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75화 (171/268)

< 36. 세상천지 난리통 [4] >

시엔에게, 이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스승이 될 만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과거 왕자를 가르친 현자였다.

그 영감의 주장으로는, 대륙 각지의 애인을 두었다고 우기긴 했다. 사실무근, 주장에 근거가 전혀 없어 믿지는 않았지만.

-여인이 울면 일단 다정하게 껴안아 주십시오.

-물론, 여인이 이유 없이 울진 않았을 것이니 앙탈을 부리며 손발을 휘두를 것입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맞으시지요. 그러다 보면 힘이 빠져 품 안에 들어올 것이고, 부드럽게 안아 등을 쓸어주시지요.

-이후엔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고 겸사겸사 입도 맞추시고. 남여가 그렇게 맺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클클.

영감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귓전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일단 뒷부분은 개소리 같으니 무시하고, 앞부분은 그래도 맞는 말이 아닐까?

시엔이 주춤주춤 뷔아에게 다가갔다. 심히 어색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삐걱삐걱 팔을 벌렸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천 년 전의 현자가 보았다면 고개를 저었을 장면이었다.

“나쁘은 놈아아!”

뷔아의 팔이 번쩍 들렸다.

시엔이 잠깐, 아주 잠깐 안도했다. 현자 늙은이의 조언이 그래도 얼추 들어맞는 것 같았다. 적어도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그랬다.

빡. 얻어맞은 가슴팍에서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탁’도 아니고 ‘퍽’도 아닌, 빡.

뷔아는 교단의 제일가는 성녀였다. 그리고 성녀들은 신성으로 강화된 신체를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교단의 맨손 격투를 연마한 무술의 달인들이기도 했다.

잠깐. 이거 장난이 아닌데.

시엔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한 대 맞았을 뿐이나, 정신이 아득해지며 어쩐지 순진무구 그 대죄인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봐봐. 나 아니었음 큰일 날 뻔했지? 하고.

시엔이 연신 얻어맞았다.

하나같이 치명적이지 않은 공격이 없었다. 용의 피와 살과 뼈가 튼튼한 것이 다행이었다. 조금 엄살을 섞어, 내장이 상해 피를 토하고 뼈에 골병이 들 정도의 공격이었다.

사실 시엔이 매를 벌었다.

한 대 맞았을 때 많이 아픈 모습을 보였다면 뷔아도 놀라 멈추었을 터. 그러나 현자의 조언을 따라 침착하게 맞아준답시고 의연히 굴었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계속 손발을 놀렸다.

그러다 기어코 눈가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골이 울리는 충격이었다. 시엔이 비틀거리며 눈가를 감싸 쥐었다.

뷔아가 깜짝 놀랐다.

“꺅! 시엔!”

“어, 음. 괜찮습니다. 아마도.”

속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치솟았다. 마력과는 다른, 한없이 온유한 에너지였다.

그게 신성이란 것을 깨닫자마자, 눈가를 감싸 쥔 손에 흰 빛무리가 어렸다. 포근한 온기와 함께 통증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신성 치유. 성녀한테 얻어맞고 신성의 사용법을 깨치다니. 이걸 가르침이라 생각해야 할 수 있나? 사실 당황스러워 아무 생각이나 주워 삼키는 중이었지만.

쏟아지던 맹공이 멈췄다. 어떻게든 버텨낸 모양. 시엔이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때리셨습니까?”

“시엔! 방금, 신성력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만.”

“어떻게, 마법사라고, 히끅, 들었…….”

뷔아는 방금까지 서럽게 울다 놀라 멈췄다. 그러니 말 도중에 숨이 멋대로 튀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본인에겐 창피한 일이었지만.

“아니, 그게 아니, 히끅, 아, 씨. 후우. 하아. 후우우우. 하아아, 끅. 아 씨이……”

시엔이 그 꼴을 보며 키득거렸다.

아직 소년의 태가 남은 청년이 한 점 구김 없이 밝은 미소로 뷔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그저 친근함만으로 섞인 것 없이 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단의 식구들과 같은 눈빛, 어쩐지 심장 한구석이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아, 밝다.

