또 없었으니까.
그러니 상대적으로 타플강드의 피해는 이미 치명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반해 상인 연합은 제법 그 세를 보전했다.
용병들도 그를 아니 점점 타플강드의 의뢰를 거절하려 든다.
타플강드가 용역을 구하려면 웃돈을 줘야 할 지경인데, 상인 연합에는 너도나도 일거리를 찾았다.
이대로라면 타플강드 상단이 할타스의 영향력을 잃고 쫓겨나는 일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제삼자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터다.
“젠장! 기어코! 미친 작자 같으니라고!”
상인 연합의 대표, 애던이 분통을 터뜨렸다.
갈등이 격화되면서, 시엔의 거처는 호화 여관에서 케이즈 상단 본단으로 옮겼다.
에던의 요청이었다.
말로야 귀한 손님을 더 극진히 모시겠다고 하나, 시엔이 보기에는 뻔한 수작이었다.
혹여 이리로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강력한 전력을 곁에 두려는 요량이겠지.
그러나 실제로 극진히 대접받고 있는 와중이라, 시엔이 그냥 모르는 척 그렇게 했다.
“어떻게 쌓아 올린 도시인데, 그걸 귀족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겠다니, 상도의도 없는 작자가.”
한창 식사 중이었다.
급한 소식이라며 귓속말을 전해 듣고 손님의 면전임에도 분함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개는 대단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었으나.
뭐. 그러거나 말거나.
시엔이 칠면조 스테이크 한 점을 오물거렸다.
듣자 하니 창자로 싸서 밀봉한 고기를 끓지 않는 물에 오래 익혔다던가.
새로 개발한 조리법으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불을 뺐다 넣었다 하며 아주 번잡스러운 방식이라더라.
하지만 그런 만큼 맛은 좋았다.
고기는 혀로 눌러 풀릴 정도로 부드럽고, 씹어서 나오는 육즙은 본래 칠면조가 이러한 고기던가 의심이 갈 지경이었으니.
그러나 손님이 이러한 상황을 맞아서 계속 모르는 척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시엔이 슬쩍 물었다.
“혹시 디엔바 백작 측에서 움직임이 있었나요?”
“아. 이런. 죄송합니다. 실은, 아라이드 왕국 국경으로부터 군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군요.”
“군대가 움직였다구요?”
“그렇습니다. 타플강드 그 미친 작자가, 기어코 디엔바 백작에게 도움을 요청한 모양입니다.”
“본래 그러려고 했으니까요.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그 수밖에는 없었겠죠, 뭐.”
시엔이 대답했다.
애초에 이 싸움의 발단이 타플강드가 도시의 지분을 디엔바 백작에게 팔아넘기려고 한 까닭이었다.
할타스 상인 연합에서 그를 저지하려는 수작으로 시엔을 고용해 창고를 파괴했다.
사실, 이는 경고의 의미였다.
도시를 팔아넘기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그러한 뜻으로.
그러나 타플강드 상회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을 가하니 전면전의 형태가 되고 말았지만.
그리고 실제로 기다리고 있었다.
얼치기라고는 하나 소드 마스터가 둘이나 있었다.
만화원이 창고 습격에 나서서 마주친 것이 하나. 그리고 시엔이 공방 앞에서 또 하나를 치웠다.
사실상 마스터 둘이 오러를 뿜으면, 승부는 대개 그 시점에서 끝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용병들이 목숨 내놓고 산다지만, 마스터 둘을 상대하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
용병을 구할 수 없으니 지금쯤 망해가는 쪽은 타플강드 상회가 아니라 상인 연합이 되었어야 맞았다.
그러나 마스터 하나는 아는 이 없이 사라졌고, 또 하나는 수많은 목격자 앞에서 숨이 끊어졌다.
“저희도 이제 슬슬 장사를 접어야겠네요. 귀족을 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시엔이 아쉬운 듯 말했다.
귀족이 끼어들면, 용병이 할 일이 없다.
타플강드 상단이라면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귀족의 군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귀족의 군대를 공격하는 순간, 상인 연합은 곧장 적성 세력이 되어 토벌되고 말 테니까.
어찌어찌 디엔바 백작군을 막아낸다고 쳐도, 그 후엔 아예 왕국에서 나서게 될 것이다.
상인이 아무리 금력을 휘두른다 한들, 한 왕국의 정규군과 싸워서는 일말의 승산조차 없었다.
애초에 할타스의 모든 인구, 아이와 노인과 병자 등등에 빈민을 다 더해도 왕국의 군대보다는 숫자가 모자랄 테니.
