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선배 강림 [5] >
마탑은 마법사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다.
각 마법사들의 마탑은 또한 그들의 상징이었다.
물길잡이는 바다에 인공섬을 띄웠다.
천문관이 구름 위로 솟은 천문대를 세웠다.
땅지기는 지상에서 지하로 향하는 탑을 파냈으며, 방화광의 거대한 봉화는 사시사철 큰 불을 피웠다.
그리고 심연탑은, 어둠으로 가득 찬 호수 위에 떠 있다고, 흑마법사들은 그렇게 주장했다.
호수처럼 넓은 구덩이를 파고, 기둥 오백이십 개를 세워 그 위에 뚜껑처럼 넓은 건물을 올렸다.
덕분에 구덩이는 사시사철 그늘져 어두웠다.
움푹 팬 지형에 어둠이 차 있으니 어둠 호수.
그 위에 있는 건물이었으니, 떠 있는 거라고.
다른 마법사들이 보기엔 그저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러나 흑마법사의 면전에서 그러한 소리를 하진 않았다.
너네 마탑 그거 순 말장난이 아니냐 장난으로라도 이야기를 꺼냈다간, 흑마법사가 곧장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니까.
시엔이 창밖의 심연탑을 바라보았다.
심적으로야 그리 오랜만에 보는 기분은 아니었다.
체감으로야 십 년이 좀 넘었던가?
그러나 과거 번듯한 마탑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리석은 누렇게 색이 변했고, 그나마 여기저기 삭아 부스러진 외양이었다.
뭐. 어차피 새로 지으면 된다.
그보다는, 마탑의 울타리를 둘러싸고 엄중히 경비하는 무장 집단이 더 눈에 띄었다. 보기에 하나의 집단이나 저마다 장비가 제각각이었다.
시엔이 알기로 그러한 집단이야 하나뿐이었다.
“귀신 잡는다더니, 용병단도 차렸나? 용병질이 돈벌이엔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닌데.”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거, 경비를 서는 녀석들.”
“선배님, 저들은 마탑의 인원이 아닙니다. 경비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안튼이 설명을 붙였다.
마탑의 경비가 아니라, 빚의 채권자인 페이발란트 상회에서 고용한 용병단이라고, 혹여 마탑의 물건을 밖으로 빼돌리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중이었다.
시엔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듣기보다 더 개판이네.”
“면목이 없습니다, 선배님.”
* * *
붉은 사자 용병단은 페이발란트 상단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말이 전속 계약이지, 용병단의 설립부터 그 운용까지 전부 상단이 도맡은 경우였다.
그러니 사실상의 사병이었다.
상단이 으레 하는 편법이었다.
붉은 사자의 단장 발모르가 점심 후에 한참 단잠을 즐기던 와중이었다.
“단장, 일어나 보십쇼!”
“끄으, 뭐야?”
“그, 이쪽으로 손님이 오고 있습니다만.”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잖아.”
짐을 수색하고 그 명부를 작성하는 것.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짐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광명 수도회가 혹여 밖으로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게, 일단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별일 아니기만 해 봐.”
발모르가 으름장을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젠 가까이에 다가온 손님들을 보았다.
호화스러운 육두마차와 그 뒤로 짐 마차가 몇 대.
그리고 말을 타고 은빛 갑옷을 입은 이들이 호위하는 무리였다.
높이 든 가문의 깃발은 못 보던 생소한 것이나, 기사들의 갑옷만 보아도 평범한 귀족가는 아니다.
미묘하게 녹색이 섞인 은빛 광채. 미스릴이었다.
“이런 사이비 수도회에 웬 귀족 나리가…….”
발모르가 툴툴거리며 제 차림을 정돈했다.
마침내 귀족의 행렬이 광명 수도회의 정문에 도달했다. 가장 앞에 선 기사가 말을 탄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잘생긴 청년 기사였는데, 마치 이야기책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어, 혹시 어떤 분의 행차이십니까?”
“티란디스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 시엔 티란디스 님이시다. 여기가 광명 수도회인가?”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발모르가 눈을 껌벅거렸다. 외국 귀족인 것 같은데.
