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물타기의 제왕 [3] >
그러나 용은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그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랴.
그러나 그렇다고 어찌 포기하고 돌아가랴.
왕자가 아예 나서지 않았으면 모르되, 직접 움직였으니 일을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무능의 증명이 되는 일이었다.
남들 위에 서는 자가 가지는 무게였다.
어떤 어려움이건 제가 품은 사람 앞에선 극복해내고 말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델피르는 우울한 표정이었다.
시엔이 방에 들어서자, 반쯤 우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백성들이 죽어갈 거야.”
“전하.”
“세피 누님이 그랬어. 왕국의 백성 셋 중 하나는 버티지 못할 거라고. 그걸 막을 수 있는 게 나뿐이라고 했는데. 해내지 못하면 그게 전부 내 책임이라고 했어.”
날카로운 인상의 공주가 아주 단단히 으름장을 놓아둔 모양이었다. 아직 어린 왕자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닌가.
시엔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맞습니다. 전하. 전하의 책임이죠.”
그러나 왕이 될 씨앗이니 어리고 늙고는 상관없었다. 세필리아가 미리 겁을 준 것이 꽤 잔인한 일이라 한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 이전에 폐하의 책임이 먼저겠군요.”
“아바마마께서?”
“폐하께서 나서서 해결하여야 하심에, 왕자님을 적당한 이라 골랐으니 일이 실패하더라도 그 책임은 폐하께서 지셔야지요. 잘못된 이를 고른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남 위에 서는 이의 책무입니다. 제 가진 사람의 실패와 잘못이 곧 모두 윗사람의 것이 되지요.”
“하지만, 그건 너무하잖아.”
델피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엔이 빙긋 웃었다.
“너무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제 사람의 성공이 곧 윗사람의 것이니까요. 그러니 유능한 이를 아래 두고 부리는 것이 다스리는 이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럼 무능한 이는?”
“세상에 온전히 무능한 이가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대개는 어느 하나라도 뛰어나기 마련입니다. 그걸 찾아 바른 자리에 기용할 줄 아셔야지요.”
“그게 무슨 뜻이야?”
“기사에게 펜을 건네지 말고, 마법사에게 괭이를 들려주진 말아야지요. 그러나 사람이 대개 제 쓸모를 모르니, 그걸 알아보아 바른 자리에 데려다 놓는 것이 바로 왕의 안목입니다.”
“어려운걸.”
시엔이 씩 웃으며 말했다.
“쉽게 말씀드립니까?”
“응.”
“직접 뭔가 하실 필요가 없단 뜻입니다. 유능한 이를 찾아 도움을 청하세요. 왕자님은 그저 성공은 함께 누리고, 실패는 용서하여 제 것으로 하면 끝입니다.”
델피르가 킥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그게. 그럼 너무 쉽잖아.”
“원래 듣기로는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어찌 쉬운 일이랴.
신하며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어질고 현명한 성군이 아니다.
그저 제게, 저 자신에게 이롭고 베풀며 자비로운 왕이었다.
시엔에게도 같았다.
델피르가 폭군이 되건 암군이 되건 뭐 어떠랴. 그저 시엔을 기꺼이 여겨 그 마음을 쓴다면 그저 만족하고 말 일이었다.
그러니 그러한 것들을 한데 조율하여 사람을 쓰고 넣는 것이 왕의 할 일이었다. 세상 가장 귀하게 태어난 이가 가진 어려운 운명이었다.
델피르가 잠시 시엔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음. 그럼 시엔이 날 도와줄 수 있어?”
“절 부리시겠단 말씀이시군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그래도 시엔이 제일 똑똑하고. 능력도 있고.”
“벌써부터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말씀드렸다시피, 실패하더라도 제 잘못은 아닙니다. 왕자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어······. 시엔이 대충 하지만 않으면? 열심히 해 줄 거지?”
시엔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배우시는군요.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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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아주 간신이 따로 없더군?”
“엿듣고 계셨습니까?”
“그냥 들리는 것을 어쩌겠나?”
