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깊은 땅속 그 위로 [6] >
분위기란 묘한 것이라, 급한 상황이라 해서 꼭 그렇게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처럼.
“오, 진짜 와이번이네?”
시엔이 이렇게 말하며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별거 아니라는 투였다.
그러니 창을 꼬나쥐고 벌떡 일어난 익인들 역시 무안해졌다. 이게 별일이 아닌가 아니면 별일이 맞나? 그렇게 엉거주춤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뷔아가 물었다.
“뭔가 방법이라도 있나요?”
“방법이야 늘 있는 법입니다만.”
“그럼 구경만 하지 말고 좀 치워요.”
“흠. 얘야. 위로 좀 올려주겠니?”
그러자 마수의 속살이 위로 솟구쳤다.
그 위에 앉아있던 시엔과 그 위의 뷔아가 같이 솟았다.
껍질 너머로 와이번의 거체가 펄럭이며 멀어져갔다. 크라라라! 와이번이 성난 괴성을 지르며 재차 날아오른 것. 다시 강하해 아시완칼스의 껍질을 들이받을 속셈이리라.
“날개를 태워.”
그러자 악령이 풀려나왔다.
버닝 신. 산채로 불탄 이의 악의다.
오랫동안 태울 것이 없었던 악령이 오랜만에 명령에 기쁘게 몸을 일으켰다. 거뭇한 형체가 쏜살같이 저 위로 솟구쳤다.
이내 화염이 일었다.
와이번의 날개가 불길에 휩싸였다. 날개의 피막이 얇아, 강력한 악령의 화염 아래 타올라 재가 되어 흩어졌다.
와이번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때에 마수의 속살이 끝까지 솟구쳤다. 제 껍질에 닿으니 그 위로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그러자 시엔이 뷔아의 허리를 붙잡았다.
“꺅, 무, 무슨!”
뷔아가 당황했다.
시엔이 무릎 위의 짐짝을 내동댕이쳤다.
성녀는 신체 능력이 인간을 초월했지만, 그를 활용한 체술을 배운 수도승이기도 했다. 뷔아가 휘릭 몸을 돌려 아시완칼스의 껍질 위에 가뿐히 착지했다.
의외의 기습. 뷔아가 도끼눈을 하고 시엔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죠?”
“초벌은 해 놨으니, 마무리는 알아서 해 주시죠. 밥값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
“얘야, 내려주렴.”
성녀가 항변하기도 전에, 시엔의 몸이 가라앉았다. 아시완칼스의 속살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 위의 앉아있던 시엔의 모습이 같이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갔다.
“야! 야 이 새끼야!”
쿵! 육중한 충돌음이 뷔아의 욕설을 지웠다. 와이번의 거체가 떨어져내린 것이다. 뒤이어 와이번의 분노 가득한 포효가 이어졌다.
마법사의 실력이 곧 그 전투력은 아니었다.
아무리 강대한 마력, 뛰어난 정신 세계의 구축으로 고위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해도 그 마법사가 잘 싸운다는 뜻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강한 마법사의 조건은 자신이 가진 것을 정확히 알고, 필요할 때에 유효한 수단을 꺼내 쓰는 전투 지능에 있었다.
시엔은 과거 가장 멀리까지 도달한 흑마법사였으며,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은 전투를 치렀던 전투 마법사이기도 했다.
성녀의 실력쯤 되면 날지 못하는 와이번 하나쯤이야 쉬이 처리할 수 있으리라. 아까운 마력을 굳이 소모할 이유가 없었다.
시엔이 느긋하게 귀를 기울였다.
퍽. 살 두드리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
와이번이 포효했다. 크와라라! 그러자 퍽퍽 다시 살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와이번이 울부짖었다. 끄르르······ 명백히 공포가 담긴 애처로운 소리였다. 시엔이 고소를 머금었다.
익인들이 움찔하며 깨진 껍질 너머를 바라보았다. 살가죽 치는 소리와 가끔 번쩍 성광이 솟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꼴이 제법 볼만한 꼴이었다.
“으랴아아아아!”
뷔아의 고운 기합이 길게 이어졌다. 순간 아시완칼스의 거체가 출렁거리며 휘청였다.
