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지키는 사람 안 지키는 사람 [3] >
탐사조의 절반은 수로를 타고, 나머지는 밧줄을 붙잡았다. 결국, 양쪽 모두 쓸려 내려온 참인데, 밧줄을 잡아도 바닥이 미끄러워 서질 못하니 결국엔 천천히 떠내려온 셈이었다.
“시엔이 하자 하곤 시엔만 빠졌군요. 그래서, 어떻던가요?”
“재미있었습니다. 색다른 경험이었죠.”
“흐음.”
뷔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뷔아라고 해서 재미있어 보이는 여흥을 놓치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성녀까지 수로를 타 버리고 나면 아무도 밧줄을 타려 하지 않을 터였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 정도를 감수할 위인은 못 되니 밧줄을 잡고 내려왔겠지.
시엔이 히죽 웃었다.
“돈을 달래도 기꺼이 지불할 정도로 재미있더군요. 흠. 등대와 연락해서 하나 만들어도 되겠는데.”
“됐고. 이딴 함정은 왜 만들어서.”
“아직 모르겠습니까? 함정 하나에 분위기가 이렇지 않습니까.”
시엔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탐사의 긴장감이 깨졌다.
수로를 탄 이들이 들뜬 표정으로 제 경험에 대해 떠들고, 기세를 타 호수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이까지 있었다.
“헤위 누나, 춥지? 여기.”
“어머머······.”
저쪽에 헤인트의 어깨를 제 로브를 벗어 덮어주는 알렌이 보였다. 어느새 그 앞에 불까지 피워 따뜻하게 비추니, 저 붉어진 얼굴이 불빛에 비친 것인지 원래 혈색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이게 던전 안인지 휴양지인지 구분할 수 없는 꼴이었다.
“고작 이런 이유로 저런 공들인 함정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공을 들였는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죠. 이 분위기로 탐사를 계속하기는 힘들 테니, 잠시 쉬어가는 게 맞겠습니다.”
“이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죠?”
물길잡이야 물속에서는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수로에 몸을 던진다 해서 다른 탐사조원들이 따라 할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귀족가의 도련님 한 명이 몸을 던지기 전까지는.
시엔이 피식 웃으며 공을 돌렸다.
“거야 저 철없는 물길잡이들 때문이고.”
시엔이 턱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물길잡이들이 호수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즐겼다. 규모가 일반인과는 사뭇 달랐지만.
거대한 파도가 치고 물이 솟구쳤다. 액체로 이루어진 호랑이와 늑대가 난투를 벌였다. 물과 물이 부딪칠 때마다 호수 전체가 출렁거렸다.
다른 탐사조원들이 급히 빠져나와, 입을 벌리고 구경이나 할 뿐이었다.
한 시간 정도 휴식이 이어졌다.
탐사조가 다시 출발했지만, 분위기가 이전 같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표정 역시 꽤 밝은 편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란 결국 상황에 달린 것이라, 다시 함정이 나타나고 수호자가 나타나면 금세 돌아오리라.
방심하다 당하는 이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 또한 제 선택이라. 기본적으로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기는 법이었다.
“트롤이다!”
“오우거도 있어!”
벽면이 열리며 몬스터가 뛰쳐 나왔다.
트롤이며 오우거, 미노타우르스 따위의 대형 몬스터들. 그러나 상대가 영 좋지 못했다.
세계가 편애하는 언어가 일시에 울려퍼졌다. 불길과 같이 진노한 음성은 방화광의 것. 쉭쉭거리는 바람소리 비슷한 주문은 천문관의 것이었다.
물길잡이들은 낭랑하게 소리치고, 땅지기는 웅얼거리며 과묵함을 과시했다.
네 속성의 아케인 에너지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불의 창이 날고, 불타던 적이 얼어붙으며, 번개가 치고 벽이 솟아 적을 막았다.
톱니바퀴들이 허공을 날았다. 깨지고 부서진 몬스터들에게서 역한 기름이 흘러나오고, 은색 금색 톱니가 튀고 굴러 사방으로 흩어졌다. 또 인형인가?
시엔이 톱니 하나를 주워들었다. 어디 한 군데 찌그러진 곳 없는 완벽한 원형을 이루는 부품이었다.
