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123화 (123/268)

< 25. 믿음에 대하여 [7] >

시엔은 지금껏 알지 못하던 성질의 힘이 몸 안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것을 힘이라 칭해야 할까. 좀 더 순수한 무언가에 가까운. 마력 이전에 좀 더 정순한, 근원에 닿은 어떤 능력이었다.

신의 힘이었다.

순간, 시엔은 자신이 초월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음차원 에너지로 원소 마법을 부리는 것도, 검을 들어 오러로 뿜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이유, 빛이 일어 그림자가 지는 이유를 알았다. 짐승으로부터 사람의 모든 내부를 알았고, 산 것이 사는 이유와 죽어 영혼이 순환하는 순리를 알았다.

겁을 이해하고 시간을 아니 곧 세상 모든 것이 이치 아래에 온전함을 깨달았다.

시엔의 육신이 희미하게 흐려져 갔다.

이제는 인간의 형태를 취할 이유가 없음이라. 스스로 온전하여 더는 천신의 관측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엔을 바라보는 재림교도들의 눈에 경이가 어렸다. 무언가 더 높은 존재, 신격이었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서서히 깨어나는 과정이 지금 이 앞에 있었다.

그리하여 시엔이 말했다.

“나는 너희의, 네 신이 아니야.”

시엔이 다시 시엔으로 되돌아왔다.

그 모든 깨달음이 일순간의 꿈처럼 스러져 자취를 감추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진리를 알고 다시 잊었다. 마법사가 추구하는 그 세상의 법칙이 손안에 들어왔다 다시 빠져나간 셈이었으니.

그러나 부정하게 답안을 엿보지는 않겠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짧으나 치열하게 살아 스스로 알아낼 과제였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저희를 버리시옵니까. 저희의 부족함입니까. 부디 가르침을 내리시고 하찮다 하여 내치지 마시옵소서.”

대사교가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믿는 신이 내가 아니니까.”

이들이 천 년 전의 흑마법사를 섬기는 이들이었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으리라. 지워진 역사를 바로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하여 저들의 믿음이 세워진 것이라면 거부하지 않았으리라.

“그래. 너희가 신을 만들었지. 너희가 나를 신으로 만들 심산인 거야.”

인류를 사랑한 마법사 따윈 원래 존재하지 않는 거짓이었다. 낙원 국가 역시 실제가 없다. 그들이 믿는 것이 시엔의 이름뿐인 거짓이며 허상이었다.

“그러나 너희의 신이 되지는 않겠어.”

만약 신격을 얻어 초월에 이르렀다면?

그리고 나면 이들의 믿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사그라들고, 신격을 잃고 되돌아온 거짓말쟁이가 남고 말 터였으니까.

그렇게 믿음에 응답하여 내 것 아닌 뜻을 펼치는 것이 과연 삶인가.

과거 복수를 자행했던 흑마법사가 사라지고 시엔 샤인 티란디스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달콤한 진리라 해도 거절하겠다.

“그러니까 전부 썩 꺼져. 바쁜 사람 붙잡고는 너희의 신이 되어달라 구걸하지 말고.”

시엔이 선언했다.

재림교도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탈하고 허망한 표정. 어떤 이들은 절망하고 어떤 이들은 삶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신앙이 깨어지자 이제껏 가지지 않던 의심이 되돌아왔다.

광신도에서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온 재림교도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굳건히 닫아놓은 문을 열고 지상을 향해서.

마지막으로 남은 이가 바로 대사교였다.

대사교를 사로잡았던 어떠한 광기가 빠지고 나자, 그는 그저 삶에 지친 평범한 늙은이처럼 보였다.

늙은이가 등을 돌려 느릿느릿 멀어져갔다.

마침내 계단의 앞에 이르러, 뒤돌아보며 시엔을 향해 물었다.

“그러면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천신께서 계시잖아. 세상을 세상으로 관측하시는 분이시지.”

“인간의 신 말입니다. 가엾고 슬픈 이들의 편이 되어줄 그러한 신은 정녕 존재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신이라.”

시엔이 키득키득 비웃음을 흘렸다.

“신이 인간의 마음을 가져 누군가를 편애한다면,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재앙이 따로 없지. 신이 누군가를 핍박한다면, 그러한 이는 가엾고 슬프지 않겠어?”

“그러면 약한 이는, 그저 천한 아비어미를 두어다 천한 삶을 사는 이는, 모든 것을 잃고 억울한 이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지.”

