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83화 (83/268)

< 19. 기사가 죽어 그 핏값을 치르리라 [1] >

언덕과 숲으로 이루어진 티란디스 영지와는 달리, 흐레이그 영지는 대부분이 평야였다.

작은 강줄기가 빈틈없이 흐르고, 평평한 땅 위에 곡식이 자라니 흐레이그의 힘이 바로 거기에서 나왔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티란디스보다는 흐레이그에게 유리했다.

전시의 금화는 광채를 잃었다. 반면에 곡식이 귀해져 부나 유지 면에서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티란디스 영지는 복잡한 지형으로 방어에 유리했다.

사방이 트인 평야에선 아군도 적도 모두 기동력과 시야를 얻으니, 곧 병력의 숫자가 압도하는 싸움이라.

그러나 지금. 전력이라봐야 시엔과 베른닐 둘 뿐이니, 그 단점이 오히려 지금은 불리함으로 작용했다.

페시번은 우울한 표정이었다.

그야 속이 복잡할 만도 하다.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눈앞에서 죽는 꼴을 보았으니. 게다가 그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해하려는 이가 바로 저 자신인 바에야.

딱한 일이지만 결국 인과응보인 셈이었다.

이럴 때 함께 맞설 수하도 없이, 결국 제 약혼녀 하나 데리고 도망이나 치는 꼴이었으니.

도대체 대공자로 있으면서 뭘 했길래 제 세력 하나 없이 이 신세가 될 수 있나. 그 무능함이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전투가 있었으니 들키는 것도 시간 문제겠군요.”

“시간의 문제지.”

전멸시켜 당장 소식이 퍼지는 것은 막았지만, 기사단의 분견대가 사라졌으니 머지 않아 알아차리리라.

수색에 들어서면 들킬 수밖에 없으리라.

“여기서 말로 갈아타야겠어.”

시엔이 기수를 잃고 선 군마를 바라보았다.

마침 세 필이 남았으니 에르제와 베른닐이 타고, 도망자 내외가 타고 나면 완벽한 숫자가 아닌가.

“도보가 낫지 않겠습니까? 흔적이 남을 겁니다만.”

“걷다가 군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운이 좋길 기대하면서 통과할 수는 없지. 인생 기도에 맡길 생각이라면 모를까.”

전략전술이란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 짜는 것이다. 도보로 이동하여 군대와 마주치면?

대머리로 군대를 속이고 빠져나올 확률은 높지만, 혹여라도 들키게 되면 되레 곤란해졌다.

특히나 이런 광야에서는.

천 년 전. 제국의 전술 역시 이와 같았다.

흑마법사가 숲에 숨어들면 숲 채로 태워 쫓아내고, 가까운 마을을 비워 무너뜨려 보급을 원천 차단했다.

대규모 탐지 마법으로 전술급 거대 마법을 잡아내니 곧장 군단을 동원해 거대한 차단선을 이중 삼중으로 쳐 완전히 봉쇄했다.

그리하여 숨을 곳도 쉴 곳도 없으며, 떨어진 낱알 하나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점차 지치고 탈진하여 힘을 잃으니 강대한 흑마법사라 해도 어찌하랴.

제 영토를 황무지로 만들고 영민을 숫자로 묶어 소모하는 전략이었다. 그로 인해 결국 제국이 멸망하지 않았던가.

“그럼 추격은 어찌합니까.”

“쫓아오려면 쫓아오라고 해. 여기서 서북편으로 향한다.”

“서북이라 하시면.”

“지도를 봤는데, 그쪽엔 숲이 있더라고. 흐레이그 치곤 상당히 큰 숲이었어.”

숲을 기점으로 적을 소모시킬 계획이었다.

마수를 잔뜩 풀어놓으면 군대라도 함부로 진입할 수는 없을 터. 그러다 보면 흐레이그 역시 결단을 내려야 할 터였다.

어쩌면 흐레이그에 뒤에 선 시엔의 적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고.

“아. 숲에 숨어계실 생각이십니까. 좋은 방법이군요. 기회를 틈타 빠져나올 수도 있고.”

