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44화 (142/268)

< 30. 둑이 무너지고 [3] >

군인 열이 군용 천막 하나를 사용했다.

군대가 만오천에 달한다면, 천막의 개수만 천오백 개였다. 물론 취사대와 보급 병참 지휘 등등 부대의 임시 시설을 생각하면 그 숫자가 더욱 늘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니, 왕당파의 군대가 한없이 펼쳐진 꼴이었다.

라둔 베이스 남작이 발을 동동 굴렀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렇게 왕당파의 군대를 바라보고 또 시엔을 바라보기를 수차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세상에, 이런 대병력이라니. 대공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미 늦었습니다. 자작님. 이제 와서 저들이 얌전히 돌아가겠습니까? 본보기를 보이려 할 테지요.”

“하지만 저 대군을 겨우 오천으로 막아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대군이라니요.”

시엔이 미소 지었다.

만오천의 군대는 대규모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징집병도 없이 순수하게 군인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고작 만오천.

과거 흑마법사가 십만의 군대를 마주했을 때는 평원에 아예 빈틈이 없었다. 시야 전부, 눈에 보이는 저 지평선 끝까지 새카맣게 몰린 것이 흑마법사의 적이었다.

혼자서도 도망치지 않았으니, 요새를 끼고 병력을 이끌어 고작 만오천을 대적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왕국 3차 방어선의 중심요새가 아닌가요? 일만으로 오만을 맞이하여 싸우도록 설계된 요새라 들었는데요.”

“그건 적이 주공 방향으로 올 때 이야기가 아닌가. 여긴 요새의 후방이란 말이네.”

“요새가 후방이라 하여 방어력이 덜하지는 않잖아요?”

“왕실의 무기고가 열리지 않았다면 말이지. 작정하고 유성투를 가동하면, 하루를 버틸지 이틀을 버틸지 장담할 수가 없어.”

“설마. 내전인데요. 왕국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를 파괴하려 들겠어요?”

“미스릴 공성탑은 어쩐단 말인가. 저걸 밀고오면 부술 방법이 없지 않나.”

시엔이 자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작님. 도박을 즐기시나요?”

“갑자기 무슨 소린지.”

“도박의 기본은 말이에요, 확률이 작을수록 그 배당이 올라간다는 거죠. 자작님께선 이미 금화를 거셨네요. 낮은 확률에 전 재산을 거셨지요.”

베이스 자작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시엔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와 무른다 한들 판돈 중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겠죠. 게다가 아나힐즈가 저편에 붙었으니, 이젠 승부를 봐야 할 때가 아니셨나요?”

아나힐즈 자작가.

베이스 자작가와 경계를 맞댄 가문으로, 아주 오래 악연을 쌓아온 앙숙이었다.

베이스 자작가가 1왕자파에 합류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아나힐즈가 일찌감치 왕당파에 합류했으니, 이후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영지가 위태롭고 말 것이 뻔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중립을 지키다, 델피르의 생존을 듣고 곧바로 합류했다.

그러나 병력차가 무려 세 배에 달했다.

그저 병력 차이가 전부가 아니었다. 왕실 무기고의 최고 공성 병기들로 무장하고, 마법사 병단까지 낀 대군이었다.

요새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전력이니, 그나마 가진 이점을 손쉽게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 시엔. 여기에 있었는가.”

다른 목소리가 베이스 자작의 입을 틀어막았다. 시엔이 뒤돌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나오셨습니까.”

“영 답답해서 말이야. 환기도 안 되는 것 같고, 창도 없어서 꼭 감옥에 갇힌 느낌이야. 요새란 전부 이 모양인가?”

델피르가 툴툴거렸다.

방어 요새가 편안할 리가 없다. 오래 전쟁이 없었으니 왕가의 일원이 요새에 묵을 일도 없었을 터. 불편한 것이 당연했다.

베이스 자작이 고개를 숙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아. 베이즈 자작. 자네의 공이 참으로 크네. 훌륭한 요새야. 덕분에 편히 지내고 있다네.”

베이스 자작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방금 전까지는 영 불편하다 툴툴거리는 와중이었으니. 예법 선생이 커흠 헛기침을 하자, 델피르가 궁색하게 말을 덧붙였다.

“음.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다는 말일세.”

“······그러하시군요.”

“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겠나? 내 대공자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네.”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베이스 자작이 물러났다.

델피르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크게 한숨을 푹 쉬었다. 딱딱하게 감춘 얼굴을 거두자 구름 낀 듯 흐린 표정이 드러났다.

“시엔.”

“개운치 못한 표정이시군요.”

“모르겠어. 난 그냥.”

예법 선생이 단호히 말했다.

“왕자님. 체통을 지키십시오.”