시엔이 덧붙였다.

“억울한 일이라. 나 같으면 가만히 못 있지. 가서 뒤집고 불태워 속을 풀어야지, 신에 기대어 기약 없는 응징만을 기도하진 않겠어.”

그러자 늙은이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한없이 쳐진 어깨가 계단을 올라 사라졌다.

* * *

모두가 사라진 지하 예배당, 시엔이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았다. 크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이내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바깥 것, 세상 바깥에 사는 어떤 지성체의 이름이었다.

짧은 순간이나마 신격에 이르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으리라. 그 짧은 순간, 시엔은 예배당 안에서는 전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일순 허공이 뒤틀렸다.

팔과 다리, 장기와 핏줄. 눈동자와 텅 빈 피부 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여러 차례, 마침내 인간 비슷한 형상을 갖춘 그것이 말했다.

『흥미롭다. 나를 관측하였는가.』

“지금은 못 해.”

『찰나 속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본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너희를 증명했다.』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한없이 단순한 곳이었다.

나를 기준으로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위와 아래가 존재할 뿐이었으니.

그러나 바깥 것들에겐 하나가 더 있었다.

그건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잠시나마 체험해 보았으나, 신격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네 번째 방향이었다.

『약속을 이행하라. 너희가 도시라 정의한 곳에서 가장 연약한 2000개의 영혼을 받아가도록 한다.』

시엔이 눈을 반짝였다.

“어떤 약속이지? 영혼을 대가로 네가 뭘 제공했는데?”

『요청대로 너희의 공간에 개입, 직렬 통로를 구성하였다. 너 단순 개체가 직접 체험함.』

광장의 참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시엔이 다시 물었다.

“그게 네 솜씨라고?”

『단독으로 불가능. 심장 조각이 필요하다.』

“심장 조각?”

『네가 소유한 것이다.』

그것이 팔을 휘둘렀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방향으로 접근하여 뻗으니 시엔에게는 보이지 않고 또한 알아챌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 붉은 보석, 바깥 것, 별의 조각이 어느새 시엔의 손에 들려있는 상태였다.

“심장 조각이라. 드디어 이걸 부를 이름이 생겼네.”

『채무 불이행. 직렬 통로 아래 대기하였으나 채무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분석 결과 비실재 영역으로 채무자의 등장이 불가능하다 판단.』

채무자. 시엔의 적을 말하리라.

드디어 꼬리를 잡을 기회였다. 시엔이 말했다.

“채무자라. 그게 누구지?”

『모른다. 개체 식별 불가.』

“그럼 내 앞에 데려오기라도 해. 너희 방향으로 뻗으면 간단하잖아.”

『불가능. 너희의 개념으로 천신이 관측하여 막으니, 지성체와 %%%%방향으로 직접 접촉할 수 없다. 소유권자의 허락이 필요. 허나 해당 개체는 스스로 소유한다. 너 개체와 같이.』

“천신께서 가호하시는군. 젠장.”

아무리 인간답지 못한 쓰레기 같은 작자라도, 천신의 사랑이란 한결같은 것이라. 시엔이 아쉬움을 삼켰다.

“영혼 2000개를 어디다 쓰려고?”

『연구.』

“그걸 받으면 얌전히 돌아가는 건가?”

『그렇다.』

“그럼 가지고 가. 더는 할 이야기도 없고.”

어차피 내 백성도 아니고, 먼 타국의 영혼 2000개야 가져가든 말든 시엔이 무슨 상관이랴.

『불가능. 이 도시에 네가 양도 권한을 가진 영혼은 24개체에 불과하다.』

“음?”

『분석 결과, 도시 안에서 가장 연약한 영혼 2000개. 전제 조건을 너희가 대륙이라 부르는 기준으로 수정한다면 양도가 가능하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동의하는가?』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시엔이 잠시 머리를 굴렸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인간의 의식이 소유를 결정하니, 시엔이 양도 권한을 가진 영혼은 티란디스의 백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할른폴드에 시엔의 백성이 없으니, 범위를 넓혀 가장 연약한 것을 추려 데려가겠다는 뜻이었다.

“아니. 잠깐. 그건 안 되지.”

시엔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러니까 사람 잘못 찾았대도. 그럼 양도 권한을 가진 놈한테 가야지.”

『불가능. 특정 불가.』

“난 할 말 더 없어. 이제 가.”

