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251화 (247/268)

< 45. 금과 쇠 [6] >

자유도시 할타스.

외양부터가 여느 도시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일단 성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허름한 천막 떼기며 판잣집 따위가 다닥다닥 붙어 대로의 양옆으로 펼쳐졌다.

대로변엔 지저분한 꼴을 한 것들이 바가지 하나를 두고 대가리를 처박았는데, 한둘이 아니라 빈 자리마다 그러한 꼴이다.

그 사이로 덜 여물거나 혹은 늙은 여인들이 괜히 서성거리며 용병들을 노려보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온갖 악취가 밀어닥치는데, 사람의 대소변과 살 썩는 냄새, 상한 음식물의 시큼함 따위가 섞여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그 사이를 통과하고 나니 그제야 성문 비슷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통나무를 세워 만든 높다란 목책과 마찬가지로 같은 자재로 세운 관문이었다.

관문을 지나니 그나마 사람 사는 꼴이었다.

마차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도시의 미관이 깨끗하게 바뀌었다.

나무 건물들이 벽돌집이 되었다가 끝내 멀끔한 석재 저택들로 바뀌고, 지나는 이들의 옷감이 고급이 되면서 배만 점점 불렀다.

시엔이 혀를 찼다.

“쯧. 이딴 것도 도시라고.”

“수치도 모르는 이들이네요.”

옆에서 트리예가 맞장구를 쳤다.

세상 아무리 사악하고 멍청한 귀족이라도 도시를 이렇게까지 방치하는 이는 없다.

빈민을 구제하지는 않더라도 안 보이도록 치우는 정도는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본래 빈민가가 뒷골목에 은근히 위치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했다.

빈민이란 귀족이 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

남에게 보이기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라서.

그럼에도 도시 꼴이 이 모양인 이유는 간단했다.

자유도시의 주인이 상인들이라서.

상단의 본단 장원에 이르러서야 상행이 마무리되었다.

직원들이 달려들어 화물을 분류하고 또 다른 짐마차가 나타나 화물을 실고 멀어져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쪽으로 조금만 가시면 거인의 안식처라는 여관이 있습니다. 저희 상단이 운영하는 곳이라, 특별히 모셔드리라 한 줄 적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뭐 이런 걸 다. 고맙게 받지요.”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시엔이 종이를 받아들자 상장이 비굴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중에 사람을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단주님께서 꼭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 하셔서요.”

“그럼 그때 뵙겠네요.”

“흐흐. 아무쪼록 고대하고 있겠습니다요.”

그렇게 상단을 뒤로하고 일단은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은 멀지 않았고, 또 눈에도 잘 띄었다.

거인의 안식처.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다 싶다.

좌우와 위로 커다란 대저택이었는데, 진짜로 거인이 안에 누워 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이만한 저택이 여관이라는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려니, 덩치가 산만 한 녀석이 정중한 태도로 앞을 막아섰다.

“혹시 소개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건가?”

시엔이 상장이 쓴 쪽지를 건넸다.

덩치가 받아 훑고는, 비켜서며 허리를 접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내놈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짐을 빼앗아간다.

저들끼리의 수신호가 있었는지, 여관의 수속을 밟기도 전에 방으로 안내하겠다며 척척 앞장을 섰다.

남녀가 섞이고 인원은 여덟인데 방을 어찌 배정하려나 싶었는데, 정작 방에 들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커다란 거실을 끼고 복층으로 방이 여덟 개.

어디 별장에나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내부도 보통 황금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왕성의 객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

저마다 씻고 잠깐 쉬다가, 직원을 불러 와인 몇 병과 다과를 차려놓고 일행들이 소파에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여행이 피곤했는지 파린이 시엔의 품속에서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시엔이 픽 웃으며 소파에 기대 말문을 텄다.

“이리 호화롭게 지낼 계획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좀 수상하지?”

상행의 은인이라고 해도 과한 사례였다.

그리고 상인이라는 치는 본래 이리 배포가 크지 않은 법이었다.

시엔이 귀족으로 왔다면 또 모를까, 용병으로 와 받는 대접치고는 너무 대단하지 않은가.

