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82화 (178/268)

< 37. 재해만발 풍운도시 [5] >

시엔은 뷔아의 곁에 있었다. 혹여 모를 암살자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암살자가 나타났으니 헛된 수고는 아니었다. 시엔의 생각하지 못한 종류의 암살자들이었지만.

시엔이 뷔아를 껴안고 땅을 박찼다. 용과 섞여 인간을 초월한 다릿심이다. 신전 안쪽을 향해 시엔이 점프했다. 동시에 굉음이 인다.

거친 충격이 곧장 등을 후려친다.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시엔의 도약이 발사가 된다. 강맹한 속도. 시엔의 몸이 직선으로 날았다.

눈을 한 번 깜박거릴 시간에 예배소의 천신상이 코앞이었다. 정문과 복도의 수십 미터 거리가 삭제된 것마냥.

시엔이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사고의 결과는 아니었다. 무언가를 와락 끌어안고 있으니 그것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가까스로 몸이 돌아가나 싶더니.

쾅!

시엔의 몸이 등으로부터 천신상에 처박혔다.

우직. 갈빗대가 부러지는 내부의 울림이다.

순간 뷔아의 이마가 시엔의 광대를 들이받았다. 골이 흔들려 정신이 아득하게…….

* * *

뤼니에의 눈동자의 신전 앞 광장이 환히 비쳤다.

온 사방에 폭발이 가득한 그 찰나의 순간. 그러나 방화광의 머리에 그 장면이 선명히 틀어박혔다.

폭발.

폭탄의 피와 살점이 비산하고, 산산이 조각난 뼈가 사방에 튀어 아직 산 자의 몸을 찌르는, 바로 그 현장이 한 장의 그림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아아…….”

뤼니에가 달뜬 숨과 함께 몸을 떨었다. 마법사들 중에서도 방화광이 불에 가지는 쾌감은 유별난 것이었기에.

그러자 곧장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뤼니에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니, 곧바로 신전 앞 성녀가 있던 자리를 훑었다.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시뻘건 것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자리에 있던 이가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은 아예 증발한 마냥 보이지도 않았다.

“좋아. 됐어.”

폭발 직전에 성녀 옆에 있던 청년이 몸을 날렸던 것도 같았지만, 보아하니 둘 모두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폭발과 불은 비슷해 보이나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졌다.

폭압이 주는 피해는 열이 주는 화상보다 수 배는 위력적이었다.

인간의 몸은 열에는 버틸지 몰라도 폭압 앞에선 종잇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뤼니에가 몸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훌륭한 광경을 천천히 구석구석 훑어보고 싶었지만, 그보단 이 낭보를 전하는 것이 우선일 테니까.

* * *

속이 답답하니 꽉 막힌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저 안온하니 보드라운 실크 침대에 폭 휘감긴 느낌도 들었다.

아아……! 어떤 소리가 저 먼 곳에서 아스라하게 들린 것도 같다. 우는 소리인가? 그거 참 서럽게도 운다 싶은데.

문득 통증과 함께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커헉!

눈보다 먼저 입이 열렸다.

시뻘건 피가 한 움큼이나 쏟아져 가슴팍에 축축하게 스며들었다. 그러자 몸이 성마르게 숨을 갈구했다.

거친 호흡을 터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시엔이 눈을 떴다.

“시엔! 시엔! 정신이 드나요!”

“예, 그런 것. 끄으…….”

시엔이 몸을 일으키려다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두통은, 뇌를 달군 송곳으로 찔러 지지는 것 같고, 얼굴은 왜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는지.

얹힌 듯 답답한 속도 그렇고,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끔찍한 흉통은 보나 마나 갈비대가 몽땅 내려앉았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이 원래 흑마법사가 고통에 익숙한 까닭이었다.

평범한 이였다면 고통에 따른 충격으로 다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용태리라.

시엔이 기어코 일어나겠다고 팔을 짚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것이 있어 고개를 돌리니, 박살이 난 천신상의 머리가 거기에 놓여 시엔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기억이 선연히 떠올랐다.

사람이 타오르며 밝은 빛을 쏘아내니, 곧장 뷔아를 붙잡고 뛰었더랬지.

그러다 폭발에 휘말려 신전의 긴 거리를 날아 천신상에 처박혔다.

천신상의 잔해가 온 사방에 있었다.

쓰러져 부서진 것이 아니라 충돌의 결과라는 뜻이었다.

단단한 천신상을 부술 정도의 충격이었으니 몸이 이러하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것이 용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용과 섞여 튼튼한 몸은 아직도 건재했다.

늑골이 부러져 그 조각이 폐를 찌른 것 말고는 심각하다 할 부상은 없었다.

사람 몸에 유난히 워낙 엄살이 심한 곳이 있다면, 갈비가 바로 그러했으니까. 그저 많이, 심각하게 아픈 게 문제지.