“체통이고 뭐고. 듣는 사람도 없잖아.”

“듣는 사람이 없다 하십니까? 사방이 완전히 닫힌 곳에서도 듣는 귀가 있어 밖으로 퍼지는 것이 당연한 순리입니다. 하물며…….”

“그만! 그만하시오. 알겠으니 그만하란 말이오.”

왕자가 분통을 터뜨렸다.

“훌륭하십니다.”

그런 왕자의 분통에도 예법 선생은 그저 그렇게 말하며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한 발짝 물러날 뿐이었다.

“난. 잘 모르겠네. 이렇게 왕국의 군대를 보고 내 적이라 해야 하는 상황을 모르겠어.”

“마마께서 유배되셨지요. 공주님조차 뵙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어미가 자식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왕자님께서도 같은 상황에 처하시게 될 겁니다.”

“그건 예전부터 그랬어. 그랬다오. 내 궁전에 찾아오는 이가 없었으니까.”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지요.”

델피르는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시엔이 물었다.

“무엇이 마음에 걸리십니까?”

“내가 꼭 왕이 되어야 할까? 나는. 저번 전쟁 때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걸 봤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끔찍한 광경이었는데. 그걸 지금. 사실 왕좌를 원하느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시엔이 예법 선생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입을 꾹 다문 채, 어쩐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시엔을 마주볼 뿐이었다. 네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 지켜보기라도 하겠다는 양이었다.

시엔이 잠시 대답을 골랐다.

“저들이 보이십니까. 흐레이그의 깃발을 들었으나, 실상은 국왕 폐하의 군대입니다.”

“나도 알아.”

“왕이 신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궁리하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귀족이 왕을 따릅니다. 적어도 폐하께선 절 사랑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니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시엔이 델피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전하. 이건 전하를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온전히 저를, 그리고 서부의, 전하의 충직한 신하를 위한 싸움입니다.”

“나는 잘 모르겠어.”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십시오. 저들은 지금 전하의 백성이 아닙니다. 전하께선 오로지 당신의 백성만을 살피셔야 합니다.”

모두 잃고 나서 후회해봐야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테니까.

“내 백성.”

델피르가 중얼거렸다.

* * *

본디 주인의 것이 그 주인에게 돌아가지 아니하였으니, 순리와 이치에 맞지 않고 또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그리하여 왕국에 재난이 들고 땅이 마르며 지금의 고난이 전부 그 부덕에서 나온 것이라.

여기에 올바른 왕세자께서 계시니 왕국에 정의를 세우기 위함이라.

간밤에 준비한 대사가 모두 허사가 되었다.

원래는 최후 통첩이라 하여, 공격 측에서 전투 전 마지막 전령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나 이런 내전이라면 더욱이.

그러나 적의 군대는 벌써 전진 대형을 갖추었다. 전령은 없다. 대화는 필요 없이, 그저 힘으로 몰아쳐 부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적 대형의 중심에 선 것이 흐레이그의 깃발이었다. 이 참에 서부 귀족을 완전히 찍어누르겠다는 그런 심산이리라.

쿵! 쿵! 쿵! 쿵!

마침내 전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적의 군대가 북소리에 맞춰 전진했다.

군화 하나가 내는 소리는 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오천의 군화가 한데 모이면 달랐다.

한 발짝 한 발짝.

지축이 무너지는 굉음이 되어 사위를 가득 메웠다.

세상 가장 강력한 진군가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 시위 걸지 마!”

“궁수대, 대기, 대기!”

성벽 위에서 지휘관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뒤로 장대를 든 병사들이 대기했다.

성벽의 계단으로 길게 늘어선 병사들이 본격적인 수성이 시작되는 때를 기다렸다.

쿵쿵!

적의 북소리가 크게 두 번 울렸다.

정지 신호였다. 활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적의 군대가 정지했다.

로브 차림을 한 이들이 전면으로 나섰다.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이었다.

원형으로 방진을 짜고 지팡이를 들어 올리니, 대지 위로 어슴푸레 빛이 새어나와 복잡한 문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법 병단······!”

“소문이 정말이었단 말인가.”

성벽의 지휘부에서 탄식이 줄을 이었다.

여러 명의 마법사가 하나의 주문을 함께 완성하면 그 위력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개인의 마력이란 본디 서로 충돌하여 간섭하는 것이라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개인이 닿기 어려운 강력한 화력을 가진 대신, 그만큼 전문적으로 손발을 맞춰 훈련한 마법사들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주문 시전보다 훨씬 더 긴 영창이 필요했다. 서로 간 조율을 계속하여 주문의 균형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지휘부의 귀족들이 일제히 시엔을 바라보았다.

