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둑이 무너지고 [1] >
세필리아 공주가 후작성에 억류되었고, 그 호위대 전원이 영지에서 쫓겨났다.
놀라움을 크지 않았다.
그 시엔 티란디스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여겼으니까. 이미 연인을 잃고 독을 마신 왕국 최고의 사랑꾼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애초에 공주의 신부행이 급히 진행되고, 또 하필이면 티란디스 영지를 지나갈 때부터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일이었다.
그 말은, 왕가에서 일부러 덫을 놓았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레이알드 셉텐 페벨룬. 페벨룬 국왕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선을 넘었군. 그 능구렁이가 결국 치정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야. 자네 말이 맞았어.”
“아직 젊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니 결국 일을 그르치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흐레이그 공작이 대답했다.
세필리아 공주의 혼인 건이 바로 흐레이그 공작의 작품이었다.
시엔 티란디스가 손대어 계속해서 승리를 이룬 까닭인지, 그 자신감이 넘쳤다. 분에 넘치는 자신감을 오만이라 했다.
왕실에 반할 정도의 오만이었다.
그러나 놈은 젊다.
게다가 성자라 알려진 성품. 제 사람을 끔찍히 아끼는 성향. 그리고 과거의 화려한 전적.
그러니 연인이 늙은 호색한에게 팔려가는 것을 결코 두고만 보지 않으리라.
그리고 티란디스가 미끼를 물었다.
“본보기를 보이셔야 합니다. 왕실의 법도가 지엄하며 왕국의 주인되는 분께서 절대 자비롭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리실 기회입니다.”
“티란디스가 쑥대밭이 되고 나면, 지금 눈치를 보며 등 돌릴 기회만 보고 있는 놈들도 정신을 차리겠지.”
왕세자 책봉 이후, 1왕자를 지지하던 귀족들이 중립으로 돌아섰다.
볼모를 잡아 그 기를 꺾어놓은 가문들이었다.
그러나 티란디스가 왕실에 반항했다. 또 왕가가 제대로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요즘 들어 다시 고개를 치들까 말까 눈치를 살피는 와중이었다.
“군사를 모아야겠군. 왕실의 이름으로 군대를 소집하겠네.”
“하오나 폐하.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보기를 보이라 하지 않았는가?”
왕이 되물었다.
흐레이그 공작이 마른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공주님의 반환을 명령하시고, 또한 티란디스 대공자를 소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용서하겠다는 전언과 함께 말입니다.”
기회를 한 번 더 주자는 뜻이었다.
왕이 기이한 눈빛을 보냈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냐는 듯한 그런.
“이미 덫에 걸렸으니, 서두를 필요 없이 힘을 더 빼어놓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제 와서 티란디스의 애송이가 공주님을 내어놓지는 않을 겁니다.”
“과연. 그러하군.”
왕실에서 일단 기회를 주는 척을 할 필요가 있었다. 티란디스가 이마저 거절한다면, 정말로 반역이라는 명분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니 조금 더 인내하여 큰 명분을 갖자는 뜻이었다.
“자네의 계책이 참으로 뛰어나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니. 참으로 뛰어나. 참으로.”
왕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흐레이그 공작이 멈칫했다.
레이알드는 영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왕의 자질이 그 지능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왕재로 보자면 형편없는 인물이었다.
왕이란 유능한 이를 보아 덕으로 끌어안고 그 힘과 지혜를 빌리는 자였다.
그러나 현 국왕은 저보다 뛰어난 자를 질투하여 가슴에 두고 증오했다.
본디라면 왕실의 명예를 크게 떨어뜨렸어야 할 인물이나, 뛰어난 여인을 왕비로 맞이하여 여기까지 국정을 이끌었다.
그 왕비가 지금 어떤 꼴이 되었던가.
궁에 갇혀 한 발짝 나가지 못하고, 또 외인을 만나지 못하니 제 피붙이조차 보지 못하는 신세였다.
“흐레이그가 왕실을 섬기는 충신이라 참으로 다행이군.”
“감사합니다. 폐하.”
“그러니 티란디스의 처단은 흐레이그가 맡아주시게. 마침 오랜 악연을 쌓아온 사이이니, 이 참에 정리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
흐레이그 공작이 웃는 낯으로 생각했다.
