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간 [1] - 슬기로운 하인 생활 >
귀족가의 사용인이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가문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이들이었다.
충직한 마음에 단정한 용모, 거기에 예절과 품위까지 요구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었다.
집사장이나 시녀장은 사실상 귀족가의 식솔이 아니라 식구에 가까웠다.
수집사나 시녀장쯤 되면 하인이라기보다는 비서에 가까운 자리이다.
거기에 젖어멈, 그러니까 유모는 아예 어미나 다름없는 이가 아닌가.
가풍에 따라 다르다고 해도, 견제와 불화가 당연한 가문에서는 오히려 가족 그 이상으로 신뢰를 받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렇기에 나타나는 문제도 있었다.
드높은 콧대로 자신이 진짜 귀족이라도 되는 양 까부는 이가 꼭 한둘씩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제 주인의 위세가 곧 제 위세인 줄로 착각하는 탓에.
이러한 이유로 귀족가의 사용인들이 가진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부심은 곧 자긍심이오, 이어 가문에 대한 충성만큼은 기사들 못지않았다.
그래서 사용인들의 삶이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특히나 가주를 직속으로 모시는 자리란, 그네들의 권력을 결정하는 운명과도 같았다.
티란디스의 식솔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때였다.
사용인들에게마저 무시를 받았던 시엔 티란디스가 차기 가주, 지금으로서는 아예 영주 대리를 도맡아 그 직위를 공고히 굳혔으니까.
그런데, 어째 우리 도련님께서는 자꾸 바깥에서 하인을 들여오신다.
식솔들의 업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뒤끝은 없어 빨래 담당으로 우람해지고 만 하녀 한 명 말고는 딱히 내쳐진 이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집사들의 경우는 단순했다.
누렁이는 그 기괴한 이름만 빼면 이미 존경받아 마땅한 집사였으니까.
정중함 속에 흐르는 기품이 예사 인물은 아니다.
집사장부터가 동년배의 후임을 맡아 성심껏 가르치고 있었다, 벌써 인정을 받아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였으니.
젋은 집사들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미 백발의 노신사가 아니던가.
차기 집사장이라 해도 결국 은퇴하게 되리라.
온 집사들이 다음을 이어보고자 최선을 다해 어필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뿐이랴.
“어머, 누렁이 님. 운동을 다녀오셨나요?”
“허허, 건장한 몸에 건강한 영혼이 깃드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노회한 몸, 조금이나마 오래 도련님을 모시려면 노력해야겠지요.”
얼굴은 인자한 노신사지만, 몸뚱이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웃통을 깐 상체에 울퉁불퉁 솟아난 근육이 결이 살아 선명하기 짝이 없었다.
시녀장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어쩜. 정말로 귀감이세요.”
“아닙니다. 두 시종장께서 업무에 바쁘신데, 이 늙은이는 익히고 배워야 하는 시간에 이러하니.”
“집사장께서 이미 인계가 끝나 은퇴하시겠다 말씀하시는데요, 무어.”
열넷에 후작저에 들어와 근 사십 년 동안 봉사한 그녀였다. 두 시종장 중 하나로 가문을 모시는 자긍심 하나로 결혼조차 마다한 헌신이었다.
꼬장꼬장하고 표독스러워 시녀들을 휘어잡고 손가락으로 부리는 시녀장이었지만, 누렁이 앞에서만큼은 귀부인이 따로 없었다.
이러하니 누렁이의 권위야 이미 자리를 잡았다.
집사장과는 형동생이오, 시녀장의 태도는 또 이러하니 가문의 하인들을 이미 전부 휘어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 *
그런데 시녀들의 경우는 조금 복잡했다.
일단 첫 번째 전속 시녀.
세올이 전속 시녀로 보이는 행동은 가관이었다.
빨래터나 연병장의 웃통 깐 사내들을 훔쳐보거나, 혹은 도련님의 방 어딘가에 불손히 퍼져 있거나.
도련님의 간식을 탐내 다람쥐처럼 욱여넣는 모습도 이미 여러 번 발견되어 입방아에 올랐다.
“아무래도 좀 모자란 애니까…….”
“처음 저택에 들었을 땐 아예 백치였잖아. 그나마 지금은 사람 된 거지. 말도 하고, 걸어 다니고.”
“무엇보다 예쁘잖아.”