강한 용병을 대접한다면 그 이유야 뻔했다.

그만한 힘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이겠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이만큼 성의라면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텐데.

문제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도시의 상황부터 알아봐야 어떠한 의뢰가 날아드는지,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으리라.

“일단은 피곤하니 다들 하루는 푹 쉬고. 누렁이랑 나비는 정보를 좀 모아 봐. 특히 타플강드의 창고 위치와 보안을 중점으로.”

사실, 여기까지 온 것이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다.

일단 타플강드의 창고들을 몽땅 날려버려야겠다.

겸사겸사 수상한 게 있으면 부수고 깨고 훔쳐서 알아보고.

와중에 의회에 속한 다른 집단을 파악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간단한 일정이나 그렇다고 타인을 부릴 수도 없는 그런 계획이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을 써서 하는 파괴 공작이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러다가 외려 꼬리가 잡히면 이리저리 골치가 아플 터이니.

그러니 어째.

직접 나서서 날려버리는 수밖에는.

나비와 누렁이가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푹 쉬라니까.”

“이 늙은이가 쉴 만큼 지치지 않았지요.”

“맞아요. 저도 아직 쌩쌩하거든요!”

쉬라 해도 자처해 고생을 하겠다는데야.

문득 누렁이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림 자매님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시엔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림이 기쁜 기색으로 누렁이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 * *

요디는 소매치기였다.

남들보다 재주가 좀 더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할타스의 중급 거주지에 돌아다니는 열 명 중 하나는 소매치기였고, 개중엔 요디보다 더한 실력자들도 존재했으니까.

개중에는 아예 소매치기를 전문으로 터는 고수들도 있는 판이니, 요디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요디는 조직에서 나쁘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그 이유는 향상심이었다.

그냥 쓰고 버리는 소매치기들과는 달리, 매일같이 수련에 힘써 소매치기 기술을 연마했다.

조직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싹이 보이는 녀석은 키워줄 만했다.

최고의 소매치기들만이 고급 거주지에서 부자들을 상대로 호위를 뚫고 지갑을 털어올 수 있었으니까.

요디가 광장에 서서 오늘의 사냥감을 물색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사냥감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아무나 덥썩 물었다간 순식간에 초상을 치를 수도 있었다.

할타스에서 살인은 벌금형이다.

소매치기 하나쯤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부유한 이는 동전 몇 개 튕기면 그만이었으니.

너무 만만한 상대는 어차피 돈이 안 된다.

호위를 대동한 상대나 검을 찬 이는 위험하니 더 눈치를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대박이 터질 때도 있었다.

만만한데 돈이 많은 사냥감이었다.

그런 호구가 뜨면 그때부터는 피를 말리는 눈치 싸움의 시작이었다. 소매치기가 한둘이어야지.

그리고 그 호구가 떴다.

요디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었다. 보아하니 상당한 고급품이다.

그렇다고 따로 호위를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꼴을 하고서는 연신 신기한 듯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린다.

차라리 이 동네 사람 아니라고 대놓고 소리치지.

요디가 비웃음을 삼키며 조용히 여인을 따랐다.

여인이 노점 앞에 멈춰섰다.

꼬치구이를 파는 노점이었다.

노점상이 마구 떠드는 것 같더니, 여인이 꼬치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내 여인이 값을 치르려 주머니를 열었다.

여인의 길쭉한 손가락에 누런 것이 들려나왔다.

금화라고? 요디가 깜짝 놀랐다.

호구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큰 호구다.

저 주머니 안에 금화가 몇 개가 들었을까.

요디가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이 광경을 몇 명이나 보았을지 모른다. 호구 같아 보여서 주시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늦으면 안 된다. 요디가 곧장 뛰쳐나갔다.

몇 명 정도 이미 움직이는 이가 보였지만, 거리를 보아 자신이 가장 먼저리라.

요디가 뛰어 여인과 쾅 부딪쳤다.

“꺅!”

비명이 터졌다.

험한 방법이라 잘 쓰지 않는 수단인데, 이와 같은 때는 과감히 내지를 줄도 알아야 했다.