왕이 직접 군대를 소집하는 것과, 왕의 이름을 빌려 소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요즘 들어 서서히 비협조적으로 돌아선 중립파 귀족들 때문이었다.
왕이 직접 군대를 소집하면 그들 역시 얼마 안 되는 병력이라도 억지로 파견할 터.
그러나 흐레이그가 왕의 명령을 빌어 소집하고자 하면 절대 병력을 보내주지 않을 터였다.
결국, 그 모든 군대 소요가 왕당파 귀족에게서 나왔다. 게다가 왕의 명령을 빌었을 뿐 책임자가 흐레이그 공작이라, 그 피해만 고스란히 떠안게 생겼다.
‘벌써부터 견제하는군. 빌어먹을.’
국왕의 입장에서는, 왕세자의 배경이라 해도 한 귀족에게 너무 큰 권력이 모이는 것은 반갑지 않을 터.
이참에 그 세를 꺾어놓겠다는 정치적 수작이었다. 심지어 절대 거절할 수조차 없으니 이 얼마나 절묘한 수법이랴.
레이알드는 영리한 인물이었다.
그 영리함을 국정에 발휘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흐레이그 공작이 고개를 숙였다.
“소신 흐레이그, 명을 받들겠습니다.”
공손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속은 완전히 달랐지만.
‘어차피 당신도 천년만년 살지는 못할 것이다. 왕세자께서 왕위에 오르시고 나면 선왕 따위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야.’
* * *
「-친애하는 영주님께.
왕국의 사방 중 하나를 맡아, 저희 서편의 귀족들은 예로부터 하나와 같이 왕국의 발전에 힘써왔습니다.
귀하의 가문과 저희의 신의가 깊어 바다와 같습니다. 대사와 소사를 가리지 않고 호사에 기뻐하고 비사에 슬퍼하니 이는 마땅히 가족이 가진 덕과 같았습니다.
요즈음 어려운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인연이 가장 빛을 발하는 때 역시 바로 지금이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새삼스러우나 그러한 우정을 다시금 되새기며, 또한 앞으로의 역경을 헤쳐 나갈 지혜를 모으고자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귀하의 가문과 영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시엔 티란디스.」
왕세자 책봉 이전까지만 해도, 티란디스는 왕국 서쪽의 제후 가문으로 그 위치가 굳건했다.
특히 티란디스파라 불리며 사실상 가신처럼 따르던 가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티란디스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현 티란디스 후작은 그간의 치세로 휘하 귀족들에게 그간 큰 신뢰를 쌓아왔다.
물론 사태가 이렇다 보니 모두 중립을 표방하게 되었지만, 그간의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 심정적으로는 동조하는 바가 있었다.
초대장을 두고 귀족들이 고민했다.
다나타난 자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늙어 물러날 때가 되었다 생각 중이었음으로, 가문의 일을 항상 후계와 상의하여 결정했다. 사실 상의보다는 후계 교육에 가까웠지만.
“네 생각은 어떠냐.”
“요즘, 때가 좋지 않아요. 특히나 지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티란디스가 공주님을 억류하고 있지요. 명분에서부터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입니다.”
“그러한 판단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 티란디스가 무얼 도모하지 알겠냐?”
“이전 티란디스파 귀족을 결집하려 드는 게 아닙니까. 서편 귀족들이 다시 뭉친다면, 왕가로서도 힘으로 밀어붙이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되고?”
“일단은, 교단을 끌어들일 수 있겠네요. 명예 성자이니 교단의 성명을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사실상의 매매혼이니 교단에서 옳지 않은 것이라 비난하면 왕가의 명분도 많이 약해지고 말 겁니다.”
“그리고?”
“공주님께서도 한 몫 거드시겠지요.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며 왕실에 종용에 거부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된다면?”
“이번 일만 잘 넘어가면, 티란디스는 서쪽을 넘어 왕국 모든 중립 귀족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겠죠. 왕실과 흐레이그가 한 편이니, 나머지 귀족들이 뭉쳐야 겨우 견제가 가능할 테니까요.”
“그러면 참석해야 할까?”
“흠.”
다나타난의 대공자, 바일이 망설였다.