이제 할타스 상인 연합이 할 수 있는 행동이란 단 하나뿐이었다.
맞불을 놓는 것.
귀족은 귀족만이 상대할 수 있었다.
타플강드가 서쪽의 아라이드 왕국 귀족 디엔바 백작을 끌어들였다면, 상인 연합은 동쪽 왈켄 왕국의 헤라군 백작과 연을 이었다.
“자유도시도 이제 끝이네요. 유감을 표합니다.”
디엔바 백작이 이기건, 헤라군 백작이 이기건 간에 자유도시는 이제 끝장이었다.
승자가 도시를 제 영지로 편입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둘이 반반 갈라 먹게 될지도 모르고.
자유도시의 상인들 입장에서는 큰 손해였다.
영지에 속하게 되면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타국에 속한 상단은 그만큼의 견제를 받기 마련이다.
이리저리 높은 관세까지 물게 되면 상단의 순익이 최소 반절은 꺾이고 말 터다.
물론 도시의 지분을 팔아 일시불로 막대한 금화를 얻을 수는 있겠지마는…….
장기적으로 보면 그 정도로 메울 수 없는 손해가 된다.
애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의뢰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본단을 직접 공격해야 할까요?”
“예. 타플강드 그 작자를 제거해 주셔야겠습니다. 기한은……. 오늘까지입니다.”
상인 연합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왈켄 백작에게 연락하여 수습을 해야 하나, 일단 도움을 청하고 나면 무를 수 없다.
그 전에 상단주를 제거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분을 양도할 계약의 주체가 사라져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되면 디엔바 백작이 직접 나선다고 하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을 테니까.
“조금만 더 일찍 결심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상인의 법도가. 하아. 차라리 그랬더라면.”
아무리 상계의 일이 하루하루 전쟁과 같다고 해도 그 주인을 직접 공격하는 일은 암묵적인 금기였다.
금기를 어기고 나면, 상계 전체가 나서서 보복을 가한다. 상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면 마땅한 파산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상인들이 저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금기였다.
상계의 수작이 더럽더라도 잃는 것은 재산뿐으로 한정하기 위해서. 내가 못 하면 남도 못 하기에.
“괜찮으시겠어요?”
“타플강드가 먼저 선을 넘었습니다. 이쯤 되면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요.”
지분을 넘기게 되면, 타플강드나 상인 연합이나 둘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그 피해는 상대적으로 상인 연합이 훨씬 커다란 것이었다.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받는 황금을 타플강드는 혼자 독식하나, 상인 연합을 나누어야 했다.
무엇보다 영지에 속하게 되어 받는 혜택이 문제였다.
세금을 내는 만큼이나 혜택을 받게 되나, 그 혜택을 온전히 먹는 타플강드에 비해, 상인 연합은 이리저리 잘라야 하니 그 또한 큰 문제였다.
“그러면, 의뢰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애던이 피곤한 기색으로, 하지만 간절히 물었다.
시엔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저희야 단가만 맞는다면요.”
* * *
얼굴을 가린 복면이 영 불편하기 그지없다.
시엔에게 복면이란 어색한 것이었다. 보통 얼굴을 감추는 일이 없었으니까.
당당한 이는 낯을 가릴 필요가 없다. 시엔은 항상 당당했으니 무언가를 뒤집어쓴 역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의회의 규모를 아직 모르고, 또 수법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미지다. 시엔이 재림하여 적수가 없던 것도 그 미지에서 기인했듯이.
무엇보다 이제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함부로 얼굴 팔고 다니다가 내 영민이 공격받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특히나 의회처럼 뿌리가 깊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몰라 단번에 캘 수 없는 상대라면야.
“다들 바짝 긴장하고.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림자 탑의 진서고에 선배님들이 남겨둔 기록 중에는, 제국에서 자행하던 온갖 비인간적인 실험에 대한 것도 있었다.
의회가 제국의 후예이니만큼, 그 실험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당장 의회가 한 일들만 보아도 그랬다.
오러를 쓰는 늑대인간과 소드 마스터의 제조.
거기에 영맥을 뽑아 쓰는 기술이란 과거나 지금이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맥은 자연에 속한 힘이라 천신께서 직접 관측해 존재하지 않는가.
천신께서 엘프들에게 세계수를 주고 그로서 관리하도록 하신 세계의 근간이었다.
거기에 또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대수림 시설에서 대량의 용골을 발견했다.
그 강대한 생명체를 사냥할 정도의 한 방은 가지고 있으리라고.
