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깊은 땅속 그 위로 [5] >
시엔의, 정확히는 시엔을 끌어안은 익인의 배후로 거대한 해골의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신체. 흑마법사의 가장 기본적인 마법. 음차원 에너지로 짜 맞춘 골격이었다.
강신체가 시엔의 손짓을 모방해 거대한 손을 휘둘렀다.
움켜쥐고 내팽개친다. 가고일이 벽에 부딪쳐 둘 부스러기가 날렸다. 박살이 난 잔해가 떨어졌다.
그러나 적이 너무 많았다.
익인마다 가고일 서넛을 상대했다. 기동력은 익인이 우월했다. 선회하고 돌고 회전하고. 또한 날개를 접어 떨어지고 다시 날아오르니 창을 휘둘러 가고일의 날개를 부쉈다.
그러나 결국 숫자 앞에선 밀리는 법이었다.
아악! 기어코 비명이 터졌다.
익인 하나가 추락했다. 날개가 꺾여 부러졌다. 나는 것은 결국 날개가 약점이었다.
시엔이 손을 뻗었다. 거대한 뼈대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추학하는 익인을 낚아채 손에 쥐었다.
“천신이시여!”
그때, 또다시 강력한 신성이 터져나왔다.
신성에 강신체의 존재가 흔들렸다. 강신체가 점멸하자, 그 손에 쥐고 있던 익인이 다시 추락을 시작했다.
“빌어먹을! 뷔아! 신성을 거둬!”
뷔아가 멈칫 신성을 거뒀다. 빛의 창들이 모습을 감췄다. 사위를 밝히던 광구가 사그라들고, 수직갱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야! 불은 켜! 이 얼간아!”
“아으! 어쩌라고!”
다시 빛이 밝았다.
떨어져내리는 익인이 보였다.
시엔이 익인의 팔에서 몸을 뒤집어 뛰어내렸다. 순간 양 다리를 뻗어 익인의 허리를 감았다. 시엔이 거꾸로 매달려 손을 뻗었다.
추락하던 익인이 가까스로 손아귀에 다시 들어왔다.
“인간!”
위? 아래? 어디선가 므위의 외침이 들려왔다. 거꾸로 매달려 위와 아래가 뒤섞인 참이다.
또 한 명, 익인이 추락하고 있었다.
시엔이 반대편 손을 뻗었다. 양손에 익인을 하나씩 쥐었다.
“젠장! 인가아안!”
므위가 재차 외쳤다.
추락하는 익인이 또 한 명.
강신체는 본체의 모방. 시엔의 손이 두 개라 강신체 역시 그러했다.
시엔이 입을 쩍 벌렸다.
강신체의 두개골이 같은 모양으로 벌어졌다.
강신체가 손에 쥔 익인을 제 아가리 속으로 밀어넣곤, 성마르게 손을 뻗어 추락하는 이를 움켜쥐었다.
쿵! 강신체의 감각이 시엔에게 전해졌다.
두개골 안쪽에 이물질이 떨어졌다. 이와 같은 고통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불쾌감과 두통이 일시에 뇌를 쥐어짰다.
“인가안!”
므위의 다급한 외침이 다시 이어졌다. 시엔이 차례로 추락하는 익인들을 받아 입안으로 쑤셔넣었다.
쾅! 쾅! 머리속에 이물질이 떨어져 울리는 소리. 비행에 따라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리니 강신체의 두개골 속 익인들도 이리저리 쏠려 미끄러졌다. 끔찍한 감각이었다.
“강하! 강하! 후퇴한다!”
므위의 외침에 익인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날개를 접고 상체가 아래를 향한 다이빙이었다.
익인의 허리를 감고 매달렸던 시엔이, 뒤집혀 똑바로 섰다. 강신체가 같이 뒤집혔다. 두개골 안쪽, 익인이 떨어져내려 턱뼈를 강타했다. 한 대 맞은 듯 아찔한 고통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꺄아아악! 떨어진다아!”
그때, 수직갱이 떠나가라 구슬픈 비명이 울렸다. 뷔아였다. 꺄악꺄악 높디높은 목소리가 귀청을 긁었다.
그 탓에 시엔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자, 비리고 짠 맛이 입안을 채웠다. 그나마 정신이 좀 들었다.
시엔이 고개를 들어 위를 살폈다. 지금 적을 살필 이는 자신 혼자였으니.
가고일들이 어느 지점에서 추격을 멈췄다. 적들이 시커먼 어둠 속으로 치솟아 음영 속으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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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무사한가? 중위들부터 보고해!”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깨지고 부러진 이가 여럿이었지만, 일행에 무려 성녀가 있지 않았던가.