순간, 어쩐지 눈이 부시다. 어쩐지 허여멀건 한 후광이, 뽀얀 달무리처럼 빛을 뭉개며 사근하게 휘감아돈다. 왜, 왜 얼굴에서 빛이 나지?

뷔아가 멍하니 시엔을 바라보았다.

어설프게 벌어진 입에 어쩐지 숨조차 들어가지 않았나. 그러나 정신은 몽롱하니 달콤한 사탕처럼 굳었다.

“뷔아?”

“히끅.”

멈춘 숨에 울음이 남긴 딸꾹질이 다시 솟아올랐다. 뷔아가 제정신을 차렸다. 시엔이 웃음기를 감추지 않고 말했다.

“이제 진정이 좀 되셨습니까?”

“아니. 나는.”

뷔아가 고개를 흔들고, 눈을 질끈 감아 양손을 들어 짝 제 뺨을 야무지게 때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대로였다.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혹시 어디 아픈가? 심장은 왜 뛰고.

“어, 그. 시엔?”

“말씀하시죠. 뷔아.”

“아니에요. 아닌 것 같은데. 아, 씨. 뭐야.”

문득 수치심 비슷한 감정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뷔아는 그렇게 했다. 하려고 했다.

뷔아가 갑자기 등을 돌려 달아나려 하니 시엔이 놀라 그 팔목을 붙들었다.

“뷔아? 어디 아프십니까?”

그 걱정스러운 낯을 접한 뷔아가 화들짝 놀라 손을 팩 뿌리쳤다. 잡힌 손목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아니, 사람 손을 얼마나 세게 잡은 거야? 그리고 손을 왜 잡아?

뷔아는 대답 대신, 그리고 속으로 떠오른 짜증 비슷하나 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에, 그저 아니거든요, 하고 희미하게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어디 아픈가?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쫓아가야 하나?

그러나 명백한 대화 거부로 자리를 떠난 성녀였다. 이를 쫓는다는 것도 예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히힛.”

문득 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엔이 천막 입구를, 정확히는 입구 옆, 입구를 잘라 재단해 안쪽으로 둘둘 말린 천떼기를 바라보았다. 그 안쪽에서 나비가 장난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주인님께선, 히히.”

“뭐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키힛……”

말로는 아무것도 아니라 하나, 표정이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나비가 저러는 것이 사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왜 그러나 물으면 항상 얼굴 보니 좋다느니 하며 싱거운 말이나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시엔은 그냥 여느 때처럼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전령이 들어와 군대의 출발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 * *

“성녀님, 이야기는 끝나셨습니……”

내어준 천막에서 기다리던 성기사장 라이뱅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성녀의 눈이 위아래로 붓고 흰자에 붉그죽죽 핏기가 돌았다.

“성녀님? 혹시.”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요!”

“명예 성자님을 뵈러 가야겠습니다.”

라이뱅의 성기사단이 주로 하는 임무가 성녀의 호위였다. 성녀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러했다. 그러니 사실상 터울 많이 나는 여동생, 혹은 딸처럼 여겼다.

그런 성녀가 울고 돌아왔다.

라이뱅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당장에라도 쳐들어갈 기세에 뷔아가 허둥거렸다. 생각해보면 패악은 자신이 부렸다. 사실만 나열하면, 흠씬 패주고 돌아오는 길이 아니던가. 내가 미쳤나 봐. 이런 미친년.

“아니, 잠깐만, 라이뱅 경, 그런 거 아닌데, 잠깐. 잠깐. 잠깐, 거기 서봐요.”

“예, 성녀님.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아니. 설명이고 나발이고 할 게 없는데.”

뷔아가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라이뱅 경.”

“예, 성녀님.”

“시엔이 신성 치유를 보여줬어요.”

“신성 치유, 신성력을 띄우셨단 말입니까?”