그러나 대의원쯤 되면 아는 바도 많겠지.
겨우 피래미나 여럿 건지는 것보다 대물 하나를 낚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를 위해서라면 다소의 위험 정도는 무릅써야 하는 법이기도 했고.
워낙에 넓은 땅이라, 벽을 넘기는 쉬웠다.
그 넓은 부지를 감시하려니 사각을 찾기란 간단했으니까.
각을 잘 세워 깎아놓은 정원수들.
그 뒤에서, 시엔이 산호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사악한 진언이 울려 퍼진다.
뱀이 속삭이는 듯한. 어둠이 흐르는 듯한.
산 자가 듣고 본능으로 알아 사악한 언어가.
이미 주문이 필요 없는 경지에 오른 시엔이다.
굳이 입으로 소리 내 읊는 것이 보통 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신세계가 부정한 차원과 뚫린 문으로 이어진다.
포탈 너머로 비치는 부정 세계의 심처.
요요히 파도치는 검은 물이 한없이 뻗어나간다.
먼 곳에 검은 태양이 걸린 수평선이 어두운 아래와 덜 어두운 위로 세상을 갈랐다.
태고의 바다.
부정 세계의 해안이었다.
세상이 이 모양으로 있기 전에 존재하던, 본질이 없이 그저 살아있던 의지 없는 것들의 바다.
시엔이 마침내 현상 세계에서 눈을 뜬다.
허공으로부터 붉은 것이 촤르륵 쏟아졌다.
부정 세계에는 색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검게 보이는 것이 실은 검붉어 반쯤 썩은 과육의 색이다.
검고 질척하니 점성을 가진 것이 땅에 스민다.
대지에 파고든 잔디의 뿌리로부터 붉은 것이 활동을 개시했다. 잔디의 밑단으로부터 타고 오르니 그 형상이 살점을 닮았다.
순식간에 잔디의 형상을 한 살덩이가 피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살점과 그 위로 번지는 혈관.
쿵쿵 눈에 보이게 맥동하니 불길하기 짝이 없다.
“선배님? 이게 무슨…….”
“마수야. 버섯이나 곰팡이 비슷한 녀석들인데.”
“균사란 말씀이시지요?”
트리예가 아는 체를 했다.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충하초? 뭐 그 비슷한 녀석들인데.”
“그러면, 마수인가요?”
“태초 이전에 세상이 그저 혼돈으로 지독한 때에, 생명은 그저 산 것으로 존재하였다. 의지도 없이 혼도 없이 그저 살았더라. 그저 살아 번식하여 제 종을 전파하니 곧 바다를 이뤄 번성하였다.”
세올과 트리예가 서로를 바라보며 갸웃거렸다.
“천신께서 세상을 처음 보았을 제, 바다에서 생명을 보고 또 물고기의 형상을 보셨음이라. 그리하여 그분께서 지켜보심에 첫 생명이 탄생하다. 창세기가 아닌지요?”
“뭐. 그런 거지. 세상에 처음으로 생물이, 어류가 나타나기 전에 있던 아이들인데.”
“이름, 이름은요?”
세올이 흥분한 기색으로 물었다.
마수 소환은 따로 익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형상과 성질을 알고 부정 세계 어디에 살며 또 그 이름을 알면 그만이니.
그걸 실제로 소환하는 일과 명령을 내려 제어하는 난이도는 별개였다.
실력도 안 되는 녀석이 상위의 마수를 부리려고 하다간 되려 잡아먹히고 말 터이니.
시엔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서. 제가 부른 마수한테 잡아먹히고 나면 흑마법사 취급도 못 받으니까.”
뒤이어 대지 위로 살점이 번져나갔다.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잔디가 퍼져나간다.
나무에 닿아 껍질을 타고 오르니 가지와 잎사귀가 살점으로 이루어져 쿵쿵 맥박을 붙였다.
일종의 균사, 동충하초라 하여 곤충을 잡아먹고 크는 버섯과 같은 녀석들이다.
다만 그 번식력이 왕성하여 걷잡을 수 없고, 산 것과 살지 않은 것을 가리지 않으니 석재와 금속마저 집어삼켜 숙주로 삼았다.
과거 흑마법사도 차마 부르지 못한 마수였다.
한 번 부르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데, 소환자의 의지가 아니면 딱히 제어할 방도가 없었다.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져 불에 잘 타지 않고, 추위에 잘 얼지 않으니 번성하여 넘치면 세상을 온통 집어삼켜 파멸을 가져올 것들이라서.
< 46. 도화선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