날개가 부러진 익인은 끼우고 맞춰 금방 치료되었지만, 아예 잘려나간 이가 둘이었다.
이전에 므위가 경멸하며 말하기를, 날지도 못하는 한심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날지 못하게 된 익인은 어떠할까.
놀랍게도 크게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오히려 탐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어 죄송하다고 하니, 제 부상은 별거 아니라는 투였다.
시엔이 눈을 빛냈다.
“이봐. 날개는 다시 자라는 건가?”
“너, 인간, 그 입 좀 다물라고······.”
므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문득 심경의 변화가 있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찡그린 표정이었으나, 의외로 답변이 돌아왔다.
“······날개는 금방 자란다. 날지 못하는 익인은 없으니까.”
“오오. 날지 못하는 익인은 없다고? 한 명도?”
“그렇다니까!”
“그럼 선천적으로 문제, 그러니까 날 때부터 날개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을 거 아냐.”
“그럼 날개를 뽑으면 된다! 어차피 다시 자라는 것 아니냐! 당연한 것을 말해줘야 하나!”
“호오.”
시엔이 눈을 빛냈다.
대답을 해 주니 묻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녔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으니.
“음. 혹시 깃털을 달라는 게 익인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였어?”
“큭, 빌어먹을!”
므위가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모기만한 목소리가 겨우 들려왔다.
“구애의 뜻이다.”
“······미안.”
그냥 모르고 있을 걸 그랬다. 이러니 다른 익인들의 반응도 알 법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날개가 상하면 금방 자란다고? 뽑아도 다시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그만한 재생력이 있다는 건가? 하나 있으면 연구해볼 만한 것 같은데.
시엔이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땅에 떨어진 깃털을 줍는 건 어때? 그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슨 이딴 인간이 다 있어!”
므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익인들이 킬킬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엔이 다시 졸랐다.
“에이. 그러지 말고. 대답해주는 김에 마저 해 주면 어때?”
“큭. 땅에 떨어진 건 상관없다. 어차피 죽은 깃털이니까.” “죽은 깃털? 그럼 산 깃털도. 아. 직접 뽑아주는 것과 다른 이유로 떨어져나온 깃털에 차이가 있는 거로군?”
“······그렇다. 산 깃털은 그 주인이 죽기 전까지 시들지 않지.”
“시든다? 어디.”
시엔이 기어코 바닥을 뒤져 깃털을 찾았다. 시든 깃털이라더니, 새하얗던 것이 어느새 갈색으로 변했다. 손가락으로 집어 들자 미역처럼 맥없이 축 늘어졌다.
시엔이 생각했다.
이거 굉장한데. 세계수와 같은 원리라니.
스스로의 의지로 뽑은 깃털과 그렇지 않은 것이 차이가 있다고? 그렇다면 그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지?
게다가 산 깃털이 주인이 죽기 전까지 시들지 않는다면, 영혼 영역에서의 연결이 있어 그 생명력을 공유한다는 뜻인데.
흑마법에 있어 중요한 난제 중 하나가 아니던가. 어쩌면 이걸 연구해 세상의 법칙 하나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그러려면 산 깃털이 필요한데.
‘괜히 물어봤네.’
시엔이 후회했다.
차라리 깃털을 뽑아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면 하나만 뽑아달라 졸라댈 수 있었을 텐데.
억지는 무지한 이의 특권이었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볼 가치가 있었다.
“음. 므위.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미안하면 하지 마라! 빌어먹을 인간!”
“아무리 구애의 표시라고 해도, 나는 인간이고 너는 익인이니까. 서로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하나만 뽑아주면 안 될까? 다른 뜻은 없고,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이 빌어먹을 놈!”
므위가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네 여자에게 인간의 몸이 궁금하니 한 번만 보여달라 하면 보여주겠나!”
“아.”
시엔이 크게 깨달았다.
“미안. 진짜 미안해.”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안 그럴게.”
“흥. 부하들을 살려준 은혜를 보아 넘어가는 거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시엔이 므위를 진정시켰다.
이번엔 제 잘못이 맞았다. 내게 사소한 것이니 상대에게도 그러하리라 함부로 여긴 탓이었다.
시엔이 반성하는 사이, 뷔아가 앞으로 나섰다.
“자. 그만. 이제 결정하실 시간이에요. 탐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우리는 물러나지 않는다!”