“광명 수도회를 찾으신다면 맞게 오셨습니다.”
“그렇군.”
“그렇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기사가 어째서냐는 듯 내려다보고 있으니, 길을 비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뜻이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광명 수도회에 출입하는 이는 검문하여 짐의 목록을 작성해야 합니다.”
“왜지?”
“광명 수도회가 큰 빚을 진 상태라…… 신실한 채무의 반환을 위한 조치입니다만……”
“잠시 기다려 보게.”
청년 기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돌려 화려한 마차를 향했다. 잠시 후, 되돌아온 기사가 말했다.
“도련님께서 자네 소속을 묻는군.”
“어, 저희는.”
발모르가 눈을 굴렸다. 어째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 어떤 연유로 물으시는지…….”
“왕국에 방문함에 이미 목적지를 밝힌 바가 있다. 국경을 열어주었으니 곧 왕실의 허가가 있음이다.
그럼에도 네가 길을 막고 검문을 청하니 그에 소속을 알아 왕실에 항의하겠다 하시는군.”
발모르가 주춤 물러섰다.
악성 채무 상환에 들어간 상태가 왕국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개 상단이 길을 막고 외국의 귀족을 검문하겠다 나서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발모르가 고심했다.
상단주에게 받은 명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검문을 철저히 지키라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이럴 때는?
“……실례했습니다. 통과하시지요.”
발모르가 결정을 내렸다. 잘못하면 상단이고 뭐고 큰 난리가 나게 생겼으니까.
* * *
“저 지독한 것들이 길을 열어주는군요.”
“어쩌겠어. 그래 봐야 용병은 용병이지.”
안튼의 감탄에, 시엔이 피식 웃었다..
“일부러 짐 마차 넉넉하게 끌고 왔으니, 값나가는 건 몽땅 실어 놓도록 해. 줄 건 주더라도 엄한 돈 나가는 건 막아야지.”
“어차피 그런 것도 별로 없답니다.”
트리예가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시엔이 마차에서 내리고 보니, 알지 못한 방문에 어정쩡하게 모인 흑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로브에 기운 자국이 없는 이가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없어 보이는 꼴이었다.
개중 트리예를 알아보는 이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시엔의 귀에 잡혔다. 시엔의 청력이란 이미 사람의 능력를 초월했으니까.
‘저거 트리예 아니냐? 돈 들고 튀더니. 저거 때깔 좋은 거 봐라. 아주 성공했나 보다.’
‘쟤 나가기 전에 아주 생난리를 치지 않았습니까? 해코지나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래도 같이 밥 먹은 사인데. 설마 그러겠냐마는. 근데 진짜 그럴 년이기는 하지…….’
아니, 대체 마탑 시절에 뭘 하고 다녔길래.
시엔이 새삼 트리예의 인격에 감탄했다.
트리예가 시엔 앞에서야 한없이 공손한 어린 양이었지만, 또 남들에겐 다른 모양이라고.
뭐. 선배 귀한 줄만 알면 되지. 사소한 문제였다.
눈이 마주친 트리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엔 님? 소녀에게 할 말씀이라도……?”
“저기 쟤네가 너 욕하고 있네. 쟤네랑, 쟤네도.”
어째 알아보는 이에게 좋은 말 한마디도 안 나온다고. 트리예가 얼굴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얼마 안 있어 어둠 호수의 계단에서 나이 서른쯤 되는 젊은 흑마법사 하나가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헉, 헉. 아이고 숨이야. 바깥으로 출구를 내던가 해야지, 후우. 후우우우.”
숨을 고르며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시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심연탑의 구조가 보통 고약해야지. 심연탑 본채의 입구는 어둠 호수 중앙에 있는 나선형 계단 하나가 전부였다.
지상 삼 층에 끄트머리에 위치한 마탑주의 집무실에서 예까지 나오기가 보통 거리가 아니었다.
집무실에서 건물 중심의 계단까지 한참. 그리고 반지하 어둠 호수까지 내려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 구조가 아니던가.
