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63화 (63/268)

< 15. 깊은 땅속 그 위로 [4] >

익인에 대해선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동 브라모르 대밀림의 주인들. 어지간한 왕국의 영토와 맞먹는 거대한 밀림 속 익인의 왕국이 있었다. 대단히 배타적이라, 인간을 적대시하는 얼마 안 되는 종족이었다.

그러니 시엔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한별은 엘프를 제외하면 모든 이종족이 인간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물론, 모든 이라는 말이 거의 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는 의미의 과장법이었겠지만.

인간의 시비를 구경하러 나올 정도라면, 천 년 전과 달리 인간을 적대시하는 정도는 아닐 테고. 어쩌면 의외로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엔이 익인의 탐사일정에 끼어든 이유였다.

“뷔아 샤인 세러하드입니다. 이쪽은 시엔 티란디스 명예 대주교님이시구요.”

“명예 대주교? 대주교가 아니란 말인가? 치료가 가능한지.”

“시엔은 신성을 가지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던전 전문가로 높은 식견을 가졌지요.”

“우리는 치료가 가능한 사제 둘을 허락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저희가 빠지고 사제 두 분을 모셔다드릴까요?”

“성녀는 상관없다. 저자만 바꿔라.”

뷔아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시엔이 킬킬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성녀라는 자리도 편한 것만은 아니리라. 상대가 무례하게 군다고 해서 성녀가 똑같이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글쎄요. 두마리 새를 다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크흠.”

익인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조장님을 뭐라 불러드려야 할까요?”

“나는 므위다.”

익인 탐사조의 조장은 가슴팍이 빵빵하게 부푼 사내였다. 조장뿐만 아니라 익인들 전부가 마찬가지였다. 팔다리가 굵고 특히나 대흉근이 발달해 우락부락한 사내들이었다.

조류의 흉근이 발달한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엔이 눈을 빛냈다.

“저쪽부터 유앙, 티이퐁, 하위······.”

열다섯의 이름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저 가리키며 호명할 뿐이니 소개와는 거리가 멀었다.

뷔아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시엔이 고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담이 참으로 큰 것들이 아닌가. 성녀가 제대로 마음을 먹으면 열다섯을 못 쓰러뜨릴까.

그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무시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성녀라는 존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 모두일지도 모르고.

산이 무너져 드러난 던전의 입구는 지저분했지만, 안쪽으로는 반듯하게 통로가 났다.

시엔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상당히 고위 존재가 지은 던전이겠는데.”

“왜죠?”

“궁금해요?”

“왜. 죠?

뷔아가 발음을 쎄게 강조했다.

”통로가 곧고 벽면이 판판하네요. 무엇보다 경사지지 않고 똑바로 들어가고 있으니까.“

동굴이 곧게 뻗는 일은 기적에 가까웠다. 특히나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제멋대로 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동굴을 개조해 만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작정하고 암벽을 파 만든 던전이었다.

그것이 가능한 능력 혹은 그에 준하는 노동력을 가진 이가 만들었으리라.

뷔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아는 사실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셔도 뭐.“

“그쪽에서 먼저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이만한 던전인데 학자들이 한둘만 모인 줄 알아요? 아나 모르나 한 번 물어본 거예요.” “이렇게 나오시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하암. 아. 졸려.”

“밤에 잠도 안자고 뭘 했습니까?”

“읏.”

뷔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간밤에 밤을 꼬박 새워 책을 읽었다. 수히 몰래 읽느라 새벽까지 자는 척을 하다 몰래몰래 꺼내읽느라 결국 한숨도 못 자고 말았다.

“나, 남이사 뭘 읽든!”

“읽든? 책을 읽었단 말입니까? 밤을 새서? 그거 깜짝 놀랄만한 일이군요. 책하고 싸웠으면 모를까.”

“어흠, 어흠.”

뷔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갑자기 대답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얼굴만 붉히고 있으니, 시엔이 왜 이러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딱히 궁금한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성녀가 밤에 뭘 읽던 시엔이 무슨 상관이랴. 딱히 관심이 없으니 굳이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보단 다른 데에 관심이 있었다.

시엔이 므위에게 다가갔다.

“이봐. 므위라고 했나?”

“뭐냐. 인간. 난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

므위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시엔이 다시 물었다.

“그건 개인의 의견이야? 아니면 익인 전체가 대개 그러하다는 뜻이야?”

“뭐?”