소드 마스터가 귀가 밝은 것에 대해서는 흠. 이 역시 명확한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검술이 추구하는 것에 예민함이 있으니, 대기가 떨려 나는 소리를 잘 잡아내는 것도 그 검술의 일환이라 가설을 세울 수는 있겠다.
시엔이 킥킥거리며 엘딘을 바라보았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흔한 제왕학인데요.”
“사람 부리는 것이 원래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 부분은 쏙 빼놓았으니.”
“그게 말로 한다고 이해가 되겠습니까? 직접 겪어 배우셔야지.”
“에잉, 예전부터 든 생각인데, 혓바닥으로는 대륙 제일일세. 따로 수련이라도 하나?”
“혀 놀림은 원래 타고나는 겁니다. 마침 이렇게 태어났으니 잘 써먹어야 아깝지 않죠.”
“그래서, 어찌 대책이라도 있나?”
“글쎄요.”
시엔이 턱을 매만졌다.
“용과 대화를 해 볼 수도 있겠죠.”
“말 몇 마디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겠지만. 되겠나?”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네요.”
용과는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통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용 사냥에 나설 수도 있겠네요.”
“용 사냥?”
“검위공이 여기 계시고. 게다가 여기 마법사가 수백이 몰려있는데 용 한 마리 못 잡겠어요?”
용이 강력하다 한들, 이만한 전력으로 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피해가 적지는 않을 터.
“마법사들이 나서려고 하겠나?”
“그게 문제인데. 용이 자리를 잡았으니 아마 기백년은 뭉개고 있겠죠. 그동안 등대의 가장 큰 사업을 접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저들도 큰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셈이기는 할 텐데.”
“용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또 갑자기 떠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마 등대지기가 그런 생각인 모양이죠. 용이 알아서 떠나길 그저 기도나 할 셈인 듯 한데.”
인생도 기도에 맡길 셈이냐 비웃을 수는 있겠지만, 한 무리의 수장으로서는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마탑이 가난해진다 한들 연구에 지장이 가는 정도였다.
마법사란 기본적으로 탑을 나서서 어디든 정착해 대접받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럼 우선. 등대지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네요.”
“선동이라. 자네도 보면 은근 능구렁이일세.”
“선동이라니. 무슨 서운한 말씀을. 그저 서로간의 의견을 좀 조율해보자는 거 아닙니까.”
“원래 의견은 검을 맞대는 게 최고인 법이라, 이런 부분에선 영 약해서 말이네. 나는 자네 반푼이 호위 기사나 좀 살펴보겠네.”
시엔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보니 검위공도 선동이라 하면 꽤 일가견이 있으신데. 카레네는 어떻습니까? 좀 성취가 있어요?”
“뛰어난 재능이 아까워 내 권유한 것 뿐이지 선동이라니. 늙은이 서운한 말을 하는구만.”
“확실합니까?”
“지금도 동년배엔 적수가 없을 걸세. 언젠가 필히 마스터의 경지를 엿볼 아이야. 영주 놀음을 하겠다고 버리기엔 아까운 재능일세.”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나 소드 마스터가 될 수는 없었다. 검사들이야 그걸 재능이라 부른다만, 마법사들은 검사 본인이 저 자신을 속이고 세상의 법칙마저 어그르는 강력한 믿음이라 여겼다.
검술의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수용은 개인의 지능과는 다른 것이라.
그도 재능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영주 놀음이라니.”
“그런 건 자네한테나 어울리는 거고. 검을 들 사람은 검을 들어야지.”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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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셀시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차석 등대지기니 파도등대의 2인자였다.
이대로 용을 두고 볼 것인지, 탑주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마법사를 붙들고 물어보자, 3번 부두에서 참치잡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여 찾아온 참이었다.
“크하핫! 닻을 올려라! 오늘이야말로 놈과 결판을 짓겠다! 어떤 전사가 이 외눈의 세이렌 여왕과 함께 하겠느냐!”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누님, 아니 제독!”
“이 검은 팔 잭슨을 빼면 서운합니다!”
“좋다! 약탈의 시간이다!”
“우오오!”
상황극이라고 해야 할까.