쿵! 그 뒤를 잇는 둔중한 충격음.
키야아아······
와이번의 괴성이 급히 멀어져갔다.
깨어진 껍질 위로 성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뼉을 짝짝 치고 손을 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면, 퍽 격렬한 격투를 치렀던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와이번 얻어맞는 소리뿐이었는데.
“처리했으니까 이제 내려주지 않겠어요?”
“그냥 거기에 계속 계셔 주시겠습니까? 척후도 볼 겸 말입니다.”
“호오. 내가 내려갈까요? 아니면 알아서 내려줄래요? 어느 쪽이든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뷔아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시엔을 내려다보았다. 시엔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 품이 그렇게 그리우셨습니까?”
“뭐라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셔야.”
시엔이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성녀가 기겁하며 급히 껍질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인간의 성녀가 이종족의 무릎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앙칼진 목소리로 으름장만 놓을 뿐이었다.
“아, 씨! 당신, 두고 봐!”
“당신은 너무 가셨다니까.”
시엔이 그리 대꾸하며 마수의 속살 위에 드러누웠다. 뷔아를 껍질 위로 쫓아내고 나니 이제야 진탕된 속이 가라앉으며 빠르게 상태가 호전되었다.
와이번도 처리하고, 마력도 아끼고, 저걸 떨어뜨려 놓는 데도 성공했고.
무려 세 개를 동시에 해냈다.
아시완칼스의 속살은 푹신하고 보드라워 편안한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유난히 착 감기는 것이 세상 이리 안락한 데가 또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직갱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한 숨 낮잠이라도 자면 딱인데. 아. 그렇군. 시엔이 아시완칼스의 부드러운 살결을 살살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얘. 천천히 가자꾸나. 아주 천천히.”
----
수직갱의 끝. 반듯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수를 돌려보내고 통로에 서니, 잠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 하품이 되어 튀어나왔다.
“하암, 억.”
누군가 옆구리를 콱 찔렀다. 시엔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뭡니까?”
“아주 늘어지게 주무셨던 모양이죠?”
“잔 건 아닙니다만.”
“눈곱이나 좀 떼고 말씀하시겠어요?”
“이런. 들켰네.”
“아, 씨······.”
뷔아가 주먹을 쥐자, 시엔이 모른 척 발을 재게 놀려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이봐, 므위.”
“뭐냐?”
“그 살베스란 거. 정확히는 어떤 거지?”
딱히 대답이 돌아오리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므위는 잠시 시엔의 눈을 바라보다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우리도 모른다.”
“모른다고?”
“그저 이름을 알 뿐. 어떤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물건인지 지명인지, 심지어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말이야?”
“우리의 숙명이니까.”
“용왕께서도 꽤 악취미시군. 뭔지도 모르는 걸 이름만으로 찾으라니.”
“누구나 보면 알 것이나 하셨으니 못 찾을 것은 아니다.”
“보면 알 거라고?”
“대답을 두 번 하는 취미는 없다. 마법사.”
므위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더이상의 질문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그나저나 마법사라. 그새 호칭이 인간에서 마법사로 바뀌었다.
그래도 나름 뭔가 인정받기는 한 모양인데.
기묘한 통로였다.
벽과 바닥, 천정이 하나로 미끈하니 어떤 무늬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그 끝에, 손톱만 한 광원이 비쳤다. 저기가 바로 통로의 끝이리라.
여기까지 그 빛이 비칠 정도니 가로막는 것이 없는 곧은의 통로였다.
그렇다고 해서 함정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꼼꼼하게 훑으며 나아가기를 한참이었다.
통로 너머로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원형의 넓은 공동을 두고, 반대편에 자리잡은 석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익인?”
“이게 무슨 광대놀음인가!”
므위가 분통을 터뜨렸다.
가장자리를 따라 익인들이 정연히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익인의 형상을 한 인형들이었다. 날개 대신 무수한 톱니바퀴가 맞물린 정교한 조형이 자리를 잡았다.
익인이 조각된 석문 뒤에 한참 날아야 하는 수직갱이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익인 인형들이라. 다분히 인위적으로 배치한 설계였다.
어렴풋이 감을 잡고는 있었지만, 이 모습을 보니 대충 결론이 나왔다.