요디가 여인 위로 엎어지며, 손이 빠르게 움직여 칼날 조각으로 금화 주머니의 줄을 끊고 빠르게 제 품으로 챙겨넣었다.

“아,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

요디가 그리 외치며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품속에 주머니를 만져보니 동전이 여럿 잡혔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이 중 금화는 몇 개나 될까. 만약 세네개 쯤 되면 이 거지 같은 도시를 떠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제부터가 위험했다.

돈 많은 호구의 돈주머니를 훔쳤다. 다른 소매치기들이 보았으니 이제 빼앗으려 들 것이 뻔했다.

요디가 빠르게 뒷골목으로 스며들었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벽을 타 넘고 올라 지붕을 가로질렀다. 미리 준비한 은신처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억눌렀던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흐흐, 내가 해냈다. 내가 해냈다구.”

요디가 흐흐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를 열었다.

“자아, 어디 얼마나 들었을까요. 이왕이면 누런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

요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머니 속에 든 것이 온통 동화뿐이었으니까.

심지어 꼬치를 사고 거스름돈으로 돌려받은 은화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온통 동화들 뿐.

속았다.

요디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미 그 여인이 금화를 쓰는 것을 여럿이 보았다.

그런데 정작 그 내용물은 동화뿐이었다.

이대로 조직에 상납하면? 나머지는 어디로 빼돌렸느냐며 고문과 협박이 날아드리라.

그리고 배신자의 최후가 기다리고 있겠지.

요디의 턱이 덜덜 떨렸다.

“다, 당장 도망쳐야…….”

그러나 이미 늦었다.

“어이, 요디. 한 건 했다며?”

“이야. 코찔찔이 꼬맹인 줄 알았더니, 거기서 그걸 채 가네. 그쪽에 에이스 여럿 깔렸는데, 그걸 다 제낀 거 아니냐.”

“보아하니 이제 한끕 올려도 되겠던데? 니 몫좀 더 챙겨가도 될 것 같다야.”

애초에 조직이 소매치기를 믿겠는가.

큰돈 생기면 도망칠 놈들이라 아닌 척 그 동선을 꽉 쥐고 있었으니까.

“저, 그게요, 형님들. 설계에 당한 것, 같은데요.”

“설계?”

“그게, 이 안에 든 것들이.”

요디가 덜덜 떨며 주머니를 내밀었다.

안을 확인해 본 건달들이 표정이 확 썩었다.

건달들이라 표정에 그치지 않았다. 곧장 날아든 주먹에 요디의 눈앞에 불꽃이 번쩍 튀었다.

“너 이 새끼야, 어디 개수작을 벌이고.”

“죽어가는 새끼 살려놨더니 이렇게 통수를 치네?”

“그년이 금화 쓰는 거 온동네에 소문이 다 났는데 어디 솎아치기질에. 뭐 설계? 너 하나 잡자고 누가 설계 따위를 해?”

“제, 제가 아니라 다른 에이스들을 노린 건.”

“하. 멍청한 새끼야, 설계 같은 건 없어. 그거 다 너 같은 새끼가 변명으로 써먹으라고 퍼뜨린 거지. 애초에 소매 터는 새끼가 뭐 대단하다고 함정까지 파서 치우겠냐?”

“그, 그런.”

“설계 같은 소리를 좀 돌려놔야 너같이 딴마음 찬 새끼들이 어쭙잖게 사기를 쳐서 속이 나와요.”

“아니에요. 정말로 아니란 말이에요! 저는, 칵.”

건달이 요디의 배를 확 걷어찼다.

요디의 몸이 활처럼 꺾였다. 숨이 턱 막혔다.

억지로 숨을 쉬려 해도 그게 안 된다. 필사적으로 공기를 들이켜는 것이 꺽꺽 소리만 새어 나왔다.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이 영악해서는.”

건달이 혀를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요디의 옷을 쫙쫙 찢어 탈탈 털었다. 그러나 애초에 빼돌린 것이 없으니 턴다고 나올 리가 없다.

건달들이 달리 해석했다.