강력한 수단이 있다 장담했으니, 이제는 그 증명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시엔이 손을 들어올렸다.

심장에 들어찬 음차원 에너지가 터져나왔다. 마력이 급류가 되어 거칠게 내달렸다.

세계수의 나뭇가지가 음차원 에너지를 받았다. 떨어져 나온 가지이나 그 본체와 통하는 것이었다.

영기 서린 신목의 맥으로 마력이 통했다.

음차원 에너지가 요동치니 그 사나움은 어떤 맹수조차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영창 주문이었다.

세상의 법칙이 뒤틀리고 짓이겨지며 찢기고 다시 붙으며 이제껏 없던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검은 구체들이 솟아올랐다.

세상에 없던 완전한 검정이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듯한, 그런 새카만 것이었다. 끝없이 깊은 저 지하로 뚫린 구멍과 같은 형상이었다.

세상 검은 것 중 가장 검은 것들.

요새의 상공으로 검은 구체들이 결집하니, 이내 길고 날카로운 형상을 갖췄다.

창대는 기둥과 같이 거대하고, 창날은 굽이치며 우아하게 뻗었다. 그리고 그 첨단에 잘게 부서진 별빛이 새어나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트리예가 전율했다.

여명의 태양은 강력하다.

모든 어둠을 살라먹고 온 사위를 찬란히 물들이는 태양. 가장 강성하여 세상의 지배를 선언하는 시간의 절대적인 광원.

그런 여명의 태양조차 떨구는 창이 있다. 태양조차 집어삼키는 절대적인 어둠. 영원한 밤을 약속하는 종말의 창날이었다.

흑마법사에게 전설과 같은 마법이 아니던가.

“영원한 밤의 창날······.”

성벽 위의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창. 그 첨단이 적을 향해 드리웠다.

“오오.”

“마법이다.”

“마법사가 있어.”

그리고 적의 군대 역시 같은 것을 보았다.

* * *

마법 병단.

마법사 개개인은 높은 경지라 할 수 없으나, 여럿이 모여 주문 중첩 및 증폭, 교차, 중연산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전략급 공격 마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었다.

전략급 마법.

전장의 상황 자체를 바꿔버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으니, 마법 병단이란 군대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알름 포르델하이드. 왕실 마법 병단의 단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게 대체 무슨 마법이지?”

“스피어 계통으로 보입니다만, 저러한 색은 처음 보는군요. 칠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겠습니다.”

“신마법인가?”

알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규모에 비해 마력은 별반 느껴지지 않는데.”

흑마법이 세상에서 지워졌으니, 아케인 에너지가 유일한 마력이 되었다. 자연히 마력이라 부르는 것이 오로지 아케인 에너지만을 뜻했다.

다른 성질의 마력을 알아채는 것 역시 마법사의 기술이었다. 극소수의 마법사를 제외하곤, 음차원 에너지를 바르게 알아차릴 수 없는 시대였다.

“어떻게 하십니까? 현 주문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앞으로 15분 정도가 걸릴 겁니다만.”

“아무래도 늦어. 연산 일부 취소하고 방어 주문으로 돌려. 젠장. 저거 계통이 대체 뭐야? 전혀 감도 안 잡히는데.”

상대 마력의 속성을 알면 효율적인 방어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다. 화계인지 수계인지, 혹은 신성인지에 따라 최선의 주문이 전부 달랐으니까.

하지만 그걸 모르겠다면?

“대 마법 방어벽 전개. 3번대 준비시켜. 아니다. 혹시 모르니 4번대가 함께 대규모로 실드를 쳐.”

속성과 상관없이 마력 전체 방어하는 주문을 펼칠 수밖에는. 어차피 검은 것이니 신성 주문은 아니리라.

느껴지는 마력은 실상 크지 않으니 2개대 스무 명이면 충분히 방어하리라.

그때였다.

“크, 큰일입니다!”

부관이 급히 알름을 찾았다.

알름이 돌아보자, 부관이 급히 말했다.

“계측조의 급보입니다. 왜곡치 74,300. 제 3급 전략 마법입니다!”

마탑과 마법 병단의 차이점이었다.

마탑은 마법의 위력을 수치화하여 정리하는 것을 멍청한 짓이라 여겼다.

마법의 운용이 개인의 방식에 따라 판이했다. 그 위력 역시 상황과 개인 성향에 따라 달랐다. 그러니 마법의 위력을 수치로 정의하여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같은 왜곡치를 가지더라도 대규모 강우와 거대 폭발, 그리고 관통 계열 마법의 효과가 전부 다르니 굳이 재단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마법 병단은 달랐다.