익인 인형을 보고서도 느꼈지만, 그간 본 적이 없는 뛰어난 물건들이었다. 스스로 움직이며 적을 막는 인형이라. 자동인형이라 해야 할까.
특히 거대 몬스터의 형태를 그대로 흉내낼 수준이라면. 도대체 그게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시엔이 전투를 바라보았다. 전투라기보단 일방적인 파괴에 가까웠지만.
트롤 인형은 재생 능력이 없고,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 특유의 광분하여 날뛰는 특성이 없었다. 이럴 바에야 그냥 몬스터를 가져다 놓는 편이 나으리라.
물론 인형은 인형대로. 전략적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군대는 소모품이 아니다.
사람은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라 소모되면 채울 수가 없었다. 전쟁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인형이라면? 파괴되어도 재산이 상할 뿐, 다시 만들어 채우면 그만이었다.
‘뤼롱텔에게 하나 가져다주면 좋아하려나.’
마침 휘하에 두고 있는 드워프가 하나 있으니 연구를 해 보라 던져줘도 좋을 터였다.
기술이 모자라 고통받는 뤼롱텔이었지만, 이런 인형은 그런 예술적인 정교함과는 또 다른 영역에 있었다.
“또 인형이네요.”
“몇이나 잡았습니까?”
시엔이 뷔아의 건틀렛을 바라보았다.
기름이 뚝뚝 흐르니 흥건한 수준이었다. 하얀 성의에도 기름이 튀어 위아래로 엉망인 꼴이었다. 대체 얼마나 날뛰고 온 거야?
“일곱 정도? 단단하긴 한데, 의외로 충격에 강하진 않네요. 인형이라 그런가.”
“그걸로 맞으면 인형 아니라도 골로 갈 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냄새가 지독하니 좀 떨어져 주시겠습니까?”
기름 특유의 훅 파고드는 냄새였다. 그에 썩은 시취 비슷한 것이 섞였다. 아주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뷔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엔은 깨끗하네요? 나는 이 모양인데. 가만히 구경하다 냄새만 맡기 전문인가요?”
“탐사조의 전력이 상상 이상이지 않습니까. 굳이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만. 그리고 냄새나는 걸 냄새난다고 하지, 그럼 안 난다고 합니까?”
“씁.”
뷔아가 잠시 시엔을 노려보다, 이내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어떻게든 검정을 좀 묻혀 보겠다는 뜻이겠지. 시엔이 슬그머니 자세를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뻗어오는 건틀렛을 시엔이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 피해냈다. 동시에 슬쩍 발을 내밀어 뷔아의 정강이를 챘다.
성녀가 팔로 땅을 짚고, 그대로 제비를 돌아 양발로 우뚝 섰다.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짜증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아, 씨!”
“쯧쯧. 마음 곱게 쓰셔야지.”
“진짜. 짜증나.”
뷔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다 다시 팔을 뻗으니, 시엔이 몸을 틀어 피해냈다.
“뻔한 수법을.”
“아. 진짜!”
“보는 눈도 있는데 그만 포기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윽.”
뷔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소곳이 자리를 잡았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보았겠지만. 뭐. 그 입담이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해야겠지.
주변에서 날아드는 기묘한 시선에, 뷔아가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문득 누군가 팔을 툭 치고 지나가니, 셀시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죠?”
“거 보라니까요.”
“뭘 보는데요?”
“히힛.”
셀시가 이상한 웃음을 흘리고는 이내 멀어져 물길잡이를 모아 피해를 확인했다.
부상자는 금방 치료되었고, 사망자 몇은 일단 천을 덮어 한편에 눕혀두었다. 그리고 다시 탐사가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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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전투, 그리고 몇 번의 자잘한 함정을 지났을 때였다.
탐사조의 후방. 통로의 바닥이 꺼졌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낭떠러지였다. 몇 명이 거기에 휩쓸려 떨어졌다. 비명이 울리고 이내 퍽, 가죽 부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어!”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적쩌적 균열이 번졌다. 바닥이 갈라지고, 잔금이 퍼지니 뒤이어 계속 무너져 꺼졌다.
“젠장! 뛰어!”
“바닥이 무너진다! 뛰어!”
“비켜! 비키란 말야!”
순식간에 대형이 무너졌다.