인공섬 한편에 자리 잡은 부두에 물길잡이들이 모였다. 넝마같은 복장을 보아하니 해적을 흉내내는 모양. 셀시가 뒤집어 쓴 검은 제독모가 개중에도 일품이었다.
“오늘이야말로 놈의 배때기에 구멍을 내겠다! 놈의 피를 술처럼 마시고 살점을 씹어 그 원한을.”
걸걸히 외치던 셀시가 시엔과 눈이 딱 마주쳤다.
외부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울 만도 하건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셀시가 씩 웃어보이곤 말을 이었다.
“도련님 오셨네요.”
“외눈의 세이렌 여왕님이셨나요?”
“이런 재미도 없으면 선상생활은 무리니까. 참치를 잡으러 가려는 참인데, 할 일 없으시면 함께 가시겠어요?”
“참치를 말입니까?”
“실물을 보신 적이 있나요?”
시엔이 고개를 젓자, 셀시가 말했다.
“실제로는 무척이나 큰 물고기랍니다. 큰 놈은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지요. 머리엔 뿔이 달렸고. 다른 물고기보다 유달리 살에 기름이 올라 독특한 맛이 일품이죠. 특히 잡자마자 떠 먹는 것이 내륙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진미랍니다.”
“호오. 그거 궁금한데요.”
“그럼 타세요. 아. 멀미는 안 하시죠? 쾌속선이라 상당히 흔들릴 터인데.”
“아마 문제없을 거예요.”
몸뚱아리가 워낙에 정상이 아니니, 겨우 멀미 따위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시다면야 뭐.”
셀시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시엔이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보통 배라 하면 물에 떠서 바람을 이용해 나아가거나, 노를 저어 앞으로 가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모든 선원이 물을 다루는 이들이니, 순식간에 급류가 배를 끌고, 성난 파도가 배를 연신 몰아쳐 배를 띄웠다.
그러니 항해라기보다는 반쯤 날아가는 꼴이었다.
수면에 던진 물수제비처럼, 배가 수면에 닿는 시간보다 허공을 가르는 시간이 더욱 길었으니.
그 위에 올라탔으니 어떠할까.
앉아도 연신 엉덩이가 튀어오르고, 물보라가 몰아치며 거친 바람이 머리를 헝클었다.
이 와중에도 셀시가 뱃전에 서서 버티고 있으니 한 두 번 타 본 솜씨가 아니었다.
“크하하핫! 고작 이 속도냐! 더 올려!”
“옙, 제독!”
“누가 제독이야! 이번 주제 그거 아니거든?”
“아, 맞다. 알겠습니다, 여왕님!” 심지어 속도가 더 올랐다. 그렇게 한참이나 광란의 질주가 계속된 후에야, 배가 천천히 감속하여 자리에 멈춰섰다.
“어때요? 괜찮으세요?”
“조금 정신이 없긴 한데. 뭐.”
멀미를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시엔의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셀시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다.
“멀쩡하시네. 체질이 뱃사람인거 아니에요?”
“흠.”
“이것들아, 뭐해. 가서 잡아 오지 않고.”
셀시의 타박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배에서 뛰어내렸다. 능숙하게 수면으로 파고들어 이내 자취를 감추니 이 또한 한 두번 솜씨가 아니었다.
셀시가 시엔의 반대편에 앉았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왔는지 아시겠어요? 지상의 가장 빠른 말보다 다섯 배는 빨리 달렸는데.”
“그 정도였나요?”
“사실 빠르다 느리다를 알기 위해선 무언가 이정표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바다 위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온 사방이 그저 수평선일 뿐이니까.”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여기까지 쾌속선을 타고 오면서 그리 험하고 거칠다 여기긴 했어도 그렇게 아 빠르구나 여기지는 않았던 참이었다.
“이 위에 산다는 건 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랍니다.”
“바다를 멀리하라 했던가요.”
“맞아요. 그러니 놀 거리를 찾아야 하는거에요. 유쾌하지 않으면, 바다 위에서 살 수 없으니까.”
“그게 외눈의 세이렌 여왕님이군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기도 하고.”
셀시가 키득거렸다.