“나도 백치여도 좋으니 예쁘고 싶다.”
“야, 미인이 멍청해야 백치인 거지, 니가 멍청하면 그냥 병신이야. 병신년.”
“뭐야? 이년이 갑자기 시비네?”
사실, 세올의 경우에는 다들 불만이 없었다.
한참 후계 문제가 난리일 때에 들어온 여인이라, 도련님께서 제 편 하나 없으실 때 자리를 지켰다.
그러니 차기 가주의 첫 번째 전속 시녀라는, 가문 최상위 서열에 있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적어도 시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 후에 두 번째 전속 시녀가 들어왔다.
이때는 꽤 불만들이 많았는데, 곧 쏙 들어갔다.
후작가의 식솔들이 전부 귀족을 모시는 이들이라 그냥 하루가 지나서 다들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쟤는 귀족 영애시네. 아니, 영애께서 뭐가 아쉬워 시녀로 들어오고 난리람.
차라리 안주인으로 들어오면 될 것을.
그리고 일주일이 못 가서 마지막 말들은 자취를 감췄다.
지금도 아주 사람을 잡는데, 안주인으로 들어섰다간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 쏟아지겠다고.
나중에 듣기로는 세올과 트리예가 마법사라고.
그때 시녀들이 환호하며 축배를 들었다.
가문의 마법사를 아직 임명하실 수 없으니 그렇게 들이셨나 보다 하고.
어쩐지 둘 다 정반대의 의미로 시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었으니.
그런데 세 번째 전속 시녀가 들어왔다.
불만이 마구 터져 나왔지만, 다들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무서웠으니까.
매양 방싯방싯 웃고 다니는 실없는 얼굴.
그런데 정작 마주치면 어쩐지 서늘하게 등줄기가 시리고 오금이 쿡쿡 쑤셨다.
몇몇 시녀들이 말하기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무언가를 보는 것 같다고.
거기에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소리 없이 돌아다니니, 문득 돌연 시야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서 웃는 얼굴로 눈을 마주친다.
그게 또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지.
소문으로는 지하 감옥에 드나드는데 나올 때마다 피를 뒤집어쓴 꼴이라나.
그리고 또 여인 하나가 후작저에 들었다.
후작가의 시녀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설마 네 번째도 외인이 드나?
다행히 전속이 아니라 평시녀로 자리를 잡았다.
나림이라고 했던가.
성이 따로 없으니 어디 시골 출신인 모양인데.
일단 만만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 첫날, 시녀들이 눈에 불을 켰다.
시녀들 모두 하나 꼬투리만 잡혀봐라, 트리예에게 당하며 배운 갈구기의 진수를 선보여 주리라고.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꼬투리는커녕, 무엇 하나조차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었으니까.
걸레질은 힘이 하나도 없어 얼룩이 그대로 남고, 먼지를 털랬더니 터는 게 아니라 이동을 시켜 놓았다.
거기에 더해 장식 네 개를 깨뜨리기까지.
당연한 결과로 무수한 갈굼이 날아들었다.
그럼에도 기분 나쁜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죄송하다며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어우 독한 것.’
‘얼굴색 하나 안 변하네.’
‘이거 죄송한 척하는 것 봐라.’
시녀들이 만만찮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가끔 있었다. 아무리 갈구고 꼽을 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이가.
그리고 첫날 밤.
도시에 사는 사용인들이야 출퇴근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후작저의 숙소에서 숙식했다.
나림 역시 갈 데가 없으니 그리로 배정을 받았다.
“야, 신입. 니 자리는 저기야. 저기.”
시녀 페니가 키득거리며 한편을 가리켰다. 좌우로 펼쳐진 침대들 너머, 가장 끝의 구석이었다.
창문 아래와 가장 마지막의 침대 사이였다.
걸레에 가까운 요와 이불이 대충 널브러졌다.
언제 빨았는지 원래 색도 알 수 없이 누런 잿빛의 침구였다. 척 보기에도 냄새나 안 나면 다행이다.
게다가 바닥이라 벌레가 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름이라 새벽같이 볕이 들면 눈이 부셔 누구라도 깰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였다.
다른 시녀들의 입가에도 비웃음이 맺혔다.
사실, 나림이라 특별히 하는 괴롭힘은 아니었다.