후열의 탐사조원들이 앞사람을 밀쳤다. 그대로 뛰쳐나갔다. 소란이 번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성기사! 사제를 모셔요!”
뷔아가 소리쳤다. 성기사들이 사제를 들쳐메고 달려나갔다. 뷔아 역시 양 옆구리에 한 명씩을 끼우고 내달렸다.
그저 앞으로 달려나가기가 얼마나 지났을까. 통로는 거대한 원을 그리는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천천히 발맞추어 뛰는 훈련 따위가 아니다. 그저 전력으로 무너지는 바닥을 피해 뛸 뿐이었다. 전력 질주의 체력 소모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체력이 약한 이들이 쳐지기 시작했다.
“아악!”
천문관 하나가 넘어졌다. 그대로 뒤로 스쳐 무너지는 바닥에 휘말려 자취를 감췄다.
그것도 잠시, 주문을 외워 떠올라 한숨 돌렸다는 듯 이마의 땀을 훔쳤다. 양 벽면이 열렸다. 화살이 쏟아져, 천문관이 그 자세 그대로 고슴도치가 되어 떨어졌다.
날아서 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
“젠장! 앞에!”
“수로잖아! 뛰어들어!”
앞서가던 이들이 주춤했다.
앞에서 겪은 내리막 수로가 앞을 가로막았다. 앞에는 수로, 뒤에는 낭떠러지. 다른 선택이 있을까.
사람들이 일제히 수로로 몸을 던졌다.
탐사조원들이 급류를 타고 미끄러졌다.
시엔이 능숙하게 몸을 던졌다. 한 번 타본 것을 두 번은 못 타랴. 달리던 속도 그대로 몸을 날리니 더욱 가속이 붙어 미끄러졌다.
“아아악!”
앞에서 비명이 터졌다.
수로의 한복판, 거대한 칼날들이 솟아올랐다. 수로를 타고 고속으로 미끄러지니, 칼날에 몸을 던지는 꼴이었다.
수로가 붉게 물들었다.
가랑이부터 정수리까지 반으로 갈라지고, 팔이 걸리면 팔이, 발이 걸리면 발이 잘렸다. 핏물이 번졌다. 주인 없는 팔다리가 온통 흩어져 제각각 흘러내렸다.
시엔이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칼날이 하나. 젠장! 시엔이 수로를 후려쳤다. 그 서슬에 방향이 바뀌었다. 칼날이 바로 어깨어림을 스치듯 지나쳐갔다. 죽을 뻔했네. 간담이 서늘했다.
‘속도를 줄여야 해.’
속도가 너무 빨랐다. 시야에 칼날이 들어와도 미쳐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시엔이 검을 뽑아 수로 바닥에 처박았다.
깡! 오러도 두르지 않은 칼이 돌벽을 뚫을 리는 만무. 반탄력에 오히려 몸이 뒤집혔다. 팔을 저어도 그뿐, 마법 처리된 바닥은 미끄럽기가 빙판보다 더한 꼴이었으니.
“스토커!”
시엔의 외침에, 바닥에서 검은 창이 솟아올랐다. 쉐도우 스토커. 악령이 실체를 얻어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동시에 시엔이 팔을 저어 몸을 모로 돌렸다.
솟아오른 쉐도우 스토커의 창에 시엔의 옆구리가 그대로 맞부딪쳤다.
억. 바람 빠지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비린 것이 치솟았다. 시엔이 왈칵 피를 토했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내장이 상했으리라.
시엔이 이를 악물고 앉아 쉐도우 스토커의 동체를 끌어안았다. 물살이 들이치고 바닥이 미끄러우니 그렇게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옆으로 연신 탐사조원들이 떠내려갔다.
아직 살아있는 이가 반, 사람이었던 일부분이 반이었다.
“선배니이이임······!”
아는 얼굴이 하나 스쳤다.
헤인트야 뭐. 죽어도 신체만 상할 뿐이니 놔둬도 상관없으리라. 어디서 또 육체를 구할지 모르니 또 새의 몸으로 살아야겠지만.
“시엔!”
아는 얼굴이 또 하나 스쳤다. 뷔아가 양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배면으로 볼썽사납게 떠내려갔다.