“예. 하지만 시엔이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병사들의 말을 듣자 하니 보지 못한 이가 오히려 드뭅니다. 그 많은 이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오러 마나 신성이 서로 어울리지 못해 한 몸에 깃들지 못했다.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성녀님께서 신성 치유를 직접 보셨다면 틀림없으실 테지요. 그렇다면, 오오. 그야말로 기적이로군요. 천신께서 내리심이 틀림없습니다.”

“기적이요?”

“성자 성녀 의외에 성흔을 받으신 분이 역사에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명예 성자께서도 비범한 분이 아니십니다. 천신께서 그러한 뜻을 품으셨으니 그저 그렇게 이루어지리다.”

라이뱅 경이 무릎을 꿇고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 뷔아도 엉겁결에 마주 기도했다.

아. 그러고 보니. 뷔아가 다시 물었다.

“아. 라이뱅 경. 그리고 또 하나.”

“또 이적이 있었습니까?”

“그게. 얼굴이.”

“예. 얼굴이.”

“얼굴이 빛나던데……”

“오오. 헤일로! 신성 그 자체의 현신! 성자께서 성인의 반열에 드셨단 말입니까! 당장 교단에 이 경사를 알려야겠습니다!”

머리 뒤로 비치는 성광은 천신의 사자께서 임하신 증거이라.

물론 실제로 본 이는 없다 하나 위대한 경전에 담긴 기록이 있었다. 성인으로 추대받은 위대한 선인들께서 발하던 빛이라고.

“아니, 헤일로가 아니라요.”

“성녀께서 보시기에 그렇다면 그렇겠지요.”

라이뱅이 실망한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빛이 난다 하심은?”

“그게, 잘은 모르겠는데, 얼굴에서 빛이 나는데. 이상하게 뽀얗게 보이기도 하고. 혹시 라이뱅 경께서 이러한 현상을 아시나 해서.”

“흠. 들어본 적이 없는 기사입니다만.”

라이뱅 경이 턱을 쓰다듬었다.

성황청 공식 애처가이자, 부인 또한 남편을 사랑하는 끈끈한 금술로 존경을 받는 라이뱅 경이었다. 이번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선 상태가 더 심해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내 짚이는 것이 있어 급히 물었다.

“혹시, 보아 가슴이 크게 뛰십니까?”

“오. 맞아요. 뭔가 아시겠어요?”

“고뿔에 걸린 듯 얼굴이 달아오르시거나.”

“그건 좀 다른 이유였는데요……”

“그리고 어쩐지 꺼리는 마음이 들어 자리를 피하고 싶기도 하십니까.”

“예. 그랬어요.”

“그러면서도 혹시 지금 다시 확인해 보고 싶으시다거나.”

성녀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라이뱅 경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대견하다는 듯한, 어쩐지 다 큰 딸을 떠나보내는 듯 아련하기도 한 미소였다.

뷔아가 기겁을 하는 사이 라이뱅이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뭔데요?”

“그것은 성녀님께서 직접 그 까닭을 알아야 하실 일이니, 타인이 감히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함부로 털어놓을 일 또한 아니지요.”

“아니, 뭐냐니깐요……”

“당분간 명예 성자님과 동행하시도록 하시지요. 그러하면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왜 이러는데요.”

“천신께서 인도하심이 이러함입니다. 과연 그분의 뜻이 이러하심을 알았습니다. 그 크나큰 은혜를 다시금 가슴에 새깁니다.”

라이뱅 경이 혼자 감격하여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짧게 끝날 신앙 고백이 아니다. 뷔아가 포기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 * *

흐레이그령 도시 베스탄티. 과거 땅에 떨어진 페시번을 줍기 위해 들렸던 적도 있었다.

군대가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백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항복 신호였다.

“이봐, 시엔.”

“응? 왜?”

카레네가 팔꿈치로 시엔의 가슴을 톡 두드렸다.

“저기 저 고아한 성기사 분을 아나? 태에서 묻어나는 실력이, 보아하건대 어마어마한 실력자이심이 틀림없어.”

“교단의 성기사장 라이뱅 경이셔.”