요컨대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후작저에 들어와 일주일 정도는 아주 눈코 뜰 새도 없이 정신없이 구르고 눈물 콧물이 쏙 빠진다.
본래는 밤의 휴식 시간까지도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전부 다 떠맡기고, 아주 기진맥진 힘이 빠지면 그때 저 자리에 누워 잠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잠이 아니라 기절에 가까운 경험을 하다 보면 저 후진 자리가 안락하게 느껴진다.
그때가 되면 조촐한 파티와 함께 이게 네 침대야 하며 축하해 주는, 악습에 가까운 관례였다.
신입은 그간 서러움과 더불어 그제야 와닿는 어떤 소속감, 그리고 안도로 인해 백이면 백 펑펑 운다.
그때 그간의 미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한데 모여 위로하고 나 때는 말야 하고, 얼마 안 산 것들이 얼마 안 된 역사를 자랑하는 그런 식이었다.
“아. 저쪽이네요.”
“저쪽이네요는 무슨. 곧 점호야. 시녀장님 오시니 바로 누워.”
“아직 몸을 씻지 못했는데……”
“아니, 너. 나이가 몇 개야? 씻는 시간까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해?”
페니는 육 개월 차 수습이고, 올해 겨우 열여섯에 불과했다.
나림이 스물하고 조금 더 먹었으니 한참 어린 동생에게 듣는 폭언이 기분 나쁠 만도 한데.
그러나 나림은 태연했다.
“아. 알아서 해야 하는 거였네요.”
“그럼 알아서 해야지, 누가 씻겨주나.”
이 시간까지 별 쓸모없는 잡무를 떠넘긴 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되면 꼬장한 시녀장이 씻지 않은 정도는 대번에 알아보고 불호령은 내린다.
그러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짐 정리는 안 할 거야? 저렇게 덩그러니 내팽개쳐 놓으면 어쩌겠다고? 누가 대신해 주나?”
“아. 저건 짐이 아니라.”
“짐이 아니면 뭔데?”
페니가 숙소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상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특이하고 궁금하긴 했다.
보통은 가방이나 보자기 등으로 짐을 싸지 않나?
웬 상자? 안에 뭐라도 유난한 게 들었나?
“누추하지만 제 거처랍니다.”
나림이 상자를 번쩍 들고는 제 자리로 향했다.
한편에 기대놓고 바닥에 깔린 요와 이불을 접어 개켜놓곤 그 자리에 대신 내려놓는다.
사실 이불을 개는 손길도 서툴기 짝이 없어 정리보다는 구겨 쌓아놓은 꼴이었지만.
그리고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갔다.
제 몸을 구겨 작은 상자에 끼워넣는 꼴에, 페니가 당황해 급히 외쳤다.
“야야, 뭐야? 너, 뭐 하는데?”
“곧장 누우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런데, 거긴 왜 들어가?”
“여기가 바로 제 잠자리니까요.”
“아니. 왜?”
“그건”
딸랑딸랑. 작은 종 특유의 울림이 나림의 대답을 막았다.
시녀장이 밤 점호을 위해 다가오는 소리였다.
시녀장은 아주 꼬장한 여인이었다.
식사와 수면도 업무의 연장이라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먹는 것 하나 쉬는 것 하나 눈치를 봐야 하는 상대기도 했다.
시녀들이 급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렸다.
페니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꼿꼿한 자태의 시녀장이 열린 문 가운데에 정확히 자리를 잡았다.
“레이디들, 이제 꿈나라로 갈 시간이야.”
시녀장이 방을 빙 돌며 촛불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문질러 껐다.
방 가운데 테이블 위에 몇 개를 제외하고 다 끄고 나면 점호도 끝이었다.
오른편을 다 확인하고, 끝에 도착해 왼편으로 몸을 돌리던 시녀장이 멈칫 걸음을 멈췄다.
“세상에. 나림? 나림 맞니?”
“네, 시녀장님.”
시녀장이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 들어온 신입이 외인으로 제법 미움을 사리라고는 익히 짐작했다.
당장 그녀조차도 어디서 굴러들어온 외인을 덜컥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그 신고식이 제법 호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다.
“세상에, 이게, 어쩜…….”
시녀장이 상자에 끼인 나림을 보고 경악했다.
시녀장이 잘못한 시녀에게 회초리를 들거나 독방에 가두는 정도의 훈육은 했다.