뷔아의 머리 위, 칼날 하나가 아다만타이트 건틀렛과 충돌했다. 칼날이 박살이 나 같이 떠내려갔다.
무식하게 다 부수고 다니기는. 여튼 저것도 멀쩡히 잘 살겠고.
그렇게 탐사대원들이 계속해서 떠내려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쓸려오는 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나는 어떻게 내려간담.
시엔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도련님? 이런, 다쳤어요?”
“아. 속이 좀. 셀시는 좋아보이네요.”
“뭐. 물이니까요.”
셀시, 차석 등대지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발아래 물로 이루어진 손이 그녀를 받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네요. 마침 이런 붙잡기 좋은 구조물이 여기에. 흠. 뭐지? 기둥도 아니고. 뭔가 다른 마력이 느껴지는데.”
시엔이 껴안고 있는 거대한 암흑의 창을 바라보며, 셀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엔이 말을 돌렸다.
“다른 물길잡이들은 어때요?”
“뭐. 다들 무사하죠. 등대서 살다 보면 두어시간 수영하는 거야 일도 아닌데, 다들 체력 좋고 물에선 뭐 보시다시피. 뛰고 헤엄치는 거야 매양 하는 일이니까.”
“나도 좀 내려 줄래요?”
“그야 물론이죠. 음.”
셀시가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음. 도련님? 혹시 생명의 은인을 위해 작은 일 하나만 해 주실 생각은.”
“셀시도 집요한 구석이 있네요.”
“좀 치사한가? 음. 그래도 말이죠. 마법서가 마법서여야지. ‘심층 심연과의 병렬 통로를 통한 영구적 순환계의 구성 및 일원화를 통한 다차원 원소 활용추출 및 그 활용’ 햐. 이런 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요?”
“슬슬 힘이 빠지는데.”
“도련님은 마법사가 아니라서 모르시는 거라니까. 일단은 내려드릴게요. 제게 빚 하나 지신 거 알죠?”
시엔이 셀시의 품에 안겼다.
풍만한 보이던 몸이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수영으로 다져진 근육이리라.
그렇게 셀시의 품에 안겨 수로 아래에 이르자,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로 아래 호수가 붉게 물들었다. 그 위로 주인 잃은 신체 일부가 떠올라 수면을 덮었다.
탐사조가 이미 반토막이었다.
그나마도 산 이도 멀쩡한 이는 드물었다.
“내, 팔. 내 팔!”
“으아악!”
“젠장! 일단 치료해요! 출혈이 너무 심해!”
“안 돼! 내 팔이 저기 있어!”
잘린 팔다리의 절단면이 깨끗하니 신성을 불어넣으면 충분히 붙일 수 있을 터. 그러나 어느 것이 제 것이랴. 호수의 수면을 뒤덮은 것이 전부 팔다리며 잘린 몸통 따위라 언제 또 제 것을 찾아 붙일 수 있을까.
“이것도 아니고······”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이들이 지혈대를 차고 호수를 헤집으며 제 팔다리를 찾아 헤맸다. 던전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교활한 놈이었다.
아무런 해도 없는 내리막수로를 먼저 배치해, 심리적 장벽을 줄였다. 한 번 그랬으면 두 번째도 그러할 것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뒤로 통로가 무너지니 달리던 기세 그대로 수로에 몸을 던졌다. 그러니 전번과는 비교 불가능한 속도가 붙었다. 그러니 수로에 솟은 칼날 앞에 잘려나갈 수밖에.
수로에 뛰어들기 전,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레 내려오며 아래를 살피기만 했어도 이리 많은 이가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시엔이 혀를 차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이제와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퇴로가 끊겼으니까.
어차피 죽음을 감수하고 들어온 이들이었다. 탐욕과 생명을 저울질해 스스로 판단했으니 무고한 생명이라 할 수 없는 것들.
문제는 시엔의 적이었다.
이 소란 안에 내 적이 얼마나 살았을까. 애초에 적을 꿰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던가. 이래서야 꿰인 적이 알아서 죽게 생겼으니.
‘이렇게 된 바에야, 제대로 된 보상이 있기를 바라야겠지.’
이 정도 규모의, 그리고 이렇게 공을 들인 함정이라.
대체 그 끝에 어떤 보물을 두었길래.
< 17. 지키는 사람 안 지키는 사람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