“뷔아는 괜찮습니까?”

“왜, 왜 내 걱정을 해요…….”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은 않고 꺼이꺼이 서럽게 울음을 터뜨린다.

눈물 자국이 이미 흥건하니 벌써 한탕 한 모양인데, 새빨갛게 물든 코 아래에 투명한 방울이 맺힌 것이 보였다.

“큭, 악.”

시엔이 키득거리려다 대신 비명을 내질렀다. 웃음이 치밀어 허파가 움츠러드니 이내 격통으로 변해 머리에 닿은 까닭이었다.

뷔아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치떴다.

“괜찬, 괜차나요? 히끅.”

“치명상은 아닙니다. 혹시 신성을 쓰셨습니까?”

“그게, 시엔이 숨을 쉬지 않아서.”

“……있다가 한번 열어야겠군요.”

한 번 열자. 가슴팍을 갈라보자는 말이었다.

신성 치료가 만능이었다면 의사가 필요하지 않았을 터다. 뼛조각이 속에 있는데 신성을 퍼부었으니 다시 개흉해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성녀가 이를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오죽 당황했으면 그랬겠는가 싶기도 하고.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 지, 지금 바로.”

뷔아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시엔이 손목을 잡아 만류했다.

“일단 계십시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얼마 안 됐어요. 끅, 십 분 정도?”

“그렇다면 일단 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명백히 뷔아를 노린 공격이었다.

인간 폭탄. 그 존재는 이미 봤다.

성도 공격 당시에 미리 알아채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 때의 실패로 적들 역시 크게 배웠으리라. 미리 탐지해내지 못한 인간 폭탄들이 그 결과물일 터.

적이 허술하지 않으니 혹여 몰라 끝장을 보고자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시엔이 정신을 차릴 동안 신전 안에 둘이 있었다.

뷔아가 폭발에 휘말려 일단 목표를 달성했다 여겨 아직 여기까지 살피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야겠지.

그때 예배당에 누군가 급히 들이쳤다.

“성녀님! 세상에, 천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명예 성자님께서도 무사하시군요. 천신이시여…….”

“라이뱅 경…… 끅.”

“예. 고통이 조금 있습니다만은. 바깥은 어떻죠?”

라이뱅이 침통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태도에서 딱히 위험은 느끼져지지 않았기에, 시엔은 일단 안도했다.

적의 추가 습격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예배당 바깥 멀리로부터 비명 따위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라이뱅이 검을 뽑아 두 사람의 앞을 지켰다. 당장 뛰쳐나가지 않은 것은 교단의 성기사가 성녀를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엔을 뷔아가 달라붙어 부축했다.

시엔이 주문을 외웠다. 마법사의 주문은 제가 받아들인 원소의 소리와 닮았다.

부정함을 품은 시엔의 주문은 그야말로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뷔아가 흠칫 놀라 몸을 떨었으나 이미 들은 바가 있어 그저 입술만 깨물고 말았다.

영원한 밤의 창날. 최소한의 출력으로 만든 것이라 창날보다는 포크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영원한 밤의 포크라.

시엔이 피식 웃다 고통에 찌푸리며 완성된 마법을 쏘았다. 예배당 문의 반대편으로 날아간 마법이 벽면을 깔끔히 도려냈다.

사람이 허리를 바짝 굽혀 지날 만한 통로였다.

“일단 빠져나가죠.”

“이미 늦었습니다.”

라이뱅 경이 바깥으로 검을 겨눴다.

철컥철컥. 갑옷 부대끼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엔이 이미 보아 아는 것들이었다.

“검은 기사들…….”

뷔아가 중얼거렸다. 죽어도 죽지 않는 마물들이라 했던가. 라이뱅이 비장하게 소리쳤다.

“두 분은 피하십시오! 제가 묶어두겠습니다.”

“하지만……!”

“메이에게 전해주시겠습니까? 당신이야말로 내 삶의 진실된 기쁨이었다고.”

“라이뱅 경!”

“괜찮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뒤따르겠습니다.”

라이뱅은 죽음을 각오했다.

고결한 성기사가 제 임무를 완수할 작정이리라.

시엔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분위기에 산통을 깨려니 영 미안한 기분이었다.

시엔이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멈춰.

흐레이그 나이트는 트리예가 만든 작품이고, 그녀를 거둘 때 이미 수작을 부려 놓았다. 시엔 역시 명령권자 중 하나였다.

기사들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성자님?”

“시엔? 이게 대체…….”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시엔이 기사들을 돌려보내려다가,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언제고 써먹게 되리라 생각했지만은.

“이전 명령을 내린 이에게 돌아가 대기하다, 내일 정오가 되면 가장 가까운 명령권자를 찾아 목을 베도록. 주변에 명령권자가 없다면 가장 지위와 신분이 높은 이부터 공격해 싹 쓸어버려.”