“오오. 성기사장. 그럼 혹시 내게도 소개해 줄 수 있겠나? 부탁인데.”

“애처가로도 유명하신데.”

카레네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야? 대련을 청하고 싶은데, 교단의 분이라 함부로 다가가기가 좀 그렇군.”

“검위공께서 계시잖아.”

“검위공께선 경지가 너무나 높으셔서. 부끄럽지만 찾아가도 아직 어림없다며 체력 단련만 시키시니.”

“내 뒷담이라도 하는 겐가?”

검위공이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카레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영롱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다만, 그게 더 수상해 보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검위공이 시엔의 가슴팍을 툭 쳤다.

대체 왜 이래? 가슴에 먼지라도 묻었나? 시엔이 그리 생각하는 사이, 검위공의 눈빛이 은근해졌다.

“자네, 그런데 성녀와는 무슨 관계인가?”

검위공이 고개를 돌렸다. 시엔이 그 시선을 따르자, 저만치 말을 타던 뷔아가 고개를 팩 돌리는 것이 보였다. 시엔이 쓰게 웃었다. 아직도 앙금이 남았나?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뒤끝이 길다며.

“굳이 말하자면 친구쯤 되겠네요. 저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실치 않긴 한데.”

“호오. 자네?”

“예? 뭡니까, 그 표정은.”

“쯧. 그쪽이었나. 에잉.”

“그쪽이라니.”

“그나저나, 오러는 어떤가? 마법에 신성까지 다루니 오러라고 못 다루겠나 싶은데.”

검위공이 말을 돌렸다. 이미 끝맺은 이야기였으니 명백히 말을 돌리는 꼴이었다.

오러를 깨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성으로 장난을 친 것이었냐며. 진작에 거하게 푸닥거리를 마치지 않았던가.

요즘은 밤에 숙영지만 꾸리면 찾아와 또 괴롭혔다. 둘을 다루면 셋도 다룰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용과 뒤섞인 신체라도 소드 마스터와의 일대일 대련은 정말로 고된 일이었다. 종자 역할을 자처한 카레네가 물통과 빗자루를 들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와중엔 특히 그랬다.

신성 치료가 가능하다는 걸 들키고 나선 아예 검기까지 일으키더라.

“일 없습니다만.”

왜 말을 돌리나 추궁할 정도로 여유만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시엔이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베스탄티를 바라보았다.

“도시의 상태가 이상하군요.”

“그렇지.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으니.”

검위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백기만 내걸 것이 아니다. 응당 사절을 보내 항복의 뜻을 알리고, 또한 사죄와 배상을 밝히며 이후의 화합을 도모해야 했다.

그런데 사절은커녕, 성문에도 성벽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도시는 고요했다. 도시에 아무도 없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군대를 빼 강스트프레를 지키겠다는 속셈이 아니겠나? 그만한 대도시에 전 영지의 군대를 전부 모았다면, 꽤 힘든 전투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겠죠. 그렇긴 한데.”

시엔이 말끝을 흐렸다.

“검위공, 저쪽에 뭔가 느껴지십니까?”

시엔이 저 멀리, 도시 중심쯤에 거뭇하게 뭉게뭉게 피어오른 것을 가리켰다.

“전혀. 오러를 끌어올려도 어째 작디작은 소음 하나가 안 잡히는구먼.”

“역시 그렇습니까.”

방화광은 불 속에서 열기를 읽고, 물길잡이는 물을 보아 거기에 서린 생명을 알았다. 그리고 흑마법사가 세상을 보아 이미 죽었으나 떠도는 이를 거뒀다.

흑마법사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면, 연기는 아니다. 애초에 사이한 기운을 느꼈으니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지만.

수많은 망령들이 먼 도시의 중심 위를 엉켜 맴돌았다. 수백, 어쩌면 수천의 망령들이 내지르는 비통한 울부짖음. 그 멀리서도 쩌렁쩌렁 울린다 느껴질 정도였다.

흑마법사의 감각을 마비시킬 지경으로.

< 36. 세상천지 난리통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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