“티란디스의 노림수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일단 교단은 내정 불간섭이 원칙이고, 왕실이 반역을 내세우면. 반역이라니. 반역이지 않습니까? 티란디스와 교류하는 것은, 반역 세력에 묶이는 꼴이니.”
“그렇지. 반역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티란디스도 너무 무모합니다. 물론 델피르 전하께서 그렇게 되시고 궁지에 몰렸다 해도, 이래서야 아예 전 재산을 걸고 도박에 나선 셈인데.”
다나타난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예? 어째서요?”
“후작께서 병상에 계시니까. 현재 티란디스의 모든 대소사가 대공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이 파국을 맞이하더라도, 결국 대공자 선에서 정리하겠다는 생각이시지.”
“그건. 하지만 후작께서 위독하시다고.”
“내 그리 정정하신 분이 그러하다 믿어야겠냐.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사실 분이야. 아마 대공자가 마지막 시험에 든 것일지도 모르고.”
“흠. 과연.”
“왜 그러냐?”
“혹시 아버지께서도 병상에 드시지 않을까 해서요. 저도 이제 슬슬 실무에 들어야.”
“흥. 어림도 없다, 임마.”
다나타난 자작이 콧방귀를 뀌었다.
부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대다, 일순간 정색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아버지께선 언제나 말씀하셨지. 어려울 때의 친우가 진실한 친우라고. 흐레이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진실한 친우였다. 그러니 이번엔 우리가 나서야 할 때지.”
“하지만.”
“그리고 후작님께서도 생각이 깊으신 분이니,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이시진 않았을 터.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후작님을 믿겠다.”
“하지만 그러다 잘못되면.”
“우리는 네가 후작 하자.”
“예?”
“이 결정은 내 결정이니, 너랑은 상관없지. 일이 잘못되면 내가 물러나면 그만이야.”
“아버지……!”
바일이 감동한 척을 했다.
다나타난이 툭 내뱉었다.
“그렇다고 일이 잘못되라 빌지는 말고.”
“에이, 제가 그러겠어요? 어차피 영지는 제가 받을 건데.”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간 큰일 났겠네.”
“전부 아버지의 능력이신 거죠.”
* * *
시엔이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열두 통의 초대장 중 참석할 수 없다는 답장이 둘이었다.
그래도 팔 할이 넘게 참석한 자리였다.
제후로서 티란디스가 상당한 인망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후작에 대한 믿음이 그 정도이거나.
시엔이 현관에서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대공자. 이런 때에 연회라니.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다나타난 자작님께서 직접 오셨군요.”
“아들놈이 아직 못 미더워서 말일세. 다들 도착했나?”
“이미 다섯 분이 도착하셨습니다.”
다나타난 자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자네가 직접 손을 맞이하나? 연회의 주인이 여기 있는 법이 어디에 있나?”
“공주님이 계시니 제가 맞이하여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발걸음 하시는 손님이니 직접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흠. 다른 가주가 있나?”
“자작님께서 처음이십니다.”
시엔이 미소 지었다.
가주가 직접 왔다는 말은, 그만큼 티란디스를 지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나타난 자작가. 시엔이 머릿속에 박아두었다.
“에잉, 다들 애들뿐이겠구만. 심심하게 되었어. 그렇게 되면 대공자가 책임지고 심심치 않게 해주어야겠네.”
“절대 심심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기대해도 되겠는가?”
“상상 이상이실 겁니다.”
시엔이 장담하자, 자작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자작이 안으로 들고, 시엔이 현관에 남아 손님을 맞이했다.
그 주인이 직접 행차한 가문은 둘 뿐이었다. 이미 들어간 다나타난 자작과, 그리고 엘와즈 백작이었다.
심지어 엘와즈 백작에겐 초대장도 보내지 않았다. 시엔이 의문을 감추고 백작을 맞이했다.
“백작님께서 직접 와 주셨군요. 이쪽은 영식이십니까?”
“그래. 이 아이는 스반델. 아마 둘이 동갑내기지?”
스반델 엘와즈는 백작을 꼭 닮은 자세였다.
허리가 곧고 가슴을 펴 내밀었으니 당당한 자태다.