“저 가고일 떼를 뚫겠다고요? 이번엔 천운으로 모두 무사하지만······”
므위가 뷔아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남았다면 탐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진할 테니까.”
“아, 씨. 사람이 말을 하는데······”
“억지로 끌고 가진 않겠다. 대신 성녀는 여기서 대기해라. 교단에선 치료 가능한 사제를 붙여 주기로 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라고는 하지 않겠다.”
“흠. 그렇게까지 탐사를 계속하겠다? 왜죠?”
“그걸 말해줄 이유가 있나?”
“무슨 싸가지가 아주.”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흠.”
뷔아가 시엔을 돌아보았다. 어쩌겠냐는 뜻이었다. 어차피 둘의 목적은 탐사가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전리품 사이에 가짜 마도서를 끼워 소문을 흘리려는 것뿐.
굳이 익인의 탐사대가 아니라도 이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성녀가 동행하겠다면 어떤 탐사조라도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이봐, 므위.”
“왜 그러지?”
“동 브라모르 대밀림은 멀지. 여기까지 왔으니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이었을 테고. 소식을 듣고 날아왔다 쳐도 여러 날이 걸릴 텐데. 벌써 여기 들어와 있으니 상당히 서둘렀던 모양이야.”
“그게 어쨌단 말이냐.”
“아까 가고일하고 싸우는 걸 봤다구. 모든 익인이 그렇게 잘 싸울 것 같지는 않고. 상위라고 했던가? 그게 인간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높은 계급일 것 같단 말이지.” “인간과는 상관없다.”
“그런데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저 위로 가겠다는 건, 꽤 중요한 임무라도 봐도 되겠지? 대체 뭘 찾고 있는 거야? 그게 여기에 있나. 가만있자. 이 던전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건가?”
“내가 대답해 줄 이유는 없다.”
므위가 입을 딱 다물었다.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흠.”
“내가 도와줄 수도 있지.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저 꼭대기까지 안전하게 올라갈 방법이 있다면?”
므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알아서 해. 우린 사실 그렇게까지 위험할 감수할 이유까진 없어서.”
시엔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아서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므위가 익인들을 돌아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젓고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결론이 나온 듯, 므위가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오랜 비원이 있다. 살베스를 찾는 것. 아주 오랜 시간부터 내려온 비원이다.”
“살베스?”
“우리는 원래 둘이었다. 흰 날개와 검은 날개를 타고난 이가 따로였지. 그러던 어느 날, 검은 날개의 왕께서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자 흑백쌍익의 용왕께서 벌을 내리시길.”
“잠깐. 용왕? 드래곤 로드?”
“너희 인간들은 그렇게도 부르지.”
드래곤. 이 땅의 지성체 중 가장 강대한 육체와 강인한 영혼을 가진 종족이었다. 그런 주제에 퍽 제멋대로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종족이기도 했다.
“용왕께서 검은 날개들을 이 세상에서 추방하셨다. 다만 왕의 날개를 세상에 남겨, 익인이 그것을 찾으라 말씀하셨지.”
“그 날개가 살베스란 말이지.”
“그렇다. 헤어진 동포를 찾는 것이 우리의 오랜 비원이다.”
“그럼 이 던전이 용왕이 만든 것이라고?”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므위가 말했다.
“이제 네 차례다.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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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완 칼스. 마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흑마법사였다. 흑마법의 여명기에 수많은 마수를 연구 분류하고 그에 따라 부정 세계의 생태를 밝혀 마수학의 기초와 토대를 세웠다.
아시완은 부정 세계의 마수 중 어떤 것들은 호흡계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부정 세계의 혹독한 환경이라면 그러한 마수 역시 존재할 것이라고. 그리하여 수중 생물과 육상 생물을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필요하고 말했다.
부정 세계의 마수 중, 커다란 조개의 형태를 한 것이 있었다. 전복과 닮았으나 그 크기가 어지간한 선박보다 더 큰 녀석이었다.
호흡계 없이 물 밖과 안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아시완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수의 최초 소환자는 아시완과는 오랜 악연으로 앙숙 관계였던 흑마법사 이베리트였다.
거대한 조개 마수는 흉측하기로도 제일이었다.
벌어진 껍질 사이로 수만개의 촉수와 그 끝에 붙은 눈알은 인간 본능을 영역에서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아베리트는 그 형상을 보고 가장 싫어하는 흑마법사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마수 아시완칼스의 발견이었다.
“으윽.”
“으엑.”
“끄음······.”
저마다 신음성을 내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시엔의 부름에 아시완칼스가 실체화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시엔조차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아시완칼스가 입을 떡 벌렸다. 껍질이 수직으로 일어나 그 속이 훤히 드러났다. “이, 이게 대체 뭐란 말이냐!”