그들이 군대이기 때문에. 군대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수치화하여 그 규모와 피해를 정의하고, 그에 따라 교전 수칙을 완성하는 것이 군대의 특징이 아니던가.

“74,300? 지금 장난해?”

“아닙니다. 세 번이나 돌려봤는데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마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왜곡률은 전략 마법에 이르는 수치라. 환상 계열의 거대 허상인가?

알름이 고개를 저었다.

현명한 이는 언제나 최악을 가정한다. 이제는 아니지만, 한때 스승이던 이의 가르침이었다.

최악의 경우, 마력 유동 차단을 겸한 신마법일 수도 있다. 이만한 규모라면 분명 아군에 큰 피해를 줄 것이 분명했다.

알름의 판단은 빨랐다.

“젠장, 주문 취소해! 전원 방어로 돌아간다! 부단장이, 아니, 내가 직접 중앙 설계에 들어간다. 대마력 방패. 최대 출력으로 당장 준비해!”

어느 계통이건 방어술은 가장 쉬운 마법이기도 했다. 병단장이 직접 중앙 설계에 나서고, 병단이 능숙히 호흡을 맞추니 금세 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한 우윳빛 장막이 군대의 앞을 지켰다.

일렁이는 마법의 광택이 서서히 안정화되며 바래갈 즈음, 거대한 창이 천천히 날아들기 시작했다.

어떤 마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느긋하게 날아드는 종류였다. 덕분에 관측병이 곧장 궤도를 읽었다.

“예상 착탄 지점 14-50. 흐레이그 부대 방면입니다!”

“이차 주문 전개해! 경로를 삼중으로 차단한다. 456대 2차, 789대 3차 방어 전개하라!”

“4번 대장 술식 전개하겠습니다!”

“7번 대장 술식 전개하겠습니다!”

마법 병단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서로의 마법 시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구분별로 따로 원형으로 모였으며, 제식 지팡이 또한 공명을 이미 맞춰놓았다.

장막 앞으로 사각의 마법 방패가, 장막 안쪽으로 같은 방패가 하나씩 더 떠올랐다.

검은 기둥이 날아드는 경로에 세 겹에 걸쳐 대 마력 방벽이 차단선을 펼쳤다.

“충돌한다! 전원 백파이어에 대비해!”

이윽고, 기둥의 첨단이 마력 방패와 충돌했다.

마법사들이 이를 악물며 충격에 대비했다.

“응?”

“어?”

마법사들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충격이 없었다.

* * *

거창이 마법 방패를 부드럽게 통과했다.

신성 주문엔 대신성 방어를, 화염 주문엔 대 화염 방어를, 오러와 창칼을 막으려면 대 물리 방어 주문이 필요했다.

음차원 에너지가 날아드는 데 아케인 에너지 방어를 펼쳐봐야 서로간의 마력 간섭으로 약간의 과부화가 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으아아악!”

“젠장, 이탈하지 마! 자리를 지켜!”

“떨어진다! 떨어진다아!”

흐레이그의 진형이 급격히 흐트러졌다.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거대 마법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엎드리고, 누군가는 밀치며 벗어나려 들고, 누군가는 진형을 사수하라 외쳤다.

그때, 베사렌 흐레이그가 억센 힘에 떠밀렸다. 기습적인 공격에 그대로 땅에 쓰러져 처박혔다.

“위험합니다!”

그뿐이랴. 곧장 등 뒤로 충격이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대공자님.”

호위기사인 쟌프 경의 솜씨였다.

마법이 통과하는 것을 보자마자 대공자를 보호하며 쓰러뜨리고 그 위를 제 몸으로 덮었다.

“나는 괜찮아. 헌데.”

베사렌이 겨우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느긋하게 날아드는 검은 창날.

그러나 떨어지는 것이 언제까지고 날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마법이 땅에 닿기 직전, 기사의 억센 손아귀가 감히 대공자의 머리를 붙들고 언 땅에 거칠게 처박았다.

기사가 긴장어린 눈빛으로 적의 마법을 주시했다. 검은 창날이 마침내 지근거리에 닿았다.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그 기둥 같은 창대가 땅속으로 녹아들었다. 마침내 마법이 자취를 감추고 나자, 잔프 경이 황망히 눈만 꿈뻑거렸다.

“뭐야? 왜 아무 일도······.”

그때였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검은 궤적을 그리는 바람이 종심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도 잠시, 일순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병사의 몸이 떠올랐다. 거친 광풍에 휘말려 그대로 날아올라 내동댕이쳐졌다.

“어어, 살려 줘! 으아아아!”

종심에 병사들이 날아 부딪쳤다. 창날이 떨어진 중심지에 인간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뒤이어, 어둠이 터져 나왔다.

< 30. 둑이 무너지고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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