엘와즈 백작은 꼿꼿한 자태의 여주인이었다. 엘와즈 영지가 왕국 최서단의 국경과 맞닿은 만큼, 엄격한 가풍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후작께선?”
“송구스럽습니다만, 현재 와병으로 거동이 어려우신 상태입니다.”
“대공자가 손님을 맞이하기에 연회의 주인이 따로 있나 하였더니. 좋아. 내 이때 물어보마. 지금의 태가 전부 네 작품이냐?”
“그렇습니다.”
“흐음.”
엘와즈 백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인이 여기에 있으면 연회는?”
“공주님께서 계십니다.”
“격은 맞으나 예의는 아니지.”
“어려운 발걸음 해 주시니 직접 나오는 것이 더 예의라 생각했습니다.”
“생각이야 갸륵하지만, 생각만으로 예가 이루어진다면 예법이 있을 이유가 없을 없지.”
꼬장꼬장한 여무인이었다.
엘와즈 백작이 다시 말했다.
“공주님께서 연회장에 계신다라. 적어도 대공자가 공주님을 억류했다는 소리는 거짓이었던 모양이야.”
억지로 데려다 놓았다면 연회장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시엔이 대답했다.
“제가 감히 그러할 수 있겠습니까.”
“좋아. 나는 카레네 그 아이가 부탁하여 왔네. 허언을 하지 않는 아이이니 참석해 달라 따로 편지까지 쓴 이유가 있을 터. 내가 국경을 비웠으니,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할 테야.”
“이를 말씀이십니까.”
엘와즈 백작은 여주인이자, 국경의 수비대장으로 아직도 직접 경계 업무에 나선다던가.
국경을 가진 영지는 왕국법으로 더 많은 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엘와즈 백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레네가 그런 속셈으로 초대했으리라.
게다가 그녀 역시 검술을 익힌 무인으로 용맹하다 소문이 갖춘 인물이었다. 그 말은 즉, 카레네가 존경하여 흠모하는 인물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엘와즈 백작 역시 카레네를 아낀다고 했던가. 기사단의 영외 훈련이 대개 엘와즈 백작령에서 이루어지는 이유기도 했다.
손님이 전부 도착하고 나서야, 시엔이 연회장에 발을 디뎠다.
원래는 열 개 가문이 참석하더라도 그 가족과 하인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그 인원은 오륙십에 이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연회장이 많이 비었다.
때가 때인지라, 가문을 대표자 하나 혹은 내외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연회의 주인이 뒤늦게 자리를 찾으니, 축사 역시 그만큼 늦어졌다.
시엔이 자리를 잡자, 음악이 멈추고 손님이 주목하여 바라보았다.
“금일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국이 이러하니 어려운 결정임을 알아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시엔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제가 직접 여러분들을 맞이한 것은, 그러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닙니다. 연회의 주인이 연회장에 자리하는 것이 예법에 맞으나, 이 자리의 주인이 제가 아닌 까닭입니다.”
잠시 웅성거림이 번졌다.
연회의 주인이 따로 있다니. 그럼 후작이 주관한 연회란 말인가?
다나타난 자작이 미소를 지었고, 가문의 대표로 참석한 후계자들 중 몇몇의 얼굴에는 낭패가 번졌다.
후작이 주관한 연회라면, 가문의 주인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렇다면 시험이리라. 이런 상황에서도 어떤 정성을 보이느냐 하는 그런 시험.
시엔이 곤란한 표정을 한 후계자들을 눈여겨보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영리한 이들이리라.
“아, 후작님께서는 와병중이십니다. 애초에 예법에 주인이 연회장에 없는 법도가 있겠습니까. 주인이 연회장에 가장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야, 곧 왕가의 고귀한 핏줄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례적으로 왕가의 연회에서만 손님이 미리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이후에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족과 귀족은 그 계급의 고하가 있다고 하나 섬기고 다스리는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왕가란 귀족의 주인이었다. 주인이 제 아래의 하인들을 기다리는 법은 없었다.
손님들의 표정에 의문이 깃들었다.
시엔이 태연히 웃으며 폭탄을 던졌다.
“연회의 주인이신, 델피르 프린 페벨룬 전하께서 드십니다. 모두 예를 갖추어 주십시오.”
< 30. 둑이 무너지고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