“뭔가 알겠어요?”
“던전으로 만든 던전입니다.”
“그럼 던전을 던전으로 만들지 뭘로 만들겠어요?”
“원래 던전이란 창고에 가깝습니다. 침입자로부터 재산을 지켜야 하니 함정과 수호자를 배치해 막아내기 위한 시설이죠.”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가끔 던전 자체가 목적인 얼간이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그게 유행하기도 했고.”
일부 얼간이들이 그걸 로망이라 우기곤 했다.
던전을 지어, 누군가 도전하고 그걸 막아내는 데에 쓸데없이 자부심을 드러내는 치들. 심지어는 자기 던전에 도전해보라 대놓고 공고를 붙이는 이도 있었다.
“잠깐.”
뷔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처음 듣는 말인데.”
“던전 전문가가 많이 모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처음 듣는다구요.”
자그마치 천 년 전의 이야기였다. 그 시대의 기록이 사라진 것은 비단 흑마법사뿐만은 아닌 모양. 기록이 없으면 역사는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시엔이 혀를 찼다.
“쯧쯧. 그런 걸 전문가들이라고.”
“그 분야에 평생을 걸쳐 매진한 분들이세요. 그분들께서 모르는 걸 시엔이 알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진 않아요.”
“흠. 그러시면?”
“가끔 있죠. 제 딴에 논리적이라고 여기면, 그걸 사실인 양 떠들면서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이.”
“뭐. 그렇게 생각하시던가.”
시엔이 콧방귀를 뀌었다.
구태여 뷔아를 설득할 이유가 없었다.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지. 저 스스로 당당하면 남의 의심하건 말건 가타부타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굳이 설명을 보탤 이유 역시 없었으니까.
뷔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당신 말대로라면, 저 너머에 보상이 자리잡고 있겠네요?”
“이제 거들먹거리면 되는 겁니까?”
“아, 씨. 쪼잔하게 이럴 거에요?”
“제가 쪼잔한 거 이제 아셨습니까?”
“시끄럽고. 그래서요?”
“뭐. 아마 이쯤 해서 강력한 수호자를 하나 배치해 놓을 텐데요. 보물방 앞에 보스를 배치라는 건 암묵적인 룰 같은 거라서.”
“역시. 강력한 수호자? 그게 어디에 있죠?”
뷔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얄밉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넓은 공간 안에 배치된 것이라곤 수많은 익인 인형뿐이다. 시엔이 말한 강력한 수호자는 보이지 않았다.
뷔아가 손바닥을 펼쳐 어떠냐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 뒤, 익인의 인형이 문득 고개를 꺾어 뷔아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전투 준비를 해야겠군요. 뷔아는 옆에 있으면 제가 귀찮아지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싸우는 게 좋겠습니다.”
“뭐라구요? 지금 무슨······”
대답은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
“전투 준비!”
므위가 고함을 지르며 창을 단단히 쥐었다.
끼릭끼릭끼릭. 톱니 맞물리는 소리가 공동을 가득 채웠다. 인형들이 기계 장치로 만들어진 날개를 부자연스럽게 펄럭거렸다.
촤아아! 들어본 적 없는 거센 바람소리. 수백의 인형들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뭐야, 정말로?”
“최대한 멀리. 옆에 있으면 불편하니까.”
“아, 진짜! 뭐 이딴! 내가 더러워서 간다!”
뷔아가 땅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그 최고점에서 빛의 여섯 날개가 펼쳐졌다.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공동을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빛의 선이 그어졌다.
주먹을 앞세우니 인형 하나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쾅! 인형이 산산조각이 나며 톱니바퀴가 비산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예 반대편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속이 편안해지고 날뛰던 음차원 에너지가 가라앉았다.
시엔 역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깡. 시엔이 검을 들어 인형의 팔을 막았다. 끼릭끼릭. 톱니바퀴가 소음을 냈다. 그러자 날개가 치솟으며 뒤로 강력한 추진력이 일어났다.
시엔이 검을 틀어 인형을 뿌리쳤다. 방향을 잃은 인형이 제멋대로 날아갔다. 다른 인형과 부딪쳐 톱니가 투투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이거 상성이 안 좋은데.