베른닐이 혼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살짝 솟아오른 언덕 너머 갑자기 울창한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는 굽어 별 가치가 없는 것이나 높이 가지를 뻗어 태양을 가렸다.

덕분에 음산하기 그지없는 숲이었다.

시엔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쏙 드는 장소였다. 음차원 에너지가 가득한 숲이었다.

간혹 이런 장소가 있었다.

사람들이 꺼리고 두려워하며 들어서지 않는 곳. 지성체의 관측은 계속해서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두려움이 쌓여 미신이 만들어지고, 괴담과 헛소문이 쌓이니 대기 속에 공포가 녹아들었다.

그러면 음차원 에너지가 자연히 솟아오르니 인간이 느끼기에 오싹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영혼이 느끼는 육감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위험한 땅이었다.

부정함이 모였으니 짐승이 흉포하기 짝이 없고, 독물이 태어나 고약한 벌레가 꼬였다. 그러면 자연히 몬스터 역시 자리를 잡는 법이었다.

그대로 오래 묶으면 부정 세계와의 혼선이 일어나 통로가 열리는 마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멋진 숲이네. 딱 좋겠어.”

“숨기에는 최적이겠군요. 예감은 별로 안 좋습니다만.”

“예감? 베른닐도 예감이란 게 있었나?”

“농담이 아니라, 제 예감은 꽤 잘 들어맞는 편입니다. 기사가 못 됐으면 자리라도 깔았을 겁니다. 세상에 용한 점쟁이 하나가 나타날 뻔 했죠.”

“잘 들어맞기는.”

시엔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박장에 잃을 때도 미리 예감하고 잃었던 거고? 오늘은 딸 거 같으니까 도박을 했던 게 아니라?”

“흠······.”

“그럼 두건은. 미리 그렇게 될 걸 예감하고 만났단 말야? 비극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었나?”

베른닐이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예감이 더럽게 안 맞았군요. 자리 깔았다간 큰일 날 뻔했습니다.”

“굶지는 않았을걸. 예감은 별로여도 얼굴이 남았잖아. 앞에 깡통 하나만 깔아놓으면 온 도시 아낙들이 가득 채워줬을 거야. 채워주다 뿐이겠어? 서로 데려다 재워주겠다며 난리가 나겠지.”

“그리고 온 도시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쫒아오겠죠.”

시엔과 베른닐이 마주 보며 킬킬거렸다.

숲의 초입에 들어서서, 페시번은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이내 결국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오고 말았다.

“여긴 저주받았다. 좋지 않아.”

“저주받았다고?”

“수십년 동안, 들어가서 나오는 이가 없었다. 아예 영주의 이름으로 출입을 금지한 곳이란 말이다.”

“호오. 왜?”

“그걸 알면 해결했을 거다.”

“흠. 그래서 어쩌자고. 밖에 나가서 군대와 한바탕 치고받을까? 일당백의 실력을 발휘해도 오백 잡고 나면 다 같이 죽어야겠네?”

“젠장, 금역에는 전부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돌아가서 네 목을 들고, 유르반 영애를 묶어 흐레이그에 바칠 수도 있겠지. 상금도 두둑하게 챙겨서 돌아갈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해?”

“······빌어먹을 티란디스.”

보아하니 꼭 할 말이 없으면 하는 소리였다. 시엔이 피식 웃어 보이곤 숲 안쪽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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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분견대의 유해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하루 반이 지나서였다.

제 1 차단선의 순찰을 나선 부단장이 시체로 발견되자 바로 전군에 비상이 걸렸다.

말의 흔적을 따라 추적하니 알호른 숲이었다. 공작의 이름으로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다.

결국, 함부로 진입할 수 없다 하여 일련의 보고 체계를 통해 공작저로 기별이 올라갔다.

“페시번이 알호른 숲으로 도망친 모양이야.”

“공자님 치고는 꽤 영리한 선택이시군요. 금지로 도망칠 생각을 다 하다니.”

“크흠.”

“그렇지 않나요? 공작저 코앞의 나병촌에 숨어있던 것도 그렇고. 머리와 눈썹을 밀고 당당히 나갔다는 것도 그렇고. 그리 영리한 위인은 아니라 여겼답니다.”