“그러니까 네가 개인적으로 인간을 싫어한다는 건지, 익인 사회 전체가 타종족을 배척한다는 뜻인지 궁금하다는 거지.”

므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날지도 못하는 한심한 것들을 좋아할 이유가 있나?”

“오. 그러니까 날지 못하기 때문에 멸시를 한다 이 말인가? 그럼 익인 사회에서는 어떤데? 부상이나 혹은 선천적 요인으로 날지 못하는 익인 역시 배척을 받아?”

므위가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험상궂을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냥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난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아.”

시엔이 제 주먹을 들어 므위의 주먹 앞에 가볍게 대었다.

“오. 손이 상당히 큰 편이군? 팔의 길이에 비해 상당히 크고, 손가락의 비율이 좀 다른가?”

“뭐 이딴 놈이.”

므위가 앞을 바라보았다. 아예 무시하겠다는 뜻이었다. 시엔이 그 뒤를 졸졸 따랐다.

“몸집에 비해 걸음걸이가 상당히 가벼운데. 중심 이동도 적고. 혹시 몸무게를 알려줄 수 있을까? 역시, 비행을 위해 다른 종족보다 훨씬 가벼운 체중을 가졌다고 봐도 될까?”

“······”

“어떻게 날지? 제자리에서 상승은 가능한 건가? 아니면 기류를 타? 아니면 활강에 가까워 일정 속도에 이르러 양력을 취하는 방식인가?”

“······”

“날개는 어떻게 접어? 관절 부위가 얼마나 꺾일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을까? 날개에도 신경 기관이 있나? 그렇다면 날개로도 촉각을 느끼나? 깃털은 어떻지? 누가 깃털을 두드리면 알아차릴 수 있는 건가?”

“······”

“아. 그럼 잘 때는 어떠한 식이야? 바로 눕기엔 불편해 보이는데. 익인 양식의 침구가 따로 있나?”

“······”

시엔이 연신 질문을 가했다.

므위가 결국 뷔아를 돌아보았다.

“성녀. 여기 이 떠버리 인간의 입을 좀 다물게 하라고.”

“시엔은 명예 대주교이시지만, 교단에 속한 분이 아니시랍니다. 제가 상급자가 아닌 몸인지라서요.”

“젠장! 같은 인간이잖아!”

“시엔은 왕국의 귀족이고, 저는 교단의 성녀로 귀족의 준하는 예우를 받을 뿐이랍니다. 그러니 서로 같아 함부로 할 수가 없지요.”

뷔아가 빙긋 웃었다.

안 그래도 안하무인 익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조잘거리며 잘 괴롭히고 있는 시엔을 응원하면 응원했지 말릴 이유가 없다.

“젠장, 이 미친 인간! 정말 박살이 나고 싶나!”

“워워. 진정해. 그냥 궁금했을 뿐이니까.”

“또 한 번만 떠들었다간 주둥이를 뭉개 버리겠다!”

“그냥 순수한 호기심이야. 어쩌면 인간과 익인이 서로를 이해할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어?” “빌어먹을!”

“아. 그럼 대신에 깃털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

순간 모든 익인들이 몸을 돌려 시엔을 바라보았다. 므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익인들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마침내 익인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냈다.

“풉.”

“크하하! 깃털을 달라는군!”

“상위! 그냥 줘 버리죠! 크핫, 으하하하하!”

므위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젠장! 개 같은 놈! 인간 따위!”

므위가 성큼성큼 일행을 앞질러 대열의 가장 앞으로 향했다. 익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듯, 피히히 경박한 웃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뭐야, 대체.”

이 와중에도 익인들이 시엔과 뷔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으므로, 더 물어보기도 뭐하니 시엔이 결국 어깨를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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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은 산을 따라 파고들어가 위아래로 향했다. 그 깊이와 규모를 가늠할 수 없어 현재 탐사 진행도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추정으로 1/3정도가 아니겠는가 유추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탐사가 완료된 구역을 지나, 익인의 탐사대가 지정된 구역에 들어섰다. 공국의 경비가 번을 서는 가운데, 날개를 단 사람이 양각으로 새겨진 거대한 석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래서 익인이 나섰던 겁니까.”

“익인 뿐만이 아니죠. 이런 석문이 도처에 발견되고 있어요. 엘프와 드워프는 기본이고, 수인족의 갈래별로도 마찬가지네요.”

“흠.”

“뭔가 감이 잡히는 게 있나요?”