시엔이 마탑에 있던 때도 이러한 불편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마탑주가 시엔에 앞까지 다가와, 가쁜 숨을 애써 숨기며 인사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는 광명 수도회장, 재스타 데이버리라고 합니다.”
“시엔 티란디스야.”
안튼이 안절부절 시엔의 눈을 바라보았다.
시엔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안튼이 탑주의 귀에 머리를 가져다 대곤 무어라 속삭였다. 재스타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 일단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그래야지. 기사들에게도 적당히 손님용 객실을 내어주도록 해. 며칠 묵어갈 것 같으니까.”
“예.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입니다.”
“나도 길 알아.”
시엔이 탑주와 나란히 어둠 호수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개판이네. 누가 어둠 호수에 불을 밝히래?”
“예?”
“어둠 호수에 빛이 들면 그냥 넓은 구덩이지. 저 근본 없는 조치는 대체 뭐야?”
어둠 호수의 정중앙, 마탑으로 향하는 계단참에 떡하니 횃불 하나가 밝았다.
본래 어둠 호수 바닥은 평평하게 다져 장애물이 없다. 밤달빛꽃 화분을 놓아 희미하게 방향을 표시해 놓는 것이 전부였다.
어둠 호수에 빛이 들면 그냥 잘 파놓은 구덩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호수 내에 빛을 밝히는 것은 금지된 사항이었는데.
“어, 선배님 때에는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 없었단 말씀이십니까?”
“영원히 타오르는 불? 내가 화염탑에 찾아왔나?”
“계단 앞에 불을 하나 피워 절대로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는데…….”
“누가 그딴 개소리를 해?”
“오래 전해져 내려온 전통입니다만.”
“그딴 전통은 들어본 적도 없다. 애초에, 저기에 불을 밝혀 놓으면 그림자 탑에는 어떻게 들어가?”
“그림자 탑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림자 탑.”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이신지…….”
재스타가 진땀을 흘렸다.
까마득한 대선배를 어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에, 영문 모를 트집이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덕분에 어쩔 줄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자 이번엔 대선배께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자 탑을 모른다고? 대충 알 것도 같은데. 저 불, 꺼지지 않게 관리했다는 거지? 언제부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수백 년은 족히 지나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당연한 전통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최소한 한 명 이상의 불지기를 두고 꺼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고…….”
“그거 딱 방화광들이나 할 법한 생각인데.”
시엔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워낙에 넓은 어둠 호수다. 겨우 횃불 하나 불탄다 해서 밝다는 느낌은 아니다. 시엔이 눈이 어둠을 꿰뚫고 주변을 살폈다.
깨진 타일이나 잡초는 없다.
딱 보니 궁색해 보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관리를 게을리하지는 않은 모양.
살짝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계단을 오르자마자 사라지는 기특함이었다.
심연탑 내부는 제국 황성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찬란히 빛나는 장소였다. 망령이 부귀에 집착하는 일면이 있어 내부를 온통 보석과 황금으로 장식해 놓았기에.
그러나 지금, 체감으로는 십여 년 만의 심연탑은 그야말로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흔한 그림 한 점도 없이.
마침내 삼 층 외각, 마탑주의 집무실에 들어서고 나니 가난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임을 알겠다.
“짐 마차를 괜히 끌고 나왔네.”
“예?”
“싣고 갈 것도 없는데. 애초에 저 상단 놈들도 참 멍청하지. 빼돌릴 물건도 없는데 뭐하러 저리 지키고 서 있나 몰라.”
재스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쭈. 시엔이 그 표정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재스타가 움찔하다,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애초에 이렇게 된 것이 전부 선배님 탓이 아닙니까?”
“뭐?”
이건 또 무슨.
시엔이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오히려 말문이 막힌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도와달라 해서 도와주러 왔더니, 하는 말이 뭐가 어째? 갑자기 누구 탓을 해?”
“애초에 심연탑이 어째서 숨어야 했습니까? 전부 선배님이 악명을 떨치신 탓이 아닙니까!”