깜짝 선물이었다. 적이 받아줄지는 알 수 없지만.

기왕이면 저것들을 성으로 불러 들여놓았으면 좋겠는데.

방심하고 있었다면 호되게 당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내부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도록.

* * *

시엔 일행이 신전 뒤로 빠져나가 광장을 우회했다. 라이뱅 경이 간단히 들것을 만들었다.

사실 고통스럽긴 해도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편히 갈 수단을 놔두고 굳이? 시엔이 냉큼 누웠다.

그렇게 성기사와 성녀가 앞뒤로 들것을 들었다.

“라이뱅 경, 광장에 계시던 분들은…….”

“죄송합니다, 성녀님. 이미 늦었습니다.”

라이뱅이 광장의 끝을 담담히 전했다.

광장 여기저기서 폭발이 있었다. 인간 폭탄들.

특히 뷔아의 곁에 몰려 있던 이들만 스무 명에 달했다.

기술의 미숙함과 기운차단 개조로 폭발력이 워낙에 떨어진다 한들, 그 폭탄의 숫자가 스물이 넘게 터졌다.

시엔이 날아가 처박힌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외의 폭탄들은 배급소 앞이나 부상자 천막의 신관들과 함께였다.

작정하고 신관들을 노려 붙어 있었으니 시체를 남긴 이가 더 드문 지경이었다고.

성기사가 이변을 눈치채고 곧장 신성으로 보호막을 일으켰다.

폭발에 휘말리긴 했으나, 보호막과 성기사장의 튼튼한 갑옷 덕분에 무사했다.

폭발로 무언가 튀어 맞았는지, 아니면 몸이 날아 머리를 부딪쳤는지 확실치는 않았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들고 나니 얼굴이 조금 익었다. 화상이야 신성이 가장 잘 듣는 상처 곧장 치료하며 성녀를 찾아 움직였다.

“형제 자매분들께서…….”

뷔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뷔아가 뒤편에 서고 시엔이 그 아래 머리를 두고 누웠다.

둘이 눈이 마주쳐 뷔아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앞서가는 라이뱅이 시엔에게 물었다.

“명예 성자님. 제 기억이 맞다면, 분명 이전에 저지한 수법이 아닙니까? 인간 폭탄이라 하셨지요.”

“예. 그때보다 더 발전된 수법이었네요. 바로 앞에서도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으니.”

“하면, 교단의 적이 벌인 만행이라 보십니까?”

“흐레이그의 수작일 테고, 아마도 둘이 손을 잡았거나 그 힘을 빌렸다고 봐야겠네요.”

“그렇다면, 검은 갑옷의 마물 역시 그러합니까?”

어쩐지 라이뱅 역시 뻔히 알 법한 사실을 확인하나 싶더니만.

부드럽게 돌려 추궁하는 것이었다. 시엔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전에 페시번, 그러니까 흐레이그의 폐공자가 가문에게 목숨의 위험을 받아 구원을 요청했어요. 직접 나서서 구출하던 때에 시설을 발견했죠.”

“과연, 이미 알고 계셨군요.”

“그때 완전히 없애버릴 것을, 판단이 틀렸네요. 흐레이그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적의 품에 비수를 숨겨둔다는 생각으로, 그 제조자를 겁박하여 명령권을 심어두고 시설만 완전히 파괴했죠.”

“……그렇군요.”

라이뱅의 뒤통수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리고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물었다.

“잠깐. 제조자라 하셨습니까? 허면, 그이는……?”

“사악한 주문으로 정신을 제압당한 상태였죠.”

“크흠.”

라이뱅이 말끝을 흐렸으나 결국 참하였냐 묻는 것이었다.

시엔이 다른 대답을 했으니, 놓아주었고 또한 그 소재를 밝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라이뱅은 더 묻지 않았다. 명예 성자라도 성흔을 가진 이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천신께서 알고 계시는 바, 성기사가 말을 보태 무엇하겠는가.

시엔도 거기서 더 변론을 붙이지는 않았다.

트리예가 인제 와서 마물의 제조를 후회하느냐 물어본들, 전혀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

세올도 그렇고 트리예도 그렇고.

사실은 기본적으로 악성을 타고나 선량함과는 거리가 먼 녀석들이었다.

선악이야 어쨌든 시엔을 따르며 곁을 지켰다. 거기에 시엔이 이미 거두었으니 내어줄 생각은 없다.

“라이뱅 경.”

“예, 명예 성자님.”

“저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라이뱅 경께서 보시기엔 아주 부정한 파멸이 일어날 것이나, 그것이 제 능력임을 기이하다 여기지 마시기를.”

그 대신, 이렇게 말해 줄 수밖에는.

< 37. 재해만발 풍운도시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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