“글쎄요. 몇 가지 가설이라면 세울 수 있겠지만. 어쩌면 과거 여러 종족이 한데 모여 사는 통합 사회가 있었을 수도 있고.”

“역사 공부를 하긴 했어요? 그런 역사는 없어요.”

“거야 모를 일이지. 천 년 전 일도 제대로 모르는 게 인간인데. 그 전을 어찌 알까.”

본부에 전시된 전리품들을 이미 보았다. 재림 이전에도 오래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던전도 그 이전부터 존재했으리라.

던전은 오래된 것일수록 안전했다.

시간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을 이겼다. 함정과 수호자도 시간 앞에 스러지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그게 천 년이 훌쩍 지난 던전이라면야.

“천 년? 피. 거창하긴 더럽게 거창한 소리를, 아. 더러운 건 취소. 거창하신 소리를 하시네요. 겨우 백 년도 안 된 젊은 던전인데.”

“젊은 던전?”

“미노타우르스와 트롤이 잔뜩 발견되었어요. 상태는 멀쩡하고. 수호자가 멀쩡한 던전이니 신생이죠.”

“다른 데서 새어들어왔을 확률은?”

“트롤은 그렇다 치고 미노타우르스는 근처 생태계가 없으니까요. 그나저나 계속 말이 짧네요?”

“누가 입이 더럽길래.”

“취소라고 했는데.”

“흠. 뭐.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수호자가 멀쩡하단 말이군요. 함정도 마찬가지고. 그걸 왜 지금 말해줍니까?”

“내가 누구 유모에요? 떠먹여주길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알아봤어야지.”

“그럼 내가 유모였네. 누가 떠먹여달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교단에서 흑마법이 흑마법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알 것 같은 시엔에게 자문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부터 미탐사 지역이니 주둥이 다물어요.”

“예. 예. 알겠습니다.”

말싸움에서 밀린 성녀가 입을 다물었다.

시엔도 그러고 말았다. 함정과 수호자가 살아있다면 웃고 떠들며 들어갈 곳이 아니니까.

문을 열고 탐사대가 안으로 들어섰다. 익인들이 열을 갖추고, 개중 두 명이 앞장을 서서 함정을 살피고 적을 살폈다.

경계를 서며 대기하다, 똑똑 신호가 들리면 전진하고.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길 몇 번.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끈한 벽면이 원형으로 감싸고, 그 넓이는 한 개 대대, 그러니까 400명은 넉넉히 누울 정도였다.

천장이 없어 머리 위로 까마득하니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수직갱이 펼쳐졌다. “흠. 수직갱이라.”

“뭔가 알겠어요?”

“이제 식사 시간입니까?”

“아, 씨. 유모라 불러드릴까요?”

“정확히는 유부 아닙니까? 흠. 어감이 별로네요. 일 없습니다.”

“그래서, 말 해 봐요.”

“익인이 새겨진 문 너머에 수직갱이라. 익인에 맞춰서 만들었겠죠. 익인은 날 수가 있으니까. 다만 대놓고 올라오라 손짓하는 꼴이니 수상하긴 합니다만.”

시엔이 므위를 바라보았다. 탐사를 계속하겠냐는 뜻이었다.

“올라간다. 너희는.”

므위가 익인들을 훑었다. 그리고는 개중 유일한 여성 익인을 가리켰다.

“메이얀. 성녀는 네가 맡도록 해라.”

메이얀이라 불린 익인이 성녀를 끌어안았다. 성녀가 그 품에 얌전히 안겼다. 안겨있는 모습이 저리도 안 어울리는 여자가 또 있을까.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떠버리는.”

“떠버리는 상위가 맡으셔야죠.”

“네놈들!”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므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크. 그럼 저희는 그렇게 알고.”

익인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 날아올랐다.

아직 바닥을 밟고 선 이는 시엔과 므위뿐이었다. 므위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와라. 인간.”

시엔이라고 딱히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익인은 날개가 뒤에 달렸다.

당연히 날개에 걸리적거리면 날 수가 없다. 그러니 등에 업을 수도 없고 어깨에 메쳐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팔을 들어 무릎 뒤에 끼우고, 또 다른 팔로는 등판을 받쳐 들 수밖에는.

시엔을 안고서 므위가 가볍게 날아올랐다.

우락부락한 사내에게 안겼다는 불쾌감도 잠시. 호기심이 시엔을 덮쳤다.

음. 성인 한 명 정도는 쉽게 들고 나를 수 있다는 뜻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엘프처럼 바람의 정령을 다루는 것도 아닌데.