“하. 내가 여기까지 와서 한심한 투정이나 듣고.”
“투정이라니요!”
“그럼 투정이지. 아니냐?”
시엔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니까, 내가 제국을 불태운 탓에 심연탑이 문을 닫았다. 뭐 그런 소리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게 사실이잖습니까.”
“그게 왜 사실이야?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과거 흑마법사가 한 일이 정당한 전쟁이었다.
단신으로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때, 세상 사람이 입을 모아 비웃기는 했다.
나라가 망했다더니, 그 때문에 미친 자가 틀림없다고.
그러나 전쟁 선포 자체가 잘못되었다 하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연한 권리였으니까.
망국의 왕자가 그 원수에게 복수하려는 일이 무모하고 미친 자와 같았지만, 행위 자체는 잘못되지 않은 것이기에.
그리고 한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나선 세상에 무모한 전쟁이라며 비웃는 이가 한 사람도 남지 않았지만.
“그건 제가 아는 사실과 다릅니다만, 그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 명의 흑마법사가 대륙의 절반을 불태웠다. 그 힘을 두려워한 대륙이 역사를 지우고 탄압 아래 심연탑이 몸을 숨겼습니다.”
“불태웠다는 것도 좀 억울하긴 한데. 내가 태운 게 아니라 제국이 알아서 저네 땅 태운 건데. 뭐. 어쨌든. 그게 왜 내 탓인데?”
“정말이지 말이 안 통하시는군요!”
시엔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후배가 멍청해서 속이 답답하고, 또 설명하자니 제 변호가 되는 것 같아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일단 하나하나 짚어보지. 세상이 날 두려워해서 역사를 지웠다. 그게 내 잘못이란 말이지. 네 논리대로라면 강한 것이 바로 죄로구나.”
“……그렇지만 선배님께서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신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헛된 두려움이지. 내 전쟁은 정당한 일이었으며, 대륙 모두가 그걸 알았다. 내 아무리 강대한 이라 하더라도 그 마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칼날 앞에 두려움이 이는 것은 사람의 습성이다.
소드 마스터. 고위 마법사. 아니면 강대한 귀족가. 그리고 대륙의 절반을 차지했던 제국이라던가.
그러나 지금의 세상이 그러한 강자들을 배척하며 밀어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힘은 두려우나,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러니 애초에 세상이 날 두려워함이 헛된 것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떨며 스스로 어리석은 일을 벌인 것을 어찌 내 탓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건…….”
재스타가 말끝을 흐렸다.
할 말은 없는데 납득은 못 하겠다는 태도였다.
시엔이 세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심연탑이 탄압 아래에 몸을 숨겼다? 그게 얼마나 불손한 소리인지 알아? 우리 선배님들 모두를 바보 취급하는 셈인데.”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한 명의 흑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수백의 흑마법사가 못 할 것 같으냐? 심연탑이 작정해 세상과 싸우고자 했으면 나머지 절반도 태웠겠지.”
그러나 심연탑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숨겼으나마 심연탑의 본채가 멀쩡, 아니, 꽤 상한 상태로나마 남아 있지 않은가.
애초에 흑마법사를 아예 지워버리고 싶었다면 그 마탑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을 텐데.
결국, 심연탑이 세상과 뜻을 같이했으리라.
흑마법을 지우는 데에 반발해 맞서 싸우기보다, 오히려 그에 협조했으니 이렇게 남았겠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불탄 대륙에 또다시 전화를 불러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싸워 공멸하기보다는, 탑을 숨기고 비밀리에 그 맥을 이어가기로 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심연탑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그러니 이 상황을 내 탓이라 하는 건, 그 결정을 내린 선배님들 모두를 모욕하는 셈이지.”
뭐. 그 심정이야 이해는 한다만.
본래 사람이 제 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 조상 탓을 하는 일이야.
제스타가 고개를 푹 숙였다. 표정을 모르겠으니 납득을 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나, 적어도 더 할 말은 없는 모양이었다.
“반론 있나?”
“……없습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시엔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대가리 박아.”
< 41. 선배 강림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