“유르반의 아이가 도왔겠지. 그 아이가 영리하기가 보통이 아니니.”

“하긴. 가문의 안주인으로 들이려 하실 정도였으니 오죽하시겠어요. 확실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이셨지요. 영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흐레이그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검은 로브를 걸친 여인이 미소지었다.

“진정 영리한 여인이 공작가의 안주인 자리를 버리고 도망을 쳤겠어요? 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서까지?”

“아직 어려 철이 없는 게지.”

“아직 유르반 영애를 버리지 않으셨나요?”

“어차피 유르반 가문의 딸을 안주인으로 들여야 하니. 자매 중에 그 머리의 절반도 되는 여식이 없으니 가장 뛰어난 아이를 택할 수밖에.”

“하긴. 영애께서 공작님께도 워낙에 잘하셨으니. 처음에는 따님이신 줄 알았지 뭐예요.”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게야. 귀족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는 걸 알면 그 아이도 받아들이겠지.”

“그러시면, 유르반 영애는 살려야겠군요?”

“유르반 백작은 남부의 거두다. 딸의 시신을 돌려보낼 수는 없지.”

여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같은 여인으로서는 부러운 일이네요. 다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이 하나를 의지해 떠날 수 있다니. 그분께서는 너무 매정하시지.”

“헛소리는 됐네. 그 녀석이 하필이면 알호른으로 도망을 쳤어. 내가 병사를 그리로 들였으면 좋겠나? 그건 아닐 테지.”

“맞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려요, 공작 각하. 이후로는 소녀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겠어요.”

후훗, 여인이 나직히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우습나?”

“그렇지 않으신가요? 그리 영리한 처신으로 발을 들인 곳이 결국 알호른 숲이라니요. 저 스스로 사지로 기어들어 왔으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무지는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답니다. 무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헤인트 그 멍청한 여자가 엘프의 힘을 몰랐던 것처럼요. 하긴, 제 주제도 모르고 그분을 모시겠다 말하던 년이라.”

공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의 실패를 자랑스럽게 떠드는군.”

“너희라니요. 그런 천하고 더러운 여자와 하나로 엮으면 섭섭하답니다. 애초에······.”

“됐다. 물러가라.”

“예. 각하. 소녀는 물러가겠어요.”

검은 로브의 여인이 다소곳이 상체를 숙여 보이곤 총총 걸어 나갔다.

그 자태가 아름답고 우아하나, 공작은 더러운 것이라도 보듯 경멸 어린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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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신 겁니까?”

“잘.”

“이리 쉽게 사냥을 할 수 있으면 기사단 전력에도 보탬이 될 겁니다.”

“그냥 잘 들으면 돼. 숨을 쉬잖아.”

“숨소리를 들으셨던 말입니까?”

베른닐이 놀라 되물었다.

모닥불이 피고, 그 위에 잘 손질된 토끼 세 마리가 구워지고 있었다.

어쩐지 향신료를 챙기더라니.

바로 잡아 멱을 따 피를 빼고, 소금과 향료를 쳐 익어가는 토끼가 향긋했다.

그 옆에 모닥불이 또 하나 피어, 큼직한 그릇 속으로 스튜가 끓었다. 든 것이라곤 뿌리 작물 몇 개와 토끼 한 마리뿐이나, 걸쭉하니 그 모양새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절로 군침이 돌아 입안이 축축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입안의 사정과는 달리, 궁금한 것은 궁금한 법이었다. 겨울잠을 자는 짐승이었다. 어찌 땅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양 간단히 파내는지.

“아마 타고나신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가 밝으신 거야 알았지만, 거의 신기의 영역이군요.”

“흠. 그런가?”

사실 시엔도 잘 몰랐다.

그냥 들리는 걸 어째. 땅 아래 잠든 짐승의 숨소리며, 집중하면 연약하게 뛰는 그 심장의 박동이 손에 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도 의사 놀이의 영향인가?

그러나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시엔이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슬슬 다 익은 것 같습니다. 그럼 자자, 식사들 합시다!” 베른닐이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부러 그러는 태도였다.