이내 손을 뻗어 한 지점을 가리키니, 아득히 멀리에 바다 위로 시커먼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저편이 바로 프루드 다이아몬드랍니다. 일 년 내내 폭포수 같은 빗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장소기도 하구요. 길 잃은 모든 물들은, 하늘에서 만나 저기에 이르지요.”
“저 구름을 끌어야 할 텐데요.”
“용이 자리를 잡았으니 답이 없지요.”
셀시가 씁쓸히 웃었다.
“다른 곳에서 구름을 구할 수는 없나요?”
“왕국 규모의 강우 사업이라면 다른 답이 없어요. 새 구름을 찾아 원해까지 훑었지만 전부 허탕이었죠.”
“그래서 용이 물러나길 기다리는 겁니까?”
셀시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한 개 마탑의 전력이라면 용 한 마리는 감당할 수 있지 않나요?”
“도련님은 용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군요? 하긴 대륙에 용이 사라진 게 벌써 수백년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요.”
“셀시는 용에 대해서 잘 아나요?”
“사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흠.”
셀시가 말을 골랐다. 시엔이 잠자코 기다리자, 셀시가 바다를 돌아보았다.
“도련님은 여기가 얼마나 깊은지 아세요?”
“많이 깊은가요?”
“바닥부터 쌓는다 치면, 칼날산맥의 드레드엣지가 다섯 개는 들어갈 거에요. 여기 빠지면, 시체가 바닥에 닿는 데에 한 달은 걸릴 거랍니다?”
드레드엣지는 대륙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름이었다.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깊다구요?”
“바다는 생각보다 더 깊고 광활한 곳이에요. 아마 마법사가 하늘을 정복하여 천구에 닿는 때가 오더라도, 저 아래에 이르지는 못할 테지요.”
“음. 그런데 그게 용과 무슨 상관이죠?”
“바다 위에서 용과 대적한다는 건, 대지 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심지어 그게 수룡이라면 더욱이.”
“바다 위에서는 물길잡이의 적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도련님이 또 자존심을 후벼파시네. 사실 작정하면야 못 잡을 것도 없을 거에요. 탑의 기록상으로도 이미 사냥한 전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다만 그래서는 피해가 너무 크니까.”
“그러면 이대로 강우 사업을 접는 겁니까?”
“뭐. 용은 변덕스런 생물이니. 저러다 또 언젠가 슥 사라지겠죠.”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강우 사업은 힘들 겁니다.”
“왜죠?”
“가뭄이 어디 한 군데라면 모를까, 전 대륙이 메말랐으니 내년엔 큰 참사가 있을 겁니다. 대기근이 오겠죠.”
“우리가 그걸 막아야 할 의무는 없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람이란 그런 식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생물이라. 올해 구름을 끌지 못하면, 이후로도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왜죠?”
“이미 강우가 없어 참사가 벌어진 이후일 테니까요. 당장 내년에 용이 떠나간들 강우 사업을 벌일 수 있겠어요? 물길잡이들이 비를 내릴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는 원망만 듣게 될 텐데요.”
“아.”
셀시는 한 방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용이니 뭐니 하는 변명은 통하지 않겠네요. 누구든 원망할 이가 필요할 테니까.”
“그러니 저걸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자는 거죠. 전하께선 비구름이 필요하시니까.”
“우리만으로는 안 돼요.”
“마침 소드마스터가 한 명 있습니다만.”
“겨우 한 명이요? 네다섯 정도라면 모를까. 차라리 모든 왕국에 전령을 보내는 편이 낫겠네요. 소드마스터를 좀 보내달라 하면.”
“보내주겠어요? 다른 이도 아니고 소드마스터를?”
셀시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엔이 다시 물었다.
“용과 대화는 시도해 보았나요?”
“도련님께선 말하는 애벌레를 발견하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던가요? 용에게 인간이란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맞는 말이었다. 용이 인간을 하찮게 여기니 벌레나 다름없는 미물이 대화를 청한다 해서 귀담아 듣겠냐만은.
그렇다고 그렇군요 하며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어쩌랴. 모르는 척 떼를 써 볼 수밖에는.
< 22. 물타기의 제왕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