시엔이 막 물어보려는 참이었다.

“입 다물어라. 떠버리. 입을 열었다간 당장 떨어뜨려 버리겠다.”

“너무하네.”

“빌어먹을!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되나!”

므위가 분통을 터뜨렸다. 시엔이 모른 척 주변을 둘러보았다.

뷔아의 신성으로 하얀 조명이 벽면을 밝혔다. 문득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상이 여덟 방위에 자리잡았다.

“······이거 안 좋은데.”

시엔이 중얼거렸다.

“누군 좋단 말이냐! 빌어먹을 인간!”

“아니. 그거 말고. 저거.”

시엔이 손을 뻗어, 머리 위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조각상을 가리켰다.

“저게 어쨌단 말이냐!”

“가고일이잖아.”

“그게 뭐 어쨌다는, 젠장! 가고일?”

가고일. 희귀한 몬스터 중 하나였다.

돌이나 금속 따위가 살점을 대신하는 기이한 마물으로, 가만히 있으면 정교한 조각상과 닮았다. 실제로 그러한 방식으로 유적이나 던전에 자리를 잡고 인간을 기습하는 놈들이었다.

“젠장! 전투 준비해! 가고일이다!” 므위의 외침에, 익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들었다.

캬아악! 기습이 실패했음을 깨달은 가고일이 괴성을 지르며 받침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몸은 인간이요, 얼굴은 늑대, 날개는 박쥐의 것을 가진 놈들이었다.

캬악! 캬아악! 수직갱을 타고 저 높은 곳에서 또 다른 괴성이 울려퍼졌다. 저 위쪽에 자리잡고 있던 가고일들이 마저 깨어나는 소리였다.

가고일들이 머리를 아래로 급강하했다.

“천신이시여! 제게 힘을!”

빛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뷔아가 창을 날리자 가고일 둘이 박살나 떨어졌다. 그러나 여섯이 남았다.

익인이 산개했다.

개중 한 명이 창을 들어 막았다. 깡!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익인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빙글빙글 몸이 회전하며 추락을 시작했다. 다른 익인이 활강해 그 다리를 낚아챘다.

“젠장! 라스타!”

므위가 그리 외치며 시엔을 내던졌다.

므위가 창을 들어 쏘아져나가고, 시엔의 몸이 붕 떠올랐다. 이내 고점에 이르러 추락을 시작했다.

신체 장기가 쏟아지는 듯한 아찔한 추락의 감각. 익인 한 명이 시엔을 와락 끌어안았다.

므위의 창이 빛나고, 가고일과 서로를 스쳤다. 파작. 가고일의 날개에 금이 갔다. 금이 번져 날개가 떨어졌다. 가고일이 추락했다.

“날개를 노려!”

공중전은 정신이 쏙 빠졌다.

세상이 연신 빙글빙글 돌고, 강하할 때 아찔하고 방향이 바뀌어 고개가 꺾이고 몸이 쏠렸다.

익인들이 가고일과 연신 부딪쳤다. 부딪치고 스쳐 둥글게 돌아 다시 서로에게 쏘아졌다.

깡깡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수직갱을 타고 울리고 또 울렸다. 요란한 메아리였다.

“사- 크트!”

시엔의 주문. 음차원 에너지가 언어에 힘을 얻어 실체화했다. 유형의 물리력을 구현했다. 허공에 커다란 뼈대가 솟았다. 거대한 왼팔의 뼈대였다. 앙상한 손이 쭉 뻗어 가고일을 움켜쥐었다.

시엔이 손을 뿌렸다.

거대한 뼈의 손이 그 동작을 따라 가고일을 벽면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퍽! 돌 부스러기가 날리고, 조각난 가고일의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순간 뼈의 손이 움찔 흔들리더니 점차 투명해지며 그 형상을 잃었다. 강력한 신성에 간섭을 받아 흑마법이 흝어진 것이다.

성녀가 곁에 있으니 아무래도 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성녀의 신성이 모여 또다시 창의 형상을 이뤘다.

빛의 창들이 위로 솟았다. 개중 하나는 가고일을 맞췄으나, 나머지는 빗나가 계속 위로 솟았다.

환한 빛을 뿌리는 창들이 저 위를 비췄다.

“젠장, 위! 위!”

시엔이 소리쳤다.

빛의 창이 뿌리는 조명에, 저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수십의 가고일들이 반사되어 번들거렸다.

< 15. 깊은 땅속 그 위로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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