『약속 불이행시, 너희 세상에 거대한 재앙이 닥칠수 있다. 예상 피해 현존 생명의 92.4465% 사멸.』

“아니 뭐 이딴…….”

시엔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계약은 시엔의 적이 하고 댓가를 시엔 보고 치르라고 우기지 않는가. 게다가 그게 안 되면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조건 수정이 가능. 연약한 영혼 2000개 조항을 그와 동등한 가치의 정수량을 가진 영혼 단일 혹은 다수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때 문득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시엔이 심장 조각을 들어올렸다.

“이 안에도 영혼이 있긴 한데. 이걸로 가능할까?”

이전 던전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을 때에, 어린 용의 영혼을 봉인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아무짝에도 쓸 곳이 없는 터. 아니, 오히려 저주를 봉인해 놓은 것이라 오히려 화근의 싹으로 남은 것이었다.

그러니 이참에 용의 영혼을 치워버릴 수 있다면 남고 넘치는 장사였다.

심장 조각을 비워두면 또 언젠가 비상시에 영혼을 봉인할 일이 있을 수도 있고.

『가치 판단. 가치 초과. 채무 이행이 가능하나 너 개체의 손해가 막심하다. 이대로 이행하겠는가? 혹은 추가 조항을 추가하겠는가?』

용의 영혼 하나가 연약한 인간의 영혼 2000개보다 훨씬 값진 것이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겠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들어주겠다 해도 결국 문제인 것이.

“어차피 인간을 건드는 건 불가능하지?”

『소유권자의 허가가 필요하다.』

“뭘 가져오는 것도?”

『소유권자가 없거나 네 소유일 경우.』

“흠.”

『없다면 이대로 이행하겠는가?』

“아니. 잠깐만.”

시엔이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남의 것을 뺏거나, 혹은 해를 끼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소유가 없는 것을 옮기거나,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변형시키는 것이 고작이라는 뜻이었다.

시엔이 궁리했다.

결과적으로 이득이 되었다지만 내가 가진 것을 넘겨주는 일이었다. 그것도 시엔의 적이 가진 채무를 갚아주기 위해서.

그러니 무언가 최대한 이득이 될 만한 것을.

내 뼈나 전부 모아달라 할까?

그러나 어차피 눈에 보이고 기운에 잡히면 그 순간 회수가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적의 손에 놓아두면 결정적일 때에 빼앗아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겠고.

그러니 굳이 이러한 기회를 쓸 것도 아니다.

『빠른 결정을 원한다.』

그것이 채근했다.

문득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손가 공국의 남서부 외곽. 한때 던전이라 불렸던 장소가 있어. 어딘지 알겠어?”

『특정 완료.』

“거기에 가져올 물건이 하나 있는데 말야. 가져오기가 영 까다롭단 말이지. 그걸 옮겨줄 수 있을까?”

『소유권에 문제가 없다면.』

“그걸 원하는 장소에 가져다 놓는 건?”

『네가 소유한 공간이라면.』

“좋아. 이제 거래를 마무리짓자구.”

시엔이 손뼉을 쳤다.

* * *

한때 대사교였던 이, 재림교의 수장으로 신자를 이끌었던 사내. 강력한 신성을 부려 한때 기적 그 자체였던 인간.

이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늙은이가 되고 말았지만. 그것도 비참한 늙은이였다.

한때 가족이라는 행복을 가졌으나 송두리째 빼앗겨 세상에 절망한 그런 늙은이가 남았다.

-신에 기대어 기약 없는 응징만을 바라진 않겠어.

늙은이의 신이 될 수 있었던 이, 그리고 늙은이의 신앙을 거절한 청년이 한 말이었다.

“그 말이 맞지.”

늙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를 앞에 두고 너무나 먼 길을 돌아갔다. 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 죽더라도 원수에게 어떻게든 해를 끼쳤어야 하는데.

마음이 서자 늙은이가 곧장 움직였다.

신성이 사라진 몸이 무겁고 쑤셨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은 가벼웠다.

어차피 살아야 얼마나 더 살 것이며, 또한 살아서 무엇이 즐거울까. 그간 내 일신의 안위를 위해 너무나 두려워했구나.

죽음을 각오하니 그 발걸음에 미련이 없다.

잘 벼린 곡괭이를 끌고, 한 손엔 불을 지를 횃불을 들고, 목에는 기름이 든 주머니를 매어 찬 상태였다.