잘못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심한 체벌도 있었다.
그러나 개중 어떤 것도 이보다 참혹하진 않았다.
사람을 상자에 우겨넣다니. 이건 선을 넘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전원, 전원 기상.”
시녀장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한 해에 두어 번이나 볼 법한, 가장 화가 났을 때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고참 시녀로부터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몸에 새겨진 반응이었다.
시녀장의 분노한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자동으로 나오는 그런 움직임이다.
“세상에. 나는, 나는 정말로 실망했어요. 아무리 외인 출신이라 한들 앞으로 한 솥에 수저를 떠야 하는 사이에. 이러한 가혹한 행위라니.”
“저…… 마담. 그게 저희가 그런 게 아니라…….”
“너희가 하지 않으면? 이 아이가 스스로 이 작은 상자에 몸을 욱여넣기라도 했단 말이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시녀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고분고분하니, 갈궈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더니.
전부 크게 멕이려고 이를 갈고 있던 거였어?
당했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제는 이미 늦었다.
이미 시녀장은 분노했고, 보아하니 모진 회초리가 날아들 각이었다.
그때였다.
나림이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녀장님, 그게 맞아요.”
“뭐?”
“제 스스로 저 안에 들어갔어요.”
“이런, 얘야. 솔직하게 말해도 좋단다. 사갈 같은 것들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아니에요, 이건 속죄랍니다. 제가 과거에 지은 죄가 너무나 커서, 이 불편함으로 조금이나마 그 죗값을 치르는 중이거든요.”
시녀장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시녀장이 금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도련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냐? 후작저에 든 이상 네 몸은 그렇게 하찮게 다뤄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물론 주인님께서도 알고 계셔요.”
“하지만, 몸을 생각해야지. 이래서야 제대로 도련님을 모실 수가 없지 않니.”
“누렁이 님이 지도해 주셨어요. 속죄를 위한 일이라고.”
“흠, 흠. 누렁이 님께서. 그분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텐데. 아, 혹시 신성으로 돌봐 주시니?”
“예. 제게 그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구요.”
“아. 역시. 그렇다면야. 좋아. 레이디들. 잠에 들 시간이야. 내가 뭐라고 했지? 오늘의 밤은-”
“-내일의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시녀들이 합창하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안도하며 자리에 누웠다.
만족한 시녀장이 남은 촛불을 끄고는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그러자 눈알 굴리는 소리만 고요했다.
본래는 잠이 들기 전에 여인들이 꺄르르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방금 있었던 일이 여간 충격이어야지.
희미한 촛불 그림자만 흔들리는 방 안, 페니는 저를 찌르는 시선들을 느꼈다. 그 의도야 명백했다.
페니가 눈치를 보다 결국 운을 뗐다.
“그, 나림아?”
“네?”
“그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그 죄라는 게 어떤 건지…….”
“말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차마 입에 담기도 끔찍한 것이라서요.”
침 삼키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죄라니. 대체 무어라고.
페니를 찌르는 시선들이 더 강렬해졌다.
더 캐보라는 그러한 눈치들이었다.
“어, 그. 사람이라도 해쳤다던가?”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 큰 죄에요.”
사람을 해친 것보다 더 큰 죄라고?
페니의 목소리가 슬며시 떨렸다.
“그럼, 많이 해쳤어?”
“셀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구요.”
“그럼, 혹시 귀족 나리라도 해친 것은…….”
“그 정도야 뭐 한둘이 아니겠지만, 제가 속죄하고자 하는 죄는 그런 하찮은 것은 아니에요.”
늑대인간을 그만큼 풀었으니 개중에 귀족이라고 무사하겠는가.
그러나 나림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페니가 입을 다물었다.
귀족 살해보다 무서운 죄가 대체 뭐야?
아니 그 전에, 해친 이를 셀 수가 없다니. 무슨 연쇄 살인마 비슷한 걸까.
그럼 나는? 오늘만 해도 몇 번을 갈궜더라.
“어. 음…….”
“시녀장님이 자는 것도 업무라 하셨는데요.”
“아. 그렇지. 맞아. 그, 저기. 잘 자.”
“네. 페니도요.”
페니가 머뭇거리다 대답을 붙였다.
“……저 한참 동생인데, 말 편히 하세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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