흑마법사는 죽은 자를 다루고, 산 이를 고통에 빠뜨려 쉽게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상대가 아예 생물이 아니라면?
순수하게 물리력을 다퉈야 한다면 아무래도 그 수법이 많지 않았다.
시엔의 몸이 바닥으로 녹아들었다. 정확히는 제 그림자 속으로.
인형의 공격이 맥없이 허공을 스쳤다. 그 뒤로 시엔이 솟아 검을 내질렀다. 깡! 불꽃과 함께 톱니가 튀었다.
특이한 비행 방식인데. 천공탑의 중력 마법과 바람 마법의 응용인가? 몸을 띄우고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상당히 비효율적인 비행이었다.
그 궤도가 곧고, 한 번 피하면 크게 선회하니 그 반경이 너무 넓어 공격과 공격 사이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을 물량으로 때웠다.
쓸데없이 단단하니 검으로 상대하기는 별로. 시엔이 인형의 돌진을 옆으로 한 발짝 비켜냈다. 저주나 정신계열은 안 되겠고. 악령도 지금 쓸모있는 건 없고. 강신체는 물러서 쇳덩이와은 상성이 영 안 좋지. 시엔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녹아들었다.
그림자를 타고 다른 그림자로 몸을 옮기는 고급 흑마법이었다.
음차원 에너지의 소모는 크지 않지만,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마법이었다. 게다가 자칫 실패하기라도 하면 신체가 반토막이 나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시엔은 수만번을 사용하며 이미 통달한 수준에 이르렀다.
공식을 대입해 연산을 할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의 답을 외워둔 상태였으니까.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위험천만한 고급 마법을 능숙하게 펼쳤다. 만약 다른 흑마법사가 보았다면 경악하며 무릎을 꿇었으리라.
결국, 마수인가? 적당한 녀석이 뭐가 있지.
하시아켈스? 아니지. 하하레자아시테? 그건 과하고. 슈라드? 음. 슈라드가 괜찮겠네. 걔는 좀 비싸게 굴긴 하지만, 뭐.
시엔의 입에서 사악한 진언이 흘러나왔다.
세상이 편애하는 언어에는 법칙과 체계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고 의지가 굳어 마력이 그를 보조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심상을 그저 소리내어 표현할 뿐이었다.
부정 세계의 마수가 실체를 얻어 모습을 드러냈다. 시엔의 세 배는 되는 키에, 피부 없이 드러난 근육이 전신을 덮었다. 팔이 앞으로 둘, 뒤로 둘이 나 거대한 망치를 앞뒤로 쥐었다.
거대한 대가리에 네 개의 얼굴이 달려 사방을 한데 바라보았다.
“살아있지 않은 것들을 좀 치워다오.”
콰아아아! 사방으로 향한 네 개의 입이 동시에 강맹한 함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동서남북으로 울부짖는 꼴이었다
심층 심연의 문지기. 슈라드라 불리는 부정 세계의 마수였다.
거대한 해머가 부웅부웅 험상궂은 바람소리를 내고, 거기에 얻어맞은 인형이 볼품없이 떨어져나가 나뒹굴었다. 그야말로 양떼 속에 뛰어든 야수와 같은 기세였다.
시야에 사각이 없고, 몸은 양면이 같아 앞면만 있고 뒷면이 없는 놈이었다. 그 힘은 나무를 통째로 뽑아들 정도니 인형 따위야 상대가 될 것이 아니었다.
인형에서 떨어져나온 톱니와 부속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위협적인 적의 등장에, 수많은 인형이 상대하던 익인을 저버리고 가세해 몰려들었다.
슈라드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찢긴 근육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콰아아아! 대가리에서 녹색 숨결이 흘러나왔다.
슈라드는 상처를 입을수록 더욱 광분하여 날뛰니 오히려 그 힘이 강력해진다.
“이크.”
시엔이 몸을 틀어 튕겨나온 인형을 피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인형의 팔다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꺾였다.
톱니와 구리관 따위가 쏟아지고, 군데군데 불꽃이 튀며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시엔이 그 모습을 바라보여 생각했다.
꽤 신기한 인형인데. 있다가 멀쩡한 거 하나만 주워가야겠다.
< 15. 깊은 땅속 그 위로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