광장에 큰 일이 있을 테니, 저택이 비었으리라. 원로원이라 불리는 반왕실 수도 귀족 중 한 명. 그의 아내, 딸, 아들의 원수였다.

내 이 혼란이 가라앉지 않은 참에 가서 그 저택이라도 불태우고 말리라. 그 증오스러운 치가 불탄 저택에 분노하는 표정을 이 눈으로 지켜보고 말 테다.

원로원들은 저택에 담을 두지 않았다.

담이 없어도 감히 함부로 넘는 이가 없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자부심이었으니까.

한 때는 늙은이가 일했던 저택이었다.

그 내부와 외부를 속속들이 아는 늙은이라. 뒤로 돌아 천한 것이 드나드는 방향으로 슬그머니 스며드니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광장에 난리로 사병이며 가솔, 기사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참이라 더욱 그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날이 가문 지가 오래였다.

연기가 불길이 되어 빛을 발하고, 또한 그것이 자택 전체를 집어삼키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얼마 남지 않은 가솔들이 불을 끄고자 해도, 사람의 손발이 모자라니 결국 속수무책으로 불이 커질 뿐이었다.

화재가 으레 그러하듯이, 불이 저택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놈이었다.

고급 주택가에 불이 번져나갔다.

본디 방화꾼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나, 하필 이때에 모두 광장의 소란을 진압하러 간 때라.

큰 불이 일었다.

* * *

사내가 가병들을 이끌고 광장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거대한 빛이 터지니 강력한 신성이 사위를 휩쓸었다.

“주, 주인님. 달이. 달이……”

“하늘을 보지 말라 했잖느냐! 외연 우주의 신격과 눈이 마주치면 미쳐버리고 만다고!”

“하지만 주인님.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혹여 눈이 마주칠까 겁을 먹어, 아주 살짝, 눈동자를 치뜨고 말라올려 시야 끝에 달을 잡았다.

예쁜 보름달이었다.

“안 돼!”

사내가 노성을 질렀다.

저 자리에 달이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만인의 앞에서 혼자 오롯이 나서서, 채무 이행을 위해 나온 그것과 당당히 마주하여 통로를 닫아야 했다.

그리하여 이 모든 난리를 단신으로 막은 영웅이 탄생할 예정이었건만.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젠장! 제기랄!”

“주, 주인님.”

“또 뭐야?”

“마수들이에요!”

여인의 외침과 함께, 부정 세계의 마수들이 우르르 몰려닥쳤다.

광장이 여섯 대로로 통하나, 개중 가장 넓은 길이 글로리 로드, 왕성과 고급 주택가로 향하는 도로였다.

신성에 도망친 마수들이 뚫린 곳으로 도망치니, 개중 가장 넓은 길에 가장 많은 마수가 몰렸다.

“젠장! 하찮은 미물들이……!”

사내가 팔을 들어올렸다. 거기에 들린 뼈가 검었다. 그러자 여인 하나가 와락 사내의 팔을 잡아챘다.

“자기, 저기 성녀가 있거든? 교단에서 지금 적을 찾느라 혈안인 거 알아? 자기가 그 적이라고 알려줄 셈이야? 신성 봤지? 성유해는 이리 줘. 지금 당장 봉인해야 해.”

사내가 팔을 내렸다. 여인이 뼈에 손을 대니, 손에 힘을 풀어 맥없이 넘겨주었다. 사내의 팔이 축 늘어졌다.

사내를 대신해, 여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뭐하시나요! 당장 요격하세요!”

그러자 가병들이 앞으로 나섰다.

광장에서 난리통으로 약한 것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몰려오는 마수들이 만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가병들이 진을 짜고 마수를 맞이하나 그 수가 워낙에 많으니 계속해서 사상자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다.

광장에 국왕이 있으니, 여기까지 와서 물러났다간 오히려 정치적으로 공격받기 십상이 아니던가.

그러니 결국 가병의 피로 길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지중지 키운 가병들이었다.

“이익! 으아아아아아!”

사내가 분을 못 이겨 고함을 질렀다.

사내를 미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원하는 대로 거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도대체 일이 왜 틀어졌는지 아니면 누구의 음모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제길! 왜! 도대체! 시발! 누가! 으아악!”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내가 진격해 온 방향, 사내의 등 뒤 저 먼 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흘 동안 타오르며 고급 주택가 전체를 불태울 거대한 화마의 시작이었다.

< 25. 믿음에 대하여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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