“음. 탈것? 저래 보여도 안은 상당히 편안하다구.”
“······정말로 괜찮은 건가?”
“그럼.”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익인들이 날아올랐다.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아시완칼스의 속살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음?”
“오. 이거 의외로······”
이번엔 다른 의미로 탄성이 터졌다.
아시완칼스의 푹신한 살결은 어떤 고급 침대와도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 몇몇 익인들은 아예 그 위로 벌렁 드러누웠다.
혐오스러운 외향도 아예 속으로 들어와 버리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시완칼스의 뚜껑이 닫혔다. 껍질 안쪽에 자리잡은 발광 물질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을 냈다. 마치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 같았다.
뷔아가 그 모습을 바라보여 말했다.
“그런데 왜 내가 댁 무릎 위에 앉아있어야 하죠?”
뷔아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말 그대로, 뷔아가 시엔의 무릎 위에 얌전히 다리를 모아 앉은 상태였다. 팔짱을 낀 뷔아의 표정이 영 탐탁지 않았다.
시엔 역시 오만상을 쓴 상태였다. 무릎은 빌려주었지만 팔을 뒤로 짚고 상체를 최대한 뒤로 빼 앉았다.
정말로 상성이 너무 나쁘다. 올라오는 신물을 억지로 삼켰으나, 역한 비린내는 남아 코를 찔렀다. 아. 역겹네. 진짜.
시엔이 겨우 대답했다.
“뷔아는 이 녀석에게 독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독이 아니라 맹독 중의 맹독이죠. 닿기만 해도 살이 녹아내릴 텐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부정하기 짝이 없는 괴물을 부리다니······.”
“부정하다는 거야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성흔의 소유자가 뭐 이딴······.”
“이딴? 이딴 뭡니까?”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요?”
그때였다.
탕탕탕탕! 껍질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가고일들의 습격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이거 괜찮은 거예요?”
“아마?”
“괜찮으면 괜찮지 아마는 또 뭐죠?”
“가고일만 있으면 괜찮을 겁니다. 아무래도 상성이란 게 있어서.”
아시완칼스는 덩치에 비해 연약하기 짝이 없는 마수였다. 마수 소환의 난이도는 그 크기에 달렸으니, 크고 약한 마수는 연구용이 아니면 쓸모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오죽하면 그 최초 소환자가 가장 싫어하는 이의 이름을 붙였겠는가.
대개 외골격 생물들이 그러하듯이, 아시완칼스의 속살 역시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껍질도 사실 그렇게까지 단단한 것은 아니다. 깨어져 부서지면 속살을 공격받아 쉽게 죽었다.
물론 나름의 방어수단은 있었다. 껍질에서 가시가 솟아 적을 공격하나, 마수의 덩치에 비하면 참으로 소심한 반격에 불과했다.
그저 편안하게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 상대가 가고일이라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아시완칼스의 껍질을 부술 파괴력이 없고, 공격하려면 바로 달라붙어야 하니 가시로도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시엔의 말대로, 껍질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뷔아가 안도의 한숨을 쉴 때였다.
쿵! 육중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강력한 힘으로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이거 괜찮다고 했죠?”
“상대가 가고일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상대라면요?”
“나는 것 중에선 크게 적수가 없는 편입니다만. 와이번 같은 최상위 몬스터만 아니면 상관없을 겁니다.”
크롸라라······ 시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노에 찬 거친 포효가 껍질 밖에서 아스라이 전해져 들어왔다. 뷔아가 말했다.
“방금 그거. 아니겠죠?”
“······비슷하긴 한데.”
쿵! 다시 한번 육중한 소음이 내부를 흔들었다. 무언가 부스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손으로 쓸어내리니 잘게 쪼개진 껍데기의 조각들이었다.
“뷔아. 살살, 아주 살살 저 위를 좀 비춰 주시겠습니까?”
뷔아의 앞으로 희미한 빛의 구슬이 떠올랐다. 빛을 뿌리며 위로 향하니, 조개껍데기 천장에 무수히 그어진 실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쿵! 파삭.
기어코 껍질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광구의 빛이 틈새를 따라 바깥으로 샜다.
녹색의 사나운 대가리가 깨어진 그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용과 비슷하나 아니다 하여 아룡, 날아다니는 용이라 하여 비룡, 대개는 와이번이라 불리는 최상위 포식자의 면상이었다.
< 15. 깊은 땅속 그 위로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