시엔이야 흑마법사라 숲의 분위기가 편안하지만, 나머지 넷에게는 여간 불안하고 또 불길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추위. 실제로 겨울이라 추운 날씨이기도 하나, 음차원 에너지가 가져다주는 영혼의 추위는 또 다른 감각의 영역이었으니까.

“자. 에르제 양도.”

“아. 그. 감사합니다······”

에르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모닥불에 비치는 얼굴이 워낙에 미남이어야지.

이제는 부부가 된 페시번과 셜리가 둘이 딱 붙어 고기를 들고, 베른닐이 부러 분위기를 띄우니 그래도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도련님도 드시죠.”

“아. 고마워. 오. 괜찮네?”

“겨울잠을 잔다고 살이 제대로 올랐으니 맛이 없으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지.”

“그나저나, 뭘 그리 살피고 계십니까?”

“별 거 아냐.”

정말로 별 거 아니었다.

시엔이 베른닐의 어깨너머, 어둠의 축복을 받은 자에게 보이는 망령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망령이란 작으나마 음차원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이라. 그러나 감각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 망령으로 아무 가치가 없는 잔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흠.”

예전에 이러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델피르 왕자의 방에서였다. 망령이되 힘을 품지 못한 쭉정이 망령들.

그때는 왕자의 씨앗에 이끌린 망령이 지속적으로 성물에 노출되어 마모되었다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에선 왜?

부정한 대기가 흐르는 숲이니 오히려 망령이 힘을 얻어 점차 그 격을 키워가야 아귀가 맞았다.

이전의 가설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시엔이 눈살을 찌푸렸다.

“희한하네.”

“예?”

“아냐. 그런 게 있어.”

그때였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희미한 음성이 시엔의 귓전을 두드렸다.

-도와주세요······.

-죽기 싫어······. 살려줘요······.

-뭐야, 안 돼. 돌려줘. 돌려줘······

시엔이 토끼의 다리를 뜯었다.

시엔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망자의 넋두리였다. 어둠의 축복을 타고난 이가 듣는 망자의 목소리였다.

매일같이, 그리고 또 온종일 듣는 소리라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바람소리나 풀벌레 소리에 신경을 쓰는 이는 없다. 시엔에겐 망령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죽고 남은 것이란 제대로 된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귀 기울여봐야 어떤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신비주의자라면 달리 여기겠지만야. 그 길에서는 진작에 벗어난 지 오래였다.

돌연, 일행의 손이 동시에 멈췄다.

베른닐은 토끼의 발을 문 채로 굳었고, 스튜를 홀짝이던 에르제도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눈동자를 흔들었다.

한 쌍의 부부도 서로 붙잡은 손이 떨리며 하얗게 변하니 꽉 쥐어 붙든 꼴이라.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그래?”

“······안 들리십니까?”

“뭐가?”

“이 소리 말입니다.”

시엔이 귀를 기울였다.

캭캭 어쩐지 신경을 긁는 벌레의 울음소리. 겨울 바람이 휘이잉 불어대고 낙엽이 흔들리고 가지가 부대끼는 소리가 들여왔다. 도와주세요, 살려줘요, 죽기 싫어, 따위의 망자가 중얼거리는 소리야 뭐. 망령이 내는 소리 다섯 가지 중 셋이 아닌가.

망령의 울음소리의 다섯 유형.

도와줘. 살려줘. 죽기 싫다. 저주한다. 죽인다. 개가 멍멍 고양이가 야옹야옹 내는 소리과 같은 맥락이라 거기 신경 쓰는 흑마법사는 없는 법이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그, 정말 안 들리십니까?”

“아까는 내가 귀가 밝다며? 타고났다며?”

“그게,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만.”

“뭔데? 무슨 소리?”

시엔이 묻자, 베른닐이 주저했다.

시엔이 다시 한번 재촉하자, 베른닐이 마지못해 털어놓았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말입니다. 산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시엔이 일행의 얼굴을 살폈다. 눈을 마주치자 슬며시 긍정하는 제스쳐가 따라붙었다.

시엔이 다시 물었다.

“살려 주세요. 도와 주세요?”

“예. 바로 그. 음? 듣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엔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뭐야. 그걸 너희가 왜 듣는데?”

< 19. 기사가 죽어 그 핏값을 치르리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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