“하. 쥐새끼가. 그새 어디 꼬불쳤다 이거지?”

“아, 아니에요. 저는, 아니란, 말. 악.”

“그 말 아냐? 물은 답을 알고 있다고. 우리 보스께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거든. 몇 번 들어갔다 나오면, 없는 돈도 나오더라. 그러니 대답은 그때 가서 듣고.”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빌어? 애초에 빌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요디가 애원하며 싹싹 빌었다.

그러나 건달들은 코웃음을 치며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쥔 채로 질질 끌고 갈 뿐이었다.

* * *

할타스의 주점 중 피해야 할 장소가 여럿 있었다.

건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물론, 건달들 역시 아무나 제 아지트에 들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주점의 이름부터 남다르다. 들어오려면 큰마음 먹으라는 뜻이었다.

염소 구멍 역시 그러한 주점이었다.

매캐한 연기가 주점 안을 가득 채웠다.

담배와 대마 따위의 연기였다.

바닥에는 군데군데 토사물이 널리고, 누구는 얼근이 취해 주정을 부리고 누구는 카드를 나누며 희비가 교차했다.

딸랑.

주점의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뒤이어 발을 디딘 이를 보고, 소란스럽던 주점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 너머에서 담배를 태우던 마스터가 말했다.

“이봐, 아가씨. 잘 못 들어오셨어. 아가씨가 올 곳이 못 돼. 험한 꼴 보기 전에 돌아가시지.”

조직은 발을 잘못 들인 아가씨를 어찌해 보려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잘못 건드리면 그 뒷감당이 안 되니까.

조직이 하나가 아니니, 이때다 싶어 고자질하며 싹 쓸어버리려는 들면 답이 없었다.

“아, 저기. 사람을 좀 찾고 있는데요.”

“사람을 찾아? 호.”

마스터가 잠시 고민했다.

조직은 단가만 맞으면 아무 일이나 한다.

사람 찾는 일은 조직에서도 거부하지 않는 의뢰였다.

호구 잡으면 돈도 두둑하게 뜯을 수 있는 데에다 뒤탈도 없는 안전한 일이었다.

“도와드릴 순 있는데. 우린 좀 비싸.”

“아뇨. 도와달라는 게 아닌데에.”

여인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제 돈을 훔쳐 간 애가 여기로 오는 걸 봤는데요. 다른 건 몰라도 주머니는 제게 무지무지 소중한 거거든요? 그건 좀 돌려주지 않을까나아.”

“하. 겁도 없는 아가씨네.”

마스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얼뜨기 소매치기가 여기까지 꼬리를 달고 온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런 거 모르는 놈들이라. 도둑놈을 주점에서 찾으면 나올 리가.”

“하지만, 제가 똑똑히 봤는걸요!”

“말이 안 통하는 아가씨네. 정중히 모셔드려라.”

마스터가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문가에 앉아있던 덩치들이 인상을 쓰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이봐, 아가씨.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알아?”

“멀쩡한 사업장에서 생떼를 쓰면 곤란하지.”

덩치들이 여인의 팔을 붙들었다.

정확히는 붙들려고 했다. 덩치들이 여인의 손목 대신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손을 거둬 제 목을 감싸 쥐었다.

“그륵…….”

덩치 둘이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목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피거품이 몽글몽글 새어 나온다.

어느새 여인의 왼손과 오른손에 단검 하나씩이 들렸다. 핏방울이 똑, 똑 바닥에 떨어졌다.

여인, 나비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좋게 말하면 처듣지를 않으세요?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건달 새끼들은 피를 봐야 하나 보다아.”

그리고 나니 직원 하나가 용병들을 불러모았다.

잔금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나무 상자 하나를 깔고 그 위에 서서 호명하니 차례대로 나와 잔금을 받아 챙겼다.

시엔이 그 꼴을 구경하고 있으니, 상장이 다가와 공손히 주머니를 내밀었다.

“상단주님께서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하셔서. 혹시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일단 짐부터 좀 풀까 하는데요.”

“아. 그러십니까? 그러면.”

상장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 끄적여 내밀었다.

< 45. 금과 쇠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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